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민의 스코어

제17회 에르메스 재단 미술상 최종 수상자로 오민 작가가 선정되었다. 뉴욕 레지던시에서 머물고 있는 작가에게 축하의 인사를 건네며 인터뷰를 요청했다. 예술에 대한 성찰이 응축된 단단한 문장들이 돌아왔다.

오민 - 하퍼스 바자

오민 작가

많이 받은 질문일 것이다. 피아노 전공에서 디자인으로 진로를 바꾸게 된 계기는?

피아니스트를 양성하는 교육은 아주 어린 나이부터 시작된다. 음악 연주는 신체를 정교하게 통제하는 작업인 만큼, 스포츠 선수 양성 과정과 유사하게 성장이 완전히 끝나기 전부터 몸과 마음의 근육을 단련해야 좋은 기량을 획득하는 데 유리하다. 따라서 대개 자아가 형성되기도 이전에 이미 연주자가 되겠다는 결단을 내리고 그 순간부터 옆을 돌아보지 않는 질주가 시작된다. 적어도 한국에서의 교육은 그렇다. 대학에 입학한 후, 이 질주를 계속할 것인가에 대해 깊은 고민을 시작한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적지 않은 동료들과 진로에 관한 실제적인 고민을 했는데, 우리는 입학과 함께 ‘피아니스트 외에 피아노 전공자가 택할 수 있는 100가지 직업’ 같은 제목을 가진 책이 있다는 소문에 대해 얘기하기 시작했다.(실제로 그런 책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교육, 경영, 의료, 법, 종교 등 꽤 많은 친구들이 그동안 생각도 해보지 못한 쪽으로 방향을 틀었고, 그들에 비하면 나는 그나마 연주와 연관이 있는 분야에 남았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렇게 일찍부터 단련한 손가락 근육들은 현재 약해져 있지만, 당시 함께 단련한 뇌 근육은 지금껏 감각을 잃지 않고 작업하는 동안 그때와 동일한 방식으로 작동 중이다. 음악을 전공했다고 하면서 멜로디나 리듬, 음악적 심상에 관한 얘기보다 근육과 진동, 해머와 타격, 소나타 형식과 배음(Overtone)에 대한 얘기를 꺼낼 때 어렵거나 지루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다. 음악과 연관해서 흔히 기대하는 단어들이 아닐 뿐 그것들은 어쩌면 노래방 애창곡보다도 더 우리의 삶과 밀접한 관련을 맺는 것들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일상 속 규칙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나? 그리고 이를 작품으로 표현하는 것은 스스로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가?

연주를 준비하는 동안 나는 늘 완벽한 연주의 이미지를 머릿속에 만들어놓곤 했다. 그러나 그것이 무대에서 완벽히 실현되는 경우는 없었다. 완벽에 도달할 수 없는 것을 알면서도 마치 도달할 수 있다는 듯이 연습하고 또 연습하는 과정에서 강인함과 나약함을 동시에 느끼게 되는데, 나는 그 순간이 매우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도달할 수 없는 곳을 향해 달리게 하는 동력이 무엇인지 늘 궁금했고, 그 근원을 찾던 중 ‘불안’의 감각과 마주하게 되었다. 불안은 모든 생명에 본능적으로 내재되어 완전히 떨쳐내는 것은 불가능해 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안감을 조절하기 위해 인간들은 예측하고, 계획하고, 정리하고, 훈련하는 기술을 발달시켜왔다고 생각한다. 나는 작업 속에서 이 기술을 둘러싼 인간의 행동을 주시해왔고, 움직임의 동력으로서의 ‘불안’에 주목하고 있다. 불안감을 조절하기 위한 노력들을 관찰하고 재구성하고 재현해볼수록 불안에서 벗어날 수는 없는 현실에 더 가까이 직면하게 되고, 나는 그만큼 더 바쁘고 빠르게 움직인다.

어렸을 때부터 피아노와 함께 지내왔을 것으로 상상된다. 내가 하는 연주와 남이 들려주는 연주 중에 어떤 것을 더 좋아하는가?

