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슬리 휴이트의 예술 언어

갤러리 페로탱 서울에서 국내 첫 개인전을 갖는 미국 아티스트 레슬리 휴이트(Leslie Hewitt)는 ‘환영으로서의 잠재력’을 지닌 사진과 ‘물리적인 무게’를 가진 조각 사이를 오가며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끊임없이 지적 추동을 불러일으키는 작가의 예술언어에 대해 물었다.

‘Untitled (Candid)’, 2013 Digital chromogenic print in custom maple frame 132.7×158.1×15.2cm

레슬리 휴이트라는 다소 생소할 수 있는 아티스트의 프로필은 다음과 같다. 1977년, 뉴욕 퀸스 출생. 경력 초반부터 휘트니 비엔날레(2008)에 참가하는 등 주목을 받았다. 이듬해 참여한 뉴욕 현대미술관에서의 단체전 제목은 <New Photography 2009>. 이후로도 사진은 여전히 그가 다루는 주요 매체다. 최근 갤러리 패로탱 뉴욕(2017)에서 개인전을 가졌고, 워커 아트센터(2016),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2015), 할렘 스튜디오 미술관(2014)에서의 단체전에 참여한 바 있다.

레슬리 휴이트의 작품은 ‘심플’하고, ‘깔끔’하다. 일상적 어휘로 표현한다 해도, 그 무게나 가치가 전혀 손상되지 않을 만큼. 특히, 최근 그가 선보이고 있는 작품은 소위 킨포크 라이프스타일을 표방하는 잡지에 끼워 넣어도 크게 무리가 없을 법하다. 그 소박함과 고요함, 색감과 텍스처, 그리고 대상을 비추는 은은한 햇빛까지. 갤러리 페로탱에서 갖는 이번 개인전(5월 5일까지) 역시 그러하다. 전시장 어디선가 어슬렁거리는 마가렛 하웰을 상상한다면 지나친 걸까.

‘Aura’, 2016 Digital chromogenic print 76.2×76.2cm

‘Scan Scan’ 2018 Digital chromogenic print 76.2×101.6cm

‘Untitled(Still N’ Life)’ 2012 Digital chromogenic print 76.2×101.6cm Blue Skies, Warm Sunlight Studies

레슬리 휴이트.

하지만 그와 대화를 나눠보면, 전혀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 작품 속 미니멀리즘만큼이나 미니멀한, 때로는 심드렁하기까지 한 언어 습관을 가진 여느 아티스트들과는 달리, 그는 작품의 기저에 깔린 심오한 철학과 정교한 지적 토대를 기꺼이 펼쳐 보인다. 그가 사진이나 조각이 아닌, 언어를 통해 열어주는 세계는 미처 따라가기 어려울 정도로 방대하고 복잡하다. ‘과학과 예술의 진보를 위한 쿠퍼 유니언’ 졸업 후 예일대학교와 뉴욕대학교에서 아프리카학, 영상문화 연구를 이어갔고, 최근에는 모교에 교수로 취임하기도 했으니, 진취적인 학자의 면모라 보아도 무방할 것 같다.

‘환영으로서의 잠재력’을 지닌 사진과 ‘물리적인 무게’를 가진 조각 사이를 끊임없이 오고가는 그는, 과거 자신의 할아버지가 경찰 경감으로 근무했던 할렘과 뉴욕의 전통적인 예술 기관에 뿌리를 내리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네덜란드, 독일, 스웨덴, 쿠바를 오가며 영감을 찾는다. 예컨대, 베를린에서 발견한 지그프리트 크라카우어의 영화 이론은 영상작업을 시작하는 계기가 됐고, 암스테르담에서 연구한 네덜란드 정물화는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Still Life’ 연작의 모티프가 됐다.

