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타니 워크숍의 작업실

페로탱 서울에서 두 명의 일본 작가가 연달아 개인전을 열고 있다. 유구한 전통을 지닌 일본 도예 기법과 동시대적 미학을 혼합하는 오타니 워크숍의 한국 첫 개인전이 끝나고, 새로운 매체의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탐구하며 유일무이한 작품 세계를 구축한 이즈미 가토의 전시가 곧 시작된다. 전시 준비를 위해 차례로 서울을 다녀간 두 작가의 작업 과정에 동행했다.

Otani Workshop

저는 밑그림을 그리기보다는 대부분 찰흙을 집어 바로 만들기 시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 눈과 가슴이 ‘이거야!’ 하는 순간을 맞닥뜨릴 때까지 작업을 계속해나갑니다.

이른 아침, 하얀 수동 트럭을 운전하며 오타니 워크숍이 작업실로 출근한다. 작가의 내레이션이 깔리며 진행되는 <Hypebeast>의 5분 남짓 되는 동영상은 오타니 워크숍의 작업 과정을 보여준다. ‘워크숍’이라는 단어 때문에 여러 예술가가 모인 단체이거나 아마추어들의 실험적 활동이 아닐까 짐작할 수도 있지만 오타니 워크숍은 오로지 한 명으로 이뤄졌다.

오타니 워크숍의 스튜디오. Photo: Ringo Cheung ⓒ 2018 Otani Workshop/Kaikai Kiki Co., Ltd. All Rights Reserved.

“저는 오타니 시게루입니다. ‘오타니 워크숍’이라는 아티스트명으로 작업하고 있습니다.”

동영상 속 내레이션은 그렇게 말하고 있다. 그의 작업실이 있는 곳은 고베와 도쿠시마 사이에 있는 아와지 섬. 오키나와, 쓰시마 다음으로 큰 섬으로 일본 건국신화의 배경지이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작업을 시작해서 잠들기 전까지 일하는” 오타니 워크숍은 가족과 떨어져 작업실의 간이침대에서 자고 카레와 낫토를 주식으로 삼으며 이 섬에서 살고 있다.

오타니 워크숍이 아와지 섬에서 작업을 하게 된 건 고베에서 멀지 않은 도자기 마을, 시가라키에서 10여 년간 작업 활동을 해왔기 때문이다. 예로부터 양질의 점토가 나는 천혜의 자연환경을 갖춘 시가라키 마을은 12세기에 걸친 도자 산업의 역사를 자랑한다. 그에 걸맞게 레지던시 및 최신식 가마작업장 등을 갖춘 시가현립 ‘도예의 숲’에서 오늘날 많은 작가들이 작업 활동을 펼치고 있고, 오타니 워크숍도 그중 하나였다. 이후 그는 자신만의 공간에서 대형 작업을 전개하고자 작업실을 수배했고 결과적으로 시가라키에서 남쪽으로 내려온 아와지 섬에서 지붕용 도자기 타일 공장으로 쓰이던 공간을 얻게 되었다. 고베에서 아카시 대교를 달려 두 시간 거리에 있는 이 공장은 1995년 고베 대지진 이후 반복된 크고 작은 지진과 전통적인 방식으로 만든 지붕 타일의 인기가 줄어들면서 문을 닫게 된 공장들 중 하나였다.

‘Sleeping Girl’, 2018, Ceramic, 28×28×69cm. ⓒ 2018 Otani Workshop/Kaikai Kiki Co., Ltd. All Rights Reserved.Courtesy Perrotin.

지난 8월 23일부터 한 달간 열린 페로탱 서울에서의 전시를 앞둔 어느 오후, 갤러리 앞뜰에서 목재 침목을 짜맞추고 있는 오타니 워크숍을 만났다. 평화로운 꿈을 꾸는 듯 안온한 표정으로 눈을 감고 있는 브론즈 조각 ‘Golden Child’가 올라갈 단상이었다. 갤러리 내부로 들어가자 약 1백여 점의 크고 작은 조각들이 작가의 손길을 기다리며 사방에 펼쳐져 있었다. 긴 끈을 연결해 어깨를 가로지르게 멘 수첩에 수시로 메모를 하면서 작가는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작품 한 점 한 점의 자리를 찾아주었다. 이번에는 을지로의 토목가게에서 가져온 목재를 이용해 만든 낮은 테이블과 선반이 좌대가 되었다. 오타니 워크숍 작업의 한 축이라 할 수 있는 독특한 작업 설치 방식은 공예에서 시작된 그의 작품세계를 설치미술로 확장시켰다.

