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색화만의 미학

정창섭, ‘Work G77’, 1966, Mixed media on canvas, 162.5×112.3cm.

정창섭, ‘Tak 89029’, 1989, Tak(best fiber) on canvas, 142×82cm.

여기에는 수년 동안 단색화의 보편적 가치를 발굴, 지지해온 국제갤러리와 티나킴 갤러리가 지난 2015년에 베니스에서 개최한 <단색화>전에 힘입은 바 컸다. 단색화를 국제 무대에서 본격적으로 선보인 최초의 사건인 이 전시는 베니스 비엔날레의 병행전시로 크게 주목받았고, 당시 베니스를 찾은 전 세계 미술 관계자 대부분이 팔라초 콘타리니-폴리냑에 들렀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 반응이 뜨거웠다. 단색화를 처음 체계적으로 소개하는 자리였을뿐더러, 이 첫 만남에서 이들은 한국에서도 동시대적 모더니즘이 존재, 지속되어왔다는 사실을 접하고는 놀라워했다. ‘세상의 모든 미래’라는 테마 아래 온갖 복합적인 현대미술이 집결, 긍정과 비관이 충돌한 그 해 비엔날레 현장에서 단색화는 일종의 ‘오래된 미래’를 제시하며 고유의 존재감을 발휘했다.

기억해보건대, 당시 베니스의 단색화 칼럼을 썼던 나는 타 한국 매체들과 마찬가지로 열광적인 분위기에 한껏 취해 있었다. “단색화를 위하여!”라는 구호와 함께 샴페인 잔을 높이 쳐드는 광경, 한국 현대미술이 처음 보여준 낯설고도 황홀한 건배의 풍경을 시각화, 생중계하느라 급급했다. 단색화의 활약과 인정을 지나치게 강조한 것이 결과적으로 이렇다 할 활약도, 인정도 없었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데 그쳤음을, 그땐 미처 알지 못했다. 비엔날레보다 더 회자되는 단색화의 열풍이 수십 년 전 인고의 역사, 저항의 에너지가 바탕한 결과물이라는 사실을 실감하기도 전, 이 ‘사건’을 좇느라 작품을 찬찬히 들여다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작 이 작품들이 대체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키는지 짚어보지도 못한 채 베니스에서의 화려한 단색화의 밤은 그렇게 지나가버렸다.

그런 점에서 3년 만에 다시 대규모의 작품을 모은 <김환기와 단색화>전은 적어도 내게 베니스의 이국성과 비엔날레의 유명세 등 변수를 제외하고 온전히 작품에 집중할 수 있는 기회였다. 덕분에 이번에야 비로소 ‘단색화의 숲’을 천천히 걷는 오롯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는데, 그 과정에서 새삼 깨달은 감상법이 있다.

권영우, ‘Untitled’, 1987, Gouache, Chinese Ink on Korean paper, 224×170cm.

권영우, ‘Untitled’, 1984, Gouache, Chinese ink on Korean paper, 259×162cm.

보통의 회화는 작품의 표면, 그리고 이를 보고 있는 현재의 나 자신에 집중하게 한다. ‘유명’ 미술관에서 ‘유명’ 작가의 ‘유명’ 작품을 대면한다면, 이 효과는 부지불식간에 감동으로 치환된다. 반면 단색화는 좀 다르다. 수십 년 전 작가가 이 작품들에 들였을 노동(육체의 행위)과 시간(작품에 깃든 역사성)을 곰곰이 응시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권위 있는 단색화 연구가이자 미시건주립대 미술사학과 교수 조앤 기(Joan Kee)가 말한 바, “붓질 없이 남겨둔 표면은 작가가 잠시 중단하고 자리를 뜬 상태, 아직 진행 중인 작업처럼 보인다. 여기서 회화는 관람자가 기다려야 하는 장소가 된다.”는 문장 역시 단색화를 체험하는 또 다른 좋은 방식이다.