피아노를 전공하는 동안에는 꼭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 되도록 음악을 듣지 않으려고 했다. 무심코 흘러나오는 연주라도 일단 듣기 시작하면 신기하게도 그 순간 ‘들을 필요가 있는 음악’으로 변신했는데, 그렇게 되면 편안하게 음악을 즐기기 어려웠다. 음악을 신나게 듣기 시작한 것은 피아노를 그만두고 난 직후부터였다. 더 이상 음악이 나에게 꼭 필요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 뒤로 나는 내가 듣고 싶은 한 음악을 하루 종일, 혹은 일주일 동안 계속 반복해서 듣기도 했는데, 그렇게 집요하게 들었던 음악이 이제 나에게 꼭 필요한 음악이 되었다. 지금 내가 듣고 싶은 음악은 ‘꼭 들을 필요가 있는 음악’들이다. 이런 음악들은 다른 연주자가 연주한 소리를 하루, 혹은 일주일, 혹은 한 달 내내 들은 뒤, 내가 다시 연주하는데, 이 연주는 작곡가가 생각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일 수 있고 심지어 더 이상 음악이 아닐 수도 있다.

오민 - 하퍼스 바자

‘Marina, Lukas and Myself’, 2014, 24분 20초, 3 채널 HD(1080p) 비디오, 6 채널 오디오, 마리나 콜로미나(Marina Colomina), 루카스 위스만(Lukas Huisman)과의 협업제작지원: Dommering Foundation,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Korea, Samsung Foundationphoto by MMCA

오민 - 하퍼스 바자

‘Sonatas’, 2016, 7분 9초, 3 채널 HD (1080p) 비디오, 6 채널 오디오, 홍초선(Sound Design)과의 협업photo by Arko Art Centre

소리와 음악이란 당신에게 어떤 존재일까?

나는 소리가 움직임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움직임은 공기를 진동시키고 그 진동의 수와 폭과 길이와 파형에 의해 소리가 만들어진다. 소리가 신체와 물체의 움직임의 결과라면, 음악은 시간과 방향의 움직임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시간과 방향의 움직임(음악)은 필시 계획을 수반하는데, 그 계획은 1초 단위로 짜인 악랄한 것일 수도 있고, 계획 같은 것은 세우지도 않겠다는 단호한 마음일 수도 있다.

당신의 작업은 회화, 조각 등에 국한된 순수미술의 범위를 벗어나 음악과 퍼포먼스, 오브제가 결합된 융합적인 형태다.

나는 나의 작업 속에서 성질이 다른 이질적인 것들을 하나로 융합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음악과 무용은 이미 오래전부터 연결되어 있었다. 음악 연주는 무용과 마찬가지로 신체를 움직여서 하는 것이고, 춤을 추는 몸은 필시 소리를 발생시킨다. 음악과 춤은 신체뿐 아니라 물체(악기 혹은 소품)를 사용하거나 리듬을 사용하기도 한다. 지그(Gigue, 주로 르네상스 바로크 시대에 쓰이던 빠른 박자의 춤곡)와 미뉴에트(Minuet, 3박자 계통의 느린 소셜 춤곡)는 춤의 형식이자 음악의 형식이다. 굿거리나 도드리는 음악 장단이면서 춤의 장단이다. 움직임은 이미지와 소리를 생성하고, 그 이미지와 소리를 기록하여 연결하면 영상이 된다. 미래는 알 수 없는 것이지만 무엇인가 새로운 분야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면 그것 역시 시간과 움직임과 이미지와 소리를 수반할 것이다.

협업을 통해 작품을 만드는 경우도 있다. 그 과정에서 얻는 깨달음은 무엇인지, 작품으로 나타나는 결과에선 어떤 점이 만족스러운지 궁금하다.

