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미술관

아름다움에 관해 가장 사적인 경험을 제공하는 장소, 7인의 아트 피플이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미술관에 대해 고백한다.

MIT List Visual Art Center

뉴욕은 말할 것도 없이 미국 동부의 많은 도시에는 우리에게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독특한 미술관들이 많다. 특히 보스턴에서는 MIT 대학의 리스트 비주얼 아트를 포함하여 하버드 대학교의 포그 뮤지엄(the Fogg Museum)과 카펜터 예술센터(Carpenter Center for the Visual Arts), 웰슬리 칼리지의 데이비스 미술관(Davis Museum), 브랜다이스 대학교의 로즈 미술관(Rose Art Museum) 등 쟁쟁한 대학 미술관들이 많이 있다. 영국에서 대학원 과정을 마치고 미국으로 건너가 미술관학(Museum Studies)을 공부하는 과정 중 M.I.T 대학의 현대미술관인 리스트 비주얼 아트 센터에서 나는 2003년 9월부터 2004년 3월까지 인턴십을 하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LVAC는 1950년, 헤이든 갤러리(Hayden Gallery)로 문을 열어 베라와 앨버트 리스트(Vera and Albert List) 부부가 소장품을 기증하면서 1985년에 현재의 이름으로 변경되어 운영되고 있다. 1940년에 MIT를 졸업한 세계적인 건축가 I.M. 페이(Pei)가 설계한 미술관 건물에는 전시장과 MIT 미디어 랩이 같은 지붕 아래 동거했다. 동시대를 대표하는 진보적이며 실험적인 아티스트에서부터 보스턴 로컬 아티스트에 이르기까지 역동적인 전시와 다양한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실행하는 이 미술관은 사실 규모 면에 있어서는 크지 않다. 그럼에도 전시장 이외 대학 내 사무공간과 복도, 로비뿐만 아니라 야외 캠퍼스의 다양한 공용공간을 최대한 활용했고, 콘텐츠의 다양성을 유지하면서 일관성 있게 운영되는 방식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LVAC에서 보낸 시간은 미술계로 막 진입하는 학생과 사회인의 중간에 있던 나에게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소중한 계기가 되었다.

당시 LVAC는 2003년 베니스 비엔날레 미국관을 큐레이팅하기도 한 제인 파버(Jane Farver) 디렉터가 이끌었다. 큐레토리얼 팀은 전시는 물론이고 강연과 세미나 같은 다양한 퍼블릭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솔 르윗(Sol Le Witt), 사라 제(Sarah Sze), 마틴 보이스(Martin Boyce), 댄 그레이엄(Dan Graham)등의 커미션 작품을 설치함으로써 학생들과 MIT를 찾은 일반 관람객들에게 현대미술을 소개하고 경험할 수 있도록 했다. 이들의 활동으로 대학의 특성에 걸맞게 테크놀로지를 기반으로 한 작업들이 이물감 없이 일상의 배경으로 자리했고 미디어 월에서는 쉼 없이 다큐멘터리 필름 등의 영상작품이 재생되었다. 또한 비슷한 맥락에서, 그러나 보다 실질적인 방법으로 LVAC에서는 매년 약 6백여 점의 소장 작품을 학생들에게 대여해주는 ‘Student Loan Art Program’을 진행했다. 이 프로그램은 파손 위험이 상대적으로 적고 핸들링이 용이한 판화와 프린트 같은 현대미술 작품들을 대여를 희망하는 학생 중 선정된 이들에게 일정 기간 빌려줌으로써 학생들이 캠퍼스 내의 연구실이나 기숙사, 그리고 오피스 등의 공간에서 미술작품을 일상의 한 부분으로 자연스럽게 보고,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사실, 이 같은 활동들은 국내 대학 미술관들이 보여주는 기획력을 상실한 동문전과 전문적인 프로그램의 부재와 같은 대학 미술관이 갖는 어쩌면 태생적 한계와 지원의 부족을 극복하지 못한 것에 대한 새삼스러운 아쉬움을 갖게 한다.

LVAC에서는 매년 6~9회의 개인전과 주제전이 열린다. 마침 내가 그곳에서 일을 시작할 무렵에는 2006년 광주비엔날레에서 대상을 수상했던 재미교포 마이클 주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었는데, 나는 그의 작품 설치 과정과 전시를 가까이서 지켜보고 미미하게 나마 참여할 수 있었음에 보람을 느꼈다. 파버 디렉터는 한국 작가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과 이해를 가지고 있었는데 2011년에는 인천여성미술비엔날레의 전시감독을 맡기도 했다. 작지만 확실한 역할과 존재감을 가진 이 미술관에서의 짧고 강렬했던 경험은 이후 기업 미술관 개관, 아트 마케팅과 후원 사업, 국립미술관의 학예 업무 등 나의 큐레이터 업무 전반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이미 오랜 시간이 지나버렸지만 그래도 가끔, 쌀쌀하고 맑은 어느 오후 즈음이면 LVAC 건물에서 일을 마치고 MIT 캠퍼스를 천천히 가로질러 걸어 들어갔던 에로 사리넨(Eero Saarine)의 붉은 벽돌 예배당에서 대면했던 빛 줄기 속에 밀려오던 충만감, 새 건축물을 오픈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참여했던 프랭크 게리의 토크와 스티븐 홀(Steven Hall)의 기숙사 건물에 설치된 파빌리온의 오프닝에서 봤던 댄 그레엄을 만났던 기억들이 떠오른다. 이런 기억들이 내가 애정하다 못해 편애하는 ‘MIT 리스트 비주얼 아트 센터’를 나의 매우 사적인 미술관이 되는 충분한 이유가 된다.

