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에는 어떤 작품들이 있나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의 전시는 김현진 큐레이터가 예술감독을 맡고 남화연, 정은영, 제인 진 카이젠 작가가 참여해 공감각적인 파빌리온을 선보인다. 세 작가는 모두 2019년 신작을 통해 역사의 범주로부터 추방되고 잊힌 이들을 새로운 서사의 주체로 조명한다.

THE
KOREAN
PAVILION

남화연

시간과 공간, 그 배회의 궤적

실존 인물인 안무가 최승희의 아카이브를 통해 제국주의, 식민주의, 디아스포라 같은 주제에 문제의식을 던진다는 점이 흥미롭다. 복합적인 층위의 질문을 추적하는 데 있어 최승희라는 인물이 어떻게 작용했나?

최승희라는 인물의 삶과 예술을 좇아가다 보니 역으로 제국주의, 식민주의 같은 문제에 직면한 것 같다. 1911년 태어난 최승희가 식민지 조선인으로서 소위 모던 댄스라는 무용을 처음 배운 건 일본인 스승으로부터였다. 그러면서 항상 외부의 시선에서 그녀는 반도의 무희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 있었고. 일본 지식인들한테 많은 서포트를 받긴 했으나 그것 또한 문화적인 포용력을 보여준다는 차원에서 식민지 여성 예술가라는 시선이 공존했던 것 같다. 동시에 유럽이나 북미, 남미로 공연을 하러 다니면서 거기서 또 한 번 서구 제국주의 시선을 만나게 된다. 이국적인 신체, 오리엔탈리즘 같은 시선의 필터를 통해 본인의 예술적 정체성을 역설적으로 거기서 찾게 되는 거다. 돌아와서 쓴 글에 보면 “보통 예술가들은 서구를 다녀오면 서양 춤을 배워오는데, 나는 반대로 동양의 춤을 배워 수입해 왔다”는 말이 있다. 본인을 바라보는 시선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무엇이 자기 포지션을 만들어주는지에 대해 굉장히 명민하게 반응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식민지 예술가로서 일본의 정책에 부응하면서 북중국 등으로 위문공연을 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친일로 예술 활동을 연장할 수 밖에 없었던 부분에서는 굉장한 갈등이 있었을 것이다. 일본의 노(能, 가면을 쓰고 연기와 춤을 선보이는 일본의 전통 무대예술)에서 영향받은 춤을 추면서도 중국에 가서는 중국 춤을 흡수해서 동양 댄스를 만들려고 했다. 한 인물이 외부의 힘을 받아서 이런 식으로 변모하는 과정이 나에게는 굉장히 흥미롭다.

 

‘반도의 무희’, 2019, 멀티 채널 비디오 설치, 가변크기 1 이미지 출처: 世紀の美人舞踊家崔承喜, 高島雄三郎・鄭炳浩 編著, エムティ出版, 1994

최승희의 궤적을 추적해가면서 역사나 시대적인 배경뿐 아니라 인물의 개인사에 대한 맥락이 자연스럽게 깊어진 부분도 있을 것 같다.

사실 자료를 보면서 고뇌가 많았다. 나 또한 예술가이므로 내가 그였더라면 어떤 결정을 했을 것인가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근대예술의 초석을 이룬 인물이 그런 선택의 과정에서 분열을 겪었던 게 우리 예술사의 어떤 자화상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그런 생각들은 그동안 내 작업의 궤적에서 마주하지 않았던 문제였기 때문에 스스로 놀란 면도 있다. 그런데 최승희를 만나서 새로운 질문을 마주하게 된 거다. 몇 년 전에 최승희에 대한 다른 작업을 한 적이 있는데 그때는 개인사를 일부러 보지 않으려 했다. 너무 강렬했기 때문에. 그런데 이번 ‘반도의 무희’에서는 어쩔 수 없이 봐야만 했다. 작업이 나를 변화시키는 지점이 늘 흥미로운데, 이번에는 최승희의 복합적인 면모를 바라보면서 즐거움과 당혹감, 괴로움 같은 여러 가지 감정이 함께 다가왔다.

2012년 ‘이태리의 정원’에서도 이미 최승희를 가지고 작업을 한 바 있다. 그녀를 작품에 소환한 방식이 현재의 ‘반도의 무희’로 어떻게 변주되었는지 궁금하다.

