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르띠에의 아트 컬렉션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전시 <하이라이트>가 5월 30일부터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다. 첫 아시아 투어를 앞두고 서울을 찾은 컬렉션 디렉터 그라치아 콰로니를 만났다.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의 소장품 전시 <하이라이트>가 5월 30일부터 8월 15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다. 1984년 개관 이래 당시 세계적 무대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미술가들을 발굴하고 장르를 넘나드는 학제적이고 혁신적인 기획 전시를 선보여온 까르띠에 현대미술 재단의 독보적 발자취를 이번 전시를 계기로 돌아보았다. <하이라이트>의 첫 아시아 투어를 앞두고 서울을 찾은 컬렉션 디렉터 그라치아 콰로니(Grazia Quaroni)가 <바자>의 충실한 도슨트를 자처했다.

까르띠에 아트 - 하퍼스 바자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컬렉션 디렉터 그라치아 콰로니

미술 재단을 운영하는 럭셔리 브랜드는 많다. 그 가운데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이 기업 메세나의 혁신적인 모델로 인정받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까르띠에와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이 사실상 독립적으로 운영된다는 점이 가장 주요한 이유가 아닐까 한다. 1984년 10월 20일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을 설립하면서 당시 재단의 설립자이자 현 대표 알랭 도미니크 페랭은 브랜드와 별개의 활동을 해나가기로 결정했다. 당시에는 기업이 설립한 미술 재단으로서는 최초였고, 까르띠에만이 유일하게 아트에 열려 있는 브랜드였다. 기업의 미술 재단이 다수 생겨난 현시점에서 보자면 종종 재단 소유자의 개인적 취향에 좌지우지되거나 아티스트가 가져다줄 수 있는 재정적인 이익에 입각해 컬렉션이 이루어지는 경우를 보게 된다. 그러나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은 지난 30여 년 동안 완전한 독립체로서 개별적인 활동을 이어나가는 데 성공했다. 수익과는 무관하게 전 세계의 떠오르는 아티스트를 발굴하고 그들이 도약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에 집중하면서. 때문에 우리가 재단을 이끌어나갈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아티스트들과의 관계이며 브랜드와 재단의 개별성과 독립성은 아티스트들이 우리 재단을 신뢰하는 데에도 중요한 근거가 된다.

1984년 설립 당시 베르사유 근처 조각공원에 레지던스 프로그램을 운영하던 까르띠에 재단은 10년 후 파리 몽파르나스 구역에 프랑스 건축가 장 누벨이 설계한 유리와 철골로 이루어진 투명하고 아름다운 건물로 옮겼다. 그리고 지금까지 장르를 넘나드는 혁신적이고 큐레이팅의 뷰가 확실한 전시들을 선보이며 현대미술 애호가들에게 찬사 받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동안 미술관에서 열린 2백 회 정도의 전시를 관통하는 지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처음 재단을 설립할 당시 페랭 대표가 천명하고 지금도 에르베 샹데스 관장이 운영하는 프로그램들 속에 충실하게 반영된 재단 운영의 핵심 원칙은 학제적이며 호기심과 탐구정신으로 특징 지워지는 전시 기획의 새로운 방식을 창출해낸다는 것이다. 우리는 현대미술가들뿐 아니라 철학자, 과학자, 인류학자, 사회학자들이 예술적 자유 속에서 상호교류하며 획기적인 토론의 장을 마련하는 데 크나큰 보람을 느낀다. 까르띠에 재단을 통해 데이비드 린치는 패티 스미스, 러시아 수학자 미하일 그로모프와 교류했고, 레이몽 드파르동은 야노마미족의 샤먼 다비 코페타, 철학자 폴 비릴리오와 대화를 나눴으며, 장 미셸 알베롤라와 수학자 세드릭 빌라니 등도 만나 예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협업을 하면서 경이로운 작품을 만들어냈다.

까르띠에 아트 - 하퍼스 바자

장 누벨(Jean Nouvel),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건물(Building of the Fondation Cartier pour l’art contemporain), 파리 라스파일 대로 261(261 Boulevard Raspail, Paris)

그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협업이 이루어졌던 기획 전시를 소개해준다면?

