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기치못한 아트 파크의 아트

인적이 드문 아트 파크를 홀로 걷다가 마주친 아트 작품들은 예술이 아니라 예술이 놓인 환경을 바라보게 만든다. 숲속에 자리 잡고 있는 바위나 이끼로 뒤덮인 나무 사이에서 예기치 않게 마주친 것들에 대하여.

헨릭 플렌게 야콥슨(Henrik Plenge Jakobsen)은 양을 핑크색으로 염색시키고 초원에 방목한 후, ‘If the People Have No Bread, Let Them Eat Cake’라는 제목을 붙였다.

2002년, 아티스트 제니 홀저(Jenny Holzer)는 스웨덴 남부의 대자연을 품은 바노스 콘스트(Wanås Konst)로부터 작품을 제작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바노스 콘스트의 뒤편에는 16세기 양식의 박공이 있는 로맨틱한 성이 자리 잡고 있다. 이틀 동안 그는 주변을 서성댔다. 큰 너도밤나무 사이에 마리나 아브라모비치(Marina Abramovic)나 로버트 윌슨(Robert Wilson), 마야 린(Maya Lin) 같은 아티스트들의 컨템퍼러리 조각품들(사슴 뿔로 뒤덮인 기념비적인 스틸 체어와 작은 우드 하우스 등)이 설치되어 있었다. 그는 때로는 젖소 무리만 멍하니 바라보곤 했다.

(이 예술 재단은 농장과 부지를 같이 공유하고 운영한다.) 그러다 깊은 숲속에서 홀저는 ‘빛과 어둠의 동화’라는 영감을 떠올렸다. 그러곤 1700년대에 만들어진 허리 높이의 돌벽으로 달려갔다. “돌벽을 보면서 이곳이 바로 나의 작품이 안착할 곳이란 걸 확신했다.” 홀저가 말한다. 그의 재능이 새겨진 이 벽은 현재 ‘바노스 월(Wanås Wall)’로 불린다. 그는 자신의 발자취가 담겨 있는 작품들로부터 따 온 각기 다른 문구들을 20피트(약 60m) 간격으로 돌에 새겼다. 그가 그 문구 중 하나를 읽는다.

“모든 것들은 섬세하게 서로 연결되어 있다(all things are delicately interconnected).”

바노스 콘스트는 8세대를 이어오며 동안 외진 바노스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귀족 가문과 결혼한 예술을 사랑하는 변호사 마리카 바크트메이스터(Marika Wachtmeister)에 의해 1987년에 설립되었다. 이탈리아 북부 알프스 협곡에 있는 아르테 셀라(Arte Sella)나 프랑스 남부의 레퓌지 다르(Refuge d’Art)와 같이 공원의 역할을 총체적으로 재정립한 곳이다. 1960년에 설립된 뉴욕의 스톰 킹 아트센터(Storm King Art Center)나 1977년에 개장한 영국의 요크셔 조각공원(Yorkshire Sculpture Park)이 작품의 규모와 관계없이 공원에 예술품을 들인 1세대 개척자라고 한다면,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에 걸쳐 탄생한 아르테 셀라나 레퓌지 다르는 공간의 풍경이나 역사에서 영감을 얻어 장소특정적인 작품을 전시하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작품이 자리 잡은 곳의 환경을 강조했고, 지나치게 잘 정돈된 잔디밭은 지양하였다. 2세대 공원들은 자연스러운 환경을 선호한다. 때로는 너무 자연스러워서 그 공간에 있는 작품들이 잘 알려지지 않거나 아예 발견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길 정도로 말이다. 화이트 큐브가 아닌 예상하지 못했던 곳에서 작품과 만난 관객들은 마치 비밀을 파헤쳐나가는 모험을 즐기는 기분에 사로잡히게 된다.

스튜어트 이안 프로스트(Stuart Ian Frost)의 ‘Skin Deep’은 불에 탄 체리나무로 만들어졌다.

야콥 달그렌(Jacob Dahlgren)은 페인팅된 스틸 블록을 서로 연결하여 만든 작품 ‘Primary Structure’를 바노스 콘스트에 설치했다.

모든 예술 기관은 자리를 잡기까지 상당한 시간을 필요로 한다. 작품 컬렉션을 구성해야 하며, 그곳의 미학적 특징을 스스로 정립해야 한다. 바노스 콘스트와 아르테 셀라, 레퓌지 다르는 예술의 개념뿐만 아니라 공간의 중요성 또한 인지했다. 그들은 사물과 공간, 그리고 인위적인 요소와 자연적인 요소를 조화시켰다. 그들은 완전한 자연 환경 속에서 완전한 컬렉션을 완성했다.

