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적인 미술관

아름다움에 관해 가장 사적인 경험을 제공하는 장소, 7인의 아트 피플이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미술관에 대해 고백한다.

Kolumba

거대한 유리창에 드리운 손으로 짠 실크 커튼을 뚫고 햇살이 들어온다. 미술관 바닥에 한 점의 추상회화처럼 기하학적 패턴의 그림자가 만들어졌다. 그 옆 벽에는 14세기에 상아로 만든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의 피 흘리는 하얀 육체가 걸려 있다. 금욕적 질서로 채워진 수도원 같은 이곳은 독일 쾰른에 있는 미술관 콜룸바. 이곳은 시간, 성스러움, 아름다움에 관해 가장 사적인 경험을 제공하는 장소이다. 위대한 예술이 그렇듯, 그것은 범우주적이기도 하다. 쾰른 대성당에서 도보로 6분 거리에 있는 이곳에서, 나는 훌륭한 미술관이 지녀야 할 덕목을 다시금 생각했다. 미술관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미술관은 시간에 관한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품기 마련. 세월을 이겨낸, 역사의 모진 풍파를 피해 살아남은, 멸종위기의 동물처럼 기필코 보호되어야 할 운명에 처했던 물건들이 모인 장소가 미술관 아니던가. 노아의 방주처럼, 미술관은 아름다운 것들의 피난처인 셈이다. 콜룸바가 전쟁으로 파괴된 성당 위에 세워진 미술관이라는 점은, 그러한 미술관의 본질로 우리를 인도한다.

콜룸바의 터는 로마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이곳을 방문한 사람은 한 건물에서 2천 년의 서양 문화를 경험할 수 있다.”라는 미술관의 안내처럼, 그곳에는 과거와 현재의 시간이 다투지 않고 앙상블을 이룬다. 본래 고딕식 성당이 있던 이곳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의 공습으로 도시 대부분과 함께 파괴됐다. 1949년, 머나먼 고대의 유적지처럼 폐허로 남은 이곳에 건축가 고트프리트 뵘(Gottfried Böhm)의 설계로 작은 팔각형 성당이 지어졌다. 고딕 양식의 마돈나상을 안치해 ‘폐허의 마돈나’라는 별칭으로 불렸다. 1989년 쾰른 대교구가 이곳을 인수했고, 1997년부터 미술관을 만드는 작업에 착수한다. 공모를 통해 미술관 설계를 맡은 주인공은 ‘건축계의 수도승’이라 불리는 페터 춤토르(Peter Zumthor). 그는 장소의 역사를 감싸안는 미술관을 설계한다. 콜룸바는 서구 현대건축 거장들의 조우이자, 건축 속의 건축, 미술관 속의 미술관, 미술관 속의 성당, 미술관 속의 유적지이기도 하다.

이곳은 과하지 않은 미술관의 건축 때문에, 그리고 고대유물과 현대미술을 병치한 특유의 전시 방식 때문에, 2007년 문을 열자 곧장 명소가 되었다. 회색 벽돌을 차곡차곡 쌓아 올린 단조로운 외관의 건물로 들어서면, 페터 춤토르 특유의 강박에 가까운 절제미가 공간 곳곳에서 오라를 풍긴다. 1층 로비를 가로질러 안쪽의 공간으로 들어서면 미술관의 역사를 간직한 장소가 ‘고고학적 유적지’처럼 펼쳐진다. 관람객은 로마와 중세 시대의 석조 유적을 다리 아래로 가만히 들여다본다. 페터 춤토르는 미술관을 위해 특별 제작한 연한 회색 벽돌 사이에 구멍을 만들어 시간, 날씨, 계절에 따라 미술관 내부에 다채로운 모습이 연출되도록 하였다. ‘필터 벽’이라 불리는 건축적 장치는 중세 성당의 스테인리스글라스와 같은 효과를 가져온다. 창을 통해 들어온 영롱한 빛이 ‘말씀’처럼 공간을 감싼다. 다리를 지나, 비밀스러운 야외 정원으로 나가면 리처드 세라의 강철조각과 만난다. 먼 옛날 건축의 일부였던 붉은 벽돌과 미술관의 회색 벽돌, 세라의 조각이 대조되니 시간의 흐름을 명징하게 시각화한다.