‘이태리의 정원’에서는 퍼포먼스와 퍼포먼스 아카이브의 관계를 다루면서 최승희의 작업에 주목했다. 남겨진 파편을 통해 시간 속에 펼쳐진 아카이브, 사라진 아카이브를 어떻게 상상할 수 있을까? 그런 질문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때는 최승희의 작업과 자료로서의 최승희의 성격이 더 강했다. 물론 이번 작업도 실증적인 자료에 기반하고 있지만 그 자료를 통해 예술적 궤적이 당대의 상황을 어떻게 반영하고 있고, 지금 예술가로서의 내가 최승희라는 예술가와 어떻게 만나며 그 만남에서 어떠한 역사적, 예술적 성찰과 발명이 이루어지는지가 핵심이다. 어쨌든 ‘이태리의 정원’보다는 인물로서의 최승희가 나에게 개입을 한 거고 나도 용기를 내서 대면한 것 같다.

 

‘반도의 무희’, 2019, 멀티 채널 비디오 설치, 가변크기 1 이미지 출처: 世紀の美人舞踊家崔承喜, 高島雄三郎・鄭炳浩 編著, エムティ出版, 1994,이미지 출처: 최승희 무용극 대본집, 한국문화사 출판

용기를 냈다고 하니, 최승희를 대면하면서 작가로서 여러 가지 감정에 직면했을 것 같다.

이번에는 1941년도 이후의 시기를 주요하게 다룬다. 당시는 태평양전쟁이 발발하고 최승희가 위문 공연을 다니면서, 동시에 중국에서 자신의 예술적 모티프를 경극 같은 데서 차용하던 때였다. 그러다가 해방이 돼서 조선에 왔더니 친일로 몰리고, 남편 안막은 월북을 한다. 결국 최승희도 남편 따라서 월북을 한다. 정치적인 선택이었다기보다는 김일성이 전폭적인 지지를 약속해서 간 것 같다. 아마 그때가 예술가로서 가장 고뇌의 시기가 아니었을까 싶다. 코스모폴리탄으로 외국에 가서 예술적 성취에 대한 야망을 안고 돌아왔는데, 일본에선 전쟁을 하고 스스로가 식민지 예술가로서 결국 어떤 스탠스를 취해야 할지 고민하는 시기였을 것 같다. 그 부분에서 예술가로서의 선택에 대한 질문이 나에게도 계속 돌아왔다. 최승희는 그런 면에서 나한테 아주 복잡한 감정을 준다. 어느 때는 가깝게 느껴졌다가 갑자기 낯설게 느껴지고, 어떤 부분에선 존경하는 마음이 들다가 어떤 때에는 정말 그럴 수밖에 없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반도의 무희’, 2019, 멀티 채널 비디오 설치, 가변크기 1 이미지 출처: 世紀の美人舞踊家崔承喜, 高島雄三郎・鄭炳浩 編著, エムティ出版, 1994

전작들의 타이틀을 훑어보면 ‘작전하는 희곡’, ‘유령 난초’ ,‘욕망의 식물학’ ,‘가변 크기’처럼 긴장된 언어들이 인상적이다. 완결성을 띤 제목이라기보다 내러티브적인 성격이 느껴지면서, 작가 자신의 언어에 대한 민감한 관심이 감지된다고 할까?

언어에 민감하고 중의적으로 기능할 수 있는 타이틀을 선호하는 면이 있다. ‘반도의 무희’라는 제목도 반도의 역사가 함의되어 있기도 하고 일본 사람들이 최승희를 호명했던 명칭이기도 하다. 여러 레이어가 있는 셈이다. ‘작전하는 희곡’이라는 타이틀도 다중적인 의미로 ‘작동하는 놀이’로도 번역이 된다. 이런 식의 언어적인 플레이에 재미를 느낀다. 결론적으로 작업의 타이틀이 간소하되 그것이 작업의 입구이자 출구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주로 움직임과 관련한 퍼포먼스로 구현된 비디오 작업을 선보이고 있는데, 무용과 안무를 아우른 움직임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나?

학창 시절에는 조소나 드로잉을 주로 했던 걸로 알고 있다. 2009년 에르메스 미술상 후보가 됐을 때 처음으로 다른 사람의 움직임을 작업으로 끌고 들어왔다. 넓게 보면 작업에 있어 ‘운동하는 상태’가 나에게 무척 중요하다. 신체의 운동뿐 아니라 최승희라는 인물을 따라가면서 내가 하게 되는 운동도 있지 않나. 그런 것들이 재미있는 것 같다. ‘임진가와’라는 작업에서도 ‘임진가와’라는 노래를 좇아가면서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무엇이 나를 움직이게 하는지가 중요한 포인트인 거다. 나한테 작업은 외부 세계와 만나서 나를 운동하게 만드는 장치와도 같다.

