기술+예술 = 놀이

아모레퍼시픽미술관 개관전 '라파엘 로자노헤머: 디시전 포레스트'에서 최첨단 테크놀로지는 예술을 만나 놀이가 된다.

은색 수직 차양으로 전면을 감싼 파사드.

거대하고 정직한 육면체를 이루는 아모레퍼시픽 신본사 건물은 밤이 되면 빛으로 그린 점묘화처럼 용산 일대를 밝힌다. 유선형의 단면을 지닌 수직 차양으로 건물 전면을 감싼 마감 방식 때문이다. 설계를 맡은 세계적인 건축가 데이비드 치퍼필드는 햇빛을 차단하는 나무 발에서 아이디어를 얻기도 했다고 밝혔는데, 이를 통해 직사광선으로 인한 눈부심을 막아주고 자연 채광을 실내 공간에 골고루 확산시킨다. 그리고 밤이 되면 은색 알루미늄 차양이 내부의 빛을 외부에 반사한다. 

1층부터 3층까지 이어진 아트리움 공간에는 약 16m 층고의 유리 천장 빛이 내린다.

공공 영역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인 로비, 대로가 아닌 미래에 완공될 용산공원으로 나 있는 입구, 지하철 신용산역과 이어지는 지하 공간 등 신본사는 이 건물에 일터가 마련돼 있지 않은 이에게도 열려 있는 공간, 막히지 않고 뚫려 있는 길과 같다. 내부로 들어가면 1층부터 3층까지 이어진 대형 공간 아트리움이 펼쳐진다. 맨 얼굴 같은 회색의 노출 콘크리트 벽면이 해사한 면모를 자아내고, 약 16m에 이르는 층고의 유리 천장에서 내리는 빛 속으로 저 멀리 시선이 뻗어나간다. 소규모 전시 공간으로 올해 말까지 <아모레퍼시픽과 건축가들> 전시가 진행되는 APMA 캐비닛(APMA CABINET), 세계 각국의 미술관과 박물관의 전시용 도록을 열람할 수 있는 전시 도록 라이브러리(apLAP), 아모레퍼시픽의 역사와 아름다움을 향한 여정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아모레퍼시픽 아카이브 등이 이곳에 마련돼 있다. 그리고 1층에서부터 지하로 연결되는 공간에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이 있다. 미술관 창밖 너머로는 건물들의 옥외 설치물 가운데 단연 탁월한 올라퍼 엘리아슨의 ‘Overdeepening’이 자리한다. 지름 12m의 거대한 원판이 두 개의 반원형 고리에 의지해 들어 올려진 형태의 이 작품은 원판의 거울과 바닥의 얕은 연못이 서로를 끊임없이 반영하는 효과로 시간과 계절의 흐름을 시시각각 반영한다. 

옥외 설치작품인 올라퍼 엘리아슨의 ‘Overdeepening’.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의 입구 로비를 장식하는 또 다른 원은 ‘Blue Sun’이라는 제목을 갖고 있다. 개관 기념 전시회인 <라파엘 로자노헤머: 디시전 포레스트>전의 작품이다. ‘대중과 가깝고 친밀하게 소통하는 미술관’이 되기를 지향하는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은 한국에서 보기 드문 대규모 인터랙티브 미디어 전시를 개관전으로 선보이고 있다. 멕시코 출신의 캐나다 작가인 라파엘 로자노헤머(Rafael Lozano-Hemmer)가 지난 10년간 태양에 대해 연구하며 나사(NASA)와 협업한 결과물인 지름 3미터의 3D 원형 조각은 태양 본래의 고유한 색온도인 청백 색조를 확인시켜준다. 태양 표면에서 포착되는 불꽃과 얼룩, 요동치는 실제의 움직임이 서서히 발생했다 사라지는 이 신비로운 푸른 구 앞에서 관람객들은 홀린 듯 못 박혀 있었다. 아모레퍼시픽미술관과 퀘벡 현대미술관의 공동 지원으로 제작된 이 작품을 비롯해 작가의 26년간의 작업 세계를 펼쳐 보이는 주요 작품 29점 가운데 5점의 신작이 이번 전시에서 전 세계 최초로 공개된다. 