더욱이 시간의 개념, 역사적 맥락을 도외시하고 단색화를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는 현대미술 사조 중 단색화가 거의 유일하게 ‘반조적 특성’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과도 일맥상통한다. 전 세계 미술학자, 평론가, 큐레이터들로 하여금 단색화의 고요함과 정치적인 맥락을 연결 지을 수 있게 한 것도 바로 단색화의 태동기인 1960~70년대, 즉 한국의 근현대사였다. 국제미술평론가협회 명예회장 헨리 메이릭 휴즈(Henry Meyric Hughes)는 <Art in Asia>의 글에서 ‘다른 시간대’에 대한 이해의 핵심을 짚어낸다. “한국 모더니즘 양식은 식민지 시절과 한국전쟁이라는 고통스러운 경험으로부터 비롯되었고, 강한 전통의식과 1970년대 급격한 경제적 성장을 이뤄내기까지의 상대적 고립에서 나온 것이었다.”

단색화 사이를 걷다 보면 시대를 증언하는 듯한 육성이 들린다. 현재와 미래가 얼어붙어 손에 잡히지 않는 ‘추상적인 시대’, 풍요에 대한 욕망이 전체를 지배해 맹렬히 내달리던 시절, 그리고 독재 군부정권으로 대변되는 억압적이고도 폐쇄적인 시기. 이 모순과 역설로 점철된 근현대사 속에서 미술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대신 젊은 작가였던 단색화 작가들은 침묵으로 버티고, 저항하고, 은유했다. 도리 없이 흘러가는 삶과 예술에 대한 뜨거운 열망의 균형을 맞추고 살아남기 위해 내면으로 침잠했다. “기교와 절제를 통한 정신적 자연관과 세계관이 녹아 있다”는 단색화에 대한 근래의 평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으로서, 작가로서 관조, 수행, 사색 등 각자의 방식을 통해 자기 존재의 명분을 찾고자 했던 이들의 노력에 빚지고 있다.

때마침 한국에서 온 몇몇 기자들은 각종 경매가를 갱신한 김환기의 베스트 회화 네 점을 비롯해 단색화의 역사를 이루는 주요 작품들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기회라며 감탄했다. 예술은 후대의 몸에 과거사를 각인시킨다. 이 모든 것에 앞선 진실은 뉴욕의 화실에서 서울에 두고 온 이들을 생각하며 고독하게 점을 찍어갔을 ‘외로운 인간’ 김환기가 있었다는 사실이며, 예술적 사연을 떠올리는 순간 말년작인 ‘고요’ 연작 ‘Tranquility 5-IV-73 #310’(1973)에서 숨은 숭고미마저 느껴진다는 점이다. 이는 이를테면 “김환기는 1930년대부터 서구의 모더니즘을 수용, 동양 정신과 미학을 접목해 한국적 추상의 발판을 마련한 선구자”라는 식의 설명보다 동시대적이며, 단색화가 ‘캔버스와 소통하는 신체적 행위’임을 실감하는 예시가 된다.

이우환, ‘From Line(No.800152)’, 1980, Oil and mineral pigment on canvas, 129.5×162.2cm.

다시, 표면 전체를 철조망으로 엮은 하종현의 작품 ‘Conjunction 08-101’(2008) 앞에서 멈추어 선다. 조앤 기가 하종현에 대해 쓴 글 ‘물질성의 표면’의 한 대목이 떠오른다. “철망의 가시에 손이 찔리거나 불에 데었을 때, 내가 작품 중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물감을 마대 뒤에서 앞으로 밀어 넣는 배압법으로 유명한 하종현의 작품은 미학적 경험의 종류를 창조했다는 평을 받는데, 이미 제작과정에서 이렇듯 그의 신체적 행위와 감각이 작가의 실존을 구체화한 셈이다. 박서보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그는 마르지 않은 물감에 한 줄 한 줄 손으로 골을 내고 수직선을 새겼으며, 어린 아들이 서툰 연필질로 무언가를 긁적이다 포기해버리는 모습을 보고는 물감을 덮은 캔버스에 연필로 선을 반복해 그리는 ‘묘법’ 연작을 탄생시켰다.

