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아치의 세계

다른 세계를 만나는 몇 가지 방법이 있다. 영화 <곡성>에서처럼 굿을 하거나 <매트릭스>에서처럼 ‘빨간 약’을 선택하거나, 지금 아틀리에 에르메스에 펼쳐져 있는 양아치의 전시 를 찾는 것이다.

‘갤럭시, 대륙이동설클럽, not 8Hz’, Mixed media, 428×196×126cm, 2017

미디어 아티스트 양아치의 개인전 를 함께 다녀온 후배는 한동안 잔상 때문에 괴로워했다. 혼이 쏙 빠졌다며, 오죽하면 그날 밤 꿈에 새가 나왔다고 토로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아틀리에 에르메스는 샤머니즘적인 무대로 변해 있다. 누군가를 홀리는 듯한 영상, 샹들리에, 심벌즈, 복숭아, 소의 머리, 새의 모형 사이를 걷다 보면 어디선가 이상한 느낌이 감지된다. 쓱 돌아봤더니 새장 안에 진짜 살아 있는 새가 부리로 콕콕 깃털을 쪼고 있다. 이미지보다 더욱 강렬한 건 소리다. 듣기 좋은 멜로디가 은은히 퍼지다가 주문을 외듯 광둥어가 툭 튀어나오지 않나, 지저귀는 새소리 사이 날카로운 기계음이 귀를 찌르기도 한다. 왠지 곧 주술사가 나타나 접신이나 최면을 위한 의식을 치를 것 같은 느낌이다.

생각해보면 양아치 작가는 오래전부터 실재하지 않는 세계를 탐구해왔다. ‘웹 아티스트’라 불릴 때는 인터넷을 재료로 했고, 대안으로서의 스토리텔링을 결합한 미디어 작업 <미들코리아> 3부작의 경우 남한도 북한도 아닌 존재하지 않는 나라가 배경이었다. 2010년 에르메스 재단 미술상을 수상한 작품 ‘밝은 비둘기-현숙씨’의 키워드는 다름 아닌 ‘빙의’였다. “왜 나는 가상을 좋아할까 생각해봤는데, 가상은 잠재적인 힘을 뜻하기 때문이었어요. 얼마나 근사한 말인가요? 내겐 그 잠재적 힘에 대한 갈망이 있어요.” 그리고 지금 양아치는 아틀리에 에르메스에 무한한 잠재력을 지닌 일종의 ‘웜홀’을 만들어놓았다. 우주와 우주가 만나는 순간을 예측할 수 없듯이 그곳에서 무엇을 어떻게 만날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번 양아치의 전시는 특히 경험적으로 느껴진다. 샤머니즘의 성격이 짙어서 전시 소개글만으로는 와닿지 않은 부분이 많았는데 직접 와보니 오해가 풀리는 느낌이다.

무당만 있으면 될 것 같지 않나? (웃음) 개인전이 다 그렇듯이 엔 굉장히 주관적인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읽어내는 데 시간이 걸리는 게 당연하다.

이번 전시에 숨어 있는 사연이 뭔가?

2014년 개인전 <뼈와 살이 타는 밤>을 준비하면서 우울증을 심하게 앓았다. 심각하게 어두운 작업이다 보니까, 그게 싫은 건 아닌데 정말 괴로웠다. 지금도 치료 중이지만 그때는 견디질 못할 정도라서 새벽마다 무작정 산으로 갔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 산이 무당들이 많기로 유명한 인왕산이었던 거다. 그곳에서 이제껏 못 봤던 세계를 경험했고 그게 이번 전시의 계기가 됐다. 그러니까, <뼈와 살이 타는 밤>과 는 하나의 흐름이다. <뼈와 살이 타는 밤>이 밤이라면 는 낮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낮이라고 할 만큼 밝은 뉘앙스의 전시는 아니었는데….(웃음)

새벽 두세 시쯤 인왕산으로 가서 한두 시간 있다 보면 서서히 동이 튼다. 별거 아닌데 보는 내내 굉장히 뭉클하다. 해가 뜨는 오전 4시와 해가 지는 오후 4시는 내가 보기엔 단순히 빛이 들어오는 시기가 아니라 세계가 교차하는 순간이다. ‘When Two Galaxies Merge’, 말 그대로 두 개의 우주가 병합되는 느낌이었다.