글/ 박선영(미술 칼럼니스트)

사진/ Dowon Kim, Ikhyun Gim, © 남화연, (2~4) 홍천군 소장

 


정은영

초과된 감각 점멸하는 이미지

<History Has Failed Us, but No Matter(역사가 우리를 망쳐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라는 전시 타이틀이 흥미롭다. 당신은 여기서의 Us(우리)가 무엇을 가리킨다고 생각하는가? ‘그래도 상관없다’면 이 상관없음을 어떻게 독해했나? ‘

우리’는 쉽게 말하면 역사에서 호명하지 않았던 개인들이다. 역사에서 언제나 배제되었거나 사소한 개인들, 그런데 피해와 고통은 뒤집어쓴 개인들. 여기서의 ‘상관없음’도 기존의 역사가 쓰여진 패러다임을 바꾸자는 이야기로서의 상관없음인 것이다.

이 상관없음이 무관심으로 작동하는 게 아니라 불화로 작동하게 되지 않나. 이번 작품 ‘섬광, 잔상, 속도와 소음의 공연’에도 불화가 드러나는 성격이 있는지?

불화에 방점을 찍는다기보다는 불화라는 감각을 이용해서 좀 더 새로운 감각을 만들고자 하는 것에 가깝다. 계속 부딪히고 저항하는 방식에서 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독자적인 다른 존재의 방식을 찾겠다는 것이 더 강한 것 같다. 그 감각을 좀 더 진짜 감각, 몸의 감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장치 같은 게 뭘까 상상해봤다.

 

‘섬광, 잔상, 속도와 소음의 공연’, 2019, 비디오 사운드 설치, 가변크기.

출품작 미완성 편집본을 살펴보며 얘기를 나눌 수 있게 되어 기쁘다. 이번 작품 속에는 다섯 명의 퍼포머가 등장한다. 생존하는 가장 탁월한 여성국극 남역 배우 이등우, 트랜스젠더 전자음악가 키라라, 레즈비언 배우 이리, 장애여성극단의 연출가이자 배우인 서지원, 드랙킹 퍼포머인 아장맨. 작품에서 이들의 신체가 계속 시각화된다. 이 몸들은 무엇을 말하고 있나?

원래 여성국극이 갖고 있는 전수의 방법론이 전통음악이 그렇듯이 구음 전수다. 입을 통해서만 전해진다. 들여다봤더니 단지 구전으로 소리만 전달하는 게 아니었다. 구전 안에 몸의 움직임이라든가 연극을 행하는 자세라든가, 심지어는 남역을 해야 하니까 젠더를 만드는 방식까지도 그 안에 들어 있었다. 그래서 몸과 몸이 만나는 방식의 전수, 상호적인 전수를 상상했다. 이번 작품에 ‘인터보디 트랜스미션(inter-body transmission)’이라는 말을 쓰기도 했다. 내가 갖고 있는 태도는 언제나 애초에 있었던 전통적 요소를 존중하면서 그것을 조금 더 확장적으로 혹은 독자적인 방법론으로 다시 해석해보려는 것이었다.

네 명의 퍼포머들이 퀴어 공연의 계보를 잇는다고 말할 수 있나?

인터보디 트랜스미션(inter-body transmission)의 맥락으로 볼 때 이들이 공통성을 갖고 있다거나 이들만의 보이지 않는 연대가 있다는 식의 내용을 부각시키는 작업은 아닌 것으로 보였다. 그것도 하나의 상상으로 작동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계보가 너무 없으니까. 새롭게 계보를 쓰는 것을 상상해보려 했던 것도 있다. 그런데 계보를 쓰는 방식이 기존의 역사 쓰기의 방식이라면 큰 의미가 없지 않을까. 네 명의 퍼포머는 대표성을 띤 상징적 인물들을 리서치해서 접근했던 것이다. 그래서 이런 식으로 몸에서 몸으로 전달된다거나, 어떤 소문으로 퍼진다거나, 완전히 단절되었다고 믿었던 어떤 것이 근래에 와서 다시 발견되는 모습을 찾아내는 것이다. 정식으로 역사 쓰기의 권위를 갖지 못했을 경우 어떤 식으로든 전수되어 내려오는 것들이 있다. 드랙 퍼포먼스를 하는 아장맨 같은 경우에는 1980년대 중·후반 뉴욕 할렘의 드랙 볼 문화와 볼 경연대회를 다루는 다큐멘터리 <파리는 불타고 있다>(1990)만 열심히 보며 넷플릭스로 만들어진 계보만을 상상했는데 나중에 우리나라에 여성국극이라는 게 있다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고 했다. 그가 만들어내고 있는 이 모든 것들이 어떻게 조직되는 것인지 스스로 질문을 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엔 근거에 대한 질문을 하게 될 때 새로운 계보학이 쓰일 수 있지 않을까. 이건 상상력이나 가능성으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지, 우리에게 이런 전통이 있었다거나 새로운 전통 만들기를 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섬광, 잔상, 속도와 소음의 공연’, 2019, 비디오 사운드 설치, 가변크기.

