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스 비엔날레의 달콤한 아트

도쿠멘타와 아트페어 사이의 달콤한 지점을 공략한 듯한 이번 베니스 비엔날레는 베니스라는 로맨틱한 어드벤처에서 즐기기에 더없이 제격인 예술적 경험이었다.

베니스 비엔날레 - 하퍼스 바자

푼타 델라 도가나 외부에 설치한 데미언 허스트의 ‘Skull of a Unicorn’

알리샤 크와드(Alicja Kwade), ‘전체를 위한 부분(Pars pro Toto)’, 2017

카셀에서 시작된 <바자>의 ‘그랜드 투어’는 베니스에서 막을 내린다. “‘도쿠멘타 14’는 역사에서 정치적 주체가 되어가는 과정”이라는 도쿠멘타 큐레이터 폴 B. 프레시도의 대척점에 베니스 비엔날레 총감독 크리스틴 마셀의 ‘비바 아르테 비바(만세, 예술 만세)’가 있다. (2년 전 오쿠이 엔위저가 총감독을 맡은 정치적이고 디스토피아적인 비엔날레와도 반대 방향이다.) “오늘날, 갈등과 충격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예술은 우리를 인간으로 만드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부분을 증언한다. 예술은 최후의 보루이자, 유행과 사적인 이익을 초월할 수 있는 토대이다. 개인주의와 무관심에 대한 명백한 대안이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건 무엇보다 예술이라는 말에 동의하든 그렇지 않든 유미주의적인 ‘예술 우선주의’를 말하기에 베니스보다 더 적합한 곳은 찾기 어려울 것이다.

안네 임호프(Anne Imhof), ‘Faust’, 2017

베니스 비엔날레 - 하퍼스 바자

자르디니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관람객

20세기 초부터 우리 일상을 지배해온 자동차가 마법처럼 사라진, 1백18개의 섬들이 4백 개의 다리로 이어진 이 물의 도시에서는 모두 연극 무대에 오른 것처럼 살아간다. 아침이 밝아오면 교회에서 울리는 종소리에 적막하던 좁은 골목이 ‘차오’라는 명랑한 인사로 가득하고 출렁거리는 수상버스의 차창 너머로 펼쳐지는 찬란한 풍경에는 눈길도 주지 않은 채 페이퍼백을 읽는 리넨 원피스 차림의 할머니나 수로 끄트머리에서 조화롭게 포개져 낮잠을 청하는 연인도 모두 자기 배역에 충실하다. 파스텔 톤 외벽의 옥탑 방에서 습기 가득한 햇살 속으로 사뿐하게 내딛은 하얀색 케즈 운동화의 이방인은 오늘 예술애호가의 역할을 자처한다. 베니스 비엔날레의 주요 전시장 _과거 국영 조선소이자 무기고였던 아르세날레와 거대한 공원 자르디니_ 으로 가는 길은 매일 아침의 아름다운 산책이었다.(버벅대는 구글맵과 함께 길을 잃기 전까지는.)

베니스 비엔날레에 ‘미술 올림픽’이라는 별명을 지어준 국가관 전시는 자르디니 공원 안, 국가별로 지어진 파빌리온 형태의 단독 전시장에서 열린다. 보통 80~90개 국가가 참여하지만 공원 안에는 29개의 국가관만 있고, 이곳에 자리를 잡지 못한 나라들은 베니스 곳곳에 건물을 대여해 임시 국가관을 마련한다. 방대한 국가관 전시에서 놓치면 안 될 곳이 이번 비엔날레에선 가까이에 자리한 독일관과 한국관이다. 정해진 시간에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독일관에는 연일 긴 줄이 늘어서 있었고, 외부에 설치된 철창 안을 어슬렁거리는 도베르만 두 마리가 존재 자체만으로 극적 긴장감을 불러일으켰다.

간신히 전시장에 입성하면 파빌리온 전체를 뒤덮은 강화유리의 위와 아래, 천장 부근에 설치된 유리 층을 오가며 산발적인 퍼포먼스를 펼치는 퍼포머들이 관객을 무감하게 응시하며 맞이했다. 베트멍 쇼에 설 법한 양성적인 남녀 퍼포머들은 독일의 여성 퀴어 작가 안네 임호프의 사단으로 작가의 파트너이자 그 자신도 아티스트인 일라이자 더글라스도 포함돼 있었다.(언제나 메탈안경을 쓰고 있는 그녀는 2017 S/S 발렌시아가 쇼에서 뎀나 바잘리아의 노델(Nodel)로 활약했다.) 안무와 좀비 캣워크, 회화, 음악, 소품 등으로 이뤄진 ‘파우스트’로 임호프는 모든 이의 예상대로 황금사자상을 거머쥐었다. 수상 소감에서 작가는 말했다. “나의 작업은 자유를 위한, 차이의 권리를 위한, 젠더 비순응성을 위한 사유의 은총과 세상에서 여성이라는 자부심을 대변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 작품은 우리가 얼마나 소셜미디어에 노출된 삶을 살고 있는지, 얼마나 서로를 유리로 된 동물원에 갇힌 동물처럼 대하고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듯했다.

