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의 시간

섬세한 연출력으로 '1박 2일' 제2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유호진 PD가 새 프로그램을 위해 오만의 아라비아 사막으로 항했다. “탐험이 좋은 것은 모종의 후일담을 남겨준다는 것이다.” 유호진 PD의 말이다. 신비롭고도 막막한 땅, 사막이 남긴 후일담은 다음과 같다.

사막의 정수를 느끼려면 소인원이어야 한다. 적은 인원이 가야 새벽에 우연찮게 텐트 밖으로 나왔을 때, 엄청나게 커다란 자연 앞에서 작은 인간이 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사막은 인간이 작아지는 경험을 하기에 가장 좋은 곳이다.

개인적으로는 가혹한 환경에 적응하며 사는 사람들이 흥미로웠다. 이 사람들은 왜 농사가 안 되는 땅에 살까. 과학이나 기술이 없었을 때는, 이 넓은 공간에 사람 몇 명이 숨어버리면 찾을 수 없었을 거다. 그렇다면 정치적 구속이나 어떤 권위로부터 자유롭고 싶은 사람들은 신체적인 고통을 감수하고라도 이런 곳에서 살고 싶지 않았을까? 사막에서 만난 베두인들에게서 그런기질이 엿보였다. 그들은 혹독한 자연 속에서의 신체적 고통을 감내하는 대신에 영적인 측면에서의 윤택함과 자유로움을 누리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촬영 전에 답사를 갔을 때 사막을 걷다가 염소를 키우는 베두인을 만났고, 그들은 나에게 양고기를 대접하겠다고 했다.내가 먹게 될 양을 보는데 감정이 복잡했다. 내가 먹지 않겠다고 하면 이들이 며칠은 더 살 수 있으니까. 사막에서는낙타나 염소 같은 동물들도 인간이 있는 곳으로 가야만 물을 마시고, 풀을 먹을 수 있다. 그리고 인간들은 관계를 맺은 동물을 잡아먹는다. 이 과정에서 생기는 죄책감, 윤리적인 감정들을 체계화한 것이 종교적인 제례다. 사랑하지만, 죽일 것이다. 생사여탈의 권리를 가지고 있는 인간과 동물의 관계 맺음을 보고 있으려니, 성경에 나오는 목자와 양의 비유가 굉장히 선명하게 이해가 됐달까?

문명마다 각기 다른 라이프스타일이 있다.그런데 우리가 왜 그 방식으로 사는지 원인을 파악하긴 어렵다.요즘은 너무 많은 물건과 기술이 있고, 인간 사이에 지켜야 할 매너와 원칙도 복잡해서 원인과 결과가 아예 유리되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사막이라는 곳은 굉장히 단순해서,삶의 관계성에 대한 모델링이 심플한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보다 복잡한 구조를 갖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설명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 의외로 명쾌한 답이 내려지기도 한다. 사람은 왜 이렇게 살까,좀 더 단순하게 볼 수 있는 건 아닌가,이런 생각들 때문에 사막에 가고 싶었다. 물론 이러한 형이상학적이고 거대한 이야기를 예능 프로그램에서 하기란 쉽지 않으니, 그저 개인적인 이야기다.

사막은 걷는 방향을 스스로 결정해야 하는 탐험지다. 산티아고 순례길이나 히말라야, 킬리만자로 트레킹이 루트가 정해져 있는 것과 달리 사막은 열려 있기 때문에 어디로, 얼마나 갈지부터 정해야 한다. 사막에서 늘 결핍되어 있는 것은 다만 도착지인데, 등산할 때 고점이 있는 것과 달리 도착할 만한 곳이 없다는 것이 사막의 문제다. 그래도 대부분의 사막 탐험가들은 인점과 아웃점을 정한다. 자기와의 약속이다. 그래야 이야기가 성립 되고, 횡단의 형태를 띠게 되기 때문이다. 새 예능 <거기가 어딘데??>는 시작점에서 끝점까지 이동하며 그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자연스레 만나는 선형의 프로그램이다. 많은 탐험가들이 왜 그렇게 탐험을 떠나는지 축소 경험하는 거다. 전화가 안 터지니까, 구글맵은 당연히 안 된다. 물론 오프라인 지도를 다운받을 수는 있지만, 그 지도에는 지형이 반영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하얀 백지로 나온다. 그래서 종이 지도와 나침반을 들여다보며 걷게 되는 거다.