전시 전경.

전시의 의도는 온전한 세계 너머 또 다른 세계와 만나는 것이다. 이처럼 인왕산에서 어떤 초월적 경험을 했다는 건가?

인왕산엔 정말 다양한 종류의 무당이 있다. 그중 대구에서 온 할머니 무당은 정말 특별한 분이었다. 날 보자마자 “왜 이제 왔니?”라고 묻고 “너는 옛날에 큰 스님이었다.” 이러더라. 내가 삭발이라 그렇게 짐작하는 거 아니냐고 되물었더니 절대 아니라고, 큰 스님이었다고 답했다. 그 이후로 종종 만나서 심리치료처럼 대화를 주고받았다. 정말 신기한 게 그분은 자기 의견을 말하는 게 아니라 자기가 모시는 할아버지한테 묻고 그 답을 내게 전했다. 그게 무섭다기보단 어디서도 만날 수 없는 이야기처럼 느껴져서 굉장히 묘했다. 그리고 못 믿겠지만, 산에서 내려오는데 <홍길동전>의 한 장면처럼 고양이가 소나무를 타면서 날 배웅해준 적도 있다. 산에서는 정말 별의별 일이 다 일어난다. 가 보면 알 거다.

이번 전시에서는 당신이 무당이나 산과 같은 역할을 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현대예술가의 역할이 곧 주술사와 비슷한 면이 있다고 보는 건가?

과거에는 그랬을지 모르지만 현대에 와선 미디어가 곧 주술사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미디어의 의도에 따라 시청자들이 움직이지 않나. 그렇게 극적인 변화를 줄 수 있는 건 미디어이고 지금의 예술가들은, 비유하자면 광부와 같다. 지극히 주관적인 대상을 선택해서, 무작정 파고 원석을 발견해내는 사람들 말이다.

전시 오프닝 당일에 펼쳐진 퍼포먼스.

‘갤럭시, 최욱노’, Single-channel video, 9 minutes 30 seconds, 2017

‘갤럭시, 대륙이동설클럽, 스크린, not 8Hz’, Single-channel video, 13 minutes 8 seconds, 2017

전시를 잘 들여다보면 라는 일종의 무대에 몇몇 키워드로서의 작품이 놓여 있는 구조다. ‘대륙이동설클럽’ ‘5G’ ‘사랑’ ‘불면증’ ‘최면’…. 이것들이 의미하는 바는 뭔가?

‘전 미래’라는 불어 시제가 있다. 우리 식으로 얘기하면 어떤 ‘징후’를 뜻한다. 하늘에 까마귀 5백 마리가 떠 있거나 아침에 그릇이 깨지면 불길하다고 하는 징후들을 시제화시키면 전미래가 되는 거다. 그런 전미래적 키워드가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가 떠오른 것들을 작업으로 풀었다. 사랑만 해도 태풍이 불어올 지, 바다가 펼쳐질지, 도무지 예측할 수 없지만 몸이 절로 움직이게 되는 징후 아닌가.

블로그에서 ‘Love, 사랑은 어떤 기술, 괴물처럼 변신하고, 여우처럼 둔갑을,’이라는 글귀를 봤다.

사랑, 특히 첫사랑에 빠지는 순간 우리는 완전히 기호와 상징의 세계로 들어간다. 상대방이 던진 말, 작은 행동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고 해석을 위해 정말 많은 노력을 기울이지 않나. 분석하고, 고민하고, 주변에 상담하고. 그 암호를 풀어내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이 내겐 어떤 기술로 읽혀졌다.

‘갤럭시, 사랑’, Mixed media, 55×61×93cm, 2017

전시 전경.

‘5G’는 테크놀로지인데 5G와 사랑의 공통점이 무엇인가?