퍼포머들이 제스처를 해나가고 당신은 그 제스처를 점멸시키거나 느리게 보여주면서 계속 가시화시키는데, 이 제스처를 살필 때의 관점이나 시선이 있었는지?

촉각적인 무언가라든지, 빛을 삽입해 다른 감각을 유도한다든지. 그게 정말 전에 없는 감각은 아니다. 다만 시각미술 안에서 그야말로 하나의 완성된 작업만으로 그 안에서 완결성을 가지는 작업중심주의가 답답했다. 원래 빛, 속도, 소음 같은 것들은 모든 작업에 효과로 들어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퍼포밍 위드(Performing with)가 아니라 퍼포밍 바이(Performing by)인 거다. 이번 작업은 마치 그 요소들에 의해 제작된 것처럼 보여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전시장에 와서만 경험할 수 있는 라이브한 감각을 구현하고 싶다. 퍼포먼스를 비디오로 기록해서 상영한다는 게 아니라 그 퍼포먼스가 지금 이 현장에서 움직임을 갖고 있다는 느낌을 주고 싶다. 작업이라는 것이 가끔은 관객과 부딪히기도 하는 것이다. 공연을 볼 때는 관객 주변의 환경도 관람 조건이 되지 않나. 그래서 좀 더 종합적인 공연적 관람의 조건을 생각해보려고 했다. 지금의 비주얼아트 내에서 우리가 너무 동의해버린 그 지점을 초과시키는 방식으로 구현해보고 싶었다. 비디오 자체가 가진 매체성을 넘어보려고 하기도 한다. 퀴어한 미학이나 감각이 이 안에 담겨 있다면 실제로 우리가 퀴어하다고 믿는 감각이 무엇인지 질문을 해보는 것이다.

 

‘섬광, 잔상, 속도와 소음의 공연’, 2019, 비디오 사운드 설치, 가변크기.

여성국극 <춘향전>을 우연히 본 회사원이 여성국극 남역 배우의 제자로 입문해 인생을 걸고 연기에 도전하는 이야기인 <변칙 판타지> 같은 공연도 만들었다. 그간 형식에 대한 실험을 많이 해오지 않았나?

매체를 넘어서고 싶은 생각은 계속 있다. 최근에 너무나 예리하다고 생각하면서 읽은 자스비르 푸아(Jasbir K. Puar)의 <Queer Times, Queer Assemblages>라는 논문이 있다. 퀴어라는 감각은 정체성, 성적 지향성, 종교 이런 것이 아니라 우리가 계속 경험하는 감각과 감흥과 역사 같은 것들이 재배치되면서 만들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의 방법론 역시 모든 정통의 텍스트를 부순 다음에 그것을 재조립하는 일종의 아상블라주의 방법을 써왔다. 퍼포먼스 아트가 가지고 있는 유구한 몸의 정치 같은 것을 촉각이나 시각 이상의 어떤 것으로 보여주고자 한다. 이번 작업도 시각이 오히려 불편해지는 경험을 주고, 번쩍이는 효과를 상당히 많이 넣어서 잘 보려고 하면 할수록 눈이 엄청 아프다. 작품을 편집할 때 선글라스를 끼고 작업할 정도다. 이런 식으로 매체를 엄청 혹사하고 초과하는 것을 시도해보려고 한다.

지난 10여 년에 걸쳐 지속해온 ‘여성국극 프로젝트’뿐 아니라 지난해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올해의 작가상’ 전시와 이번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전시에서 선보이는 작품들까지 정은영 작가의 퀴어 미학과 퀴어 정치의 맥락으로 함께 읽히는 것 같다.