‘Blue Sun’, 2018

전시장 입구 경사면을 오르니 가로 14.5m, 세로 14.5m의 거대한 인공 해변이 눈에 들어온다. 테라스에는 인공 해변을 축소한 모래판이 있고, 누군가가 저 아래 인공 해변에 발을 들여놓으면 작은 모래판에 축소된 빛 그림자가 생겨난다. 또 반대로 작은 모래판에 있는 거북이와 상어 조형물을 이동시키면 그대로 인공 해변에 투영된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테라스에 자리한 사람과 인공 해변에 뛰어든 사람은 상호작용을 하게 된다. 낯모르는 이의 거대한 손이 나를 뒤덮으려 할 때는 모래를 날리며 뛰어보기도 하고 새파란 수영장이 초기 화면에 떠올라 있는 아이폰이 등장하자 그 위에서 수영하는 시늉을 해보기도 하면서 말이다. 미국 L.A의 산타모니카 해변에서 단 하루 진행됐던 공공 프로젝트를 실내로 옮겨온 이 작품에서 공원, 광장, 해변 등 일상의 공간을 찾아가 인터랙티브 작품을 통해 지역주민들과 소통해온 작가의 지향점과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의 추구하는 방향이 보기 좋게 포개진다. 

‘Sandbox(Relational Architecture 17)’, 2010

이 밖의 전시된 모든 작품들은 키네틱 조각, 생체측정 설치작품, VR, 나노 기술 등 다양한 분야의 최첨단 기술을 바탕으로 구현되었다. 우리의 일상을 둘러싼 뉴스, 문학, 취조실 거울, CCTV 등이 작품 내용을 구성하며, 맥박, 목소리, 지문, 초상, 발화 시 공기의 파장, 인체의 거리 등 우리의 몸과 움직임이 인터페이스로 활용된다. 실시간으로 송출된 전 세계 언론매체의 뉴스들이 투사된 벽면 앞에서 그림자놀이를 하고(‘Airborne Newscast’), 감시의 수단이었던 CCTV 카메라를 통해 낯선 관람객과 즉석 관계 맺기가 이루어지며(‘Zoom Pavilion’), 공항 검색대의 컨베이어벨트에 올려놓은 나의 소지품 이미지가 이 작품에 참여했던 다른 나라 관객의 그것과 어우러져 새로운 작품으로 탄생하는 것을 지켜보았다(‘Please Empty Your Pockets’). 

Airborne Newscast’, 2013

‘Pulse Room’, 2006

그리고 전시의 마지막에 만난 감동적인 작품, ‘Pulse Room’. 어두컴컴한 방에 240개의 투명 백열전구가 달려 있다. 전구들은 앞서 이 작품을 체험한 관람자들의 심장박동을 스캔해서 빛과 소리를 저장한 것이다. 오렌지색 전구가 저마다 다른 속도로 깜박이며 뛰는 소리가 전시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헬스장에 처음 가 인바디를 잴 때처럼 똑바로 서서 두 손으로 인터페이스를 잡아보았다. 일순 모든 전구가 꺼지며 고요해졌다. 5초쯤 지났을까, 컴퓨터가 나의 맥박을 감지하고 나자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전구가 내 맥박의 속도로 깜빡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치 파도가 밀려가듯이 내 맥박을 선두로 그 전에 참여한 사람들의 심장박동이 차례로 켜지며 ‘두근두근’ 합창 사운드가 돼 공간을 메웠다. 21세기 비약적 발전을 이룬 최첨단 기술은 일상의 프라이버시를 파괴할 것처럼 여겨지는 공포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이처럼 색다른 관계 맺기의 매개체가 될 수도 있음을 체험한 순간이었다. 데이터 과학 용어이자 이번 전시 제목인 ‘디시전 포레스트(Decision Forest)’는 관람객의 선택, 그리고 관람객과 작품의 상호 작용에 따라 얻을 수 있는 결과값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 전시를 통해 어떤 결과값을 가져갈지 그건 전적으로 관객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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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Contributing Editor 안동선
사진 아모레퍼시픽 제공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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