페터 춤토르는 미술관이 열린 날 이렇게 말했다. “좋은 삶은 많은 인내가 필요해요. 작품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즘은 많은 도시가 센세이셔널한 형태의 건축에만 관심을 두고, 작품은 마이너한 역할을 합니다. 흔히 ‘빌바오 효과’라고 하죠. 이곳에 오면 다른 걸 느낄 겁니다. 그것과는 반대의 의미로, 미술에서 시작하는 거죠.” 그의 말대로, 콜룸바가 단순히 유명 건축가의 명성에만 기댄 허울 좋은 미술관이었다면, 이토록 많은 이에게 회자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이곳의 컬렉션과 전시는 건축만큼이나 훌륭하다. 아니 그것을 훌륭하게 보여준다. 수집품은 건축처럼 고대부터 현재에 이르는 시간을 아우른다. 미술관은 모든 예술 창작물의 결합 요소인 측정, 비율, 아름다움을 찾는 것이 컬렉션의 주요 테마라고 강조한다. 이런 컬렉션이 16개의 서로 다른 크기의 전시실 곳곳에 놓여 끝말잇기를 하듯 사색의 순간으로 관람객을 안내한다. 예를 들어, 황금색 벽과 옷걸이, 코트 등으로 구성된 야니스 쿠넬리스의 연극적 설치작품은 로마 황제의 두상들과 함께 놓여 한 편의 시적 풍경을 만든다. 소장품 대부분이 종교에 관한 상징을 담고 있지만, 그것을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인간의 본성에 관한 탐색으로 이해해도 무방할 것이다.

김재석(<아트인컬처> 편집장)

 

건축가의 상상이 구조 엔지니어의 또 다른 상상을 만들어내고 인문과 기술이 만나는 지점을 통하여 공간의 진화를 이루어낸다는 점은 퐁피두센터가 남긴 유산이자 미덕이다.

Centre Pompidou

2004년 일본 건축가 시게루 반은 프랑스 동부에 위치한 도시 메츠(Metz)에 지어질 새로운 퐁피두센터를 위해 파리 퐁피두센터 5층에 임시사무소를 열게 되었다. 유학 중이던 나는 어려운 과정을 거쳐 메츠 퐁피두센터 프로젝트를 위해 일할 기회를 갖게 되었고 그 덕분에 파리 퐁피두센터에서 1년 반의 시간을 보냈다. 배움의 열망이 강렬했던 그 시절 매일 마주했던 퐁피두센터의 공간은 생생한 건축 학교 그 자체였다. 당시 참여했던 메츠 퐁피두센터를 통해 건축 프로젝트를 발전시키는 방법을 배웠다면 사무실 공간이었던 파리 퐁피두센터는 건축이 지닌 힘과 가치를 매일 몸으로 깨닫게 해준 곳이다. 내가 느낀 퐁피두센터는 단순한 도서관, 미술관을 넘어서 도시를 움직이고 역사를 만들어가는 공간이었다. 방대한 양의 문화예술 자료를 무료로 볼 수 있는 도서관부터 현대예술의 역사가 간직되어 있는 상설미술관, 항상 새로운 작가와 예술적 흐름을 제시하는 기획전시까지 영감의 장소이자 문화적 용광로 같은 공간이었던 것이다. 무엇보다도 도시적 맥락 속에서 돋보이는 경사진 광장은 모든 이들의 퍼포먼스를 담아내는 훌륭한 도시적 여백이었다. 그 누구나 그곳에서는 자유롭게 자신의 공연과 주장을 할 수 있었으며 새로운 생각과 자유를 공유하였다.

