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즈미 가토의 첫 한국 개인전

페로탱 서울에서 두 명의 일본 작가가 연달아 개인전을 열고 있다. 유구한 전통을 지닌 일본 도예 기법과 동시대적 미학을 혼합하는 오타니 워크숍의 한국 첫 개인전이 끝나고, 새로운 매체의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탐구하며 유일무이한 작품 세계를 구축한 이즈미 가토의 전시가 곧 시작된다. 전시 준비를 위해 차례로 서울을 다녀간 두 작가의 작업 과정에 동행했다.

Izumi Kato

제가 회화와 조각으로 표현하는 생명체에 대해 정말 많은 질문을 받습니다. 그런데 저는 할 말이 없어요. 그냥 모티프를 그린 것일 뿐이거든요. 관객들이 저마다의 상상으로 받아들이길 바랍니다.

(위, 아래) Views of Izumi Kato’s solo exhibition at Red Brick Art Museum, Beijing, 2018. Photo: Yu Xing & Li Yang
ⓒ2018 Izumi Kato. Courtesy of Red Brick Art Museum, the Artist and Perrotin.

오는 10월 열리는 이즈미 가토의 한국 첫 개인전을 두어 달 앞둔 폭염의 한가운데, 나는 작가 일행과 함께 강원도 홍천에 있었다. 그는 두 가지 목적을 가지고 홍천강을 찾았다. 바로 낚시와 돌 채집. 어종이 다양하고 수심이 낮은 홍천강은 두 가지 모두 완수하기에 제격이었다. 완벽한 낚시꾼 복장과 자외선차단제로 무장한 작가는 쏘가리를 잡는가 하면 자갈밭은 물론 강바닥에서 돌덩어리를 채집했다. 마치 정답을 알고 있는 보물찾기를 하듯 확신에 찬 몸짓으로 주운 돌들을 함께 온 갤러리스트 출신의 아내에게 건네고 이즈미 가토는 다시 강으로 유유히 들어간다. 그러면 아내는 줄자로 돌 사이즈를 재고 마스킹 테이프에 숫자를 적어 돌에 붙인다. 이 과정을 반복하기를 반나절, 맥반석 오징어처럼 흐물흐물해진 일행에게 가토는 만족스러운 미소와 함께 돌 무더기를 내보이며 종료를 알렸다.

Views of Izumi Kato’s solo exhibition at Galerie Perrotin, Hong Kong, 2014. Photo: Joyce Yung. ⓒ2014 Izumi Kato. Courtesy the Artist and Perrotin.

Views of Izumi Kato’s studio in Hong Kong, 2017. Photo: Ringo Cheung

강원도 홍천에서 재료를 채집 중인 이즈미 가토 Photo: Hyunjun Lee

이즈미 가토가 해안지역에 위치한 홍콩 작업실 인근 매립지에서 채집한 돌을 이용해 새로운 조각 시리즈를 만들기 시작한 건 2년 전부터다. 인공적으로 변형하거나 깎지 않고 최소한의 가공만을 거친 돌은 분절된 덩어리로 놓여져 다채로운 색으로 칠해진다. 그의 작품세계를 관통한 원시적이고 비현실적인 의인화된 형체는 이번에는 여러 개의 돌덩이로 구현되었다. 작가는 전작들과의 단절을 보여주는 이 신작 석재 조각 시리즈에 대해

“지난 30년 동안 작가로서 활동해온 경험과 안목, 미적 감각이 집적되었기에 가능한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때가 무르익어 드디어 할 수 있게 되어 정말 즐겁게 작업하고 있습니다.”

이즈미 가토의 작품 세계는 1990년대 후반부터 꾸준히 진화해왔다. 라텍스 장갑을 끼고 유성 페인트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동시에 웃음이 새어져 나오는 생명체들을 그린 회화작품이 그 시작이다. 도쿄의 명문 무사시노 미술대학을 졸업한 가토는 당시 얼마나 잘 재현할 것인가에 집중하는 대학 교육에 의문이 들었고 미술가보다는 음악가나 축구선수가 되고 싶어 아르바이트를 하며 20대를 보냈다.

