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크리에이터들에게 영감을 준 #아트자극 1

그녀들에겐 언제나 새로운 관점, 가벼운 호기심에서 집요한 탐구로의 도화선이 될 만한 자극이 필요하다. 패션 디자이너, 배우, 갤러리스트 등 탁월한 여성 크리에이터들이 창조력의 자양분이 되어준 작품이 있는 공간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헤어 & 메이크업/ Misuzu Miyake

Sarah Morris
세라 모리스 │ 아티스트

작가의 스튜디오에서 필리프 파레노(Philippe Parreno)의 ‘No More Reality’(1991)와 함께

‘No More Reality’는 나의 멋진 친구인 사진작가 필리프 파레노가 준 선물이다. 이 사진작품은 프랑스 니스에서 아이들이 플래카드를 손에 들고 시위하는 모습을 찍은 것인데, 그 안에는 영구적으로 움직이는 듯한 힘이 담겨 있다. 스튜디오에 걸어둔 이 작품을 볼 때마다 필리프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는 아이 같은 마음을 가진 낙관주의자로, 언제나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믿는 사람이다. 우리는 종종 어린아이들이 늘 권위에 저항하듯 우리 아티스트들도 현실에 끊임없이 항거하는 존재라는 점에서 아이와 똑같다는 농담 아닌 농담을 하곤 한다. 아티스트란 존재들은 언제나 이 세상을 바꾸거나, 아니면 최소한 우리 스스로에 대한 새로운 생각을 일깨우려고 하는 사람들 아닌가. 그것은 모든 아티스트들이 겪고 있는 투쟁이지만, 동시에 우리 스스로가 선택한 길이기도 하다.

헤어 & 메이크업/ Laura Tucker

Clemence Poesy
클레망스 포에지 │ 영화배우

테이트 모던에서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Caroline’(1965)과 함께

이 작품은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연인이자 뮤즈였던 캐롤린의 자화상이다. 스탠리 투치 감독이 각본과 감독을 맡은 영화 <파이널 포트레이트(Final Portrait)>에서 내가 연기한 캐릭터이기도 했다. 그녀는 언제나 빨간 립스틱을 바르는 불 같은 성격을 지닌 신비로운 매력의 창녀였으며, 자코메티의 인생에서 마치 폭발하는 색깔처럼 존재한 여자였다. 아마도 그래서 캐롤린은 자코메티를 ‘Ma Grisaille’, 즉 ‘회색빛 내 남자’라고 불렀으리라. 내가 이 대본을 정말 마음에 들어 했던 건(물론 자코메티를 아주 아름답게 연기한 제프리 러시와의 호흡도 좋았지만) 오래전부터 자코메티의 작품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그는 인간의 정수를 표현해내는 데 온 인생을 바친 사람이다. 그의 조각작품이나 자화상의 눈 주변에 그려진 끝없는 원들을 보면 그가 작품의 영혼에 도달하려 애쓴 흔적이 느껴진다. 다른 어떤 아티스트도 자코메티와 같은 방식으로 내 마음을 움직이지는 못했다.

Yana Peel
야나 필 │ 서펜타인 갤러리 CEO

서펜타인 갤러리에서 헬렌 마르텐(Helen Marten)의 ‘Untitled’(2016)와 함께

이 작품은 내가 서펜타인 갤러리의 CEO를 맡은 첫 해인 2016년, 헬렌 마르텐이 서펜타인에서 선보인 개인전 <드렁크 브라운 하우스>의 일부분이다. 그 전시를 마치고 2주 뒤, 그녀는 터너 상을 수상했다. 당시 그녀는 이런 말을 했는데 나는 그 말이 너무 좋았다. “우리는 이 세상 어디에나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 팔, 찻주전자 혹은 알파벳 – 소재로 쓸 수 있으며, 동시에 그것을 원래 의도되어진 목적으로부터 해방시켜줄 수도 있다.” 여기 이 작품은 빵과 소시지처럼 보이는 물체로부터 모티프를 얻어 만든 것인데, 마치 소비가 거부된 세상에서만 존재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또한 이는 마르텐이 즐겨 사용하는 언어적 애매모호함의 정수를 보여준다. 그녀의 작품은 단순한 일러스트가 아니라 뛰어난 상상력을 담고 있으며, 어떻게 예술이 우리 스스로는 갈 수 없는 영역으로 우리를 인도하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시이다.

스타일리스트/ 안정희 헤어/ 김민선(ALUU) 메이크업/김수진(ALUU) 의상/ 트렌치코트와 와이드 팬츠는 모두 Burberry 제품.

SHIM EUN KYUNG
심은경 │ 배우

인천공항 제2터미널에서 자비에 베이앙의 ‘Great Mobiles’(2018)와 함께

공항은 떠남과 도착을 위해 경유하는 곳이다. 둘 중 어느 경우라 하더라도 내게 공항은 새로운 시작의 설렘이 깃들어 있는 공간으로 다가온다. 연기에 대한 고민으로 가득할 때 아무런 이유 없이 공항을 찾는 게 습관이 되었다. 리무진 버스를 타고 공항에 와서 천천히 걷고 또 걷는다. 그럴 때 만나는 공항의 건축적 디테일, 천장에서 내리비치는 햇살, 낯선 사람들, 조형물 등은 고여 있는 물웅덩이 같은 머릿속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며 새로운 생각을 떠올리게 해준다. 자비에 베이앙의 거대한 모빌 작품은 마치 기차 밖 풍경처럼 알맞게 느린 속도로 움직이면서 생각의 흐름을 이끌어주는 가장 대표적인 설치물이다. 영화 속 슬로 모션처럼 인상적인 잔상을 남기면서 말이다.

CHUNG HWA KYUNG
정화경 │ 신세계 BTS 컬렉션 담당 상무

청담 분더샵에서 브렌트 웨든(Brent Wadden)의 ‘Untitled’(2017)와 함께

일 년을 주기로 청담 분더샵에서는 설치된 작품을 교체하는데 우연찮게 내가 요즘 관심을 갖고 있는 캐나다 작가 브렌트 웨든의 작품을 만나게 되었다. 처음에는 직조로 만들어진 태피스트리 작품인지 모르고 대담한 기하학적 패턴의 추상회화인 줄 알고 관심을 가졌다. 그런데 자세히 보고 또 공부를 해보니 작가가 직접 아날로그 베틀 기계에 앉아 짠 작품이었다. 1980년대생의 남자 작가가 위빙으로 작품을 만든다는 것, 포크 아트가 21세기의 상징적인 사치제인 현대미술품이 된다는 것의 대비가 매우 신선하게 다가왔다. 또한 패션이 패브릭에서 시작되기에 다채로운 패션을 소개하는 이곳에 브렌트 웨든의 태피스트리 작품이 걸려 있는 게 아주 자연스러운 맥락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린 컬러의 긍정적인 에너지를 발산하는 이 작품은 여기에 존재함으로써 패션 인더스트리가 잃어가는 장인정신의 가치를 일깨워주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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