작업하면서 물론 어떤 방향성은 있는데 편집증적으로 그걸 지키면서 하지는 않는다. 어떨 때는 “에라 나도 모르겠다.” 하면서 아주 감각적인 방식으로 풀어가기도 하고, 그때 꽂힌 이미지를 불러오기도 하고, 100% 논리적이지는 않다. 물론 논리가 있지만 그 논리에 너무 귀속되지 않으려고 한다.

글/ 박수지 (독립 큐레이터)

사진/ Chaeyoung Shin


제인 진 카이젠

흩어진 자들의 공동체를 찾아서

당신은 개인의 역사와 집단의 역사가 만나는 지점에서 개인과 역사의 기억, 경계, 이주, 디아스포라의 문제를 일관되게 탐색해왔다. 신작 ‘이별의 공동체’에선 그 주제가 ‘바리 설화’를 통해 나타난다. ‘바리’는 당신이 정의하는 디아스포라 그리고 ‘이별의 공동체’와 어떻게 연결되는가?

‘이별의 공동체’는 구전 신화 ‘바리 설화’를 재해석한 것이다. 왕국의 공주로 태어났지만 단지 딸이라는 이유로 버려진 바리가 자신을 포기한 부모를 위해 희생하고 그들의 목숨을 구한 후 삶과 죽음을 매개하는 신이 된다. 이 설화는 표면적으로 효도담으로 전해져왔지만, 나는 이야기에 내포된 다양한 측면을 찾아내고자 했다. 신화 속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서사는 부모에 의해 유기된 후 태어난 곳과 전혀 다른 세계에 사는 바리의 처지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일차적으로 바리의 삶을 디아스포라의 이야기로 읽을 수 있다. 단 ‘이별의 공동체’는 비단 바리와 디아스포라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역사적 상흔 속의 여성들, 예를 들어 비무장지대의 지뢰로부터 살아남은 생존자, 기지촌 여성들의 이면을 파헤치고자 했다.

 

‘이별의 공동체’, 2019, 필름 스틸.

‘바리 설화’를 그저 한국 무속신앙의 구심인 무당의 탄생 신화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당신이 확장시킨 바리의 정체가 궁금하다.

나는 바리가 희생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경계를 넘나드는, 그리고 관습에 도전하는 여성으로 읽고자 했다. 버림받았다는 사실은 쉽게 극복할 수 있는 기억이 아님에도, 바리는 자신의 운명(부모를 위해 희생하고 그들의 목숨을 구하는 일)을 주체적으로 선택한다. 다른 세계(저승)에서 온갖 역경을 겪은 후 살린 공을 인정받은 바리는 왕국의 절반을 되돌려 받는 대가를 제안받았지만 거절한다. 대신 그녀는 삶과 죽음을 가르는 문턱에서 이 세계와 저 세계를 연결하는 삶을 선택한다. 여기에도 있고 저기에도 있는 자. 그럼으로써 바리는 단순한 이분법적 사고를 넘어 전에 없던,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한다. 이것이 ‘Community of Parting’, 즉 유기되고 버림받은, 흩어진 이들이 모여 만든 ‘이별의 공동체’의 원형이자 방향이다.

고대의 바리가 현대에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현대 사회에서 바리와 같은 일을 겪은, 즉 분리된 자, 디아스포라는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이 작품에선 역사가 가진 성 편향적(Gender Bias) 시각에서 그 원인을 찾는다. 비단 젠더 문제만이 디아스포라를 낳는 원인은 아니다. 분단 현실, 급속한 현대화, 식민주의, 군국주의, 난민 문제를 포함해 사람들 사이에서 분열을 일으키는 다양한 요소도 이에 기여한다. 바리는 근현대사에서 나타나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한데 모으는 구심점이다. 즉 나의 바리는 단순한 설화 속 주인공, 피조물이 아니라 역사 속에서 여성이 겪는 ‘정서’의 매개이자, 그들의 목소리를 하나로 이어주고, 그 사이를 탐험할 수 있도록 이끄는 안내자이다.

 

‘이별의 공동체’, 2019, 필름 스틸.

당신이 만난 ‘이별의 공동체’ 속 디아스포라는 누구이며, 어떤 이야기를 가진 이들인가?