전시 전경. The Power Plant, Toronto, Canada January 30_May 15, 2016

작가의 말에 의하면 17세기 네덜란드 정물화는 노예무역이 성행하던 시기에 유행했다고 한다. 그가 전처럼 ‘흑인 문제’를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있지는 않지만, 방식이 조금 더 은유적일 뿐 여전히 일관된 주제를 탐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에게 ‘인종’ 문제에 대해 묻는다면, 한국인 아티스트에게 ‘분단’을 묻는 것만큼이나 진부한 장면일 테다. 세련된 이론과 똘망똘망한 눈빛, 경쾌한 목소리는 그가 아프리카계 미국인을 둘러싼 문제에 대해 기본적인 고민과 입장 정리를 마치고, 그 너머의 한층 더 높은 차원에 도달했다는 증거는 아닐까 생각해본다. 첫 아시아 전시인 이번 개인전은 그의 경력상으로도 특기할 만한 일이겠지만, 우리에게도 기념비적인(?) 사건일지 모른다.

몇 년 전 당신이 진행했던 바바라 카스텐(신디 셔먼, 바바라 크루거 등과 함께 1980년대 ‘만드는 사진’을 주도한 대표적인 여성 작가) 인터뷰와 같은 방식으로 시작하겠다. “당신의 작업실을 묘사해달라.” 내 작업실은 탐구, 놀이, 몸부림, 사색을 위한 장소다. 서재와 거실이 있다. 벽이 여덟 면, 줄리엣 스타일 창문이 네 개, 벽난로가 두 개 있고, 바닥은 전부 나무로 되어 있다. 자연광과 19세기 말 뉴욕 건물의 역사성, 그리고 그보다는 덜 두드러지는 방식으로 전달되는 도시의 밀도가 이곳에서 놀라운 방식으로 펼쳐진다.

‘Color Study’는 스웨덴 식물학자 앤더스 달에서 유래한 이름을 가진 ‘달리아 꽃’을 찍은 사진 연작이다. 최근 스웨덴에서 보낸 시간의 흔적인가? 달리아 꽃의 어떤 점이 당신의 흥미를 끌었나? 쿠퍼 유니언 재학 시절, 사진작가 안드레아 로빈스와 막스 베허의 수업을 들었다. 사진이라는 형식에 대한 그들의 작업방식과 헌신적인 태도가 굉장히 인상 깊었고, 특히 그들로 하여금 사진의 힘을 드러내게 하는 그 무엇이 좋았다. 내가, ’탈맥락화’라고 하는 상업사진 특유의 기법을 연상시킨다든지, 18세기 식물학 드로잉을 상기시키는 방식으로 ‘Color Study’ 연작을 만든 것은 그들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이 연작은 흥미로운 시각적 수수께끼를 제시해서, 사적으로건, 창작자로서건, 여전히 내게 도전 의식을 불러일으킨다. 달리아 꽃에 그런 이름이 붙게 된 과정은 식민주의의 시각적 세계에 포함된다. 그리고 그 이름은 과거의 역사가 동시대의 언어 사용에 접속되도록 한다. 미묘하지만, 어떻게 역사가 떠나가지 않고 현재 안에 머물러 있는지 보여주는, 따끔하리만치 강력한 예다.

일견 동일한 사진처럼 보이는 ‘Aura’, ‘Object’, ‘Screen’의 차이점을 음미하는 일은 각자의 몫일 테지만, 영화 이론 서적 한 페이지에 나옴직한 세 단어를 제목으로 사용하게 된 배경만큼은 설명해달라. 차이점은 없다. 그것이 놀라운가? 예술의 아름다움은 경험하는 데 있는 것 아니었나? 벤야민, 크라카우어, 데보라 윌리스, 아리엘라 아줄레를 포함하는 영화 이론이 사진의 경험이라는 것에 있어서 지각의 힘이 중요하게 작용한다는 것에 대한 논의로 이어지게 해주는 것이라면, 전적으로 찬성한다.

