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튀스 전시

실재와 꿈결, 에로틱함과 순진무구함, 사실과 수수께끼, 고요함과 긴장. 발튀스 그림의 양면.

Fondation Beyler Balthus 2018

스위스 바젤의 바이엘러 파운데이션에서 지난 9월 2일부터 발튀스 전시가 시작됐다. 그는 미술평론가인 아버지와 예술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당대 최고의 시인이었던 라이너 마리아 릴케에게 독창성을 인정받아 40여 개의 드로잉이 실린 이야기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발튀스는 당시 아방가르드 모더니스트들과 그들의 사상으로부터 스스로를 격리시켜 독자적인 노선을 유지했다. 푸생, 쿠르베, 세잔 등 전통적인 화풍과 미감에 일면 기대면서도 초현실주의적, 신즉물주의적 요소와도 관계를 맺는 그의 그림들 속엔 고요함과 긴장이 공존한다. 실재와 꿈결, 에로틱함과 순진무구함, 사실과 수수께끼, 친근함과 묘함의 언저리를 넘나든다.

지난해 말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꿈꾸는 테레즈’와 얽힌 논란을 돌아본다. 어린 소녀가 의자 위에 한쪽 다리를 들고 속옷을 보이며 앉아 있다. 엉거주춤 두 손을 머리 뒤에 둔 채 부자연스럽게 감은 눈은 소녀가 꿈을 꿀 만큼 깊은 잠에 들지 않았다는 걸 짐작케 한다. 맨해튼의 한 금융사 인사부장으로 근무하는 미아 메릴은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MoMa)에 해당 그림을 전시에서 철거할 것을 요구하는 청원서를 제출했고, 일주일 만에 1만 명에 이르는 인원이 서명에 동참했다. 그녀는 이 작품이 명백하게 아동을 성적대상화 했으며, 미투운동 등 성폭력 이슈가 날로 대두되는 시점에 해당 그림 전시는 관음증과 소아성애를 낭만화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술평론가 크리스찬 비베로스 파우네는 매체 <더 빌리지 보이스>의 투고를 통해 “발튀스는 그의 화가 생활 내내 사춘기 소녀의 섹슈얼리티만을 집착적으로 묘사했다. 돌이켜봤을 때 그가 소아성애자였다는 사실엔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며 신랄한 비판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메트로폴리탄 측은 끝내 발튀스의 그림을 그대로 두었다. 예술을 수집, 연구, 보존해 보여주어야 하는 미술관의 사명을 들며, 시대와 문화를 아우르는 역사 속 작품들은 영감, 지식, 아이디어로서 사람들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바이엘러 재단의 발튀스전은 의미가 크다. 발튀스는 파리에서 태어났지만 유년 시절 대부분을 스위스에서 지냈다. 그의 첫 아내도 베른 출신이었으며, 말년도 스위스 로시니에르에서 마감했다. 스위스에 거주하던 1930년대, 그가 흠모하던 자코메티와 절친이 되었다는 사실로 보아도 발튀스와 스위스의 인연은 각별하다. 더구나 스위스의 독일어권 지역에서 이렇게 대규모로 열리는 발튀스의 회고전은 최초다. 그의 커리어 전반에 걸친 40여 점의 작품과 350여 점의 사진을 통해 발튀스의 정수를 경험할 수 있는 전시임엔 틀림없다. 논란을 부른 ‘꿈꾸는 테레즈’(1938)는 물론, 불가사의한 인물들이 마치 무대 위에서 얼어붙은 듯 묘한 신을 연출한 ‘길거리’(1933), 그의 첫 번째 아내 안투아네트를 모델 삼은 ‘흰 스커트’(1937)는 그의 포트레이트 중 단연 최고로 꼽을 수 있겠다. 바이엘러 재단은 이번 전시를 통해 예술의 가능성과 기능을 논의하는 장을 마련코자 한다는 기획 의도도 밝혔다. 예술은 ‘모호함’의 영역에서 숨을 쉰다. ‘아름다움’ 너머 복수의 관점을 제공한다. 모든 인간 존재와 상상력의 모습을 ‘불가해’ ‘인습타파’ ‘충격과 도발’과 같은 이름으로 끌어안는다. 1908년에 태어나 2001년 사망에 이르기까지 인간 발튀스의 삶은 금욕의 시대와 세속의 시대를 아우르는, 총체적 난국 같은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회화는 감정의 혼돈으로부터 가능성의 질서로 이어지는 통로이다.” 그의 문장이다.   어시스턴트 에디터/ 이현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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