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의 현대미술 오마주

여섯 팀의 디자이너들에게 두 가지 질문을 보냈다. 당신은 어떤 현대미술가를 좋아합니까? 그들의 작업을 어떻게 재해석할 수 있을까요? 화이트 큐브에 놓인 디자이너들의 명료한 메시지와 미디엄은 동시대 아티스트를 향한 ‘오마주’이자 디자이너들의 ‘지금’을 동시에 보여준다.

김기문, 김용찬 (디자인 스튜디오 mykc)

‘Monochromatic Doormats’, 카펫 원단 커팅 및 고무 매트 부착, 각 400×80cm, 2017

전유, 도용, 모방의 방식으로 대중문화와 농담을 화이트 스페이스로 끌고 온 리처드 프린스는 언제나 논쟁적인 방법론을 취해온 작가다. 최근 불특정인들의 인스타그램 사진을 무단으로 가져와 약간의 변형을 통해 작품화한 ‘사건’마저도 흥미롭다. 우리는 리처드 프린스가 남긴 코멘트를 텍스트로 가져와서, 흔히 작품으로 인식되지 않는 낯선 오브제에 적용했다. 공간의 입구와 출구에 깔려 있는 ‘현관 매트’는 일종의 경계로서 기능하며 ‘메시지’를 담고 있는 ‘매체’이기도 하다. 리처드 프린스에게 캔버스가 ‘농담 단색화’의 매체가 되었다면 우리에겐 매트가 매체이자 캔버스가 되었다. 리처드 프린스가 말했던 “The Subject Comes First, The Medium Second.(주제가 제일 중요하며, 그 다음이 도구다)”를 도용해서 앞뒤 문장의 주어를 도치시켰다. 즉 도구(매체)를 먼저 상정하고 주제(텍스트)를 설정한 방식을 오브제에 그대로 담았다. 도구가 제일 중요하며, 그 다음이 주제다.

두 번째 오브제는 리처드 프린스가 했던 거짓말에서 모티프를 얻었다. 본인이 참여하지도 않은 전시회에 참여했었다고 거짓말을 해오다 미술 잡지의 평론가로부터 공식적으로 비난을 받게 되자, 작가는 같은 잡지에 다음과 같은 문구로 사과했다. “Lying Was My Contribution(거짓말은 나의 참가작이었다).” 우리는 이 오브제를 거짓이지만 실제로 놓여 있는 것처럼 어느 미술관 입구에 놓고 사진을 찍고 싶었다.


 

이연정, 이하림(디자인 스튜디오 WORKS)

‘Slice & Dice’, Acrylic, Dimension variable, 2017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 바르셀로나 출신의 화가이자 조각가, 도예가인 호안 미로의 작업들을 우연히 본 적이 있었다. 기억을 바탕으로 조각을 구글링, 저장 후 ‘새의 애무’, ‘두 사람’, ‘도망치는 소녀’를 평면으로 따고, 그것들을 겹쳐서 쌓았다.


김윤하(오브제 디자이너)

‘잘봐로드 달려’, 오브제 설치, 160×170cm, 2017

물건을 좋아한다. 정확하게는 그걸 가지고 장난치는 것을 좋아한다. 서로 다른 물성을 가진 재료들이 합쳐졌을 때 나오는 괴이함이 좋다. 나의 작업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철저하게 쓸모없는 예쁜 쓰레기를 만드는 것’이다. 특히 의자는 애착을 가지는 오브제다. 의자는 누군가의 자리와 역할이란 의미도 대변하고 있다. 의자의 일부를 두고 다리나 발이라고 부르는 것이 재미있다. 생명체처럼 느껴진달까? 그래서 평소에 의자의 다리를 길게 늘리거나 휘게 만드는 작업을 해왔다. 달리의 그림에서도 비슷한 걸 봤다. 신체의 일부가 기형적으로 늘어나거나 코끼리의 코가 갑자기 악기로 변한다거나 사물을 가지고 장난치는 느낌이 들었다. 달리와 나의 작업이 묘하게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정재완(북 디자이너, 사 월의 눈)