양옥금(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Musee Maurice Denis

긴 여행 끝의 마지막 하루는 내게 있어 여행의 퀄리티를 결정짓는 요소다. 최후까지 망설인 후엔 어떤 빛나는 만남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 믿기 때문이다. 프랑스 파리 외곽의 생제르맹앙레(Saint Germain en Laye)는 푸르른 구릉 속에 귀족적인 호젓함이 흐르는 센 강에 면한 지역이다. 루이 14세와 클로드 드뷔시가 태어나고, 알렉상드르 뒤마의 신비스러운 은신처 몽테크리스토 성이 남아 있는 곳. 거기에 화사한 이름 모리스 드니의 오랜 흔적이 존재하는 곳이기도 하다. 모리스 드니, 나비파(Les Nabis)의 일원으로 인상파 이후의 신선한 색채감각과 고갱의 평면적인 장식성을 추구하며 19세기와 20세기를 살아낸 인물이다. 파리에서 RER을 타고 생제르맹앙레 역에 내려 20여 분을 걸어가면 드니가 죽을 때까지 30년간 거주하며 작업했던 모리스 드니 미술관이 나타난다. 파리의 생생한 활력에서 멀어진 긴 여정이 선사한 고요의 장소, 그 장소와 그곳을 소유했던 예술가와의 내면적인 대화가 시작될 것만 같은 긴장감이 느껴졌다. 정원을 지나 건물로 들어서니 동굴 안에 들어온 듯 아치형의 낮은 천장이 아늑하게 공간을 감싸고 있었다. 17세기에 지어진 건물은 드니가 소유하기 직전까지 왕립병원으로 쓰였다고 한다. 숭고하고 검박한 어느 수도원처럼 석조로 지어진 건물이 유독 신심이 뜨거웠던 드니에게 끌렸음이 당연하게 느껴졌다.

모리스 드니 그림이 던지는 첫 번째 감각은 봄 낯같이 화사하게 흐드러지는 색감이다. 그림자가 드리운 건지, 햇살이 던진 변형인지 모를 하나의 화면 안에서 부서지는 색채들. “회화란 군마나 여인의 누드 혹은 어떤 일화이기 이전에 하나의 질서에 걸맞게 배열된 색채들로 뒤덮인 평면이다.” 그가 남긴 유명한 문장 하나가 그의 그림에 더욱 다가가게 만든다. 보나르와 뷔야르, 발로통, 폴 랑송과 공유했던 상징주의와 신비, 음악과 문학에서 파생한 드니의 그림들은 그를 ‘아름다운 성상의 나비’라 불리게 했다. ‘테라스의 저녁’ ‘서쪽 부두의 전망’ ‘숲 속의 봄’ ‘예배당 앞의 여인들’ 드니의 작품엔 자주 여인들이 등장하는데, 그녀들은 모두 장소와 상관없이 신화적이며 종교적인 뉘앙스로 먼 고대를 떠올린다. 드니의 신비주의, 종교에 대한 관심은 어린 시절부터 그를 둘러싸고 있던 초월적인 테마였다. 교회의 아름다운 건축과 빛 가운데에서 공간과 형태에 대한 이해를 키우며 열다섯 살의 나이에 필연적이고 내면적인 화가의 몫을 이렇게 표현했다. “난 신이 행하시는 모든 기적을 그림으로 표현해야만 한다. 그것이 내가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미술관을 층층이 둘러보다 보면 어느 끝에선가 작고 아름다운 예배당을 마주치게 된다. 드니 작품들의 흐름이 데려온 걸음이 멈춘 곳, 그곳에 펼쳐진 풍경은 드라마틱 그 자체였다. 푸른색이 주조를 이룬 작은 예배당은 모리스 드니가 건축가 오귀스트 페레(August Perret)와 함께 완성한 초월적 공간이다. 그리스도의 처형과 부활의 신비를 그린 벽화와 제대 중앙의 스테인드글라스, 성가대석의 프레스코화 모두 모리스 드니가 그려 완성했다. 조용히 회중석에 앉아 몇 명의 관람객 사이에서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시대를 건너 과연 예술가의 신앙심이란 무엇이었을까를 가늠해보려 했지만, 창조적 열망과 결합한 종교의 영역은 21세기의 자아가 헤아리기에는 너무 거대한 것이었다. 이 모든 하나하나가 모리스 드니가 꿈꾸던 아르카디아였을까? 드니의 개별적인 캔버스들과 어느 저택의 벽화, 곡선을 그린 작은 가구와 작은 글씨들. 그의 모든 현존이 한데 묶여 이곳에 추상적으로 응축된 것만 같았다. 예술이 데려오는 여정은 늘 이렇듯 아득하고 불가사의하다.

