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적 컬렉터

홍콩 재벌 기업의3세이자 오늘날 아트 컬렉터로서의 할 일을 새롭게 정의하는 애드리언 쳉(Adrian Cheng).그가 말하는 예술적 비전.

그날의 평창동은 시계가 좋았고, 바람이 시원하게 불었다. 일본 디자이너 우치다 시게루(Uchida Shigeru)와 홍콩의 슈퍼 컬렉터 애드리언 쳉이 협업하여 디자인한 작품을 선보이는 전시 이 개막한 가나아트센터에는 초대받은 이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작년에 타계한 우치다 시게루가 처음으로 협업을 시도한 작품이자 생애 마지막 작품의 월드 투어는 지난 4월 이탈리아 밀라노를 시작으로 10월 22일까지 한국에서 두 번째로 열린다.

우치다 시게루의 스케치

애드리언 쳉의 스케치

전시는 세 개의 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도입부 공간에는 애드리언 쳉이 생전의 우치다 시게루와 만나 디자인 미팅을 진행했던 시게루의 다실 작품 중 ‘교안’이 설치되어 있으며 쳉과 시게루의 협업 작품인 ‘코라(Khora)’ 시리즈의 스케치가 소개되어 있다. 이어지는 암실에서는 중국 패션 사진가 팀 웡(Tim Wong)이 일본의 자연 속에서 포즈를 취한 코라를 담은 필름이 상영된다.(“우리는 이 가구 작품들을 의인화해보길 원했다. 그래서 가구가 아닌 패션 사진가에게 촬영을 의뢰했다.”) 마지막 방에 다다라서야 자연 풍광의 아름다움에서 영감을 얻어 디자인된 의자와 테이블, 그리고 조명작품으로 이루어진 ‘코라’ 시리즈를 만날 수 있다. 하이쿠처럼 간명하고도 깊은, ‘내면의 여행’을 위한 자연의 완벽한 대체물을.

‘Khora_AU 3’, 2017

‘Khora_AU 2’, 2017

‘Khora_AU 1’, 램프, 테이블, 2017

우치다 시게루가 디자인한 다실 ‘교안’, 1993

애드리언 쳉은 2015 미 포브스 선정 세계 71위 부호인 청유퉁의 손자로 그의 가문에서는 백화점, 쇼핑몰, 면세점, 컨벤션센터, 호텔, 리조트 등을 보유하고 있다. 30대 후반의 쳉은 현재 뉴월드개발 부회장, 아시아 최대 주얼리 그룹인 저우다푸 이사, 그리고 K11 아트파운데이션의 회장직을 맡고 있다. 그 가운데 박물관과 상점, 예술과 소비의 합체를 표방하는 K11은 세계적 슈퍼 컬렉터로서의 면모와 사업가의 정체성을 결합해 만든 쇼핑센터다.(2009년 홍콩, 2013년 상하이에 문을 열었다.) 더불어 아티스트 인큐베이터 K11 파운데이션을 설립해 뉴욕 모마 PS1과 영국 로열 아카데미 오브 아츠의 이사를 역임하고 있는 자신의 미술계 역량을 중국의 젊은 작가와 큐레이터를 후원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쓰고 있다. 2019년 베이징에 문을 여는 K11을 통해 쳉은 자신의 컬렉션과 중국 현대미술을 향한 비전을 보다 명료하게 보여줄 예정이다.

중국 사진가 팀 웡이 촬영한 영상 스틸 컷.

일말의 주저함이 없는 화술과 또렷한 시선의 애드리언 쳉은 자신의 컬렉션 중 가장 아끼는 작품으로 “27분 만에 자발적으로 그린” 본인의 그림을 꼽는 영감 넘치는 컬렉터이자 아시아 경제를 이끄는 부호 사업가이며 중국 현대미술과 아시아 문화의 열정적인 후원가이다. 관람객에게 내면으로의 여행을 권하는 고요한 작품 ‘코라’는 이 미래적 컬렉터의 비전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마스터 피스라고 소개하고 싶다.

첫 번째 방에 우치다 시게루 디자인의 다실 ‘교안’이 설치되어 있다. 이곳에서 우치다와 ‘마지막’ 디자인 회의를 했다고.

이 작품은 15세기의 다다미 방에서 발전된 형태로, 2×2 미터 크기의 사각형 골격에 약간의 변형을 가해 안쪽을 대나무로 짓고 일본 화지를 사용한 것이다. 이 친환경적 다실은 해체되어 다른 곳에 그대로 다시 세울 수 있다. 우치다는 이 작품을 1993년에 디자인했는데 이 작품을 보면서 나는 우치다 시게루라는 디자이너가 정말로 비밀스럽고 특별하다고 생각했다. 그와 함께 작은 컬렉션을 만들겠다는 결심은 매우 자연스럽게 하게 됐다. 그래서 작년 10월에 도쿄에서 그를 만났는데 한 달 뒤 컬렉션이 완성되기 전에 그가 세상을 떠났다. 우리는 그를 기리기 위해 여기 중앙에 ‘교안’을 설치했다. 우리는 그에게 진심 어린 찬사를 보내고 싶었고, 티 세리머니에 대한 존중을 표하고 싶었다.