나의 작업 여정은 제주도, 비무장지대, 북한, 남한, 카자흐스탄, 일본, 중국, 미국 등의 동아시아 역사와 관계된 여러 나라를 거쳤다. 30대부터 90대까지, 다양한 세대의 여성들이 각기 다른 삶의 환경 속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낸다. 오랜 인연이자 제주 칠머리당굿의 계승자인 고순안 심방 굿 의식은 작품에서 시각·청각적으로 매우 중요한 요소다. 그 밖에 제주에서 태어나 도쿄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정치 철학자 이청화, 북한에서 태어나 일본의 자이니치 공동체에서 성장한 아티스트 금선희, 인류학자이자 샤머니즘 전문가 김성례, 남한의 시인 김혜순과 스웨덴 시인 마라 리, 1937년에 중앙아시아로 추방되어 지금은 카자흐스탄에서 살고 있는 고려 사람과 남한에서 살고 있는 북한 출신의 무당 이야기도 내게 큰 영감을 줬다. 이 작품에서 보여지는 또 다른 ‘이산’의 자취는 제주도에서 태어나 덴마크로 입양된 나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드러난다. 나 역시 역사의 흐름에 의해 초국가적인 디아스포라이기 때문이다.

돈과 시간이 있어도 가 닿을 수 없는 땅, 만날 수 없는 동포가 있는 ‘이산국’에선 사실 모두가 이산자다. 디아스포라로서 북한 여성들이 처한 현실이 궁금하다.

내가 만난 북한의 디아스포라 여성들은 모두 풍부한 지성과 엄청난 회복력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동시에 그들은 무수한 편견과 사회적 낙인에 직면해 있다. 나는 관람객들이 내 작품의 일부에서 드러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그 어떤 편견과 연민 없이 있는 그대로 인식하고 받아들이길 바란다.

 

‘이별의 공동체’, 2019, 필름 스틸.

역사에 대항하는 여성의 분투는 현대에도 계속되고 있다. 여성을 고립시키는 역사에 굴복하지 않기 위해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생물학적 성별뿐 아니라 모든 분야에 걸쳐 비판적 젠더 의식을 갖고 목소리를 내야 한다. 여성이 역사 속에서 분리되고 이탈하고 버려지고 사라지는 일은 시대를 막론하고 계속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소외될 가능성이 높은 개인의 역사를 집단의 관점에서 함께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자신의 고통에만 그치지 않고 타인의 고통으로 확장하는, 섬세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샤머니즘과 바리가 대변하는 정서가 중요한 해답을 제시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바리(무당)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며, 자신의 인식과 다른 사람의 인식을 함께 포용하고 서로의 ‘기억’에 관계적으로 접근하기 때문이다.

글/ 류진(프리랜스 에디터)

사진/ Dowon Kim, © Jane Jin Kaisen

 


 

김현진 예술감독

젠더 의식으로 역사 다시 읽기, 시각 서사의 파빌리온

드디어 비엔날레에 참여하는 여성 작가의 비율이 남성 작가와 동등해졌다.

작년 가을에 국가관 전체가 모여 회의를 할 때부터 그런 분위기를 느꼈다. 어떤 국가관은 여성 작가만 15명이 참여한다는 경우도 있었다. 여성 작가 비율이 동등해지는 건 진정 큰 변화라고 할 수 있다. 바로 전 비엔날레의 경우 총감독이 여성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비율이 동등하지 않았으며 특히 제3세계 여성 작가 비율이 낮았고 흑인 여성 작가는 단 한 명에 불과했다. 현대미술, 동시대미술에서 정치적이고 윤리적인 사고가 동반되면서 오래전부터 큐레이터들이 젠더 밸런스, 인종 밸런스를 위한 노력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그간 궁극적인 변화가 부족했기에 이번 비엔날레는 그런 점에서 고무적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미술계 상위층은 남성들이 더 많이 점유하고 있다는 점 등 아직 생각해볼 부분이 남아 있다.

전시 타이틀을 이민진 작가의 소설 <파친코>의 첫 문장에서 가져오게 된 경위가 궁금하다. 또, 세 작가의 작품과는 어떻게 맥락을 형성하는가?