대부분의 아트 파크는 외진 곳에 있으며, 이는 아트 월드에서 요즘 강조되고 있는 접근의 편의성에 어긋나기 때문에 논란의 여지가 생기기도 한다. 도시 중심지에서 벗어난 곳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입장료 또한 저렴하다. 일반적인 뮤지엄에서 환영받지 못하거나 화이트 큐브에서 전시하기 어려운 조각품들을 전시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오히려 예술을 대중화시키려는 시도를 하지 않으며, 관객에게 작품을 새로운 관점에서 볼 수 있는 무대를 제공한다. 바노스는 시리아 같은 곳으로부터 온 망명자들이 도피하기 위해 찾는 스웨덴 중부의 시골 지역에 있는 가난한 마을이다. 지난해에는 7만5천 명이 바노스 콘스트를 방문했다. 그중 절반 정도는 뮤지엄을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사람들이 아닌 숲을 찾은 사람들이었다. 결국 이곳은 중립적인 공간이다. 제법 넓은 공원 안에서 잔디밭부터 들판, 숲까지 약 70개 정도의 지형적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지저귀는 새들부터 이끼로 뒤덮인 통나무까지 다양한 자연 환경을 경험할 수 있다. 아티스트 또한 다른 방문객처럼 자연 속을 서성이며 이곳을 관찰한다. 스웨덴의 외진 곳에 자리한 이 부지는 정돈되지 않은 자연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나는 이곳이 부유한 사람의 정원 같은 느낌을 주지 않아서 좋다. 설령 누군가의 소유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컨템퍼러리 아트 큐레이터 다이애나 캠벨 베탄코트(Diana Campbell Betancourt)의 말이다.

마틴 퓨리어(Martin Puryear)의 작품 ‘Meditation in a Beech Wood’는 바노스 콘스트에 전시되어 있다.

바노스 콘스트에 전시된 말린 홀름버그(Malin Holmberg)의 ‘I Will Stop Loving You’는 마야 문명으로부터 영감을 얻었다.

이곳은 자연을 그리워하는 도시 거주자의 피난처이기도 하다. 단순히 아트 작품을 자연 속에서 전시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자연으로 유혹하는 역할을 한다. 기존 갤러리의 틀을 부수고 자연 재료를 활용하여 작업을 했던 월터 드 마리아(Walter De Maria)나 로버트 스미스슨(Robert Smithson) 같은 아티스트들이 개척했던 미국의 대지예술 무브먼트(land-art movement)를 차용했다. 그러나 대지예술은 명백하게 견디기 어려운 환경에 직면한 인간의 나약함을 예술적으로 표현하여 본질적으로 반제도적인 성격을 띠는 반면, 아트 파크는 문 밖의 환경을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방문객의 마음을 끌어들인다. 이에 대해 비평가들은 아트 파크를 ‘뮤지엄의 시뮬라크르(Simulacra)’라고 일컫기도 한다. 이 두 무브먼트는 서로 다른 성격을 지녔지만, 본질적으로 환경을 활용한다는 점은 동일하다. 오랜 기간 동안 대지예술을 지지했던 뉴욕 디아 예술재단(Dia Art Foundation)의 디렉터 제시카 모건(Jessica Morgan)은 바노스 콘스트 같은 공원의 대중화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점점 디지털화되는 도시에서 피해 있기 위해 필요한 곳이다. 현대 시대에 우리가 접하고 있는 틀에 박힌 아트에 대한 해독제로서의 경험이 될 수 있다.”

야외에서 홀로 아트를 경험하다 보면 모든 것이 나를 위해 준비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물론 전시 관람에 어느 정도의 체력이 뒷받침 되어야 하지만 말이다. 레퓌지 다르가 있는 오트프로방스(Haute-Provence)의 외진 산악 지형에 전시된 앤디 골드워시(Andy Goldworthy)의 설치작품을 전부 보기 위해서는 100마일(약 160킬로미터)에 이르는 고대 길을 따라 걸어야 한다.(작품명은 지명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했다.) 영국의 조각가인 앤디 골드워시는 대지예술의 거장이다. 현재는 영국에서 1999년에 가상디 뮤지엄(Musée Gassendi) 부근에서 설치되어 있는 조각품에 세월이란 시간을 더하는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 그의 설치작품 중 지지대 없이 서 있는 달걀 모양의 돌은 마치 고대의 매장터를 떠올리게 한다. 버려진 옛 주거지역의 벽에서 채취한 작은 돌멩이들을 쌓아서 아치 형태의 조각품을 설치하기도 했다. 옛 농장에 있던 주거지 내부의 적색 점토로 만들어진 벽에는 뱀을 형상화한 양각을 새겨 넣었다. 그는 작품의 의도에 대해 이와 같이 설명한다. “그 장소를 덮고 있는 허물에 직접적으로 다가가고 싶었다. 그리고 관람객이 그것을 볼 수 있길 바랐다.” 이러한 작품들을 감상하는 데 투자한 시간과 노력은 관람객에게 아트뿐 아니라 환경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한다.(이 세 구조물은 그곳에 머무르는 투숙객이라면 늦은 새벽 시간대에도 볼 수 있다). 작품을 보는 이들은 경이로움을 주는 대상이 예술인지, 아니면 장소인지 확신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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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Gisela Williams
번역 채 원식
사진 Federico Ciamei
출처
48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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