뮌스터의 조각 프로젝트

뮌스터에서는 10년에 한 번씩 이 프로젝트가 열린다. 프로젝트가 끝나고 나면 사람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 작품이 영구 보존되어 도시에 남는다. 예술품은 도시의 풍경과 미의식과 사상의 흐름에 조용히 영향을 미친다. 도시 전체가 미술관인 뮌스터는 그렇게 천천히 변화하고 있다.

뮌스터 - 하퍼스 바자

Sany(Samuel Nyholm), ‘Marginal Frieze’, 2017

뮌스터 - 하퍼스 바자

마이클 딘, ‘Tender Tender’, 2017

뮌스터의 첫인상은 자전거다. 유럽의 어느 도시에서도 이렇게 무수히 많은 자전거의 무리는 본 적이 없다. 10년마다 한 번씩 열리는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를 보기 위에 이곳을 찾은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아니면 이 작고 아름다운 도시에는 원래 이렇게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서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사람들이 많은 건지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뮌스터에서는 자전거가 없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뮌스터로 넘어오기 전에 방문했던 카셀에서 한 시간에 최소 1백여 점의 작품과 마주쳤다면, 그래서 흥분과 더불어 약간의 멀미를 느꼈다면, 도시 전체가 미술관인 뮌스터에서 작품 하나를 보려면 일단 자전거를 타고 몇 십 분씩 이동해야 한다. 유럽인의 키에 맞춰져 있는 안장에 위태롭게 올라서, 묘기하듯이 지도를 보면서 말이다.(물론 진화한 일부 현대인들은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에서 제공하는 보물찾기지도 대신 스마트폰 앱을 활용했다.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무언가를 찾아 헤매는 모습은 영락없이 ‘포켓몬고’의 현대미술 버전이었다.) 미술품 감상에 있어서 지성과 감성보다 신체의 능력이 우선적으로 요구된다는 것부터가 신선한 미션이다.

출발 지점은 LWL 미술관이다. 이제 40년이 된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의 역사와 함께한 이 미술관 앞의 인도에는 현재 코지마 폰 보닌과 톰 버(Tom Burr)가 설치해놓은 덤프트럭 작품 ‘Benz Bonib Burr’가 침범해 있다. 길 건너편에서 보면 이 거대한 덤프트럭이 마치 미술관의 영구 설치된 헨리 무어의 작품을 납치해 가려는 것처럼 보인다. 마이클 딘이 미술관 안뜰에 설치해놓은 괴상한 정원 ‘Tender Tender’를 비롯해 존 나이트, 노라 슐츠, 그레고르 슈나이더의 작품을 ‘워밍업’ 하듯이 돌아본 후에, 미술관 뒤편에 마련되어 있는 대여소에서 자전거를 빌려 자신만의 보물을 찾으러 떠나면 된다.

뮌스터 - 하퍼스 바자

토마스 쉬테, ‘Cherry Column’, 1987

뮌스터 - 하퍼스 바자

알렉산드라 피리치, ‘Leaking Territories’, 2017

뮌스터에 오기 전에, 이 프로젝트에 대한 몇 가지 사소한 의문이 있었다. 왜 10년 주기로 열리는 걸까(필연적으로 과거에 뮌스터 프로젝트에 가봤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최소 40세 이상이었다), 역사가 40년이 되었는데도 이제 고작 4회라니, 그렇게 느긋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또한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에 간다고 하면 다들 흥분하며 자전거 이야기부터 꺼내는데, 그냥 걸어 다니면 안 되나? 게다가 일반적으로 아트페어나 비엔날레를 취재할 때 신청하는 ‘프레스 패스’를 발급해달라는 나의 메일에,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의 PR 담당자는 ”신청 기간이 이미 지났다. 하지만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의 작품들을 감상하기 위해서는 사실 티켓이 따로 필요 없다. 무슨 말인지는 와보면 안다.”라는 아리송한 답장을 보내왔다. 그런데 정말로 뮌스터에 도착해보니 모든 의문이 해결되었다.