한국관의 감독으로 선정이 된 후 2012년에 미국에서 있던 전시 때문에 뉴욕에 갔을 때 이 소설에 대해 알게 되었다. 자이니치 4대의 이야기를 통해 20세기 전반부 격동의 역사 속에 놓인 하류층 인물들의 삶과 오늘날까지의 삶이 탁월한 스토리텔링으로 구현된 소설이었다. 무엇보다 “역사가 우리를 망쳐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는 첫 문장이 굉장히 강렬했다. 그 문장이 전시의 내용을 관람객에게 집약적이고도 인상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고 여겨졌다. 이 문장은 역사의 파국과 굴절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살아내고자 하는 태도를 선연히 드러낸다. 남화연 작가가 연구하는 최승희도 코스모폴리탄 예술가로 살았지만 나중에는 친일 행위나 월북을 하는 등 제국주의, 식민주의, 냉전 디아스포라가 그 삶에 깊숙히 관련되어 있고, 제인 진 카이젠 작가도 동아시아의 국가주의와 디아스포라의 문제를 다루기 때문에 이 소설의 역사적인 구도, 시대적인 맥락과 닿은 부분이 있었다. 젠더 타자들이 자신의 위치에서 거침없이 세상과 맞서면서 주체적인 삶을 사는 태도를 말하는 데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전시 기자간담회 자리에서도 “지난 세기 동아시아 근대화 역사에서 감춰지고 잊히고 버림받거나 비난 대상이었던 이들을 새로운 서사 주체로 조명하려 한다.”고 말했다. 이 얘기를 듣고 2014년 박찬경 작가가 예술감독을 맡았던 <미디어 시티 서울> ‘귀신 간첩 할머니’가 떠올랐고, 2017년 베를린에서 선보인 전시 <2 or 3 Tigers>가 겹쳐졌다.

2014년 당시는 미술계 내부에서 그 주제와 관련해 직접적으로 또 간접적으로 공유된 부분이 있었고 그걸 토대로 각자 다른 방식 하에 전시로 풀어내던 시기였다. 나는 지난 10년간 근대성/근대화를 반추하는 전시와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는데, 2009년 열린 <시선의 반격>이 그 주제의 기점이 되는 전시였다. 2013년에 안젤름 프랑케가 기획한 <애니미즘> 전시를 한국에 소개하면서 같이 리서치하고 전시를 구성하며 서구 근대성에 의해서 억압된 영역을 돌아봤다. <애니미즘>전에도 박찬경 작가가 참여했었고, <미디어 시티 서울>이 열린 해에 나는 아르코미술관에서 전통과 근대성의 관계를 파고드는 프로젝트 <Tradition (Un)Realized>를 선보였다. 2017년에는 베를린 세계문화의 집에서 안젤름 프랑케와 공동 큐레이팅으로 <2 or 3 Tigers>를 선보였는데, 그 전시를 준비하면서 아시아 역사를 재해석하고 담론을 생산하는 시각예술의 구도에 있어 여성 작가들의 수적인 열세 혹은 양적 증가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꼈다. 작가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근대성에 관해 오랫동안 작업을 해온 박찬경, 싱가포르 작가 호 추 니엔 등 아시아의 대표적인 남성 작가들이 우선적으로 추려지는 가운데 당시 여성 작가로는 임민욱 작가의 작품들이 그 역할을 훌륭히 해주었다. 그러나 이 남성 작가들과 동일한 작업의 심도를 가진 여성 작가들이 수적으로 충분치 않아 여성 작가들의 경우 성장 단계에서 기회가 충분히 주어지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지식 생산 기반의 시각예술 작업을 시도해온 아시아 여성 작가들의 수적 확대와 이들이 세계 무대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좋은 환경 속에 작업의 질적 성장을 이루어나가는 데 큐레이터로서 더욱 지원할 필요성을 생각하게 됐다.

아시아 근대 담론에서 여성 작가의 참여가 더 높아져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고 그 경험이 이후 프로젝트, 즉 이번 한국관 전시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