‘호크니 연습 1’ ‘호크니 연습 2’ ‘호크니 연습 3’, 그래픽, 가변 크기, 2017

호크니 회화작품을 어도비 일러스트레이터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벡터 이미지로 만들었다. 호크니를 연습한 것이다. 많은 부분을 생략하면서, 그림의 구도와 색감 위주로 모사했다. 기하학 도형과 자유 곡선의 대비가 특징이다. 이 작업은 회화에 반(反)하지만, 그림을 깊이 감상하는 또 다른 방식임은 분명하다.


김형진(그래픽 디자이너, 워크룸프레스)

‘확대해 본 YES!’, 벡터 그래픽, 228×296mm, 2017

1966년11월7일,존 레넌은 런던 메이페어 듀크 거리 근처에 있는 인디카 서점에 들렀다. 그곳은 마리안 페이스풀의 남편인 존 던바와 피터 애셔, 그리고 배리 마일즈가 공동으로 운영하는 서점이었는데, 지하엔 작은 갤러리가 있었다. 마침 그곳에선 오노 요코가 다음 날 오픈하는 개인전 <미완성 회화(Unfinished Painting)>를 준비하고 있었다. 존은 전시장 안을 서성이다 가운데 놓인 철재 사다리를 타고 올라갔다. 그리고선 옆에 매달린 돋보기로 천장에 깨알같이 쓰인 글자를 들여다보았다. 거기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예스’. 존 레넌은 이 메시지의 발신자에게 마음을 빼앗겼다. 오노 요코와 존 레넌은 그렇게 연인이 되었다. (하지만 이 둘이 전부터 서로 알고 있었으며 ‘예스’ 에피소드는 다소 극적으로 꾸며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2011년 12월, 슬기와 민은 포스터 작업 <예스!>를 완성한다. 잡지 <그래픽>의 20호 특집을 위해 만든 이 포스터엔 바우하우스 93 폰트와 인디자인의 기본 색상 팔레트에 있는 빨강, 사이언, 초록, 노랑이 사용되었다. 허술한 철재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돋보기로 ‘예스’라는 글귀를 보았을 때 존 레넌은 안도감을 느꼈다고 한다. 그게 ‘노(No)’나 ‘엿먹어(Fuck You)’가 아닌 ‘예스’여서. 나도 슬기와 민의 ‘예스’를 보았을 때 그랬다. 그래서 이번엔 존 레넌 흉내를 내보기로 했다.(철재 사다리는 웹 서치로, 돋보기는 command +로 대체한다.) 그랬더니 나에겐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네 가지 색이 칠해진 면으로 둘러싸인 흰색 종이 외에는.


신덕호(그래픽 디자이너)

‘Light Fall’, Poster, 594×788mm, 2017

얀 바스 아더는 ‘모든 것은 추락한다’라는 명제를 직접 실천하고 그 과정을 16mm 흑백영화로 기록했다. 얀 바스 아 더의 작업은 반복되는 추락, 그리고 작가의 실종이라는 드라마틱한 사건 덕분에 보는 사람을 더욱 감정적으로 만드 는데, 흥미로운 점은 유튜브나 비메오에 오마주 작업이 꽤 많다는 것이다. 사뭇 진지하고 충실히 재현하려 했던 영 상부터 우스꽝스러운 영상까지 폭이 굉장히 넓다.(심지어 ‘I’m Too Sad to Tell You’ 작업을 오마주한 영상 중 하나는 슬픔을 연기하는 작가 대신 떨고 있는 강아지가 등장하기도 한다.) 무려 40년 가까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 히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방식대로 화답을 하는 것이 굉장히 흥미로웠는데, 나도 이에 동참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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