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쉬 카푸어의 ‘반대’라는 말

국제갤러리에서 아니쉬 카푸어(Anish Kapoor)의 개인전 가 개막한 지난 8월 31일. 현대미술의 거장과 마주앉아 단 35분, 녹차 한잔을 마실 수 있었다. 급박한 인터뷰와 인터뷰 사이, 뜻밖의 차분하고 사색적인 대화의 시간이었다.

‘Gathering Clouds’ 앞에 선 아니쉬 카푸어

명리학에 입문하면 가장 먼저 음양에 대해 배운다. 비과학적이라고 비판 받는 이 학문에 관심을 갖게 된 이후로는 계절의 변화, 성격, 인간관계, 하물며 음식의 매칭까지 모든 게 음양으로 설명이 되었다. 아니쉬 카푸어를 현대미술의 거장, 가장 유명하고 논쟁적인 조각가로 자리매김하게 해준 작품들 또한 공허와 무한함, 이 음양의 극단에 있는 상태를 동시에 표현한다고 갈음하고 싶을 정도다. 뭐라도 가득 차 있는 듯 조각 내부의 빈 공간을 유심히 응시하게 한 ‘Void’ 연작이 그렇고, 물이 거칠게 소용돌이치는 ‘Descension’을 베르사유의 인공 호수에 설치해 그곳의 풍요로움을 무의미하게 만든 작품이 그렇다. 곧잘 관객에게 암흑의 심연을 선사했던 카푸어는 “텅 빈 어두운 공간이 아니라 어둠으로 가득 찬 공간”이라고 설명하기도 하고, 지난해 무대미술을 맡은 바그너의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두 주인공에 대해서는 이렇게 설명한다. “트리스탄은 남자다운 남자이고 이졸데는 위험한 여성이다. 두 사람 중 누가 더 힘이 셀까? 결국 이졸데가 이긴다.”

이번 기자간담회에서 예술에 대해서는 이런 식의 정의를 내리기도 했다. “조각은 ‘굉장히 물리적인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죠. 반면에 우리 몸은 물리적인 유기체만은 아닐뿐더러 영혼도 있고 정신도 있다고 여깁니다. 그런데 많은 오브제가 우리 몸처럼 정신적인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술은 이 오브제의 영적인 부분을 실현시키는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언뜻 보기에는 양이 더 주도적인 것 같지만 종국에는 음이 승리하는 아이러니. 결국 우리 삶은 대척점에 있는 생의 기운들이 유기적이고 유동적이며 순환적으로 연결돼 있다는 삶의 진리를 아니쉬 카푸어는 거울처럼 반사되는 스테인리스스틸이나 섬세한 분말 안료로 뒤덮인 조각으로 보여주곤 했다.

이번에 선보이는 작품 역시 그 연장선상에서 물질을 초월하고자 하는 물질일 것이라 기대하며 전시장을 찾은 날, 어두운 하늘에서는 비가 내렸다.그런데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극도로 매끄러운 표면의 스테인리스 덩어리에서 반사된 빛이 유리창처럼 떨어진다. 눈이 시려서 작품의 표면에 납작하게 짜부라져 비치는 내 모습을 정면으로 바라볼 수가 없다. 국제갤러리에서 세 번째 갖는 이번 전시에서 아니쉬 카푸어가 선보이는 두 연작 중 ‘비정형(Non-Object)’은 그가 수 년에 걸쳐 탐구하고 있는 주제 가운데 하나다. 단단한 스테인리스 강철 덩어리를 불특정한 각도로 휘어지게 한 신작 ‘트위스트’는 공격적이라 느껴질 만큼 강렬했다. 2.5m에 달하는 작품 석 점이 사이를 두고 서 있는 전시장에 들어갈 때는 신성한 강철 숲에 온 것 같았고, 60cm 높이의 작품 12점이 선반 위에 놓여 도열된 시리즈는 새벽빛에 노출된 드라큘라처럼 눈가리개를 하며 힐끔거리게 만들었다.

단순한 것을 바라보는 시각의 변화를 이끌어내고 싶습니다. 단순한 형태를 띨 때 더욱 깊은 의미가 담긴다고 생각합니다.

‘Non-Object(Oval Twist, Door, Square Twist)’, Stainless Steel, 250x128x150cm, 281.3×118.1×118.1cm, 250x144x100cm, 2008

기자간담회에서 카푸어는 몇 년간 특별히 ‘비정형’ 시리즈를 탐구해왔다며 이렇게 설명했다. “이 작업은 단순히 형태를 바꾸는 것의 문제가 아닙니다. 기하학적으로 물성에 트위스트를 주면(각도를 꺾게 되면) 어떤 식의 오목한 표면이 만들어질까? 또는 어떤 변화를 형태에 이끌어내게 될까를 연구하는 시기였다고 봐도 무방할 것입니다.” 그는 오목한 표면과 트위스트가 어우러져서 관객들이 좀 더 다각적인 차원을 느낄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제가 작품 구현에 있어서 중요하게 여기는 점은 많은 얘기를 담아내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단순한 제스처만 있더라도 그 제스처 스스로 다층적인 의미를 구현해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이렇게 하는 이유는 단순한 것을 바라보는 시각의 변화를 이끌어내고 싶기 때문입니다. 단순한 형태를 띨 때 더욱 깊은 의미가 담긴다고 생각합니다.” 카푸어는 ‘비정형’ 시리즈를 ‘불확실한 오브제’라고 생각한다면서 이런 작품의 경우 공간에 상관없이 오브제 자체만으로 새로운 공간을 창출해낸다고 말했다. 첫 질문은 그 ‘공간’에 대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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