세계 도처에서 진행되는 인구 이주의 문제를 다뤘던 2008년도 전시 <원주민의 땅, 추방을 멈추라>인데, 그 전시에 출품된 두 점의 작품을 이번 <하이라이트> 전시에서도 선보이게 돼 기쁘다. 한 점은 프랑스 철학자이자 도시학자인 폴 비릴리오와 함께 2008년도의 전시를 구상한 프랑스 보도사진작가 레이몽 드파르동의 작품이다. 그는 클로딘 누가레와 함께 영상작품 ‘그들의 소리를 들으라’를 통해 인구와 땅의 관계, 언어, 역사, 뿌리 등을 다루었다. 이 작품은 모국어가 사라질 위기에 처한 인구 집단을 주목한다. 작품을 통해 관객들은 칠레의 마푸체, 프랑스의 브레통, 에티오피아의 아파르, 브라질 북부 아마존 열대우림지대의 야노마미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 다른 한 점은 미국의 예술가와 건축가 그룹 딜러 스코피디오+렌프로가 2008년 제작하여 2015년 업데이트한 프로젝션 작품 ‘출구’이다. 역시 폴 비릴리오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이 작품은 우리 시대의 비극이라고 할 수 있는 정치적 갈등과 자연재해로 인한 인구 이주에 관한 원인들을 묘사한다. 왜 사람들이 이동을 하고 고향을 떠나는지, 현재 우리 사회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에 대해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심도 깊고 과학적인 연구를 거대한 스케일로 꾸려낸 작품이다.

딜러 스코피디오+렌프로의 ‘출구’는 지금으로부터 1백 년 후의 세상은 어떤 모습일지 질문을 던지는 상하이 프로젝트 ‘Envision 2116’에서도 선보이지 않았나?

맞다, 기억해줘서 반갑다. ‘출구’는 비디오 설치물이기 때문에 동시에 여러 장소에서 전시가 진행될 수 있고 어디에서 전시가 되든 그 작품은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컬렉션의 일부이다. 상하이 프로젝트는 지구에서의 삶이 지속 가능할지 고심하며 거대하게만 느껴지는 질문들에 대한 답을 연구하기 위해 아티스트, 퍼포머, 음악가, 건축가, 지리학자 등을 한자리에 모은 아트 프로젝트여서 딜러 스코피디오+렌프로의 작품을 선보이기에 매우 적절한 무대였다고 생각한다. 지난 4월부터는 호주 멜버른에서도 이 작품이 소개되고 있고 세계 각지에서 현재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굉장히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더 많은 곳에서 전시되기를 바란다.

개인적으로 최근 파리 까르띠에 미술관에서 열린 <위대한 동물 오케스트라>(2016년 7월부터 2017년 1월까지)가 인상 깊었다. 버니 크라우스라는 생물음향학자가 지난 40년 동안 수집한 5천 시간에 달하는 1만 5천 종의 동물 소리를 시적으로 음미하게 하는, 현대미술계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전시였다.

크라우스는 툰드라에서 보르네오 원시림까지 지구 전역을 누비며 땅과 빙하가 움직이는 소리, 새들의 지저귐, 곤충 애벌레가 내는 미세한 소리 등을 수십 년 동안 녹음하고 ‘생물음(Biophony)’이라는 용어를 만들어낸 생태음향 전문가이자 뮤지션이다. 그는 인간 활동의 소음으로 인해 점점 침묵 속으로 사라져가는 야생 동물들의 언어가 지닌 아름다움과 다양성, 복잡성을 드러내는 장인이다. 크라우스는 이런 소리들이 완전히 사라져버리기 전에 이 지구의 살아 있는 소리들에 귀 기울여보라고 권하며 자연환경을 해치는 인간의 무신경함을 고발한다. 말미잘이 내는 투덜거림부터 죽음을 슬퍼하는 비버의 울부짖음에 이르기까지 자연의 교향곡을 통해 인류에게 경종을 울리는 것이다. 이번 <하이라이트>전에서는 런던의 컬렉티브 그룹인 유브이에이가 버니 크라우스의 사운드스케이프를 3차원 전자 설치물로 디자인한 설치작품을 선보인다. 비디오 초반에 버니 크라우스의 인터뷰가 포함돼 있으니 자연의 소리풍경 생태 연구에 독보적인 영역을 개척한 유일무이한 크라우스의 얘기를 들어보시길.