이 의뭉스러운 프로젝트의 시작점은 197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까지 뮌스터에는 현대조각작품이 소개된 적이 없었다. 도시 환경을 위해 시에서 들여온 조지 리키의 키네틱 조각 한 점은 뮌스터 시민들에게 ‘기다란 막대 위에 부채가 달린 이상한 물건’일 뿐이었다. 뮌스터 시민들은 어마어마한 세금으로 이 괴상한 물건을 산다는 사실에 격분했고, 심지어 청동과 셀로판 포일 등을 이용해서 리키 조각의 모조품을 만들어 공원에 설치하는 것으로 ‘이런 건 예술가가 아니라 누구라도 만들 수 있다’고 반발하기까지 했다. 2017년의 인간에게는 재밌고 낭만적이며 그 자체로 하나의 현대미술 퍼포먼스처럼 느껴지는 이 해프닝이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가 출범한 계기가 됐다.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는 현대미술에 대한 시민들의 이해를 돕고 공공미술의 의미를 담론화하고자 하는 확실한 목적을 가지고 탄생한 것이다. 그 이후로 40년에 걸쳐 현대미술사를 대변하는 당대 최고의 예술가들이 이 전시에 참여해왔다.(올해는 1977년부터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를 이끌어온 예술감독 카스퍼 쾨니히가 지휘하는 마지막 프로젝트라는 의미도 있다.) 그 어떤 작가라도 직접 뮌스터에 와서 발로 뛰며 자신의 작품을 설치할 사이트를 찾아야 하고, 작품이 놓일 공간의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맥락을 이해하고 연구해야 한다. 이 작품들 중 시민들의 호응이 좋은 작품은 도시에 영구 설치되어, 뮌스터의 거리나 광장, 공원이나 호숫가에 그대로 남게 되는 것이다. 작품과 도시와 뮌스터 시민들의 일상이 밀접하게 얽혀 있는 만큼, 성급하게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무분별하게 작품을 남겨서는 안 된다.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가 10년에 한 번씩 열리는 이유가 지나치게 느긋하거나 태평해서가 아니었던 것이다.

뮌스터 - 하퍼스 바자

펠레스 엠파이어, ‘Sculpture’, 2017

뮌스터 - 하퍼스 바자

마이클 스미스, ‘Not Quite Under_Ground’, 2017

뮌스터 - 하퍼스 바자

미카 로텐버그의 ’Cosmic Generator’는 실제 잡화점처럼 꾸며놓은 작업 공간이다. 실제 가게처럼 이런저런 물건들이 놓여 있지만 여기엔 의도가 있다. 저임금 국가에서 생산되는 조악한 물건들은 열악한 작업 환경과 노동의 문제를 이야기한다.

뮌스터 - 하퍼스 바자

터키 작가 아이제 에르크가 뮌스터의 항구에 설치한 ‘On Water’는 올해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작품 중 하나다. 강 속에 다리를 숨겨놓아 성경 속 예수가 물 위를 걸었던 모세의 기적을 체험하게 하는 동시에, 이 작품이 없었을 때는 20분이 걸리던 두 항구 사이의 이동 거리를 5분으로 단축시켰다.

작품이 있는 사이트는 도시 전체에 뿔뿔이 흩어져 있다. 혹은 숨겨져 있다는 표현도 맞겠다. 보기로 마음먹은 특정 작품을 찾아내는 건 말 그대로 보물찾기에 가까운 ‘미션’이지만, 막상 아무 생각 없이 방심하고 있을 때는 언제 어디에서라도 예술품과 우연히 마주치게 된다. 그러다 보니 길을 걷다가 마주친 심상치 않은 나무 한 그루나 비석 형태의 돌(알고 보니 라라 파바레토의 작품 ‘Momentary Monument–The Stone’이었다)에도 ‘이게 작품인가, 아닌가’ 심각한 고민에 빠지게 된다. 실제로 길 위에서 멍하니 건물을 바라보고 있는 나에게 한 유럽인 노부부가 고개를 갸웃하며 “여기도 사이트인가요?”라고 말을 걸어오기도 했고, 강가의 주목나무 수풀을 직육면체 형태로 반듯하게 깎아놓은 로즈마리 트로켈의 작품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자전거를 타고 그 앞을 유유히 스쳐 지나가기도 했다.