건축에 있어 공간이 지닌 혁신성과 창의성이란 단순히 기능을 담기 위한 물리적인 영역이 아닌 시대를 넘어선 새로운 질서에 대한 제안과 맥을 같이한다. 사실 퐁피두센터가 지향했던 것은 고정된 영역이 아닌 무한히 변화가능한 잠재적 공간을 의미했기에 역사적인 가치가 있다. 미술관, 도서관의 기능적 영역 구분의 효율적 방식뿐 아니라 물리적인 공간 분할을 넘어선 근대와 현대 건축이 지닌 구조와 공간성에 대한 이야기를 한 것이기 때문이다. 즉 고정되지 않는 공간으로의 진화, 그 불확정적인 공간을 구축하기 위한 공간은 프로그램의 확장 및 변경에 따라 무한 변경가능한 공간으로 계획되어 있는 것이다. 즉 그것은 르코르뷔지에의 돔이노(Dom-ino) 시스템부터 꿈꿔왔던 공간이 벽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새로운 시작점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러한 혁신적인 디자인을 구조적으로 해결한 엔지니어 피터 라이스(Peter Rice)가 없었다면 퐁피두센터는 존재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건축의 역사에서 모든 공간은 구조적인 혁신을 거듭해왔다. 로마네스크, 고딕, 바로크가 그러했으며 근현대 건축의 역사가 그러했다. 로마네스크의 크로싱 볼트(Crossing Vault)에서 고딕성당의 첨두아치(Pointed Arch)로의 변화는 단순히 건축적 진화를 넘어서 시대의 철학, 사회학적 변화를 의미했다. 즉 구조적 진화는 단순히 공간적 문제를 넘어서 이념적, 시대사적 공간론으로 의미를 진화시킨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피터 라이스가 퐁피두센터에서 고안한 ‘Steel Gerberettes’는 44.8m의 트러스를 지지하기 위한 공학적 수단을 넘어서 구조로부터 자유롭고자 한 공간의 이념을 상징한다. 나는 수십 년 전의 공학적 성취가 아직까지 유효하며 아직 이보다 혁신적인 공간이 나오고 있지 않다는 사실에 퐁피두센터의 가치를 새삼 깨닫곤 한다. 건축가의 상상이 구조 엔지니어의 또 다른 상상을 만들어내고 인문과 기술이 만나는 지점을 통하여 공간의 진화를 이루어낸다는 점은 퐁피두센터가 남긴 유산이자 미덕이다. 건축이란 뛰어난 건축가 한 명이 만들어내는 산물이 아니다. 그것은 좋은 건축가를 선택할 수 있는 혜안을 지닌 건축주, 건축가의 혁신적인 안을 창의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엔지니어, 그 창의적인 공간을 풍요롭게 사용할 사용자가 만들어내는 일종의 시공간 종합예술이다. 나에게 있어 퐁피두센터는 운명처럼 나의 건축 기행의 시작점이 되어왔고 여전히 나의 건축적 사고와 과정을 지배하고 있다. 그리하여 되묻는다. 과연 우리는 건축적 혁신을 위해 준비되어 있는가?

이정훈(조호건축 대표)

