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더 김, 도시의 핑크 버니

‘핑크 버니’ 일러스트레이션으로 유명한 한국계 미국인 아티스트 에스더 김과의 인터뷰.

(왼쪽) 내 평소 스타일을 잘 보여주는 컷. 헤어 & 메이크업 아티스트인 사치코 오모리가 촬영해줬다.
(오른쪽) 빈티지 베르사체 톱과 빈티지 샤넬 선글라스 그리고 헤어 클립을 착용한 나.

올 초, <러블리 론니 Lovely Lonely>란 이름의 전시로 한국을 찾기도 한 에스더 김(Esther Kim)은 핑크 컬러의 버니(Bunny) 일러스트레이션으로 마니아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엘에이(LA)에서 태어나, 도쿄(Tokyo)에서 십대 시절을 보낸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경험한 여러 문화는 에스더 김을 아티스트이자 한 사람의 인간으로써 단단하게 성장케 했다. 일러스트레이션과 디자인, 캐릭터 라이센싱 등의 작업을 활발하게 펼치며, 자신의 독특한 세계를 선보이고 있는 에스더 김이 <하퍼스 바자 코리아>에게 아티스트로 걸어온 지난 시간에 대해 털어놓았다.

 

당신을 상징하는 일러스트레이션은 ‘핑크 버니’다. 어떻게 처음 이런 스타일을 갖게 됐나.

아마도 내가 성장기를 보낸 곳이 도쿄였기 때문에 영향 받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태생적으로 귀여운 곰이나 토끼를 소녀와 함께 그리는 일이 내 감정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이자, 일러스트레이터로써 성장하는 것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된다는 걸 알게 된 것 같다. 나는 한국인 부모 밑에서 엘에이 그리고 도쿄에서 성장했다. 이민자의 2세로 자란 나와 같은 교포는 그 어느 나라에도 속하지 않는다는 외로움이 있다. 아이덴티티로부터 출발한 외로움, 그게 에스더 버니의 ‘감정적 코어(Core)’ 같다. 가장 멋진 일은 에스더 버니를 통해서 다양한 문화에 대해 말할 수 있다는 점이다. 토끼는 귀엽고 ‘폭실폭실’하지만,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잘 느낀다. 즐거워 보이나 강하고, 멜랑콜리한 측면도 있고. 나와 여러 가지 면에서 닮았다고 할 수 있다.

 

(왼쪽) 타카가지마샤(Takarajimasha)와 유카 미즈하라(Yuka Mizuhara)와 함께 작업한 에스더 버니.
(오른쪽) 브랜드 메리(Mery)와 유카 미즈하라와 컬래버레이션 했다.

한국인으로서 미국과 일본에서 성장한 일이 당신에게 어떤 영향을 줬나.

여러 문화를 경험하고 산 사람의 무게를 이해하기란 정말 어려울 거다. 집에서는 부모와 세대 그리고 문화적인 격차를 느껴야 하고, 그러면서 동시에 낯선 땅에 발 딛고 서 있는 그들을 도와야 한다. 이민자로 성공한 인생도 존재하겠지만, 사실 어마어마한 희생이 필요한 것 또한 사실이다. 90년대에 도쿄에서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사는 건 굉장히 이상한 기분이었다. 물론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경험한 일이 예술가의 길로 나를 이끌었다고 믿지만, 동시에 내가 이토록 많은 걸 몰랐더라면 내 마음이 얼마나 평화로울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본다. 서울에 한국인 크리에이티브 친구들이 몇 사람 있는데, 독특한 한국의 ‘홈 라이프’에 대해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한국인들은 삶에 있어 서로가 무엇을 견디고 사는지에 서로 얘기하는 것에 거리가 없다.

 

어릴 때 당신은 어떤 학생이었나.