저임금 국가에서 생산되는 조악한 물품과 열악한 작업 환경을 펼쳐 보이며 노동의 문제를 이야기하는 미카 로텐버그의 아시안 마켓 ‘Cosmic Generator’나 65세 이상의 노인에게 타투를 권함으로써 젊음의 전유물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는 마이클 스미스의 타투숍 ‘Not Quite Under_Ground’이 작품이라는 사전 정보가 없었다면 평범한 가게인 줄 알았을 것이다. 이러한 유쾌한 혼돈은 아이제 에르크의 작품 ‘On Water’를 만났을 때 절정이었다. 아이제 에르크는 운하와 연결된 작은 항구에 물에 잠기는 임시 교량을 설치하여 관람객으로 하여금 그 위를 걸어가게 했다. 수면 아래 존재하는 교량은 눈에 보이지 않고,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자발적으로 신발을 벗고 바지를 걷어 올린 채 물 속을 걸으며 들뜬 표정으로 셀피를 찍고 있는, 매우 즐거워 보이는 사람들뿐이었다.(물론 나 역시 물 위를 걸었고, 셀피도 남겼다.) 미술작품 체험이 아니었다면 별것 아니었을 일, 혹은 짜증스러웠을 일을 신선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모습이 곧 공공미술의 존재의 의미를 이야기해주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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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 아라카와, ‘Harsh Citation, Harsh Pastoral, Harsh Münster’,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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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의 작품 앞에서, 니콜 아이젠맨. ‘Sketch for a Fountain’, 2017

뮌스터 - 하퍼스 바자

피에르 위그, ‘After ALive Ahead’, 2017

어느 작품이든 손쉽게 무료로 볼 수 있는 뮌스터에서 피에르 위그는 처음으로 좌절감을 안겨주었다. 문 닫은 아이스링크 내부에 설치된 피에르 위그의 작품을 보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이 어마 어마했기 때문이다. 한 시간은 기다려야 한다는 말을 듣고도 포기하지 않고 줄을 서서 기다렸지만, 고지를 눈앞에 두고 클로징 타임이 되어 시무룩하게 되돌아가야 했다. 그 다음 날 아침 또 다시 땡볕 아래에서 한 시간가량 기다려서 만난 피에르 위그의 작품 ‘After Alive Ahead’는 그럴 가치가 있었다는 사실을 증명해주었다. 그는 아이스링크의 콘크리트 바닥을 절단하여 진흙 투성이의 생태 환경을 조성하고, 천장에는 열리고 닫히는 루프를 달아 빛과 같은 자연 현상을 작품에 반영시켰다. 그 안을 걷다 보면 달팽이의 패턴 변화나 인간 암세포의 성장을 발견하게 되기도 하고(이것은 위그와 협업한 필립 파레노의 작품이다), 모든 생명체가 잉태되던 태초의 지구를 떠올리거나 혹은 화성 발굴 현장에 떨어져 있는 압도적인 느낌을 받기도 한다.

반면 어떤 사이트에서는 좌절감 대신 해당 작품의 아티스트와 우연히 만나는 행운을 ‘줍기도’ 했다. 공원 한복판에 관능적이면서도 유머러스한 분수를 만들어놓은 니콜 아이젠맨의 작품 ‘Sketch for Fountain’ 주변을 어슬렁거리고 있을 때, 그녀가 친구들과 함께 자신이 만든 작품을 보러 온 것이다. 쑥스러워 하는 그녀를 <바자>의 카메라 앞에 세운 사진가 최다함은, 그녀와 함께 있던 사람이 분수 주위의 조각상 중 하나와 꼭 닮았다며, 이 작품은 자신의 친구들을 모티프로 한 유쾌한 작업임이 틀림없다고 말했다. 캐주얼한 차림으로 산책을 나와 분수 주위에 모여 여름의 한나절을 즐기고 있는 관람객들은 정확히 ‘니콜 아이젠맨이 원했던 것’을 수행하고 있었다.