“제가 1992년도에 대학을 졸업했는데 그 당시에는 미대생이 그림을 그리는 것보다는 음악을 하는 게 더 멋져 보이는 분위기가 팽배하던 때였습니다.(웃음)”

Views of Izumi Kato’s solo exhibition at Perrotin, Hong Kong, 2018. Photo: Ringo Cheung

어쩌면 마음 깊숙한 곳에 남아 있던 반항심의 발로였는지 30세에 다시 화가의 길로 들어서면서 작가는 전통적인 도구를 이용하는 대신 손이나 스패출러로 평행 우주 속 클로즈업된 얼굴을 그리기 시작한다. 이내 몸통이 등장했는데 긴 팔다리로 불가능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 형체에는 손과 발 대신에 여러 개의 머리가 돋아나기도 하고 무거운 커튼이 매달린 것 같은 날개가 달리기도 하며 기묘함을 더해갔다. 도대체 이 가상세계의 생물체는 어디서 온 것일까? 귀엽고도 기괴하고 생명력이 전해지는가 하면 유령 같기도 하고,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닌 이중성을 인정하면서도 작가는 이 미스터리한 존재에 대해 명확한 해설을 해주지 않는다.

“관객들이 저마다의 상상으로 받아들이길 바라요. 그냥 모티프를 그린 것일 뿐이거든요. 작업 활동 초기에는 작품에 제목을 붙인 적도 있지만 언제부턴가 모든 작품의 제목이 ‘Untitled’인 것도 그 때문입니다.”

가토가 물을 뚝뚝 흘리며 다시 강으로 걸어 들어가는 뒷모습을 보면서 일본 미술계의 베테랑인 그의 아내가 말했다.

“사람들은 강아지나 고양이를 보면서는 ‘와, 귀엽다!’ 대부분 이런 반응을 보이잖아요. 그런데 다른 사람을 대할 때는 쉽게 흉을 보거나 가혹하게 판단을 해버려요. 인간이 인간에게 대하는 잣대는 매우 엄격한 편인데 그런 것이 싫어서 미스테리한 생명체를 그리기 시작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어요. 아마도 작가 본인은 그런 걸 전혀 의식하지 못할 거예요. 그리고 무엇보다 보는 사람 개개인이 자신의 인생을 투영해서 바라봐줬으면 하는 바람도 있을 거고요.”

2000년대 초반 이즈미 가토는 목재 조각으로 범위를 넓혔다. 처음에 그는 불교의 조각상을 만들 때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부드럽고 향긋한 목재인 장뇌를 가지고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조각으로 탄생한 예의 의인화된 형체들은 영적 세계의 기원을 암시하는 식물처럼 보였고, 아프리카 예술과 고대로부터 영감을 얻은 듯했다. 당시 한 인터뷰에서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조각이 나의 회화를 돕는다고 생각한다. 조각은 회화를 3D로 입체화하는 것과 같다.”

이즈미 가토의 시각언어는 작가의 고향이자 일본 서부의 해안지역인 시마네 현의 독특한 문화와 민속을 비롯해 여러 가지 요소를 풍부하게 참조한다. 일본 고대문화의 발상지인 고향에서 작가는 일본의 전통 종교인 신도(神道)의 세례를 직간접적으로 접하며 자랐다. 동물, 식물, 자연 현상 속에 영혼이 있다고 믿는 애니미즘에 기초한 신도적 믿음이 그의 작업의 중심에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8월부터 오는 10월 14일까지 베이징 레드 브릭 아트 뮤지엄에서 열리는 대규모 개인전의 큐레이터를 맡은 미술관 대표 얀 쉬제(Yan Shijie)는 말한다.

“이번 전시는 시마네 현에 살아 숨 쉬고 있는 신들, 영혼들과 소통하는 것입니다.”