“7년 전인가, 작품 활동 초기에 대만에서 전시가 있었는데 그때 처음 그 지역의 목재를 이용해 이런 식의 설치를 하게 됐어요. 제 작품 가운데 작은 작품이 많고 해서 디스플레이를 위한 목재 좌대가 필요했거든요. 필요에 의해 시작하게 되었는데 점점 설치를 하면서 거기서 오는 즐거움이 커졌습니다. 작품이 자리 잡을 환경의 지역성을 담는 데에도 좋은 방식이고요.”

‘Golden Child’, 2018, Bronze, 125×132×95cm. ⓒ 2018 Otani Workshop/Kaikai Kiki Co., Ltd. All Rights Reserved. Courtesy Perrotin.

고대유물의 포스를 풍기며 군도를 이뤄 자리하고 있는 작품들은 정말이지 다종다양하다. 거친 점토의 질감이 있는가 하면 주물럭거린 손의 흔적이 남아 있기도 하고 유약을 발라 구워 매끈한 표면도 있다. 또, 손가락만 한 것부터 두 팔 벌려 안아도 다 들어오지 않는 거대한 작품까지 사이즈도 다양하다. 동물과 얼굴을 묘사한 조각 형태까지 아우르고 있는데, 이 모든 작품은 일본 문화와 개인적 경험에 기반한 다양한 스타일과 모티프를 가지고 있어 각 작품 하나 하나에 전혀 다른 이야기가 숨겨져 있는 듯 호기심을 자아낸다. 오타니 워크숍은 자신이 순간적인 느낌이나 감각을 중요시하는 타입이라고 말했는데, 그것이 이러한 다양성의 이유가 아닐까 싶다.

“아티스트는 거칠게 두 가지 타입으로 나뉜다고 생각합니다. 밑그림을 그리고 계획을 세운 다음 그것을 스텝 바이 스텝으로 완성해나가는 타입, 그리고 직감으로 작업하는 타입. 저는 전적으로 순간적인 느낌이나 그때의 감각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가끔은 밑그림을 스케치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찰흙을 집어 바로 만들기 시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 눈과 가슴이 ‘아, 이거야’ 하는 순간을 맞닥뜨릴 때까지 작업을 계속해나갑니다. ‘이거다!’ 하는 순간이 오면 그때가 바로 완성의 순간이죠. 지금까지의 모든 작업들이 그런 순간들의 결과물인 셈이고요.”

‘Old Man’, 2018. Ceramic, 7.5×7.2×7.1cm ⓒ 2018 Otani Workshop/Kaikai Kiki Co., Ltd. All Rights Reserved. Courtesy Perrotin.

그래서 그의 작업 가운데에는 미완성인 듯 보이는 작품도 있다.

“거기서 유약도 바르고 에지를 더할 수도 있지만 더 이상 나아가지 않는 건 형태의 완성보다 감정의 완성이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이번 전시에 고동 속살처럼 끝이 휘어 올라간 머리 모양의 아이 얼굴 작품이 있다. “아들과 페이스타임으로 통화를 하다가 통신망이 좋지 않아서 끊기는 순간의 아들 머리 모양이 기억 속에 남아 있었어요. 그걸 작품으로 구현한 것입니다.”

Installation view of Otani Workshop’s solo exhibition at Perrotin, Seoul, 2018. Photo: Youngha Jo ⓒ 2018 Otani Workshop/Kaikai Kiki Co., Ltd. All Rights Reserved. Courtesy Perrotin.