공연과 영상을 만드는 작업에서 완전히 단독으로 작업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만큼 다양한 분야의 지식과 기술, 상상력이 필요한데, 혼자서 그 많은 것을 공부하고 숙련하기는 힘들다. 단독으로 작업하느냐 협업으로 작업하느냐는 어쩌면 협업자를 바라보는 태도에 관한 문제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과 함께 일하는 것은 어렵지만 정말 흥미진진하다. 가진 지식에 비례하여 생산적인 상상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협업자들은 내 상상력의 깊이와 넓이를 늘리도록 도와준다. 여러 사람과 함께 작업하면 필시 의견이 충돌하거나 갈등이 생기기도 하지만, 그 갈등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때로는 작업의 주제가 더 선명해지기도 한다.

당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통제’ 개념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들어보고 싶다.

작업을 통해서 불안의 감각에 대해서 관찰하는 동안, 나는 통제가 이 불안을 해소하려는 인간의 노력 중 하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내가 관심을 가지는 통제는 큰 힘으로 작은 힘을 누르려고 하거나, 개인의 의지를 관철시키기 위해 임의대로 힘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정확하게 상황을 이해하려는 노력에 가깝다. 그리고 그 이해를 바탕으로 이후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 합리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현재 부족한 점을 어떤 노력으로 메울 수 있는지 방법을 모색하고 또 계획을 세우는 것을 말한다.

오민 - 하퍼스 바자

‘ABA Video’, 2016, 12분 50초

‘ABA Video’(2016) 작품에서는 라흐마니노프의 곡에 있는 음악 형식을 시각적 조형원리로 풀어냈다. 또한, 이를 통해 대조라는 관점도 파헤쳤는데, 많은 사람들이 생각해보지 못한 방법일 것이다. 사람들이 어떤 방향으로 이 작품을 바라보면 좋을지,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게 되는지 궁금하다.

소나타는 아주 쉽게 말해, 그리고 조금 과장해서, 불안을 조성하고 다시 해결하는 구조이다. 집(안정)에서 출발하여 여행(불안정)을 떠났다가 다시 집(안정)으로 돌아오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바로 ‘안정-불안정-안정’의 구조가 바로 소나타이다. 여행을 떠나기 전과 여행에서 돌아온 후 모두 집(안정)에 머무르지만, 어떤 여행이 될지 아직 모르는 상태의 안정과 여행하는 동안 새로운 것을 보고 듣고 돌아온 상태의 안정은 같을 수 없다. 따라서 소나타의 구조는 ‘안정-불안정-조금 다른 안정’의 구조, 즉, ABA’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하지만 여행을 다녀온 후 안정을 맞으며 종료되는 소나타와는 달리 우리의 일상은 종료되지 않고 또 다른 미지의 세계를 향해 다시 떠나야만 한다. 돌아왔지만 곧 다시 떠나야 한다면, 떠나기 전과 후는 결국 같은 것일 수도 있다. 따라서 인간의 삶 속에서의 소나타는 ABA, 혹은 죽는 순간까지 계속되는 ABABABABAB…의 구조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한편, 소나타는 보통 두 가지 대립되는 주제를 제시한다. 위의 비유와 연결한다면, 여행을 떠나는 사람이 두 명일 수도 있고, 사람은 한 명인데 집이 두 채일 수도 있고, 집에 머무는 동안 밤과 낮의 시간에 비유할 수도 있다. ‘ABA Video’의 재료로 사용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소나타 2번을, 나는 두 가지 주제가 개념적으로는 서로 선명하게 대립하면서도 형태적으로는 구분하기 힘들게 엮여 있다가 결국 하나로 통합되어버리는 구조로 해석했는데, 두 명의 여행자가 관련 없는 남남인 줄 알았는데 형제였다거나, 집주인이 각각 달랐던 두 집을 한 사람이 사버린다거나, 밤낮이 바뀐 채 살게 되는 상황에 빚대어 볼 수도 있겠다. 종합하면, 소나타는 제1 주제와 그에 대립하는 제2 주제를 제시하고, 발전시키고, 다시 재현하는 논리 구조로 구성되는데, 조금만 각도를 바꾸어 생각해보면 우리가 늘상 경험하는 인생의 경로와 그리 다를 것도 없어 보인다. 음악 속의 그 논리라는 것이 어차피 인간에게서 베껴온 것이기 때문이다.