이 티 룸에 난 문은 유독 작은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

차를 달여 손님에게 권하거나 마실 때의 예법을 말하는 다도, 즉 티 세리머니는 본능적으로 감동을 자아낸다. 저 작은 문으로 들어가 앉으면 이 방은 비밀스럽지만 또한 완벽히 열려 있는 공간이라는 걸 느끼게 된다. 이 안에서 당신은 세상의 속도가 느려지는 걸 느끼게 되고 당신 내부로 들어갈 수 있다. 그 낮고 작은 문을 통과할 때 당신은 당신의 가방, 코트, 신발 등을 밖에 두고 고개를 숙이고 경례를 해야 한다. 그러고 나서 당신은 그저 당신 자신이 된다. 당신은 더 이상 기자도 아니고, 사업가도 아니고 그저 한 사람일 뿐인 거다. 이 세리머니가 당신보다 중요하고, 당신은 이 의식에 예를 다하게 된다. 이 작품은 디자인이 우리의 행동을 바꿀 수 있음에 대한 한 가지 예라고 할 수 있다.

‘교안’을 지나 필름을 상영하는 공간을 지나야 ‘코라’를 만날 수 있게 전시를 구성했다. 이유가 있나?

검은 방은 마음을 정화시켜주는 클렌저와 같다. 당신 마음의 속도를 늦춰주고 당신 머릿속을 채운 쇼핑 목록과 해야 할 일들의 리스트를 지우고 자연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세 점의 작품에는 각각 AU1, AU2, AU3 이런 식으로 제목이 달려 있고, 제목 옆의 괄호 안에 ‘Inspired by Trees, Mountains, Water’라고 적혀 있다. 각 작품이 어떻게 자연을 형상화하는지 소개 부탁한다.

AU는 내 이름 애드리언과 우치다를 단순하게 결합한 제목이고, 나무와 산, 물에 영감받았음을 표기해서 관람자들 또한 그런 느낌을 받길 원했다. 3개의 벽면으로 구성되어 빛이 은은하게 들어올 수 있게 디자인한 첫 번째 의자 작품은 나무들과 숲에서 영감을 받았다. 이 의자에 앉으면 3개의 벽면에 온전하게 둘러싸이는데 이는 마치 당신이 숲에 있는 느낌을 준다. 둘러싸이고 닫혀 있는 동시에 열려 있는 숲.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면 나뭇가지나 나뭇잎을 통해 햇살을 느낄 수 있고, 빛과 그림자가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장면도 포착된다. 산에서 영감 받은 두 번째 작품은 좀 더 낮게 설계되었다. 의자에 앉으면 대자연의 품에 안겨 있는 느낌을 주는 부드러운 곡선이 당신을 감싸안는다. 두 작품 모두 일본의 아키타, 도호쿠 지역의 밤나무를 주로 사용해 만들었는데 날씨가 굉장히 험한 지역에서 자란 내구성 좋은 나무다. 주변 상황에 맞게 변형해 사용할 수 있는 벤치와 파티션으로 이뤄진 세 번째 작품은 물의 변화하는 능력을 형상화했다. 추가적으로 워시 페이퍼로 만들어 따뜻한 빛을 발산하는 램프와 반사적인 표면을 갖고 있는 낮은 테이블이 함께 설치돼 있다. 홋카이도 지역의 계수나무에 검정색 페인트를 수백 번 얇게 바르고 그 위에 일본 전통 옻칠공예인 우루시를 입힌 것이다. 이 표면에 비치는 자기 자신을 보면서 다도와 명상이 종국에는 자기반성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당신이 자연을 찾고 그 안에서 길을 찾는 일은 결국 당신 자신으로 향하는 여정과 같기 때문이다.

쳉이 부회장으로 있는 뉴 월드 그룹에서 건설한 마운트 파빌리아. 예술, 디자인, 건축물이 합체된 혁신적인 조각 공원으로 홍콩 클리어 워터 베이에 오픈했다. 건축가 조민석이 참여했으며 타티아나 프루베 등 세계적 작가들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사진 속 작품은 장 미셸 오토니엘의 ‘Clear Water Bay’s Rebounds’(2015)

당신은 하버드대에서 동아시아학을 전공했고 졸업 후 스탠퍼드 교토 센터에서 일본학을 공부하기도 했다. 일본 자연과 문화, 예술에 대한 경도가 ‘코라’를 탄생시킨 것 같다.