2010년 들어서서 이즈미 가토는 소프비(Sofubi)라고 하는 부드러운 비닐 재료를 가지고 목재 조각을 실험하기 시작했다. 목과 팔다리가 움직이는 장난감을 만드는 데 사용하는 비닐을 완구 업체에서 주문해 반은 실패하고 나머지 반은 성공하면서 에로틱하고 연약한 느낌이 더해진 작품을 선보인 것. 그리고 드디어 석재 조각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Views of Izumi Kato’s solo exhibition at Red Brick Art Museum, Beijing, 2018. Photo: Yu Xing & Li Yang ⓒ2018 Izumi Kato. Courtesy of Red Brick Art Museum, the Artist and Perrotin.

지난여름 채집한 돌은 현재 팔판동 페로탱 갤러리에 보관되어 있다. 그리고 조만간 전시를 일정 기간 앞두고 도착한 작가에 의해 가장 적합한 모양으로 합체를 이뤄 채색될 것이다. 이는 물질의 유형이 창조적 과정을 이끄는 새로운 시도에 다름 아니다. 돌의 물리적 형태와 특성은 그대로 남겨져 작품이 된다. 이 과정을 지켜보며 ‘발견된 오브제(Object Trouvé)’ 개념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는데 작가가 가장 힘주어 말한 건 바로 ‘미타테’라는 단어였다. 다도에서는 보는 안목이 확실하다면 질박함이 호화찬란함을 능가할 수 있다. 별것 아닌 생활잡기를 고도의 안목에 의한 세심한 선택으로 그 어떤 고급 찻잔보다 감동적으로 사용할 때 등장하는 단어가 바로 ‘미타테(見立て)’인 것이다.

“차인들이 수수한 사발 같은 것을 자신의 안목대로 골라 값지게 사용하듯이 저 역시 작가로서 수십 년 동안 쌓아온 안목에 기반해 돌을 채집해 작품으로 만듭니다. 마치 강 어디에 어떤 돌이 있는지 아는 사람처럼 척척 돌을 줍는 게 신기하다 하셨는데 단순히 감각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의 경험이 쌓이고 쌓여 가능해진 것이지요. 이번 작품에서는 미타테로 작품에 적합한 돌을 발견해내는 과정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재미있는 건 홍콩과 베이징 그리고 서울에서 전시를 준비하면서 채집하게 된 돌의 형태와 크기의 차이로 인해 작품 역시 달라지는 점이다.

“세 나라가 지형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돌도 전혀 다르게 생겼다는 점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베이징 전시를 준비하면서는 도시 외곽에서 정말 독특한 모양의 괴석을 많이 발견했어요. 대부분 매우 큰 사이즈였죠. 반면 한국의 돌은 귀엽고 가장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지닌 것 같아요. 얼른 이 돌에 그림을 그리고 싶어집니다.”

자외선차단제를 수차례 덧바른 탓에 새하얀 얼굴을 한 이즈미 가토가 돌 무더기를 사랑스러운 눈길로 바라보며 말했다.

이즈미 가토의 새로운 작업은 자연세계와 인간 존재 사이에 연결고리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고향의 사찰과 신사로부터 받은 영향이 시각적으로 개념화된다.

“흰 캔버스는 아무것도 없으니까 작가만의 세상이라고 할 수 있어요. 모든 걸 쏟아붓고 그리게 됩니다. 석재 작업의 경우에는 자연과의 컬래버레이션으로 이뤄지는 것이고, 제가 이 돌에 색을 입히고 그림을 그리긴 하지만 자연이 더 파워풀하다는 걸 기분 좋게 받아들이며 작업하게 됩니다.”

회화, 나무 조각, 비닐 조각, 그리고 새로운 매체인 돌을 탐구하기 시작한 이즈미 가토의 또 다른 기이한 세계는 오는 10월 5일부터 11월 18일까지 페로탱 서울에서 만날 수 있다. 원시적인 신성을 내뿜는 작품들에 둘러싸여 전혀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는 것 같은 느낌을 만끽할 흔치 않은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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