Underground Museum

L.A. 미술계는 넓게 펼쳐진 땅 위에서 개척자 정신을 품고 가열차게 호황을 일으키고 있다. 이곳의 전시 공간들은 무척 자유롭다. 뮤지엄, 갤러리 같은 특정한 역할에서 벗어나 각 공간마다 고유의 아이덴티티와 역할을 찾아나가고 있고, 아티스트가 직접 운영하는 공간도 확산되고 있다. 언더그라운드 뮤지엄이 바로 그런 L.A. 미술계의 특징을 대변한다. 10대 시절부터 왕성하게 작업 활동을 전개한 아티스트 노아 데이비스는 황량한 풍경을 배경으로 흐릿한 흑인 형체를 주제로 한 그림들로 2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명성 있는 흑인 작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그는 뉴욕 쿠퍼 유니언 대학에서 공부를 마치고 L.A로 거주지를 옮겨 그림을 넘어서 새로운 시도를 한다. 2012년, 예술과는 거리가 먼 듯한 아프리카계 미국인 및 라틴계 노동 계급이 모여 사는 알링턴 하이츠에 전시 공간을 마련하고 언더그라운 뮤지엄이라고 명명한 것. 뮤지엄이라기엔 소박한 전시 공간을 본다면 그 이름이 데이비스의 야심찬 농담에 가깝다는 걸 알게 된다. 젊고 에너지 넘치고 카리스마까지 갖춘 데이비스는 진짜 뮤지엄에 전화해 작품을 빌려 달라고 청했다. 그는 언더그라운드 뮤지엄을 통해 미술과 거리가 먼 환경에 있는 이웃들에게 뮤지엄 수준의 예술을 가져다주고 싶었다. 하지만 작품을 보호하는 것도 중요한 임무 가운데 하나였던 뮤지엄에서는 그 부탁을 들어주기가 쉽지 않았다. 2013년 데이비스는 대가들의 작품을 재현한 전시 <Imitation of Wealth>를 선보여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인터넷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제프 쿤스가 사용한 것과 똑같은 빈티지 ‘후버’ 청소기를 구입해 투명한 유리상자 안에 넣어 ‘The New’ 시리즈를 모방하고, 천장에 달린 형광등을 꺼내서 댄 플라빈 작품인 양 설치했다. 레디메이드를 모방한 이 도발적 전시는 아티스트의 진정성(Authenticity), 도용(Appropriation), 가치(Value)에 대한 흥미로운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이 시기 노아 데이비스는 불치의 암에 걸리고, 2015년 MOCA와 협업 프로그램을 체결하였다. 수년간 7천여 점의 MOCA 컬렉션을 언더그라운드 뮤지엄 전시에 대여하기로 약속한 것이다. MOCA는 L.A에서 제일가는 현대미술 컬렉션을 갖고 있는 곳으로 컬렉션을 집대성한 책을 ‘바이블’이라고 부를 정도다. 데이비스는 그 바이블을 보면서 10여 건의 전시를 기획한 후 유명을 달리했고, 스태프들은 그의 노력이 헛되지 않도록 좋은 전시를 선보이고 있다. 그 전시들 가운데 내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2016년 봄부터 1년간 열린 <Non-Fiction>이었다. 이 전시는 흑인 인권 문제에 대한 날카로운 논의의 장을 제공함과 동시에 인종 폭력의 희생자들과 인내한 가족들에게 노아가 보내는 러브레터에 다름없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데이비드 해먼스(David Hammons)의 후드 티 작품이 공중에 걸려 있다. 2012년 플로리다 주에서 그저 후드 티를 입었을 뿐인 17세 흑인 소년을 백인 자경단원이 수상하다고 여겨 총으로 살해하고서도 정당방위 무죄 판결을 받았다. 후드 티라는 심벌이 공중에서 강렬한 무언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었다. 전시장 벽에는 린치를 당해 나무에 매달린 흑인 남자와 곤히 잠든 백인 남자를 병치시킨 로버트 고버의 월페이퍼 작품이 붙어있었다. 그 밖에 헨리 테일러, 케리 제임스 마샬, 디애나 로슨, 카라 워커 등 미술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동의할 만큼 유명한 작가들의 작품이 있었다. 그런데 <Non-Fiction>이 정말 탁월했던 이유는 미술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도 이 전시를 보면서 느낌표가 가득 떠오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김기범(소더비 인스티튜트 아트비즈니스 교수, 커먼웰스 앤 카운실 공동 대표) 

  • Kakao Talk
  • Kakao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