이건 일본의 정경에 대해서만 국한된 작품은 아니다. 그보다는 아시아 전체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이번 전시의 제목처럼 이 작품들은 마음의 상태에 관한 것이다. 동아시아의 철학에서 가장 훌륭한 부분은 마음의 상태, 질, 고요함에 관한 것이다. 그게 바로 코라라고 부르는 것이기도 하다. 코라는 육체적인 것과 육체적이지 않은 것의 중간 지점을 말한다. 우리는 살면서 많은 것으로부터 방해를 받고 산만하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절대 그 상태가 될 수 없다. 자연에서 마음의 상태로 되돌아오는 다양한 종류의 철학은 자연스럽고 자발적이며 당신이 자연 속에서 찾고자 하는 리듬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바로 이런 것이 동아시아 문화의 하이라이트라고 생각한다.

한국의 전통 문화 가운데에서도 특히 관심을 갖고 있는 부분이 있나?

만약 한국에서 작업을 할 기회가 있다면 도자기로 해보고 싶다. 나는 한국의 도자기가 좋은데 그 이유는 더 흙내가 나고 근본적이고 유기적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것을 한국 도자기에만 국한해서 소개하고 싶지는 않다. 과거의 역사를 보면 많은 문화적 운동이 있었고 끊임없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다. 이란, 인도, 프랑스 등 여러 나라가 얽혀 문화와 예술의 역사를 써내려갔다. 아무것도 섞이지 않고 고유하게 순수한 것은 지구상 어디에도 없다.

그럼에도 ‘순수한’ 컬렉터로서의 당신에게 궁금한 것이 있다. 아트 컬렉팅에 입문하게 된 계기가 있나?

그저 매우 자발적으로 이루어졌다. 우리는 이 지구상의 아름다운 무언가를 인지하기 시작할 때 그것을 수집하게 되어 있다. 그리고 그것은 당신의 역사, 당신의 수집의 역사가 될 수 있다. 컬렉션은 유산이다. 즉, 당신의 미래의 한 부분을 이루는 것이다.

오노 요코, 모마 PS1 이사 클라우스 비센바흐와 함께.

소장하고 있는 작품 중에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로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있다면?

가격과 상관없이 나한테 중요한 작품을 꼽으라면 베이징 집에 있는 내가 그린 그림이다. 어느 날 자발적으로 27분 만에 그린 것으로 은하와 세계에 관한 내용을 담았다. 나에게는 그 작품이 꽤 의미 있고 중요하다.

아트 컬렉팅을 시작하기 위해 유념해야 할 한 가지를 말해준다면.

당신이 좋아하는 것. 미술사에서 중요한 것, 그리고 가격에 상관없이 당신 자신만의 관점으로 고른 작품을 수집하라.

위시 리스트 0순위 작품이 있나?

잭슨 폴록의 그림을 갖고 싶다. 20점 정도였나, 별로 수가 많지 않을 거다. 갖고 싶은 것의 대부분이 뮤지엄에 있다.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제목을 가진 예술작품은 무엇인가?

‘무제(Untitled)’라고 타이틀이 붙은 작품을 좋아한다. 그럴싸하거나 강력한 타이틀을 가진 작품을 좋아하지 않는다. 제목이, 당신이 그 작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를 정의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작품은 무제여야 하고 그래서 사람들이 탐구해볼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장엔리(Zhang Enli), ‘Container’, 2002

왕유양(Wang Yuyang), ‘Appreciate’, 2013

소박한 사물들에 심오한 인상을 심어주는 회화 작가 장엔리의 작업실에서 한 컷.

관객이 직접 그 작품과 호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인가?

추상화가 바로 그런 작품들이다. 그림과 당신이 바로 연결될 수 있다.

컬렉터로서의 덕목이 있다면 뭐라고 생각하나?

컬렉팅이 더 진지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컬렉팅은 단지 그림을 사 모으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경험을 수집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한 작가만 봐도 어떤 시기에는 잘하고 어떤 시기에는 훌륭하지 않은 작품들을 내놓는다. 모든 아티스트 각각 인생을 바라보는 자신만의 관점이 있다. 그 모든 것을 이해하고 고려하는 가운데 컬렉터로서 자신이 어떤 것을 원하는지에 대해 더욱 진지하게 돌아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당신은 K11 파운데이션을 설립해 실제로 많은 중국 작가들의 세계 진출을 도왔다. 중국 예술계에 보탬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컬렉터로서의 책무로 여기는 듯하다. 고유한 문화자산을 갖도록 돕고자 한다.

의무는 아니지만 후원해줄 수 있는 자원이 있다면 왜 안 그러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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