쑨쉰의 야심

중국의 전도유망하고 야심만만한 아티스트 쑨쉰이 말했다. “I’m not a Chinese Artist. I’m an Artist of Earth.”

<망새의 눈물> 전시 전경.

<망새의 눈물> 전시 전경.

쉰의 첫 한국 개인전이 열리기 하루 전, 아라리오 갤러리의 지하 전시 공간에서 그는 페인팅 작업에 한창이었다. 일주일 전 가로 7미터, 세로 3미터의 벽에 손오공, 삼장법사, 호랑이가 등장하는 대형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완성이 멀지 않아 보였다. 그는 이번 개인전을 위해 한국과 중국이 근현대기를 거쳐오며 겪은 공통된 경험과 양국의 문화적 유사성에 착안하여 지난 2년여 동안 ‘전통’과 ‘신비함’에 초점을 맞춘 작품을 준비해 선보였다. <망새의 눈물>이라는 이번 전시 타이틀 역시 그에 기반한 것이다. ‘망새’는 전통 건축 양식의 용마루 끝쪽 장식을 일컫는 명칭으로, 악한 기운을 쫓고 재난을 방지한다고 여겨진다. ‘망새의 눈물’은 ‘망새’로 상징되는 양국 고유의 전통과 아름다움이 서구문물과 현대문화의 영향으로 인해 점차 자리를 잃어감을 아쉬워하면서도 새로운 변화를 기쁘게 맞이하는 양가적 감정을 함축적으로 담은 것이라는 설명이다.

쑨쉰은 1980년대생을 뜻하는 ‘바링허우’ 세대로 북한과 멀지 않은 광산 마을 푸신에서 태어났다. 문화혁명 당시 부르주아로 몰려 고초를 겪은 조부모, 작가가 되겠다고 했을 때 찬성하며 “정치는 멀리 하라”고 당부했던 부모 아래서 역사의 간극을 간접적이지만 강렬하게 체험하며 자랐다. “나는 두 가지 버전의 역사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다. 학교에서 들은 것과 방과 후에 아버지에게서 들었던 이야기가 달랐다.” 그의 작품에서 아이러니는 기저에 깔려 있는 주제다. 그는 문화혁명 시대를 살았던 것은 아니지만 그때 일어난 일의 결과에 영향을 받았고, 사회주의 체제가 남아 있는 상태에서 중국에 도입되기 시작한 시장경제 체제와의 간극을 경험했다. 또한 그는 먹물, 목판화 등 중국의 전통적인 기법으로 만든 작품으로 현대미술 신에서 활동한다. 작가는 이렇듯 자신의 삶에 난무하는 아이러니와 간극을 예술을 통해 좁히고 웃어넘기고 뛰어넘는다.

갤러리에서 ‘Interesting Hunters All Perform Magic’을 작업 중인 쑨쉰.

먹물 그림과 목판화, 수작업 애니메이션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쑨쉰의 전방위적 작품 세계는 현재 그를 세계 미술계의 떠오르는 별로 만들어주었다. 유일무이한 스타일의 애니메이션 작품으로 각종 영화제의 러브콜을 받고 있고, 아트바젤에서 특별한 커미션 워크를 선보이는가 하면, 뉴욕 구겐하임 뮤지엄, 상하이 유즈 뮤지엄 등에서 전시에 참여했다. 지난 7월에는 한 달간 뉴욕 타임스 스퀘어 전광판에 수천 개 목판화로 제작한 3D 애니메이션 ‘타임 스파이’를 선보이기도 했다. 서울에서의 전시가 끝나자마자 런던에서의 전시를 위해 또 다른 여행을 떠나야 하는 전 지구적 아티스트. 사다리에서 잠시 내려온 그와 얘기를 나눴다. 지구를 상대하는 자답게 그의 영어 문법은 호기로웠다.

열흘 정도 시간을 내 벽화 ‘모든 사냥꾼은 마법을 부릴 수 있다’를 현장에서 제작하고 있다. 예정된 전시들로 바쁠 텐데 이 작업을 고집한 이유는?