단색화의 가장 큰 특징은 이렇듯 신체적 행위와 재료의 물성이 만난 ‘몸성’이다. 대지적이며 여성적인 촉각적 작품을 통해 시각만을 고등한 감각이라 여긴 서구 이성주의 질서에 이의를 제기했다는 점에서 일종의 혁신이기도 하다. 온몸으로 겪어낸 경험과 시간을 제 몸뚱이에 각인하듯, 단색화 특유의 떳떳한 미감은 자기 신체 행위를 작업의 일부로 활용한 작가들이었기에 가능했다. 이를테면 권영우는 여러 겹 덧바른 한지를 도구를 이용해 자르고, 찢고, 뚫는 등 물성을 다룬 작업으로 이미지 자체보다 반복적 행위의 과정에 몰두했다. 50년 동안 닥종이만 다루다 작고한 정창섭은 손의 느낌을 통해 닥의 질감과 형태를 끝없이 실험했으며, 정상화는 뜯어낸 물감층 사이의 균열 부분에 새로운 물감을 집어넣은 네모꼴의 모자이크로 캔버스를 가득 채우곤 했다. 지금도 그림이나 조각이 어떻게 최소한 성립해 단순의 극치에 다다를 수 있는가, 이것이 현대미술 영역 안에서 어떻게 존재하는가 그 근원을 탐구하는 이우환의 반복되는 선과 점의 행렬은 언제나 그 이상이었다.

정상화, ‘Untitled 96-12-5’, 1996, Acrylic on canvas, 150×250cm.

박서보, ‘Ecriture (描法) No. 060728’, 2006, Mixed media with Korean hanji paper on canvas, 162×195cm.

“단색화는 최소한의 요소로 표현을 극대화하려는 태도로, 하나의 발견이고 창조였다”는 이우환 작가의 말대로, 그중 반복의 행위는 작가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최고의 표현법이었고, 일종이 저항이 되었으며, 어느 순간 저항을 넘어 어떤 경지가 되었다. 반복의 종국에는 고도의 정신성을 획득하게 되기 마련이다. 과정으로서의 단색화가 일련의 수행의 의미를 지니게 된 데에는, 그리고 추상적인 동시에 인간적이고, 고요한 가운데 격렬한 에너지의 이면에는 바로 작가들의 이런 ‘행위’가 내재되어 있다. “냉랭한 서구 추상미술에 비해 쑥스러우리만큼 예술 환상의 신뢰를 가진” 순수한 작가들의 입체적이고 실험적이며 개념적인 작품은 이들의 생이 일궈낸 질서와 다름없었다. 온갖 드라마와 스펙터클이 난무하는 현대사회에서는 부러 의도할래야 할 수 없는 의지와 표현, 아이러니하게도 이것이 단색화의 강력한 동시대성이다.

<옥스퍼드 아트 저널>에 실린 글 ‘Points, Lines, Encounters: The World According to Lee Ufan’에서 조앤 기의 문장은 그래서, 기억할 만하다. “예술 작품이 물리적으로 현존하는 순간에 관객이 지속적, 적극적으로 개입할 때만 작품의 의미가 활성화된다.” 추세를 보더라도, 역사를 살피더라도, 예술적 과정의 핵심은 작품을 만드는 데서 관객이 작품의 물성을 지각, 경험하는 쪽으로 옮겨간다. 단색화가 ‘열풍’을 새로운 내러티브를 제시하는 ‘현상’으로 이어가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자신이 이들을 새로운 내러티브로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 상하이 한가운데에 단색화가 낸 길을 걸으며 단색화의 화려한 명분이 아니라 실존의 생명력과 서사적 동력을 떠올린 가장 큰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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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윤혜정(국제갤러리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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