17세기 네덜란드 정물화가 중 네덜란드 하를럼(Haarlem) 지역에서 활동한 사람이 적지 않은데, 뉴욕 할렘(Harlem)에 작업실을 둔 당신은 ‘Still Life’ 연작을 통해 17세기 네덜란드 정물화를 재해석하고 있다! 단순한 우연인가? 유엔국제학교를 다녔고, 1980년대 글로벌 자본주의 속에서 자랐으며, 내 가족과 강하고도 역사적인 커넥션을 지닌 도시에 거주하고 있는 미국인으로서 느끼는 묘한 감정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 굉장한 책 두 권이 있다. <1493: 콜럼버스가 만든 신세계를 벗겨내기>(2012)와 <고담: 1898년까지 뉴욕시티의 역사>(2000)라는 책이다. 우연이라는 것이 그리 흔치 않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Leslie Hewitt in collaboration with cinematographer Bradford Young Stills, 2016
Three synchronized video projections35 mm film transferred to HD video and appropriated 16 mm film footage (c. 1976) transferred to HD video with permission from director Haile Gerima 2:42 minutes, looped
Installation View: The Power Plant, Toronto, Canada, 2016

Installation view: Armory Show, Leslie Hewitt & Peiter Vermeersh, 2018 Courtesy of Perrotin
Photo: Guillaume Ziccarelli

유년 시절, 당신은 공공도서관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책더미의 물질성’에 이끌리게 됐다고 했다. ‘Still Life’ 연작은 ‘책더미의 물질성’보다는 ‘책더미를 찍은 사진’의 물질성을 강조하고 있는 듯한데, 당신의 관심이 전자에서 후자로 이동하게 된 과정은 무엇인가?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고 생각한다.

‘Topologies’ 연작에 등장하는 흑인 혁명사상가 프란츠 파농의 경우 한국에도 잘 알려져 있는 학자지만, ‘Still Life’ 연작에서 언급되는 제임스 볼드윈은 한국의 일반 대중에게 아직 생소한 편이다. 인터뷰가 나갈 즈음이면 볼드윈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아임 낫 유어 니그로>(라울 펙 감독)가 개봉한 후일 테니 지금과는 상황이 다르겠지만, 볼드윈과 그의 에세이집이 미국인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당신의 입을 통해 듣고 싶다. 정체성을 어떻게 정의하는가? 인종을 어떻게 정의하는가? 문화이론가 스튜어트 홀이라면 ‘부유하는 기표’라고 할 테다. 볼드윈의 중요성은 그의 글에 있다. 그를 잘 모른다면 직접 읽어보고, 글에 담겨 있는 취지를 느껴보기를 바란다. 상당히 복합적이고, 여러 겹으로 이루어져 있다. 더 분명하게 말해보겠다. 제임스 볼드윈은 20세기 중반 미국의 물리적, 심리적 경계 안에서, 인권을 향한 투쟁과 위선을 묘사한다는 어려운 과제를 맡은 미국의 작가다. 그가 보여준 권력에 대한 의심과 저항, 아름다움은 삶을 어떤 태도로 살 것인지, 자신이 태어난 세상의 조건이 더 나아지도록 어떻게 싸울 것인지 보여주는 보편적인 질문들과 연결되어 있다.

‘Still Life’ 연작에 등장하는 레몬은 17세기 네덜란드 정물화 속 레몬을 인용한 것으로 해석되고는 하는데, “인생이 레몬을 건넨다면, 레모네이드를 만들라”는 미국의 격언에 빗대어 아프리카계 미국인 여성이 겪는 개인적, 사회적 고충을 다뤘던 비욘세의 앨범 <Lemonade>가 연상되기도 했다. 당신의 해석에 열려 있다. 매력적인 해석이다. 그런 생각을 해보지는 않았지만, 그런 식의 자유연상법은 내가 작품 속에서 주체성과 대상성을 접근하는 방식 중 하나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탈바꿈이라는 것이다. 나는 변신의 아름다움을 믿는다. 창작에 있어서든, 사적으로든, 변신은 강력한 것이다.