보통 스튜디오에서 작업을 마치고 그 작품을 그대로 런던이나 서울, 파리의 갤러리에서 전시하는데 그게 굉장히 따분하게 느껴진다. 나는 전시를 할 때마다 그 나라에 가서 사회 문화적 배경을 공부한 후 그에 맞는 작품들을 선보인다. 그래야 그 전시가 그곳의 관객에게도 의미가 있고, 내게도 발전하는 기회로 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다음 전시에서는 또 전혀 새로운 것을 할 거다. 우리는 낡은 스타일에서 탈피하기 위해 쉼 없이 도전해야 한다. 스스로를 죽여서라도.(웃음) 그러고 나면 싸움에서 살아남은 불사조처럼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 아티스트에겐 그게 정말로 중요하다.

당신은 목판화와 먹물이라는 전통적인 미디엄으로 새로운 스타일의 작업을 보여준다. 이것은 의도된 것인가?

그렇다. 그 작품들은 오늘날 새로워 보인다. 하지만 아주 오랫동안 내려져온 전통적인 기법이다. 나는 전통적인 재료를 사용해 현대적인 작업을 완성하는 걸 좋아한다. 아무리 되고 싶다 해도 나는 서양의 아티스트가 될 수 없다. 어린 시절 그들이 그랬던 것처럼 주일마다 교회에 나가지 않았고 서양적인 무언가를 배운다고 해도 그건 표면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한국이나 일본은 아시아에서도 매우 서구적인 문화를 가진 나라라고 하는데 나는 그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여전히 한국, 일본, 중국 사람들은 전통문화를 꼭 쥐고 있다. 아티스트는 그걸 다음 단계로 발전시켜야 한다. 전통적인 시각예술 문화 속에서 값진 것을 발견해야 한다. 그 후에 서구의 문화를 배우고 믹스해서 발전시키는 거다.

‘Interesting Hunters All Perform Magic’, Painting on handmade bark wood paper, 297×710cm, 2017

‘Truth Refuser’, Acrylic on paper, gold dust, Silver powder, 205×275cm, 2016

지난 아트바젤 마이애미 비치 2016에서 오데마 피게의 커미션 작품으로 ‘세상의 재건축(Reconstruction of the Universe)’을 선보였다. 당신은 그 작품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판화인 목판화와 최신 기술인 3D를 접목했다. 당신이 말하는 ‘믹스’가 이런 아이디어를 말하는 건가?

시계 브랜드 오데마 피게에서 프랑스와 스위스 사이에 걸쳐 있는 쥐라산맥의 계곡 발레 드 주로 나를 초대했다. 숲속의 나무와 별만 있는 곳이었다. 쇼핑센터도 바도 없었기 때문에 오로지 별만 바라보고 생각을 해야 했다. 그들은 거기서 시계를 만들었는데 그 과정을 보면서 그저 주얼리일 뿐인 시계가 왜 그렇게 크레이지한 가격인지 알게 되었다. 그 철저하고 완벽주의적인 작업 과정을 지켜보면서 목판화와 3D를 믹스하는 좀 더 새롭고 놀라운 작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산을 초과해 전시와 필름 그리고 건축까지 아우르는 작품을 만들게 됐다. 매번 작업을 할 때마다 이와 같은 과정이 반복된다.

‘Eternal’, Pastel on canvas, 120×120×6cm, 2016

‘Xia (Mythical Fish Creature)’, Handmade Bark paper, gold powder, mineral powder, ink, gum arabis, 310×127cm, 2015

이번 전시에서 선보인 애니메이션 작품 ‘망새의 눈물’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모든 회화작품 속 등장 동물들이 하늘을 날고 풍랑을 헤치며 당신의 호방하고 유머러스한 예술 세계를 단번에 확인할 수 있게 한다. 쑨쉰만의 애니메이션을 만들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언제나 영화에 관심이 많았는데 학생이라 가난했다. 카메라를 살 수 없었고 판화과여서 대여도 안 됐다. 하지만 영화를 ‘그릴 수는’ 있었다. 그래서 그게 애니메이션인지도 모르고 영화를 만들었다. 내 애니메이션은 애니메이션처럼 보이지 않는다. 애니메이션은 대체로 행복한 이야기를 전하고 사람들을 웃게 만들지만 내 작품은 그렇지 않다. 삶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애니메이션은 내 작업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지만 나는 나 자신을 애니메이터가 아닌 컨템퍼러리 아티스트라는 더 상위의 카테고리에 포함시키고 싶다. 그게 더 자유로우니까.