경사나 언덕이 없어 자전거를 타고 달리기에 적합한 도시 뮌스터에서도 가장 멋졌던 ‘라이딩 코스’를 꼽자면, 댄 그라함의 유리의 집부터 아이 아라카와의 LED 콜라주 작품까지의 코스다. 녹지와 호수, 강가의 시원한 바람을 느끼며 달리다 보면 히토 슈타이얼의 작품과 도시에 영구 설치된 클라세 올덴버그, 호르베 파르도, 일리야 카바코프, 로즈마리 트로켈, 도널드 저드의 조각작품을 만날 수 있다. 종착지인 아라카와 에이의 사이트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만 같은 평화로운 지대에 위치하여, 해 질 무렵에 평화로운 자연환경 속에서 작품을 감상하며 하루를 마무리하기에 걸맞다.

뮌스터 - 하퍼스 바자

뉴욕 기반 아티스트 아이 아라카와의 작품 ‘Harsh Citation, Harsh Pastoral, Harsh Münster’는 평화로운 초원 위에 있다. 작가의 친구들이 그린 7개의 현존하는 그림을 LED 콜라주 작품으로 재탄생시킨 작품. 다른 작품들에 비해 다소 먼 곳에 있지만, 결코 방문을 후회하지 않을 자연환경이 기다리고 있다.

뮌스터 - 하퍼스 바자

이란 출신 작가로 베를린에서 활동하고 있는 나이리 바그라미안이 청동조각작품 ‘Beliebte Stellen / Privileged Points’을 설치한 곳은 이전에 리처드 세라와 안드레아스 지크만의 작품들이 있었던 곳이다. 하나의 장소에 각기 다른 미술품이 선사하는 영향력을 느껴 보시길.

뮌스터 - 하퍼스 바자

현재 뮌스터에서 가장 인구 밀도가 높은 곳. 폐쇄된 아이스링크 앞에 많은 사람들이 줄 지어 서 있는 이유는, 피에르 위그의 작품 ‘After Alive Ahead’를 보기 위해서다. 땡볕 아래에서 1시간쯤 줄을 서면 피에르 위그가 창조한 압도적인 세계와 만날 수 있다. 들어 갔다 나오면 신발이 흙 투성이가 되지만 결코 후회 되지 않는 신비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가끔 아트페어나 비엔날레 방문의 목적이 슈퍼 아티스트의 작품을 목격하는 것으로 귀결 될 때가 있다. 재밌는 것은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에 다녀온 사람들은 피에르 위그나 도널드 저드의 작품을 보고 왔다고 말하기보다는 그저 뮌스터에 다녀왔다고, 혹은 뮌스터에서 자전거를 타다 왔다고 말한다는 사실이다. 뮌스터의 길 위에서 마주치는 조각품들은 작품 그 자체가 아닌 작품이 놓여 있는 환경, 도시 자체를 느끼게 만들기 때문이다. 올해 출품된 작품들 중 일부는 영구 보존되어 뮌스터에 남을 것이다. 제2회 뮌스터 프로젝트 출품작이었던 독일 조각가 토마스 쉬테의 ‘체리 기둥(Cherry Column)’처럼 말이다. 탐스러운 체리 열매를 올려놓는 것으로 “자동차의 빨간색보다 빨간 체리(예술작품)를 경험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건네는 쉬테의 작품은 광장의 기능을 전혀 하지 못하던 하르제빈켈 광장 주위의 환경을 자정시켰고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의 어떤 상징으로 남았다. 이처럼 뮌스터에 남게 된 작품들은 도시의 풍경과 미의식과 사상의 흐름을 천천히 바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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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사진Choi Dah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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