미국에서 초등학교에 다닐 땐 아트 선생님이 자주 내 그림을 골라 벽에 붙여 뒀다. 특별한 기술이 있었던 게 아니어서, 내 작품이 왜 꼽혔는지 이해를 못했다. ‘다른 친구들이 그림을 정말로 못 그리나 보다’고 여겼다. 초등학교 6학년이 되면서 도쿄로 이사를 했고, 그때 주위 친구들은 실력이 뛰어나 잠시 드로잉에 흥미를 잃었다. 거의 대학 졸업반이 되어서야 다시 그림을 그리겠다고 결심했다. ‘제로’에서 시작했다고 보면 된다. 그때 당시 내 그림은 정말 끔찍했다. 하지만 꾸준히 뭔가를 계속 그린다면 어떤 일이 생길지는 알고 있었다. 나는 자주 어떻게 단단한 바위가 모래가 되는지 생각했다. 바위가 파도에 끊임없이 쓸리면서 고운 모래로 변화하는 것처럼 계속 그림을 열심히 그린다면 어떤 결과를 얻게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왼쪽) 더블유씨(WC)를 위한 에스더 버니 x 핑크 팬더(Pink Panther).
(오른쪽) 에스더 버니 x 구스 해그 올가 캔들(Goose Hag Olga Candle).

입큰(IPKN)과의 첫 번째 컬래버레이션.

핑크’는 많은 것을 암시하는 색깔이다. 결과적으로 핑크로 표현하고 싶은 얘기가 뭔가.

언제나 ‘키치’하고 여성스러운 걸 그려왔다. 나는 핑크 컬러의 부드러운 힘을 좋아한다. 내가 핑크색 옷을 입었을 때,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을 좋아한다. 그들이 나를 과소 평가하게 두고, 나는 귀여운 것들을 좋아하는 약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실제의 나는 아티스트이지만, 동시에 사업가이기도 하다. 게다가 ‘I’m pink and blue for you’란 이름의 아트 쇼를 한적이 있는데, 미국과 한국 그리고 일본의 국기에 사용된 레드와 화이트 컬러, 그리고 블루를 섞어 나만의 콤비네이션을 만든 셈이다.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강해지고 싶고,  핑크 컬러는 그런 내 모습을 약해 보이게 해준다.

 

그림 외에 좋아하는 건 뭐가 있나.

패션을 정말 사랑한다. 그리고 그건 내 예술관에 상당 부분 영향을 주는 것 같다. 나의 에스더 버니는 도시에서 살면서 시크하고 귀여운 걸 좋아하는 캐릭터다. 내가 좋아하는 건 빈티지 쿠레주(Vintage Courreges)인데, 지금은 90년대의 샤넬 그리고 베르사체에 꽂혀 있다. 90년대 슈퍼모델 시대를 사랑하거든! 액세서리나, 웃긴 스웨터, 카디건을 사는데, 구멍이 나 있거나 버튼이 떼 진 것들을 사곤 한다. 이런 빈티지들은 터무니없게 가격이 비싸지 않아서, 거의 부담 없이 매일 입을 수 있다. 메이크업도 좋아해서 엄청나게 두꺼운 아이라인을 그리고 다닌다.

 

(왼쪽) 더블유씨의 슬리퍼.
(오른쪽) 더블유씨의 배지.

가장 기쁠 때 그리고 슬플 때 찾는 공간은 어디인가.

‘업 다운’이 심한 사람이라서 자주 우울한 기분을 느끼고, 큰 충격이나 실망도 쉽게 느낀다. 걱정도 많이 하지만, 굉장히 생산적이다(웃음). 딱 하나의 장소만 말하기는 어렵고, 그저 매 주말 비치에서 누워 있었으면 하는 소망은 있다. 스튜디오를 떠날 수 없단 게 현실이긴 하지만. 최근엔 자전거를 타고 점심을 픽업하는데, 도시 생활자의 리듬을 느끼기에 좋고 꼭 지금 내가 도쿄나 서울에 있는 듯한 기분도 들게 해준다.

 

아티스트가 되지 않았더라면 어떤 있을 했을까.

어릴 땐 매거진 에디터나 스타일리스트가 되고 싶었다. 혹은 카운셀러나 교수! 지금은 크리에이티브한 사업가가 내 삶과 타인의 삶에 동시에 영향 줄 수 있는 최고의 길 같다.

 

앞으로의 계획은.

정말 어마어마하게 많다! 일단 2018년이 끝나기 전까지 건강하게 지내기. 그동안 수년간 공간을 쉐어해왔는데,  마침내 내 스튜디오를 갖게 됐다. 그 공간을 예쁘게 꾸미고 싶고, ‘수퍼 판타스틱 에스더 버니 스튜디오’를 만들어 귀여운 것들을 잔뜩 만들어 내 웹사이트(www.estherlovesyou.net)에서 팔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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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에디터
프리랜서 에디터 김 나래
사진 에스더 김
5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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