그 작품에서는 최근 동북아뿐 아니라 전 세계를 전쟁의 위험으로 몰고가려는 김정은 북한 조선노동당 위원장이 등장한다. 다음 장면으로는 지하 1층 전시실에 있는 험악한 표정의 부처가 나온다.

최근의 뉴스들, 한국의 상황을 본다면 분명 부처가 화를 낼 거라고 생각했다.(웃음)

2005년에 중국의 역사에 대한 첫 애니메이션 작품 ‘Shock of Time’을 완성하고 다음 해 ‘π(파이)’라는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를 만들었다. 왜 파이인가?

영원함을 붙잡고 싶었기 때문이다. 원주율 파이는 3.14159265358979…로 숫자가 끝없이 이어지는데, 그게 바로 진리인 것 같다. 진리는 끝내 다다를 수는 없지만 방향성은 있다. 때문에 우리는 그저 더 가까이 다가가려 할 뿐이다. 마치 우리에게 눈에 보이지 않는 걸 믿으라는 것과 같다. 신을 믿는 일도 마찬가지다. 보이지 않는 걸 믿을 수 있다면 당신은 진리를 추구할 수 있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것만 믿는다면 진리는 멀어지고 삶은 끔찍해진다. 돈을 열망하는 현재의 중국 사람들이 그렇다. 눈에 보이지 않는, 저 세상 밖의 무언가를 생각해보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Dragon’, Handmade Bark paper, gold powder, mineral powder, ink, gum arabis, 310×127cm, 2015

당신은 음악을 들으면서 작업을 한다고 알고 있다. 페인팅은 자연의 비밀스러운 힘이 나라는 도구를 통해서 나타나는 것이고, 그때에 음악이 도움이 된다는 얘기를 했었다.

사실 아티스트는 너무 바빠서 책을 읽을 시간이 많이 없다. 그런데 우리는 계속 배워야 한다. 그럴 때 음악이 필요하다. 완전히 다른 언어로 사고하는 법을 익힐 수 있으니까. 정신, 영적인 것에 예술이 깃들어 있다고 생각한다. 나의 몸, 붓, 그리고 그 밖의 재료는 모두 그것의 도구일 뿐이다. 음악을 들으면서 작업을 할 때 그곳엔 신이 있다. 사실 난 신의 노예이고, 이 작품은 온전한 내 것이 아니다.(웃음) 내가 농담을 하는 거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사람들은 이처럼 보이지 않는 것을 믿을 수 있어야 한다. 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종교에서 말하는 신을 얘기하는 건가?

나는 불교를 철학으로서 좋아하고 알라 신과 그 종교에 대해서도 공부했으며 기독교에 대해서도 알고 있다. 하지만 내가 말하는 신은 그들이 말하는 신은 아니다. 인간 정신의 고차원적이고 신실한 부분에 대한 얘기이고 어떤 종교에서도 말하지 못한 신이란 존재에 대한 거다.

서울 전시가 끝나면 런던 전시가 예정되어 있다고 들었다. 어느 갤러리에서 하나?

음… 이름을 모른다. 사실 나는 그런 쪽에선 게으른 아티스트다. 큐레이터와 전시에 대해 얘기를 나눴는데 그의 의견이 흥미로웠다. 그리고 나를 도와주는 사람들이 좋은 갤러리라고 했고. 그거면 충분하다. 나는 갤러리 이름보다는 내 작품에 대해 생각할 시간을 갖는 게 더 중요하다. 아, 물론 런던이라는 도시는 전시를 준비하는 데 중요한 요소이다. 이번 전시에서 서울이 중요한 요소였던 것처럼. 런던은 매우 특별한 도시인데, 드높은 자부심 때문이다. 그래서 모두를 거절한다. “넌 여기 사람이 아니야. 넌 이방인이야.” 도시가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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