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브 클라인의 인터내셔널 클라인 블루

영국 블레넘 궁에서 이브 클라인의 ‘인터내셔널 클라인 블루’가 형형한 빛을 발한다.

1960년, 파리 아틀리에에서 작품 ‘Sponge Sculpture’와 함께 포즈를 취한 이브 클라인.

테는 1810년에 저서 <색채론>에서 “사람들은 푸른색을 매우 좋아한다. 푸른색이 우리를 나아지게 해서가 아니라 그것이 우리를 끌어주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이 책은 이브 클라인이 자신의 대표 색인 군청색 염료, 인터내셔널 클라인 블루(International Klein Blue)를 개발하기 150년 전에 출판되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이브 클라인의 푸른빛 작품의 매력에 도취되는 것만 보아도 괴테의 가설을 충분히 증명할 수 있다. 이브 클라인의 작품은 무한한 다양성을 담고 있어 그림을 감상하는 사람들을 한층 더 가까이 끌어당긴다. 그의 그림은 숭고함과 평범함의 경계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매력이 있다.

그의 명작 중 일부가 현재 블레넘 궁에서 열리는, 이브 클라인 탄생 9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회에서 선보일 예정이다. 이번 전시회는 이제껏 영국에서 열린 전시회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이브 클라인 회고전이 될 것이다. 방문객들은 화려하게 장식된 그레이트 홀, 롱 라이브러리 그리고 살롱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블레넘 궁의 옛 주인들이 모아 놓은 소장품과 나란히 놓인 이브 클라인의 강렬한 모노크롬 회화를 감상할 수 있다. 이브 클라인의 모노크롬 회화 작품들은 궁전 안에 놓인 18세기 가구 사이사이에 전시되어 있다. 그리고 고전주의에서 영감을 받은 그의 밝은 푸른색 조각들 역시 성의 옛 주인들을 본떠 만든 대리석 조각과 나란히 전시되어 있다.

블레넘 궁.

이브 클라인의 재산을 그의 미망인이자 예술가인 로트라우트(Rotraut)와 공동으로 관리하고 있는 로트라우트의 현재 남편 다니엘 모콰이(Daniel Moquay)는 이번 전시회는 규모 면에서 어마어마하다고 말한다. “17세기와 18세기 물건들과 이브 클라인의 작품을 함께 융합시키는 일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이번 전시회 기획은 빈 페이지에 무언가를 쓸 수 있는 작업이 아니었습니다. 이미 공간이 가득 차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브 클라인 역시 이런 도전적인 일이라면 누구보다 먼저 뛰어들었을 것이다. 블레넘 예술 재단의 이사직을 맡고 있는 마이클 프람(Michael Frahm)은 “이브 클라인의 사고방식으로는 모든 것이 가능했고 한계가 없었다”고 설명한다. 이브 클라인이 19살 때 니스 해변에 누워 하늘을 올려다보다가 첫 작품으로 푸른 하늘을 그려야겠다고 굳게 다짐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매우 인상적이다. 그 작품은 이브 클라인의 작품 가운데 ‘가장 뛰어나고 아름다운’ 그림으로 꼽힌다.

이브 클라인의 독특한 절대주의 스타일에는 모든 종교를 아우르는 특징이 담겨 있다. 특별히 한 종교에 대한 깊은 신앙심을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종교적인 의식 자체에 관심이 많았을 뿐만 아니라 세계관 역시 종교에 깊이 심취한 것이었다. 가톨릭 신자로 자랐지만 개신교 신자이기도 했고 캘리포니아에 있는 장미십자단에 가입하여 직접 활동하기도 했다. 그리고 일본에서 몇 년간 유도를 공부하면서 일본 불교 철학에 매료되기도 했다. 실제로 존재하는 것 이상의 무언가를 끊임없이 갈구하는 성향은 이브 클라인의 작품에 그대로 드러나 자신은 물론 그림을 보는 이들까지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려 준다. “순수하고 실존적인 공간이 자주 저에게 신호를 보냈습니다. 매번 좀 더 인상적인 방식이었고 그때마다 완전한 자유로움을 느끼면서 푹 빠져들었습니다.” 이브 클라인은 초기에 실험적으로 모노크롬 회화를 그리면서 이렇게 말했다.

‘Untitled Sculpture’, 1960.