사실 내가 느낀 건 아무런 의미가 없다. 방송을 통해 보여주고 싶은 것은 ‘그들’이 느낀 거니까. 차태현, 지진희,조세호, 배정남 네 명의 남자가 사막을 걸었다. 덥다, 너무 덥다, 이렇게 더울 수가 있나, 체온보다 기온이 높아서 바람이 불수록 더 덥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처음에는 너무 낯선 자연을 봤기 때문에, 시선이 외부로 향한다. 그런데 자신을 둘러싼 환경이 어느 정도 파악이 되면, 그 시선이 자기 자신으로 향한다. 이런 종류의 공격적인 날씨를 경험해본 적이 없다. 그러다 보니 걷는 행위, 보행에 집중하게 된다. 환경이 받쳐주면 경치를 볼 수 있지만, 극한의 환경에서는 자기 생각을 하게 되는 게 사람이지 않나. 그런데 그게 나쁘지 않았다. 명상의 방법 중 하나가 숨 쉬기 같은 단순한 행동을 반복하는 것이라고 들었다. 걷는 일에는 딱히 기술이 필요 없으니까 좀 더 쉽게 명상에 접어들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두 사람이 함께 걷고 있을 때, 걷는 리듬에 따라서 이야기가 잘 풀리는 경험을 하게 된다. 자연스레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풀어놓게 된다. 물론 오전 열 시부터 오후 두 시 사이에는 덥다, 끔찍한 경험이다, 빨리 도착했으면 좋겠다 하는 말밖에 안 하지만. 그러다 말을 잃어버리는 구간도 온다. 그것 또한 보행의 리듬이다. 분명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걷기만 하는 오랜 시간들이 있는데, 오디오가 없으면 채널을 돌릴 시청자들을 생각하면 이걸 보여줘야 되나 말아야 되나 고민이 된다.

원론적으로 탐험이라는 건 모르는 곳에 가는 행위다.그런데 구글을 통해 모든 곳을 손바닥 들여다보듯이 하는 시대에, 도대체 모르는 것이 뭐가 있다고 그곳에 가는가. 우리가 엄청난 무언가를 발견할 능력이 있는 과학자도 아닌데.그래도 알지 못하는 곳에서 출발해서 알지 못하는 곳으로 도착하는 과정에서 각자 무언가를 찾아내게 된다. 발견의 대상이 크든 작든 말이다.근래에는 마이크로 탐험이라는 것이 유행이라고 한다. 나는 알 수 없는 상황에 스스로를 집어넣어서 자신을 어떤 내러티브의 주인공을 만드는 것이 탐험이라고 생각한다. 하다 못해 어느 날 갑자기‘오늘은 사당동까지 걸어가봐야지’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그 길을 한 번도 걸어본 적이 없는 사람에게는,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측할 수 없다. 오늘날의 탐험은 ‘알 수 없음’을 인위적으로 만드는 행위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사막으로 떠나기 전에 출연자들에게 케이블카를 타고 산에 올라가는 것과 등산을 하는 것 중 어느 게 만족스럽냐고 묻자 모두가 “케이블카 아니야?”라고 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게 시작점이었던 것 같다. 낯선 상황에 자신을 집어넣고, 나를 관찰하는 것.나는 왜 못 견디지? 나는 지금 뭘 해야 하지? 나는 왜 이렇게 행동하지? 이런 것들이 성공적으로 보여지면, 이 프로그램이 다른 여행 프로그램과 어떻게 다른지에 대한 답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편집이 어려운 거다. 방송인 전현무 형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PD들이 가장 싫어하는 게 뭔 줄 알아? 내적 갈등이야, 안 보이니까.” 그곳에 확실히 어떤 고귀한 것들이 있는데, 그것을 방송으로 보여주기란 굉장히 힘든 일이다.

다들 이곳에 다시 올 거라고 말했는데,그 말 밑에 무엇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다.그들 각자에게 어떤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그저 아름다운 것을 보았다고 해서 강렬하게 재방문을 원하지는 않으니까.프로그램을 만들며 많은 사람들에게 왜 사막에 가야 되냐는 질문을 받았다.그때마다 나는 모른다고 했다.그것은 아웃점에서 알 수 있을 것 같은데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고.그게 뭔지 알고 싶으면 가는 거다.중간에 실패하면 다녀와서도 알 수 없게 되는 것이다.그래서 사막 횡단에는 스스로 설정한 아웃점에 달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겨진다.도달점에서 느끼는 감정들 때문에 사막에 가는 것이다.

