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망주의 탄생

미국 문단이 주목하는 작가 오테사 모시페그의 첫 장편소설 <아일린>이 출간되었다.

몇 해 전 서점에서 <그랜타(Granta)>라고 쓰인 책을 봤다. 순전히 표지가 예뻤기에 샀다. 해외 문학지로 여러 단편소설이 묶여 있는 책이었다. 거기서 독특한 이름을 읽었다. 오테사 모시페그(Ottessa Moshfegh)라는 이름이 왠지 맘에 들었다. 그래서 소설을 읽었냐고 하면 책은 그대로 책장을 장식했다.

며칠 전 다시 그 이름을 봤다. 이번엔 한글로 쓰인 정식 출판물이었다. 책 표지가 적지 않게 소란스러웠다. ‘2017 <그랜타> 선정 미국 최고의 젊은 작가’ ‘2016 펜/헤밍웨이상 수상작’ ‘2016 맨부커상 최종 후보작’. 유능한 젊은 작가의 첫 장편소설을 지지하는 문구가 사방에 쓰여있었다. 책을 덮고 나서 수상의 이유에는 수긍했으나 어떤 배신감에 몸을 조금 떨었다. 반은 농담이지만 책 덮개의 그림을 처음 봤을 때, 이야기가 이렇게 흘러갈지는 몰랐다.

 

미국판 <아일린>.

“나는 비쩍 마르고 각진 몸매에 움직임은 모나고 쭈뼛쭈뼛했으며 자세는 경직되어 있었다. 말랑하고 부글거리는 여드름 자국이 가득한 내 얼굴의 지형은 차갑고 생기 없는 뉴잉글랜드적 외피 아래에 있을 수도 있는 기쁨 혹은 광기를 흐릿하게 지웠다. 안경을 썼다면 똑똑해 보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진짜로 똑똑하기엔 참을성이 너무 없었지만.” 책의 두 번째 장에 묘사된 아일린은 음습하고 괴팍한 24살의 소년원 비서다. 하지만 본인만 그렇게 생각할 뿐 지극히도 평범하여 아무도 그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이야기할 상대도 변변치 않아 야한 상상과 괴상한 망상을 즐긴다. 짝사랑하는 교도관을 스토킹하고 드러그스토어에서 물건을 훔치기도 한다. 한 집에 사는 알코올중독자 아버지를 버리고 어떻게 하면 뉴욕으로 갈 수 있을까 고민하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게다가 배경이 되는 시대는 1964년으로 여자들이 외출할 때 장갑을 끼고, 대학교 댄스 파티에조차 동행이 필요했다. 얼굴과 마음이 못난 아일린은 자신을 억압하는 시대의 모든 것을 혐오하면서도 도리어 자기혐오와 자기검열에 빠져 지낸다.

지저분하고 의뭉스러운 아일린의 20대를 낱낱이 고해 바치는 건 74세가 된 아일린이다. 고드름이 떨어져 몸을 가르는 상상을 할 만큼 살벌하게 추운 소도시에서 젊은 아일린이 얼마나 무료하고 초라한 삶을 살았는지에 대한 적나라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하지만 이야기를 펼쳐나가는 나이 든 아일린은 냉철한 자기객관화 속에서 결코 유머와 사랑스러움을 잃지 않는다. 혐오 속에 살아가던 아일린이 어떻게 그 시절을 벗어나 자신을 찾게 되었는지는 책을 읽어 확인할 일이다. 어두운 현실 속에서도 전환점을 찾아 기어코 살아낸 아일린의 삶의 서사는 지금을 예민하게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응원을 보내는 강렬하고 매혹적인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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