‘Riffs on Real Time (5 of 10)’, 2012-2017, Silver gelatin print, 80.6×91.4cm

Installation View: Sikkema Jenkins & Co., New York, NY, USA April 7_May 13, 2017

1960년대에 활발한 민권운동을 했던 당신의 부모님은, 미술관이라는 공간에서 예술을 통해 정치적, 사회적 이슈에 대한 의견을 표현하는 딸의 방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직접적으로 길거리에 나가 시위를 하던 그들과 달리, 딸의 방식은 굉장히 사변적이고 관념적이니 말이다. 사변적이고 관념적이기는 부모님도 마찬가지다. 내가 이런 것은, 그들이 그렇기 때문이기도 하다. 부모님은 한 세대를 대변하는 사람들이다. 1940년대 초반, 2차대전 전후 뉴욕에서 태어나 1950~60년대에 청춘을 보낸 완전 멋진 분들이다. 부모님을 무척 사랑한다. 부디 내가 하는 일에 대해 자랑스러워하셨으면 좋겠다. 겉으로 드러나는 ‘시위’가 미국의 민권운동의 전부가 아니다. 물론 그것이 가장 상징적인 모습이기는 하지만, 남북전쟁 후 재건시대(1865~77년)부터 시작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1963년, 마틴 루터 킹 목사가 ‘I Have A Dream’ 연설을 했을 때, 현장의 인파 속에 있던 당신의 어머니는 그가 이렇게 외치는 것을 들었을 것이다. “1963년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당신에게 2018년은 무엇으로 보이는가? 초현실.

‘Topologies’, ‘Still Life’ 연작에서 끊임없이 ‘사각형 속 사각형’이라는 구성을 모티프로 사용하고 있다. 이 격자 형식은 ‘돌아갈 회’(回) 자와 닮았는데, 당신은 끊임없이 1960~70년대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인권운동과 관련된 기념품, 수집품, 사진, 삶과 활동을 언급하고 있어서, 마치 자꾸만 지나간 시절로 ‘돌아가는’ 듯하다. 나는 책, 사진, 글 등의 매개체를 통해 전달된 20세기 중반의 역사적 불화를 언급하는 것이다. 이 구분을 명확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내러티브를 따로 떼어내려고 하지 않는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그리고 동시에 세상 속에 존재하는 것이다. 교차하는 내러티브가 훨씬 더 진실되다. 형태에 관련해서는, 내가 흥미를 느끼는 보편적인 형태들이 있다. 중국 문자에 대한 언급이 맘에 든다. 참 아름답다. 와우! 그리고 내 작품은 20세기 중반의 또 다른 요소인 미니멀리즘도 언급하고 있다. 포개진 형태를 주된 표현양식으로 사용하는 것이 내게는 굉장히 중요하다.

당신의 작품은 “제한된 요소의 치환”, 혹은 “같지만 다르게”라는 원리에 따라 제작된 것으로 묘사된 바 있다. 마치 에릭 로메르 혹은 홍상수의 영화처럼, 끊임없이 기본 형식으로 ‘되돌아가’ 조금씩 변형하는 방법을 10여 년 전부터 일관성 있게 고수해왔는데, 본인이 이런 작업방식에서 고갈되지 않는 만족을 느낀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 과정이 궁금하다. 반복과 변주는 음악을 포함한 많은 미적 형식에서 중요하게 작용한다. 치환, 변주 그리고 조합은 수학에서도 중요하게 여겨진다. 존재의 복잡성을 이해하기 위한 방식 중 하나로 봐도 좋을 것이다. 그렇게 한 세트의 공정을 만들어내는 것을 나는 중요한 기반으로 생각하고, 그렇게 하는 것이 견고한 작업을 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것이 내 희망이기도 하다.

아티스트는 서로를 필요로 하는, 아르준 아파두라이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들이 속해 있는 세계에 대한 반응으로 새로운 시각적 ‘풍경’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다.

당신은 리처드 프린스, 신디 셔먼의 정신을 계승한 것으로 얘기되고, 한국의 사진작가 윤호진은 당신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미래의 예술사 책에 어떻게 기억되고 싶은가? 별개로 기억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다른 작가들과의 관계 속에서 기억되고 싶다. 아티스트는 서로를 필요로 하는, 아르준 아파두라이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들이 속해 있는 세계에 대한 반응으로 새로운 시각적 ‘풍경’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다.

마지막으로, 잊지 않으려 하지만 자꾸만 잊게 되는 것은? 그림자의 길이와 모양으로 유추한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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