코디최, ‘Venetian Rhapsody-The Power of Bluf’, 2016~17

이완, ‘Mr. K 그리고 한국사 수집’, 2010~17

베니스 비엔날레 - 하퍼스 바자

팔라초 그라시에서 열리는 데미언 허스트의 <난파선에서 건져낸 믿을 수 없는 보물(Treasure from the wreck of the unbelievable)> 전시 전경

사람에 따라서 불편함 혹은 흥분에 휩싸여 독일관을 나오면 베니스 비엔날레의 상업화를 비판하는 코디최 작가의 요란한 네온사인 작품 ‘베네치아 랩소디’가 관객을 맞이한다. 자르디니에 거의 마지막으로 설립된 한국관은 전면부가 통유리로 된 작은 규모의 화장실을 개보수한 상태라 전시하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호랑이, 용, 공작새 모양의 네온사인과 공짜 비디오, 공짜 핍쇼, 공짜 오르가슴이라고 적힌 간판 위에 ‘홀리데이 모텔’이라고 적은 ‘베네치아 랩소디’는 공간의 제약을 뛰어넘으며 인상적인 셀카를 남기고픈 사람들을 불러모은다.

한국관의 내부에는 오른쪽 벽면을 가득 채운 이완 작가의 ‘Mr. K 그리고 한국사 수집’이 시선을 잡아 끈다. 한국 근현대사를 상징하는 각종 이미지 자료와 작가가 황학동 시장에서 발견한 실존인물의 사진 1천4백12장을 병치한 이 작품은 ‘한국_아시아_세계의 지정학적 관점과 3대의 관점을 명쾌하게 연결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전 세계의 개인들은 한 끼의 식사를 위해 얼만큼의 시간을 노동에 쓰고 있을까?’라는 질문에서 시작한 이완의 또 다른 작품 ‘고유시(Proper Time)’도 많은 외신에 작가의 이름을 알렸다. 작가는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 온·오프라인으로 1천2백여 명과 인터뷰하고 각 개인의 연봉, 노동 시간, 식사 비용 등을 적용해 얻은 평균값으로 각기 다른 속도로 움직이는 시계를 만들어 전시장 안쪽에 부스를 만들어 설치했다.

실라 힉스(Sheila Hicks), ‘Escalade Beyond’, 2016~17

베니스 비엔날레 - 하퍼스 바자

아카데미아 미술관에서 열리는 필립 거스톤의 <Philip Guston and The Poets> 전시 전경

“게으름의 미덕은 예술에서 중요한 요소이다. 게으름에 대해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연습하고 완성해야 한다.”
-믈라덴 스틸리노비치

총감독이 직접 기획하는 본 전시를 선보이는 아르세날레 본관 입구에 서면 항상 거대한 고래 배 속에 들어가는 것 같다. 길게 이어지는 서늘하고 어둑한 전시장에는 ‘비바 아르테 비바’라는 주제를 구현하는 9개의 챕터로 이뤄진 ‘트랜스-파빌리온’이 펼쳐졌다. 환희와 공포의 파빌리온, 지구 파빌리온, 전통 파빌리온, 디오니소스 파빌리온, 색상의 파빌리온…. 다소 교과서적이라고 느껴지는 이런 챕터들은 어떤 건 신선하고 어떤 건 고루했다. 인상적인건 샤먼의 파빌리온이었다. 보살핌과 영성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오늘날의 현실을 생각하며 ‘샤먼’과 같은 작가적 정체성을 지닌 작품들을 모아놓은 그곳에는 그야말로 영성이 가득했다. 아마존 인디언들의 의식 수행 장소를 차용한 브라질 작가 에르네스토 네토의 작품은 신발을 벗고 나뭇껍질 위에 앉아 휴식을 취할 수 있는 펑키한 칠아웃 공간이 되었고, 하이브리드 토템 형상을 제작하는 리나 바너지의 작품은 살아 있는 생명체 같았다.

사실 7개의 챕터를 전개하는 아르세날레의 전시 자체가 통째로 샤먼의 파빌리온처럼 보이기도 했다. 비비드하고 거대한 실뭉치들을 바닥에서 천장까지 쌓아올린 섬유미술의 대가 실라 힉스의 작품, 주술이 걸려 있는 것처럼 보이는 프랜시스 업리차드의 회반죽과 종이로 만든 인체 조각, 괴물의 집 안으로 들어가보게 되는 폴린 퀴니에 자댕의 퇴폐적인 예수의 영상, 무한증식하는 듯한 도자기 파편들의 5m에 이르는 조각에서 중국용 설화에서 착안한 이야기를 읽을 수 있는 이수경의 ‘신기한 나라의 아홉 용’ 등 인상적인 작품들은 영적인 바이브를 뿜어냈다.