까르띠에 아트 - 하퍼스 바자

차이 구어치앙(Cai Guo-Qiang), ‘화이트 톤(White Tone)’, 2016, 종이에 화약, 400×1800cm, <위대한 동물 오케스트라> 전시 커미션 작품, 2016~2017년 소장

그 전시의 독특한 미학적 경험 가운데 중국 작가 차이 구어치앙의 가로 4미터 세로 18미터 화약 드로잉 작품 ‘화이트 톤’이 있다. 이번 전시에서도 선보일 예정이라고.

‘화이트 톤’은 <위대한 동물 오케스트라> 전시 커미션 작품으로 2016년에 제작돼 2017년에 재단에 소장되었다. 구어치앙은 지구상에 유일하게 남은 자연의 흔적, 동물의 마지막 유산을 상상하며 동물들이 조용히 몸을 구부려 마지막 물을 한 모금 마시는 장면을 화약 드로잉으로 표현해냈다. 그가 말한 대로 “모든 소리가 사라진, 혹은 곧 사라질 곳의 이미지”는 아름답고 감동적이면서 어두운 감성을 자아낸다. 보기에는 고요한 이 작품의 제작과정은 기존의 다른 화약 드로잉처럼 굉장히 소란스러웠을 테고 또한 동물의 디테일을 표현하기 위해 섬세하고 까다로운 과정이 요구되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개막식에서 웅장한 불꽃 퍼포먼스를 선보인 바 있는 차이 구어치앙은 세계 곳곳에서 쉼 없이 블록버스터급의 개인전이 열리는 가장 성공한 아티스트 중 하나다.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은 그와 오랜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 것으로 안다.

구어치앙과의 긴밀한 관계는 그가 아티스트 레지던시에 참여했던 1993년으로 올라간다. 그는 당시 베르사유 근처 주이 앙 조자스에 있는 드넓은 조각공원에서 다양한 전시 프로그램과 신진 작가 및 큐레이터들을 위한 레지던스 프로그램을 운영하던 시절의 까르띠에 재단 소속 작가였다. 그 해 여름 구어치앙은 레지던시에서 3개월가량 머무르며 어떻게 하면 자신의 작품 속에서 현대미술과 중국 전통 문화를 접목할 수 있을지 치열하게 고민했다. 우리는 그때부터 구어치앙의 작품이 매우 흥미롭다고 생각했고, 그가 그 여름에 제작한 ‘지구에도 블랙홀이 있다’라는 제목의 화약 드로잉을 이번 전시에서 선보일 예정이다. 세계적 작가의 초기 작품을 볼 수 있는 흥미로운 기회가 될 것이다. 어리고 무명일 때부터 우리 재단이 후원한 아티스트 중 한 명인 장 미셸 오토니엘의 초기작 또한 소개할 예정인데 지금에 비하면 다소 거칠고 강한 느낌의 작품들로서 예상치 못한 아름다움을 발견하리라 확신한다.

까르띠에 아트 - 하퍼스 바자

장 미셸 오토니엘(Jean-Michel Othoniel), ‘유니콘(L’Unicorne)’, 2003, 불어서 만든 유리, 금속, 194×70×50cm, 2004년 소장

세계적인 미국인 아티스트 사라 지의 1999년도 작품도 이번 전시에서 소개된다. 식물, 전선, 플라스틱 병 등의 일상적인 물건들로 전시 공간을 독특한 리듬으로 채우는 사라 지의 작품이 개인적으로 매우 기대된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일 작품 ‘솟아오르는 것은 모두 덮어야 한다’는 1999년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에서 열린 사라 지 개인전에서 선보인 작품으로 작가 최초의 대형 작업이었다. 작은 공간에서 주로 작업하던 사라 지는 까르띠에 재단 건물에 맞는 대형 작품을 만들어 내부와 외부의 관계성의 문제를 제기했다. 일상의 사물들을 천장에 매달아 세심한 규칙에 따라 배열하는 작가 특성상 전시 공간을 일시적인 작업실로 변형시키면서 설치를 해나가기 때문에 전시 장소에 따라 매번 새로운 형태의 작품을 선보인다. 이번 전시를 위해서도 작가는 대규모 스태프들과 함께 서울을 찾을 예정이다. 서울시립미술관(이후 SeMA)의 건축을 고려해 다시 적용하고 나면 이 작품은 또 다시 새롭게 다가올 것이다.

