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옥빈의 초상화

초상화는 다른 장르의 그림들과는 뭔가 다르게 느껴지지 않아요? 좀 더 영혼이 느껴진다고 할까, 한마디로 살아 있는 것 같잖아요.

강렬한 패턴의 원피스는 Hermès, 반지는 Cartier 제품.

김옥빈은 한 번도 그림의 모델이 돼본 적이 없다. “사진 촬영은 많이 했죠. 그런데 그림은 뭔가 다르게 느껴져요. 외국 여행 다니면서 미술관에서 만난 초상화들이 떠오르더군요. 초상화는 다른 그림들과는 뭔가 다르게 느껴지지 않아요? 좀 더 영혼이 느껴진다고 할까, 그림 속 인물이 진짜 나를 보고 있는 것만 같고, 한마디로 살아 있는 것 같잖아요. 그래서 이번 작업을 하고 싶었어요.” 드로잉 미팅 날 그녀는 빨간색 상의가 어깨선을 따라 흐르는 긴 원피스를 입고 부암동 작업실에 도착했는데, 발에는 플립플롭이 위태롭게 걸려 있었다. 칭칭 붕대가 감긴 새끼발가락 때문이었다. 영화 <악녀>에서 각목부터 도끼까지 살벌하게 휘두르던 그녀가 테이블에서 떨어진 휴대폰 배터리에 당했다.

<악녀>를 준비하고 촬영하는 동안 구역질이 올라올 만큼 운동과 액션 연습에 몰두해야 했던 김옥빈에게 화가가 초상화를 그리기 위해 필요한 재료들을 모으는 동안 의자에 앉아 내면으로 침잠하는 일은 조금쯤 지루했는지도 모르겠다. “방금 살짝 졸 뻔했어요.(웃음) 저는요, 그림 잘 그리는 재주가 너무 부러워요. 저는 글씨도 엄청난 악필이거든요.” 자신 역시 악필이라며 작업 노트를 보여주는 문성식과 김옥빈은 손 크기를 비교해보기에 이른다. 김옥빈에게 문성식은 극도로 예민할 거라는 화가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준 편안하고 예의 바른 예술가다. “그런데 미팅 끝나고 집에 돌아가서 그분의 작품들을 천천히 보다 보니 씁쓸하기도 하고 기묘한 느낌도 들고 그러더라고요. 주위의 감독님, PD들이랑 한참 그림 보면서 얘기 나눴어요.” 문성식에게 김옥빈은 외모적으로 가장 매력적인 모델이었다. “그날 입은 의상도 그렇고 활처럼 길게 뻗은 눈썹과 <박쥐>에서 봤던 눈빛이 야생적인 느낌을 자아냈어요. 다섯 배우 가운데 유일하게 밤을 배경으로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보랏빛과 파란빛이 섞여 있는 나팔꽃을 매치하면 좋을 것 같아요.” 완성작에서 밤하늘에 형형하게 핀 나팔꽃 배경과 예의 당당한 눈빛의 김옥빈은 강렬하고 유기적인 전체를 이루고 있다.

턱시도 코트, 팬츠, 허리에 두른 셔츠, 슈즈는 모두 Céline, 목걸이는 Cartier 제품.

배경을 이루는 꽃은 포트레이트 프로젝트의 초반부터 고안했던 것이다. 김천에서 포도 농사를 지었던 아버지 밑에서 자란 작가는 지붕 위로 날아오르는 공작새를 비롯한 여러 동물과 선인장, 목련, 배나무, 봉숭아, 작약 등 온갖 빛깔의 꽃들이 계절의 변화에 맞춰 피고 지는 집에서 자랐다. “아마도 그 시절 동네 어른들은 그것을 보고 험담을 했을 것 같아요. 돈도 되지 않는 꽃을 밭 한 가득 심어둔 농부를 두고 그들은 뭐라 생각했을까요?”라면서도 부암동의 작업실 옆, 작가가 직접 관리하는 아담한 정원에서는 봄마다 탐스럽게 여러 색의 장미가 만개한다. “사실 그 배경은, 여배우와 꽃이라는 식상한 조합을 염두에 둔 건 아니에요. 저는 배우들을 아름답게 그리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그보다는 그 사람이 갖고 있는 뭐랄까, 동물적인 실체 같은 걸 그려내고 싶어요. 꽃은, 본격적인 작업을 시작할 때가 봄이었고 당시 제 정원에서 열심히 꽃을 키우던 때라서 꽂혀 있었어요.(웃음) 어떤 조건 하에서도 그리고 싶다는 동기와 욕망을 북돋아주는 요소로서 생각했던 거죠. 배경이 그냥 벽이었다면 헛도는 붓질이 많았을 것 같아요.”

김옥빈은 완성된 그림을 보자마자 이렇게 말했다. “상상한 대로 나왔어요. 드로잉 하던 날, 그리시는 걸 보는데 ‘내 얼굴에서 사람들이 기억할 만한 부분들이 도드라지겠구나’ 생각했거든요. 역시 눈썹을 시원하게 착 그리고 작은 입매, 약간 뾰족하게 내려오는 턱이 눈에 들어오네요. 그리고 어쩐지 섬뜩해 보이는 나팔꽃! 저는 항상 화보를 찍으면 눈두덩에 컬러를 진하게 올려줘요. 컷이 계속되면서 마지막에는 지구를 정복하는 여자가 돼 있죠.(웃음)” 들어오는 시나리오들도 대체로 검사, 기자, 형사 역할이라는 그녀가 지닌 강력하고 대체 불가능한 아름다움을 문성식 작가가 가시적으로 만들어주었고, 나는 우리에게 이런 여배우가 있어서 진실로 황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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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에디터
헤어강 현진
메이크업홍 현정
어시스턴트백 하린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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