오민 - 하퍼스 바자

‘ABA Performance’, 2016, approx. 45 분, 라이브 퍼포먼스 알케미 나가오(Akemi Nagao, 안무)와의 협업의상: Ajo Studio, 의상 보조: 윤희원음악 분석 어드바이스: Youngwoo LeeProp Design: Zero LabSound Design: 홍초선제작 지원: Seoul Foundation for Arts and Culture & Stichting FLAT, Amsterdam

언제부터 음악의 구조, 형태에 대해 관심을 갖게 시작했나?

음악 구조에 대한 관심은 비디오를 만드는 시점부터 시작되었다. 서양 고전 음악을 연주한다는 것은 어떤 음들이 어떤 시간의 구조 안에 어떤 논리로 배열되어 있는지를 이해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영상 역시 시간을 재료로 하기 때문에 영상을 만드는 동안 나는 늘 그 시간 구조를 어떻게 만들지 고민해왔고, 이때 음악의 구조는 유용한 힌트가 되곤 했다. 변주곡(Variation), 모음곡(Suite), 론도(Rondo) 형식 등 음악 형식에 대한 얕은 실험은 오래전부터 해오고 있었지만, 음악 형식 자체가 작업의 주요한 질문으로 들어온 것은 몇 년 전부터이다. 나는 공연이 순간적인 공연자의 기지와 표현뿐 아니라 계획, 훈련, 집중이 집대성된 이성적인 활동이라는 견지(‘마리나, 루카스, 그리고 나(Marian, Lukas, and Myself)’(2014))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낭만주의 음악을 연주할 때 나오는 감성과 제스처마저도 음악의 논리와 분석에 의해 형성(‘이영우, 안신애, 그리고 엘로디 몰레(Youngwoo Lee, Shine An, and Elodie Mollet)’(2015))된 것이라 믿고 있다. 마치 스포츠맨이 정확한 동작을 위해 근육을 사용하듯 연주 역시 기본적으로는 어떤 근육을 어떻게 움직여 원하는 소리를 만들지 계획하고 반복 연습하면서 만들어진다는 의미이다. 작년에는 여기서 한 걸음 나아가, 음악 연주의 표면에 드러나 있는 표현과 감정의 근원이 되는 논리와 이성, 즉 음악의 구조에 대해 본격적인 리서치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설치, 영상 속에 등장하는 오브제는 나뭇잎을 비롯해 밝은 색을 띠는 깔끔한 물체들이다. 작품의 의미와 연관성이 있는가?

내가 만들어내는 이미지는 현실을 비추는 이미지라기보다는 두뇌가 생산하는 이미지에 가깝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앞 문장에서 ‘두뇌’를 ‘마음’으로 바꾸어도 무방하다.(나는 이성과 감성을 별개의 것으로 보지 않는다.) 과거를 기억해낸 이미지일 수도 있고, 미래를 상상하고 있는 이미지일 수도 있다. 반복되고, 뒤집히고, 재배열되고, 편집될 수 있는 이미지이다. 이 이미지들 안에서 물체들은 움직임을 만들거나 보조하고, 또 그 움직임의 결과로 소리를 파생시킨다. 이들은 대부분 어떤 특정한 물체이기보다 그 물체의 개념을 보이고자 하는 경우가 많은데, 특정한 의자가 아니라 의자라는 개념, 특정한 컵이 아니라 컵이라는 개념, 특정한 치마가 아니라 치마라는 개념 역할을 한다.

최근 제17회 에르메스 미술상 최종 수상자로 선정됐다. 앞으로 작업하는 데 부담감을 느끼는가?