5G야말로 정말 샤먼을 만나는 것 같은 급변화의 촉매제라고 할 수 있다. 사랑이 그렇듯 5G 이후에 얼마나 격렬한 사건들이 벌어질지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다. 4G에서 5G로 넘어가는 시기가 우리나라는 2018년 평창올림픽, 일본은 2020년 도쿄올림픽이라고 한다. 미디어에서는 5G 시대가 도래하면 무인 자동차가 등장하고, IOT(Internet of Things, 사물에 센서를 부착해 실시간으로 데이터를 주고받는 것) 기기들이 집 안으로 들어올 것이라는 단편적인 효과만을 말한다. 하지만 정말 눈여겨봐야 할 건 데이터다. 무인 자동차가 1초당 1기가의 데이터를 사용하는데, 이건 지금과는 비교할 수도 없이 사용 데이터 양이 늘어난다는 뜻이다. 데이터를 디자인하는 직업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될 것이고, 스마트 아파트가 등장하며, 4G가 보여줬던 현대의 문제점들, 그러니까 SNS의 좋지 않은 기능들을 뛰어넘는 사건사고들이 벌어질 수도 있다. 지금 삼성의 자리를 KT가 차지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갤럭시, 사랑, 8Hz’, Mixed media, 80×60×75cm, 2017

이 말을 듣고 있으니 2003년 개인전 <전자정부>가 떠오른다. 인터넷 실명제, 감시 카메라 등으로 디지털 시대 정부가 국민의 정보를 수집하고 그걸 이용해 감시하는 시스템을 은유한 작업 말이다.

데이터가 삶의 중심이 되면 보안 문제가 더욱 중요해진다. 우리나라에선 삼성이 보안을 맡고 있는데 그걸 무기로 삼성이 또 얼마나 대단한 감시와 통제를 하겠나. 무인 자동차가 등장하면 현대 자동차도 마찬가지일 테고. 기술 발전 같은 아름다운 풍경만 상상해서‘갤럭시, 대륙이동설클럽, 스크린, not 8Hz’, Single-channel video, 13 minutes 8 seconds, 2017‘갤럭시, 최욱노’, Single-channel video, 9 minutes 30 seconds, 2017는 안 된다. 5G는 영화 한 편을 몇 초 만에 다운받을 수 있다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삶을 통째로 바꾸는 화두다.

다섯 가지 키워드의 오브제 사이에서 생명력을 가지고 움직이는 것, 그러니까 제어할 수 없는 유일한 변수는 새뿐이다.

개인적으로 워낙 새를 좋아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근사하다고 생각하는 게 새의 소리다. 그들 사이에도 커뮤니케이션의 방법, 신호체계가 존재한다. 이번 전시 속에 사람에게는 그저 노이즈일 뿐이지만 새들에게는 반향을 일으키는 소리를 심어놓았다. 새들이 그 파형에 보이는 반응 역시 작업의 일환이다.

새장 속 살아 있는 새와 함께 관객의 눈길을 사로잡는 건 스피커 위에서 흔들리고 있는 복숭아 한 쌍 ‘사랑 8Hz’다. 규칙적이고 리드미컬한 움직임이 마치 ‘트월킹(Twerking)’ 댄스 같았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날 복숭아를 스피커 위에 올려놓고 Hz별로 테스트를 해봤다. 그러다 사람 귀에는 안 들리는 8Hz 위에 올려놓으면 소리 없이 복숭아가 흔들흔들한다는 걸 알게 됐다. 난 분명 청각 작업을 한 건데 시각화된 셈이다. 게다가 복숭아는 아시아에서는 영원한 생명 같은 좋은 의미지만 서구에선 성적인 심벌 아닌가. 청각 작업인데 시각화되어 있으니까 사람들이 자연히 스테레오 타입의 시지각을 소비하게 된다는 사실이 재미있었다.

미디어란 커뮤니케이션의 도구이며 시각보다는 청각적이고 촉각적인 것이라고 말해왔다. 시각보다 촉각 혹은 청각적인 작업이 미술이 가진 본연의 힘을 끌어낼 수 있다고 보는 건가?