까르띠에 아트 - 하퍼스 바자

사라 지(Sarah Sze), ‘솟아오르는 것은 모두 덮어야 한다(Everything that Rises Must Converge)’, 1999, 혼합매체, 가변크기, <솟아오르는 것은 모두 덮어야 한다> 전시 커미션 작품, 1999~2000년 소장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의 컬렉션 기준이 있다면 무엇인가?

까르띠에 재단의 아티스트 선정 기준은 나의 개인적인 취향과는 별개로 아티스트들의 발전을 도모하기 위한 프로그램에 맞춰져 있다. 그래서 취향보다는 아이디어를 함께 나누는 데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

그럼에도 발견 당시 특히 인상적인 아티스트가 있었을 것 같다.

론 뮤익이 그렇다. 2001년 베니스에서 처음 그의 극사실주의 조각을 접했는데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파리에 돌아온 후에도 그 강렬한 인상에 대해 나조차도 그 이유를 설명할 수가 없었다. 결국 그에게 작품에 대해 문의하게 되었고, 쉽진 않았지만 그를 만날 수 있었다. 낯을 심하게 많이 가리는 성격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2005년에 같이 전시를 하고 싶다고 했고, 그가 수락해서 까르띠에 재단 미술관의 큰 공간을 그에게 맡기게 되었다. 거대하게 확대되거나 축소된 크기로만 만들어질 뿐 결코 인간의 규모에 맞는 작품을 만드는 법이 없는 작가는 5점의 조각을 전시하길 원했는데 그중 3개는 매우 작았다. 공간은 큰데 작품의 크기는 너무 작아서 사실 염려가 되었지만 놀랍게도 결과는 2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전시를 찾을 정도로 매우 성공적이었다. 2013년에 우리는 론 뮤익과 두 번째 전시를 함께 했고 그는 12점의 작품을 가지고 돌아왔다. 그는 지금까지 오직 40점의 작품을 만들었기 때문에 사실 굉장히 많은 양이었다. 12점 중 3점의 작품을 전시에서 선보였고 이후 순회전을 가지며 매우 성공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이번 <하이라이트>전에서도 그의 작품 3점을 선보일 예정이다.

까르띠에 재단 컬렉션은 마치 세계적으로 가장 성공한 아티스트의 아카이브 모음 같다. 아티스트에게 전적인 자유를 보장하면서 이루어지는 커미션 워크를 통해 지난 30여 년간 정말 많은 아티스트를 발굴하고 후원했다. 이번 <하이라이트>전을 수놓은 많은 세계적 작가들의 이름이 그 돈독한 관계를 대변하는데, 커미션 작업이 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가?

커미션 작업은 까르띠에 재단의 핵심적인 활동이며 모든 전시는 까르띠에 재단의 소장품을 풍성하게 만들어줄 작품 창작을 후원하는 기회이다. 진정한 의미의 창의적인 파트너십을 통해 작가들은 독창적인 무언가를 창조하고, 나아가 새로운 지평을 탐험할 기회도 얻는다. 1984년부터 까르띠에 재단은 현재 3백 명 이상의 작가들이 제작한 1천5백여 점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컬렉팅을 하는지 궁금하다.

집에 어느 정도 작품들을 소유하고 있긴 하지만 커다란 애착은 없다. 나는 대중을 위해 전시하는 공공장소에서 일을 하고, 그 예술작품들은 커뮤니티에 속할 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의 개인적인 공간에 작품을 두는 것에 커다란 중요성과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대학에서 큐레이팅학을 가르치고 있다고 알고 있다. 근본적으로 큐레이터는 어떤 존재라고 정의할 수 있는가?