역사나 근대성 담론에 기반한 시각예술 영역이 보다 젠더적으로 다양한 구도에서 접근되어야 규범화된 역사를 더 다양한 방식으로 개입하고 다르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상대적으로 다양성을 가진 시각예술 현장이고 다행히 동아시아 근대화 내부를 살피는 나의 전시 접근을 뒷받침할 작가군이 존재하고 있다. 정은영 작가가 여성국극이라는 전통 장르의 퀴어성을 가지고 접근한 것이 그 대표적인 예가 될 수 있는데, 거의 10년간 리서치를 하고 다양한 방식의 작업을 시도하면서 전통 내부의 전복성을 재발굴하고 있다. 정은영 작가와는 2012년에 퍼포먼스 ‘Off-Stage/MasterClass’를 함께 만들고 그 이후로 지속적으로 작업이 진화하는 양상을 관찰하고 테스트하면서 작품을 확장시킬 수 있었다. 남화연 작가는 비디오, 퍼포먼스 작업에서 새 소리, 식물부터 문화재까지 다양한 아카이브를 다루며 어떻게 새로운 사건이 될 수 있는가를 질문해왔는데, 지정학적 역사의 흔적을 담은 문화적 파편들에 깊이 관심을 가지면서 어떤 변화의 지점들이 발생하고 있었고, 그걸 심화하고 싶어하던 찰나 이번 전시를 함께 하게 되었다. 제인 진 카이젠은 <2 or 3 Tigers> 전시에 ‘The Woman, The Orphan, and The Tiger’(2011)라는 필름으로 참여한 바 있다. 더 본격적으로 여성과 젠더 다양성 차원에서 작가들과 근대성에 대한 담론을 심화시킬 수 있는 전시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고, 기획의 맥락에서 적합했음은 물론이고 예술적으로 탁월하고 국제적으로 성장 가능성이 충분하기에 세 작가를 한국관 전시를 위해 초대하게 된 것이다.

세 작가의 옴니버스적 개인전이라기보다는 잘 기획된 그룹전으로 보이는 이유가 이미 오랫동안 리서치하며 심도를 더한 기획에 긴밀한 연결 속에서 함께해온 작가들과 꾸렸기 때문인 듯하다. 그간 한국관 전시와는 조금 다른 양상으로 보인다.

그동안 한국관 전시는 대체로 국제 무대로 프로모션하기 위한 국가대표급 작가를 쇼케이스 하는 방식으로 꾸려졌다. 그러다 보니 주제보다는 작가 한 명을 집중적으로 소개하거나 두 명의 옴니버스식 전시로 구성됐다. 국가관 전시의 그런 관행들이 보다 젊은 세대의 큐레이터들에게는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 나 역시 이러한 점을 고민했고, 하나의 전시로도 의미를 만들 수 있으면서 작가 개별 작품들이 동시에 잘 소개되는 균형을 추구했다. 개인적으로 나의 이전 전시의 맥락 속에서 긴밀하게 만나고 함께 발전해 온 작가들과 이번 한국관 전시를 꾸리게 되어 매우 기쁘다. 세 작가의 작업 양상과 작품은 분명한 차별점을 지니지만 하나의 전시 내러티브를 이룰 수 있게끔 연결이 되어 있음에 주목해 관람한다면 좋을 것 같다.

세 작가의 비디오 작품이 건축 구조물 설치와 만나는 부분이 궁금하다. 남화연 작가의 식물 정원도 설치된다고 하는데 어떤 풍경이 펼쳐지는 건가?

한국관은 늘 전시 공간으로의 한계를 지적받아왔고, 실제로도 공간 형태가 그런 어려움을 준다. 마치 서머 하우스처럼 생겼는데, 전면과 후면 유리벽에 직선과 곡선이 다양하게 쓰이고 방처럼 나뉘어 있어 매년 작가와 큐레이터가 어려워한다. 우리는 곡선을 더 도입하는 등 오히려 복잡함을 증폭하는 방식으로 공간을 설계하고 있다. 전체 뷰를 한 번에 보여주지 않으면서 일종의 미로처럼 디자인해 비디오들이 놓인 어두운 방에 들어갔다가 다시 밝음 속에 놓이고 계속 밝음과 어둠 사이에서 전환되는 경험을 할 수 있게끔 하려고 한다. 남화연 작가 공간에서는 큰 플랫폼이 설치되는데, 그 아래에서 동굴처럼 들어가거나 그곳을 밟고 올라서는 경험도 할 수 있다. 플랫폼에 오르면 외부를 조망할 수도 있는데 거기서 바라보는 곳, 국가관 후면에 정원이 위치한다. 인공적으로 디자인된 정원이라기보다는 기존의 한국관 후면에 마련된 산책로에 자연스럽게 삽입되는 방식으로 남화연 작가가 선정한 식물들(유럽에 퍼져 있는 아시아 원산지 화초나 식물들)이 심어진다. 한국관을 나와 정원으로 가게 되면 ‘이태리의 정원’이라는 노래가 흐르게 되는데 최승희가 실제로 불렀던 노래다. 1936년에 최승희가 발매한 음반에 수록돼 있다. 그 노래가 묘하게도 2019년, 이탈리아의 정원에서 울려 퍼지게 된 것이다.

에디터/ 안동선

사진/ Dowon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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