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색화 사이를 걷다

상하이 파워롱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한국의 추상미술: 김환기와 단색화’ 전시 전경. 이우환 작가의 회화와 설치 작품 뒤로 하종현 작가의 작품이 보인다.

작품의 주제는 바로 당신의 경험, 당신의 걷기입니다(The subject of the work is your experience, your walking).” 미국의 미니멀리즘 조각가 리처드 세라(Richard Sera)의 격언은 바로 이 순간을 위한 말이기도 하다. 나는 지금 단색화 작품 사이를 천천히 걷고 있다. 작품 각각의 성질이 내 몸에 와 닿아 다시 전시장에서 공명한다. 그 과정에서 이우환의 작품은 엄격하게 ‘정제된 우아함’을, 박서보의 작품은 ‘스펙터클한 절제’를 보여준다. 오묘한 물성의 에너지를 품은 하종현의 작품, 수묵화와 유화의 경계를 제한 권영우의 구조적 작품, 어떤 회화적 기법보다 드라마틱한 닥종이의 흔적에 몰두한 정창섭의 작품, 말이 필요 없는 추상미술의 선구자 김환기의 점화까지, 모두 감상이 아니라 체험의 대상이다. 13미터 높이의 천장에서 쏟아지는 자연광 아래에 80여 점의 단색화가 만들어낸 길, 반세기의 시간성과 이국의 공간성을 초월한 이 길을 걷는 것이 지금 내가 해야 하는 전부다.

내년 3월 2일까지 상하이 파워롱 미술관에서 열리는 <한국의 추상미술: 김환기와 단색화>전(이하 <김환기와 단색화>전)은 또한, 단색화가 한국 현대미술사와 세계 미술계의 흐름에 어떤 새로운 길을 형성해왔는지를 망라하는 전시다. 미술 전문 잡지 <아트리뷰 아시아(ArtReview Asia)>의 에디토리얼 디렉터 에이미 린(Aimee Lin)이 “한국 추상미술의 주요 흐름을 소개하되, 각각에 내재한 다양성을 담아냈다”고 평한 바대로 이번 전시는 모더니즘의 정수를 모은 현장이자 기록이다. 김환기, 권영우, 정창섭, 박서보, 정상화, 하종현, 이우환 등이 1970년대부터 오늘날에까지 선보여온 이 작품들의 존재는 단색화의 연대기인 동시에 ‘한국 현대미술’이라는 제목의 서사를 여는 첫 번째 챕터다.

이번 전시가 다름 아닌 상하이에서 선보인다는 점도, 중국 사드 보복 해제의 첫 신호탄이라는 현실적인 이슈만큼이나 유의미하다. 상하이는 1930년대부터 미술 단체 ‘결란사(엄음)’ 등을 통해 서구 모더니즘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해석하고자 한, 이른바 중국 추상미술의 근원지다. 때마침 미술관에서 함께 공개된 <예술가 40×40: 40인의 예술가를 통해본 개혁개방 이후 40년간의 중국 현대미술>전은 사실주의 미술의 결정판으로, 양국의 현대미술을 비교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전시장에서 만난 50대의 한 중국 관객은 이런 감회를 밝혔다. “중국에서 이 정도 규모의 한국 모던아트 전시를 보는 건 불가능해요. 많은 중국인들이 한국 미술에 스테레오 타입을 갖고 있을 거예요. 하지만 이번 전시는 나에게 한국 미술에 대해 눈뜬 계기가 되었어요. 한국 미술이 이렇게 쿨할 수 있다는 생각을 전혀 못했기 때문이에요!” 이번 전시의 개막식 무대에 선 하종현 작가가 “이번을 계기로 한국과 중국의 문화예술이 활발하게 소통하길 바란다”는 거시적 포부를 밝힌 것도 이런 이유다.

하종현, ‘Conjunction 08-101’, 2008, Oil and collage on hemp cloth, 244×366cm.

평범한 중국 관객이 감지한 ‘한국 미술의 쿨함’은 형식성, 특히 ‘단색화’라는 명칭이 내포한 색에서 출발한다. 단색화는 문자 그대로 ‘한(單) 색깔(色) 그림()’을 뜻한다. 그러나 이 해석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단색화가 주로 흰색, 검은색, 중성색으로 이뤄져 있긴 하나, 동시에 박서보는 분홍을, 하종현은 빨강을, 이우환은 하늘 같은 블루와 땅을 연상시키는 오렌지를 활용한다. 단색화에서의 색은 색채학적 색이 아니기 때문이다. 미니멀리즘의 대가 이브 클라인(Yves Klein)은 자신의 획기적 발명품 ‘인터내셔널 클라인 블루(IKB)’를 두고 색이 아니라 ‘무한성에 대한 상징’이라 했는데, 실은 그가 명상에 가까운 추상회화에 매진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 일본에서 유도를 배운 유단자인 데다 동양 정서를 이해하는 서양인이라는 점이 더해지만, 역설적으로 단색화의 색을 이해하기 쉬워진다. 1세대 미술평론가인 이일은 1975년에 열린 단색화 최초의 전시라 볼 수 있는 <한국 5인의 작가, 다섯 가지의 흰색>전에 대해 “우리에게 백색은 단순한 빛깔 이상이다백색이기 전에 백이라고 하는 하나의 우주다.”라고 썼는데, 백이든 흑이든, 단색화 영역 안에서는 우주 혹은 정신과 통한다.

요즘 전 세계의 아트 페어를 다니다 보면 ‘단색화’ 발음을 척척 해낼 뿐 아니라, 그 본질을 이해하는 해외 미술 관계자와 컬렉터들을 만나기가 어렵지 않다. 지난 2000년대 초 ‘단색화’라는 용어가 생겨나고 본격적으로 통용된 이후의 거대한 변화지만, 그 이전은 물론 한동안도 단색화는 마땅한 이름을 찾지 못한 채 ‘코리안 모노크롬(Korean Monochrome)’으로 일컬어졌다. 절제된 색, 반복적 리듬, 풍부한 질감의 단색화가 추상표현주의, 미니멀리즘 등 1960년대 세계 미술계를 지배한 사조와 비슷해 보이기 때문이다. 덕분에 한국의 미술사학자들은 단색화를 모노크롬으로 정의할 수만은 없는 이유를 꽤 열심히 설명해야 했다. 그러나 요즘은 ‘회화의 종말’을 목적으로 한 모노크롬과 색이나 표현을 부정한 게 아니라 물성을 정신적 영역으로 승화시켜 ‘또 다른 회화의 탄생’을 의미한 단색화, 이 둘의 근본적 차이를 두고 더 이상 논쟁하지 않는다. 이우환의 ‘From Point’ ‘From Line’ 같은 주요 연작이 1971년 바넷 뉴먼의 추상화를 보고 난 후 시작되었다는 흥미로운 사실과는 별개로 “고유의 미학과 사회정치적 요소가 혼합된, 마땅히 그들만의 언어”로서의 단색화를 인정하게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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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윤혜정(국제갤러리 디렉터)
기타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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