아티스트와 대중을 연결하는 다리라고 생각한다. 그 중간에 큐레이터가 하는 일, 즉 전시가 있다. 큐레이터는 아티스트와 직접 이야기 나누는 특권이 있다. 전시를 준비하기 위해 스튜디오에 가고, 아티스트에 대한 자료조사를 한다. 반면에 대중은 전시를 통해 작품을 이해한다. 전시 자체는 아티스트가 하는 일이 아니다. 아티스트는 작품을 만든다. 대중이 전시장을 찾을 때 그들은 큐레이터가 전시하는 방식을 통해 작품을 이해한다. 단순히 전시에 관련된 문서, 언론의 자료와 같은 1차적인 정보뿐만이 아니라 대중이 작품을 이해할 수 있는 통로는 그 ‘작품 자체’인 것이다. 결국 큐레이터가 하는 일, 큐레이터가 하는 예술은 전시이기 때문에 큐레이터의 책임은 전시의 모든 파트에 걸쳐져 있다. 전시 공간의 조명, 벽에 써넣는 글귀, 건축가를 선택하는 일…. 이 모든 것이 큐레이터가 하는 일이니까. 만약 잘 준비된 전시를 통해서라면, 대중은 예술가와 대화하는 특권을 누릴 수 있다. 그들이 직접 아티스트와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지만 결국 작품이 전시되는 방식을 통해 작품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내가 하는 일이다.

까르띠에 재단 컬렉션의 작품들은 정기적으로 대여되어 전 세계 미술관의 주요 전시회를 통해 공개되고 있다. 이는 미술계에 공헌하는 일인데 얼마 전 퐁피두 센터에서 열린 사이 톰블리 회고전이 단일 아티스트 전시 준비 기간으로는 최장기인 3년이 걸린 이유도 작품 임대에 까탈스럽기 그지없는 박물관들이 작품 대여를 잘 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알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까르띠에 재단은 타 미술관들을 통해 컬렉션 작품이 전 세계 관람객과 만나는 것을 장려하고 있다. 그 이유를 듣고 싶다.

이는 공립미술관과 사립미술관에 얽힌 주제이기도 하다. 나는 프랑스 출신인데, 프랑스는 예술과 미술관에 대해 매우 적극적으로 후원을 해주는 나라에 속한다. 물론 점점 예산이 줄어들고 있다는 불평은 항상 존재하지만 아티스트들의 안정적인 삶이 보장되지 않을 만큼 상황이 좋지 않은 나라들도 있다. 어떤 사람들은 요즘 늘어난 사립 재단 미술관들이 공립미술관의 수익을 빼앗아간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까르띠에 재단의 경우에는 공립미술관과의 공생을 도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아티스트에게는 공립과 사립 모두의 후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공립미술관의 후원은 그들의 명성과 삶 전체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또한 공립미술관은 그들의 컬렉션을 영원히 보존한다. 사립미술관은 대개 작품을 영원히 보존해야 하는 의무가 없는 대신 때때로 공립미술관보다 더 유연하고 신속하게 아티스트의 프로젝트를 뒷받침한다. 공립과 사립, 누가 누구의 역할을 대체해준다는 개념보다는 모두가 같은 목적을 갖고 협업해야 한다. 이번 SeMA와의 전시가 바로 그 적절한 예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이라이트>전을 개최하는 일은 도시 전체, 특히 이번 경우는 급속도로 변화하는 무수한 현실이 공존하는 복잡한 도시 서울의 시선을 받는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이번 <하이라이트>전의 의도나 의미에 대해 어떻게 정리할 수 있을까?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SeMA와의 빈번한 교류를 통해 서울에서 현재 진행 중인 예술의 동향뿐만 아니라, 도시화와 환경이 끊임없이 최우선의 의제가 되는 서울이라는 이 거대 도시만의 특수한 쟁점들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다른 나라에서 재단의 소장품 전시를 연다는 것은 지금까지 까르띠에 재단이 성취한 것들을 정리해보는 일일 뿐 아니라, 엄격함과 탁월성이라는 재단의 전통을 역시 동일한 원칙에 입각한 미술관의 완전히 새로운 관객들과 나누는 도전이기도 하다. 공공미술관에서 전시를 개최하는 일은 도시 전체, 특히 이번 경우는 급속도로 변화하는 무수한 현실이 공존하는 복잡한 도시 서울의 시선을 받는다는 뜻이다.

이번 전시에서 까르띠에 재단은 한국 작가 파킹찬스(박찬욱, 박찬경)와 선우훈에게 신작 제작을 의뢰했다. 비슷한 시기 국제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앞두고 있는 박찬경과 이번 전시에 대해 잠깐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그는 <하이라이트>전을 통해 파킹찬스 신작을 작업하게 되어 좋았다면서 출품작 ‘격세지감’에 대해 1999년 박찬욱 감독의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를 촬영했던 야외 세트장을 하나의 오브제로서 담아낸 작업이라고 설명해주었다.