오타니 워크숍의 이런 면모는 그가 오키나와현립예술대학에 다니던 시절의 일화를 들으면 단번에 이해가 된다. 어렸을 때부터 늘 미술을 동경했던 작가는 오키나와에 있는 미술학교의 조각 코스에 등록했는데 거기에서 만난 선배들은 일본에서 조각만으로 온전히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작가는 세상을 둘러보기 위해 낡은 픽업 트럭을 타고 여러 박물관과 사원 및 신사를 방문하며 유랑했다. 트럭의 방수 시트 아래에 누워 잠을 청하며 오타니 워크숍은 자기 자신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는 예술을 이해하지 못할지 모르지만 내가 본 것에서 중요한 것이 있다는 건 안다. 나는 거기에 무언가 신성한 것이 있다는 것을 느낀다. 내 눈과 손, 마음 사이의 완전한 조화를 이루면 어떤 신이 나에게 내려올지도 모른다.”

이후 대학을 마치고 2005년에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오타니 워크숍은 유구한 전통을 지닌 일본 도예 기법과 동시대적 미학을 혼합해 일본의 새로운 도자예술 그리고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로 부상하고 있다. 이는 작업 초기의 전시들에서 좋은 인상을 받은 무라카미 다카시가 그의 멘토이자 큐레이터로서 주는 도움이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다카시는 2015년에 큐레이터를 자처해 차세대 일본 도예 작가 3인(하라나 가즈노리, 우에다 유지, 오타니 워크숍)을 모아 블럼앤포 L.A와 뉴욕에서 전시를 열었고, 그 다음 해에는 자신의 갤러리인 카이카이 키키에서 개인전을 통해 오타니 워크숍의 작업을 소개했다. 2016년 겨울에 열린 개인전 <내가 17세 때 자코메티의 이야기를 미술 선생님에게 들은 뒤로 조각을 동경하게 됐고, 나는 지금 조각을 만들고 있습니다(When I Was Seventeen, I Learned About Giacometti From My Art Teacher and Became Drawn to Sculpture-and So I Make Sculptures Now)>에서 오타니 워크숍은 도예와 조각이 맺고 있는 유동적 관계를 탐구했고, 유머와 가차 없는 솔직함으로 자신의 고유한 작품 세계를 많은 이들에게 각인시켰다.

전시를 앞두고 작품 설치 작업이 한창인 오타니 워크숍 Photo: Hyunjun Lee

거친 질감과 상반되는 귀여운 외모의 작품들은 그가 작업 초기 나라 요시토모의 어시스턴트로 조각작품의 제작을 도왔다는 이력을 떠올리게 한다. 올해 봄, 아트 바젤 홍콩 위크에 나라 요시토모의 개인전에서 만난 거대한 얼굴 형상의 조각과 오타니 워크숍 작품은 매우 닮아 있었다.

“2010년 정도에 나라 요시토모와 합숙하면서 그의 작업을 도와줬습니다.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같은 마음으로 그분을 존경하고 좋아합니다. 처음 작업을 했을 때보다 제 작품들이 좀 더 귀여워졌다면 아마도 그분의 영향이지 않을까 싶습니다.(웃음)”

그는 순순히 나라 요시토모와의 연관성을 인정했지만 보다 정확한 레퍼런스는 뜻밖의 것에 있었다. 조선 관요가 있었던 지역에 가마를 짓고 사금파리를 연구하면서 달항아리를 만든다는 어느 도예가를 떠올리며 시가라키의 전통 도예에서 어떤 영향을 받았냐고 묻자 그가 답했다.

“사실 전통 도예에서는 전혀 영향을 받지 못합니다. 그런 점에서 저 스스로도 제가 도예가라기보다는 현대미술가에 가깝다는 생각을 해요. 도기로 만든 인형들 같은 것에는 영향을 받는 것 같아요. 이번에 서울에 와서도 광화문 지붕 위에 장식된 흙으로 구워낸 작은 동물 형상들 있잖아요, 잡상이라고 하던가. 불 기운과 잡귀를 물리치는 그 장식물에 영감을 받았습니다.”

서양에서 도자기는 아트(Art)가 아니라 크래프트(Craft)다. 그러나 동양미술사에서는 서양에서와 다르게 도자기가 당당히 미술사의 한 장르로 자리 잡고 있다. 동양에서 좋은 도자기는 아트나 공예 어느 하나가 아니라 둘 다의 조합이다. 오타니 워크숍의 도예와 조각, 설치미술이 혼합된 고유한 작품세계는 신비롭고도 친근하게 다가와 ‘파인 아트(Fine Art)’를 새롭게 정의하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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