이브 클라인은 이후 여성의 나체에 푸른색 물감을 묻혀 인간 붓으로 사용한 작품인 ‘인체 측정’ 시리즈를 그렸다. 그 그림들을 보면 앞서 설명한 이브 클라인의 종교 의식에 대한 관심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사람들의 의식이 많이 발전했다고 해도 남성 화가가 여성 누드 모델들의 몸을 캔버스에 직접 눌러서 그림을 그리는 작업을 비판적인 시각으로 보지 않기란 힘들다. 그런데 이브 클라인은 자신에 대해 음탕하다는 세간의 비판에 몹시 괴로워했다.(사실 그는 1962년 칸 영화제에서 이런 의견이 담긴 자신의 작품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본 후 첫 심장마비를 겪었다.) 이브 클라인은 행위예술이란 화가가 단순히 그림을 그리는 사람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무대감독, 안무가 등 모든 일을 총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개인의 즉흥적인 뛰어난 표현력에 의존하는 추상표현주의 작가들과 달리 이브 클라인은 자신의 창작물과 자신을 어느 정도 거리를 두어 독립적인 것으로 생각했다. “제 작품들은 저와 동떨어져 있습니다. 제 눈앞에서 제 지휘로 그려지지만 그림 자체로 완벽한 존재입니다.” 이브 클라인은 자신의 ‘인체 측정’ 시리즈를 이렇게 설명했다.

“요즘 개념미술을 많이 볼 수 있어요. 하지만 이브 클라인이 그 시작이라는 점을 잊지 마세요. 그는 개념미술을 개척한 사람이니까요. 모든 작품에서 아주 조금씩이지만 이브 클라인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블레넘 예술재단의 수석 전시기획자인 안토니아 졸스(Antonia Jolles)는 이렇게 말한다. 실제로 이브 클라인은 팝아트의 선구자이자 과거는 물론 현재까지도 많은 행위예술가에게 영감의 원천이며 패션계는 물론 연극계 그리고 음악계에까지 큰 영향을 주었다. 두 사람이 서로를 알고 지냈다는 증거는 없지만 존 케이지는 1940년대 후반 그의 유명한 작품 ‘4분 33초’를 작곡했다. 그리고 이브 클라인 또한 D장조 음 하나가 20분 동안 이어진 다음 20분 동안 무음이 이어지는 획기적인 작품 ‘단조로운 심포니(Monotone-Silence Symphony)’를 고안했다.

‘Blue Venus’, 1962.

1961년, 파리 아틀리에에서 ‘Blue Globe’와 함께.

이는 극단적인 미니멀리즘이었다. 그리고 이브 클라인의 가장 뛰어난 작품들의 본질은 실체가 없는 막연한 것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일깨워준다. 블레넘 궁 전시회에서 선보일 작품 ‘불의 회화’를 그리기 위해 그는 실제로 가스 불로 캔버스 표면을 태웠다. 그런 식으로 파괴 행위 속에 내재하는 창의적인 힘을 작품 속에 남겼다. 이브 클라인의 이해와 정착에 대한 탐구열은 그가 ‘허공(The Void)’이라는 제목을 붙인 작품에서 확실하게 발견할 수 있다. 이 작품에서 이브 클라인은 텅 빈 미술관 자체를 전시하고 지폐와 영수증을 교환해 작품을 판매하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두 작품 모두 당시에는 형식을 완전히 파괴한 작품이었다. 다니엘 모콰이에게는 이 작품들이 이브 클라인의 모든 작품 가운데 가장 중요한 작품이다. 두 작품 속에 이브 클라인만의 특별한 유토피아에 대한 시각의 본질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돈을 제일로 여기는 현실 세계에 사는 우리 같은 사람들이 이브 클라인의 작품들을 이해하기란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이브 클라인은 물질 말고도 중요한 것이 아주 많다는 사실을 깊이 이해한 사람이었습니다.” 다니엘 모콰이의 말이다.

“제가 색을 통해서 무형의 세계를 조금씩 알게 된 것은 분명합니다.” 이브 클라인은 1959년 소르본 대학 강의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3년 후 그는 겨우 34세의 나이에 심장마비로 사망하면서 자신이 늘 열렬하게 주장하던 ‘순수하면서도 무형인 이미지 너머의 세계’로 영원히 터를 옮겼다. 7월 18일에 시작한 전시는 이브 클라인의 정신이 부활하는 장이 되고 있다. 10월 7일까지 이어지는 이 전시는 새로운 세대가 강렬한 푸른빛 저 너머로 모험을 나서기를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던 한 예술가의 힘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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