탐험가는 결행하려는 의지와 강인한 체력, 본능적으로 더 멀리 가고 싶어하는 기질을 가진 사람이다. 출연자 중에서도 배우 지진희는 천생 탐험가였다. 매사에 심사숙고하고,한 번 결단을 내리면 포기를 안 하고, 때로는 단기적인 희생을 주변 사람들에게 설득할 수 있고, 효율을 중시하는 사람. 사막에서 그는 연예인이 아니었다. 분량을 뽑으려고 시간을 끌거나 웃고 떠드는 대신에 어떻게 하면 걷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단축할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도달점에 더 빨리 도착할 수 있을지를 늘 고민하고 있었다. 촬영 때문에 조금 천천히 가자고 말하면 곤혹스러워 하는 게 눈에 보였다. “아, 그래야지.”라고 하면서도 ‘그렇다면 나의 목표는 지체된다’고 생각하는 듯했달까? 실제로 그는 우리의 여정에 동행한 남영호 탐험가와 가장 비슷한 기질로, 둘이서 다시 사막을 방문할 생각도 있어 보였다. 위에서 열거한 탐험가의 기질은 사실 PD가 가져야 할 능력과도 맞닿아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미련이 많은 사람이다. 수렵인이냐 채집인이냐를 묻는다면, 철저히 채집인에 가깝다. 시간이 오래 걸려도 상관없고, 눈에 보이는 것을 다 담아야 하고, 목표를 노린다는 개념이 부족한. 그런 면에서 나의 본성과 반대되는 일을 하면서 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한다.

내가 사막에서 제일 좋았던 순간은, 모든 촬영을 마치고 스태프 버스를 타고 숙소로 올라가는 길이었다. 광막한 사막 한가운데 단 하나의 아스팔트 도로가 직선으로 깔려 있는데, 그 도로를 두 시간 정도 달리며 버스 안에서 바라본 풍경은 평생 못 잊지 않을까 싶다. 얼마 전까지 나는 사막의 출발점에명의 사람과명의 연예인을 데리고 서 있었고, 물, 음식, 차량 지원, 통신 등 아무것도 제대로 되는 것이 없는 곳에서 킬로미터를 걸어서 나오는 동시에 촬영이 수반되어야 했고, 어떤 게 찍힐지 몰랐고, 그 과정에서 좋은 게 나오지 않으면 배팅을 한 회사에 막대한 손실을 끼칠 예정이었다. 인점과 아웃점 사이에 뭐가 있을지 알 수 없었고, 결국 그 사이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웃긴 일들이 일어났다. 촬영이 끝나고 돌아가는 버스에 탔을 때, ‘이런 일들이 있기로 되어 있었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운명론적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사막에 다녀온 후 ‘이런 일이 있기로 되어 있었던 걸 아는 사람’이 되었다. 어찌 됐든 우리 중 아무도 다치지 않았고, 이 프로그램이 흥행을 할지 실패를 할지는 모르겠지만 방송에 나갈 수 있을 정도로는 찍힌 상황에서 ‘탐험이 끝난 귀로’라는 것을 처음으로 느껴본 거다.

모든 것들이 끝났는데 창밖 풍경은 여전히 사막이다. 버스 맨 앞자리에서 음악을 듣고 있는데 아델 노래가 나왔다. 그렇게 프로그램의 첫 곡이 아델의 ‘Hello’가 됐다. 여행의 많은 장르 중에서 탐험이 가진 독특한 가치는 모종의 후일담을 남겨준다는 것이다.

어찌 됐든 진짜로 사막을 걸을 생각이라면, 준비는 철저해야 한다. 베두인과 동행하면 좋을 것이고, 베두인이 아니라도 사막을 잘 아는 사람과 함께해야 한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동물과 곤충도 많고, 그림으로 보는 것보다 훨씬 위험한 곳이다. 안전을 위한 물건들을 다 챙긴 후에 딱 두 가지 물건을 추가할 수 있다면, 낭만을 위해서는 블루투스 스피커를, 현실을 위해서는 정전기 방지 방수포를 추가하라고 말하고 싶다. 사막에 어떤 물건을 내려놓는 순간, 거기에 붙은 모래는 서울까지 온다고 생각하면 된다. 사막 여행을 하고 나면 서울에 와서도 사나흘은 귀에서 모래가 나온다. 모래라는 것이 그곳에서는 낭만적인 대상일지 몰라도, 나의 생활 공간에 침투해오면 굉장히 불편한 존재가 된다. 그러니 앉는다, 선다, 배낭을 내려놓는다 등 사막에서 걷지 않을 때 하는 모든 행동은 정전기 방지 방수포 위에서 할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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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사진 Nam Youngho 
출처
5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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