물론 시지각도 아직 유효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미술이 시지각을 활용하는데, 너무 예상 가능한 방식을 반복하다 보니 피로도를 느낀 것 같다. 게다가 ‘사랑 Hz’의 경우처럼 시지각엔 너무 많은 오해가 존재한다. 어떤 면에 있어서는 청각이 주도하는 작업이 더 명확한 해석을 이끌어낸다고 본다.

당신 작품에서 받는 첫인상 몇 가지를 예측해 보자면 미스터리, 불편함, 생경함, 두통 정도가 아닐까 싶다. 난해하다거나 어렵다는 평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난해하다는 말 자체는 괜찮은데 그 말을 무기로 공격하는 평을 들으면 뭐, 어쩌라는 건가 싶다. 이건 미술을 바라보는 방식의 차이인 것 같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부분 셜록 홈스형인데 예술가들은 제임스 본드형 인간이 많다. 무슨 이야기냐면 셜록 홈스는 과거 범죄의 흔적을 찾아서 네가 범인이야, 하고 현재를 탄생시키고 제임스 본드는 미래의 범죄를 추적해서 현재를 유지시킨다. 이 오차 때문에 문제가 자꾸 발생하는 거다.

그래서 ‘과거를 툴로 삼아 현재화한다’는 큐레이터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를 미워한다고 말하는 건가?

작품의 앞뒤 면을 다 읽어내면서도 셜록 홈스형의 대중을 벗삼는 게 얄미워서 한 소리다. 보통 미래 언어를 사용하고 유토피아를 지향하며 지금의 현재가 아닌 내일의 현재를 다루는 게 작가인데, 비평하는 사람이 작가의 언어를 왜 모르겠나. 그렇다고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 같은 사람들을 안 만날 수는 없으니 그냥 그들의 양심을 찔리게 만드는 작업을 해야겠다, 하는 마음이다.

당신의 미로 같은 작품을 감상하는 가장 적절한 방법을 추천해준다면?

이왕이면 혼자 오는 것. 삼삼오오 함께 와서 말을 섞기 시작하면 보편 타당한 언어에 얽매이게 되니까. 예전에 서울시립미술관에서 내 작업의 도슨트 교육을 맡은 적 있다. 그때 어떤 단서도 주지 않았다. 자원봉사자 어머님들께 “어떻게 보셨어요?” 물어본 다음 그냥 그대로 말해달라 부탁했다. 그처럼 어떤 질서에 들어갈 필요 없이 혼자 스스로 작업과 연관 지을 수 있는 말들을 자유롭게 생각해내는 게 맞는 것 같다.

작품 제목 역시 암호와 다름없는데 그중 최고는 이거다. ‘나는 1956년 사무실로 출근한다. 1956년 사무실에서 1966년 이전 1976년, 1980년, 1986년을 발명하고 2010년 사무실에서 퇴근한다. 기차를 타고 1980넌이라는 역에서 내린 후, 2012년 모텔에서 창밖을 바라본다.’

여기에도 좀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다. 큐레이터들이 작품 제목과 함께 작업에 관한 서술을 달라고 하는 경우가 꽤 많은데, 그게 너무 싫다. 왜 자기가 할 일을 나한테 넘기지? 내가 할 일은 작업에서 이미 완결이 됐고 그걸 텍스화시켜서 세상에 전달하는 건 큐레이터의 몫인데 말이다. 그래서 약 올릴 겸, 스테이트먼트를 곧 제목으로 만들어본 거다.

스스로 꿈이 ‘양아치Z’가 되는 것이라고 했다. 진심인가?

일본에서 Z는 하이퍼(Hyper)의 의미다. 최종의, 마지막의, 그 사회가 추구하는 정점을 의미하는 말이다. 그리고 이건 여담인데, 선생님들을 뵐 때마다 다들 자기가 진짜 양아치지, 왜 네가 양아치냐고 하신다.(웃음) 그럼 우스갯소리로 “선생님은 쌩양아치 하세요. 저는 동네 양아치 할게요.” 하는데, 그렇게 농담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떠오른 말이기도 하다. 선생님들은 쌩양아치 하고 나는 양아치Z 하면 괜찮지 않을까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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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권 민지(프리랜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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