베니스 비엔날레 - 하퍼스 바자

페기 구겐하임 미술관 정원에 설치된 마우리치오 난누치(Maurizio Nannucci), ‘Changing Place, Changing Time, Changing Thoughts, Changing Future’, 2003

베니스 비엔날레 - 하퍼스 바자

옐레나 보로브예바(Yelena Vorobyeva), 빅토르 보로브예프(Victor Vorobyev), ‘예술가는 잠들었다(The Artist is Asleep)’, 2017

9개의 챕터 가운데 작가와 책 파빌리온, 환희와 공포의 파빌리온이 전개된 자르디니의 센트럴 파빌리온은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한마디로 사랑스러웠는데 특히 30대 초반의 동시대 여성 작가 두 명이 그런 느낌을 선사해주었다. 19세기 아동 도서를 이용해 셀 애니메이션으로 쌓아 올린 미국 작가 레이첼 로즈의 ‘Lake Valley’는 처음부터 끝까지 집중해서 본 몇 안 되는 비디오 작품이다. 털북숭이 동물(작가는 토끼, 여우, 개의 하이브리드라고 주장한다)이 꿈의 숲에서 친구를 찾는 8분 25초의 초현실적인 이야기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홍콩 작가인 피렌체 라이의 길쭉하고 고독해 보이는 인물들은 작고한 시리아 작가 마르 완의 그림 속 인물들과 함께 마음을 감응하는 울림이 있었다.

책을 소재로 사용하거나 재현하는 작품들을 모아놓은 작가와 책 파빌리온에서 눈에 띈 건 예상치 않게 자고 있는 작가들이었다! 베오그라드 작가 믈라덴 스틸리노비치의 사진작품 ‘Artist at Work’는 자려고 누운 모습을 찍은 여러 장의 사진이었고(작가는 이렇게 말한 바 있다. “게으름의 미덕은 예술에서 중요한 요소이다. 게으름에 대해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연습하고 완성해야 한다.”), 프란즈 웨스트가 옆으로 누워 있는 사진도 있었다. 듀오 작가 옐레나 보로브예바와 빅토르 보로브예프는 실물 크기의 침대에 돌아누워 있는 모습을 연출한 설치작품 ‘예술가는 잠들었다’를 선보였다. 센트럴 파빌리온을 나와 자르디니에서 가장 좋아하는 공간인 야외 식당 옆 잔디밭에서 이지 체어에 길게 누워 잠시 눈을 감았다. 예술가들처럼 게으름을 연습할 시간이었다. 꿈꿀 수 있는 힘도 예술의 한 방식일 테니까.


베니스 비엔날레 - 하퍼스 바자

카 페사로

샤갈, 칸딘스키, 클림트 등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현대 미술관과 동양 미술관으로 나눠져 있다. 비엔날레시즌을 맞아 70대 후반의 데이비드 호크니가 2년 동안 매일 자신의 지인들(갤러리스트 래리 가고시안, 발행인 베네딕트 타센, 아티스트 존 발데사리 등)을 그린 초상화 작품을 선보이는 개인전 <82 Portraits and 1 Still-life>가 열리고 있다. 10월 22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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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스 비엔날레 - 하퍼스 바자

팔라초 그라시

‘문제적 작가’ 데미언 허스트의 컴백 개인전 <난파선에서 건져낸 믿을 수 없는 보물>이 열리고 있다. 미술관에 들어서자마자 18m에 이르는 대형조각 ‘Demon with the Bowl’이 허스트와 현대미술 컬렉터이자 이번 전시의 지원자인 프랑수아 피노의 ‘가짜 고고학’ 쇼의 규모를 대변해준다. 12월 3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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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스 비엔날레 - 하퍼스 바자

푼타 델라 도가나

데미언 허스트의 개인전은 또 다른 피노 재단 소유의 미술관인 푼타 델라 도가나에서도 계속된다. 2008년 동아프리카 해저에서 발견된 난파선에서 나왔다고 가정하는 산호와 따개비로 뒤덮인 보물들을 잠수부가 발굴하는 메이킹 영상은 두 전시의 강력한 서문이다. 스핑크스, 메두사, 미키마우스 동상, 심지어 동전에 이르는 ‘가짜’ 유물들을 보기 위해 두 곳의 미술관이나 방문해야 하는지는 온전히 자신의 선택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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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사진Choi Yongm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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