파킹찬스의 ‘격세지감’은 스테레오스코프 촬영으로 만들어진 입체영화인데 영화 속 대사와 음악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특히 입체음향을 더해 41개의 스피커가 사방에서 소리가 들리도록 하여 기묘한 충돌을 만들어냈다. 박찬경 작가는 당시 <공동경비구역 JSA>의 흥행이 개봉 즈음 성사된 6·15 남북정상회담으로 인한 남북 화해 분위기에 힘입었으며 ‘격세지감’을 통해 일련의 세트장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은 분단과 영화의 관계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기 위함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파킹찬스를 만나게 해달라고 SeMA에 강력히 요청을 했었다. 까르띠에 재단에서 선보였던 데이비드 린치와 기타노 다케시의 조합을 기대하며 그들만의 특별한 프로젝트를 기획해달라고 부탁했고 그들의 작품을 보자마자 관객의 마음을 만지는 무언가가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웹툰 작가 선우훈과의 만남 역시 전시를 위한 또 다른 작업을 커미션할 수 있는 기회였다. 선우훈 작가의 작품은 전시장 외에도 까르띠에 재단과 SeMA의 웹사이트에서도 동시에 볼 수 있다.

까르띠에 아트 - 하퍼스 바자

이불(Lee Bul), ‘천지(Heaven and Earth)’, 2007, 파이버글라스, 석고, 타일, 플라스틱, 칠, 잉크, 합판, 모르타르, 128×768×768cm, 작가 소장

2007년 한국 작가로서는 처음 까르띠에 재단에서 개인전을 연 이불은 이번 전시에서 SeMA와 까르띠에 재단과의 교류의 상징적인 역할을 맡고 있다. 전시에서 선보이는 작품 ‘천지’는 2007년 선보였던 작품 중 하나로, 한국 현대사에 관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8미터에 달하는 대형 욕조 형태이자 백두산 천지를 형상화한 이 작품은 과거 군사정권 탄압의 상징이기도 한 물고문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이 작품을 두고 SeMA 홍이지 큐레이터는 “6·29 민주화선언 이후 30년이 지난 오늘, 파킹찬스의 ‘격세지감’ 작품과 함께 과거 파리에서 선보였던 때와는 다른 감정을 전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 작품을 다시 만나며 당신은 어떤 기대를 하고 있나?

2007년에 이미 이불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였다. 어느 날 그녀가 재단 사무실에 찾아와서 한 프로젝트를 보여주었는데 그게 무척 아름다웠고, 우린 바로 전시 준비에 착수했다. 그녀의 프로젝트는 유리로 된 벽과 사방에 정원이 자리한 장 누벨 건축의 잠재적인 아름다움까지 모두 고려해서 고안되었다는 점이 놀라웠다. 바닥을 비롯해 모든 곳에 거울을 배치했고 안팎의 구분이 사라지면서 이 특별한 건축물의 모든 요소가 이불 작품에 의해 재탄생되었다. 아주 간단한 아이디어였지만 이전에는 아무도 시도한 적이 없었던 방식이었다. ‘천지’는 그 전시의 주요 작품으로 이번 전시에서는 어떤 공간적 미학을 자아낼지 매우 기대된다.

마지막 질문이다. 왜 우리에게 예술이 필요할까?

그건 인생의 미스터리 중 하나이다. 우리는 여전히 그 이유를 알지 못한다. 예술은 언제든, 어느 문명에든 존재했다. 그 이유는 아마 인류의 절실한 필요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음악, 그림, 건축, 문학, 연극, 오페라 등이 없는 삶을 상상해본다면 그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삶일 것이다. 우리는 여전히 그 이유를 모르지만 그럼에도 예술은 우리의 의무이다.

  • Kakao Talk
  • Kakao Story

Credit

에디터
사진© Michal Batory / Estera Tajber
출처
본 기사를 블로그, 커뮤니티 홈페이지 등에 기사를 재편집하거나 출처를 밝히지 않을 경우, 그 책임을 묻게 되며 이에 따른 불이익은 책임지지 않습니다. 웹사이트 내 모든 컨텐츠의 소유는 허스트중앙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