아직 부담을 느낄 시기는 아닌 것 같다. 아마도 내년 아틀리에 에르메스에서의 전시가 코앞으로 다가오면 그제서야 부담감이 발동하지 않을까 싶다. 아직까지는 여러 가지 계획을 세우는 것을 즐기는 중이다. 일단 올해는 작년 한 해 동안 소나타 형식을 가지고 실험하던 것을 토대로 하여 대략 두 가지 방향으로 확대시켜볼 예정이다. 그 두 방향은 스코어와 내러티브인데, 스코어는 흩어진 생각들을 개념적으로 정리하는 행위, 내러티브는 개념적으로 정리된 것을 구체적인 이미지로 재생산하는 행위에 관련된 질문을 포함한다. 스코어 리서치의 일환으로 현재 미술, 무용, 음악 등 각 다른 분야에서 스코어를 사용하는 이론가/예술가들과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으며, 그 인터뷰들을 묶어 올해 여름 책으로 출판할 예정이다. 한편, 스코어의 형태를 실험하는 영상 작업을 진행 중인데, 이 작업은 7월에 예정된 ‘무빙 / 이미지 2017’(김해주 큐레이터 기획)에서 소개할 예정이다.

매체로 영상을 주로 이용한다. 피아노 연주로 예를 들면 영상보다 실제 퍼포먼스가 더 생동감 있게 다가오는데 영상작품은 어떤 장점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영상은 나에게 통제를 의미한다. 움직임과 시선과 순서가 정밀한 계획에 의해 짜이고 또 수정된다. 퍼포먼스는 나에게 통제 불능을 의미한다. 완벽한 통제를 꿈꾸며 훈련하지만, 그곳에는 도달할 수 없고, 또 그렇기 때문에 불완전한 이 상황이 더 아름다워진다고 생각한다. 한편, 영상은 나에게 관찰을 의미한다. 경험 속 관찰을 기반으로 새로운 공간과 시간과 인물로 이루어진 장면을 만들고 이렇게 만들어진 장면을 또다시 다른 각도에서 관찰한다. 퍼포먼스는 나에게 행동을 의미한다. ‘지금’, ‘여기’의 상황을 구성하고 그 순간 필요한 움직임을 찾는다.

작업하는 데 있어 전환점이 되거나 가장 애착 갔던 전시가 있다면?

내가 진행했던 전시 중 어떤 한 전시가 더 특별히 중요했던 적은 없다. 모든 전시들은 각기 다른 종류의 도전과 갈등, 교훈을 담고 있고, 미래로 나아갈 디딤돌 역할을 한 후 빠르게 과거로 사라진다. 내 전시가 아닌 다른 작가의 전시라면, 벨기에 작가 에릭 뒤카에르트(Eric Duyckaerts)의 전시가 생각난다. 강의 형식으로 구성된 영상 작업 ‘Notations’가 전시장 초입에 설치되어 있었다. 프랑스어를 모르기 때문에 강의 내용에는 접근조차 할 수 없었고, 그의 뒤에 걸려 있는 칠판 받침대가 그의 머리에 닿을락 말락하는 순간을 바라보며 노심초사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것이 고통이었는지 행운이었는지는 여전히 명확히 하기 힘들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후 내가 이 비디오 작업과 뒤카에르트라는 작가에게 한동안 집착하게 되었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는 그 비디오에 대해 오직 제한적인 정보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경험은 영상작업 ‘A Sit’(2015)의 출발점이 되었다.

오민 - 하퍼스 바자

‘A Sit’, 2015, 6분 4초, 싱글 채널 HD Video

존경하는 예술가, 음악가가 있다면?

다른 인터뷰에서도 자주 얘기한 바 있지만 나의 뮤즈는 단연코 스티브 라이히(Steve Reich)이다. 기계적이고 비인간적인 것을 이용해서 인간적인 것을 끌어낸 작곡가라고 생각하고 있다. 최근엔 엘리안느 라디그(Eliane Radigue)의 음악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아직 라디그의 음악에 대해서 잘 알지는 못한다. 다만, 넋을 잃고 유튜브의 관련 링크를 타며 여행하던 중 우연히 그의 음악 ‘Islas Resonantes’를 듣게 되었는데, 인지하기 힘들 정도로 서서히 변해가는 소리가 미칠 듯이 자극적이라는 생각이 들며 호기심이 발동했다. 언젠가 오직 듣기만을 통해 그 변화의 움직임을 잡아낼 수 있을지 도전해보려고 한다. 더불어 형체 없이 부유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 음악에 관한 숨겨진 계획들이 기록된 악보도 함께 살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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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박 수진(미술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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