박선영(미술 칼럼니스트)

드니의 개별적인 캔버스들과 어느 저택의 벽화, 곡선을 그린 작은 가구와 작은 글씨들. 그의 모든 현존이 한데 묶여 이곳에 추상적으로 응축된 것만 같았다.

New York City, A Museum of Everyday Life

푸르게 우거진 나뭇잎 사이로 스며들어 눈앞에서 산산이 부서지는 햇살을 온몸으로 느끼며 내딛는 발걸음이 매 순간 나를 새로운 시공간으로 이끌었다. 그 여름의 산책은 여전히 내 머릿속에, 내 몸속에, 내 감각 속에 남아 있다. 누군가의 기억과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빛바랜 사진을 한 장씩 꺼내보며 헤드폰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가 이끄는 대로 센트럴 파크의 산책로를 걸으며 만났던 재닛 카디프(Janet Cardiff)의 오디오 작업 ‘그녀의 길고 검은 머리카락(Her Long Black Hair)’(2005)은 잊을 수 없는 경험이었다. 그해 여름, 나는 몇 번인가 더 그 목소리를 따라 그 길을 걸었던 것 같다. 한시적으로 선보였던 재닛 카디프의 작업은 이제 더는 센트럴 파크에 존재하지 않는다. 나 역시 뉴욕을 떠나온 지 10여 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러나 지금도 얼굴을 가린 손끝에 느껴지는 어떤 햇살의 온도에서, 길을 걷다가 발끝에서 감지되는 어떤 촉감에서, 문득 스치는 어떤 대기의 향기에서 때때로 그 여름날 그곳에서의 경험을 떠올리곤 한다.

도심 한가운데에 자리 잡은 공원의 산책로에서 조우한 예술 경험은 다시 동서남북 사방으로 뻗어 있는 직선의 도로들이 끊임없이 교차하는 맨해튼의 다운타운 곳곳으로 스며들어간다. 운이 좋다면, 지상의 복잡한 가로(街路)만큼이나 혼잡스럽게 도심의 지하를 가득 채우고 있는 상하수도 배관과 가스관, 전기 배선 등 도시 기반 시설을 관리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맨홀의 뚜껑에서도 누군가는 예술을 만난다. 로렌스 비너(Lawrence Weiner)의 작업 ‘뉴욕시 맨홀 덮개(NYC Manhole Covers)’(2000). 거리를 걷다가 우연히 발견한 맨홀 뚜껑에는 “계속되는 직선의 교차로에서(in direct line with another and the next)”라는 시적인 글귀가 새겨져 있다. 뉴욕 시민과 이 분주한 대도시에 대한 로렌스 비너의 코멘트는 비밀스럽게 도시의 일부로 스며들어 오늘도 그들과 함께 숨 쉬고 있다. 다운타운 여기저기에 흩뿌려져 자리 잡은 열아홉 개의 이 특별한 맨홀 덮개는, 마치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자리처럼, 회색빛 도시의 일상 위로 ‘내 눈에만 보이는’ 가상의 별자리를 펼쳐낸다.

뉴욕에서 예술을 만나는 것은 이렇게 일상적인 일이다. 더이상 재닛 카디프가 센트럴 파크에서 매혹적인 산책을 제안하지 않아도, 아무리 헤매고 다녀도 빛나는 글귀가 새겨진 맨홀 덮개를 발견할 수 없어도, 여전히 맨해튼 도심은 예술로 가득하다. 할렘 지역의 중심부인 125가 지하철역에서 출퇴근하는 사람들의 분주한 움직임 사이로 보이는 모자이크 벽화 작업 ‘날아서 집으로: 할렘의 영웅들(Flying Home: Harlem Heroes and Heroines)’(1996)에서는 페이스 링골드(Faith Ringgold)가 흑인들의 빛나는 문화와 그들의 오랜 역사를 들려주고, 33가 지하철역의 플랫폼에는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향하는 지친 사람들을 위해 제임스 가비(James Garvey)가 ‘올가미 고리 의자(Lariat Seat Loops)’(1997) 를 마련해둔다. 누군가는 그저 스쳐가고, 누군가는 ‘한순간’ 예술을 경험한다. 그리고 그 한순간은 그 장소를, 그 누군가의 삶을 변화시킨다.

이렇듯 모두가 공유하는 장소에서 나만이 소유(인지)할 수 있는 예술작품,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심히 지나치는 일상적인 장소에서 나만이 발견해낼 수 있는 예술작품이 무궁무진한 뉴욕이라는 도시는 그 자체로 내겐 가장 사적이고 은밀한 미술관이다. 예술작품을 수집하고 소유한다고 해서 예술을 경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눈감고 있는 사람에게 예술은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눈을 뜨면, 예술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감고 있던 내 눈을 뜨게 해준 뉴욕이라는 도시, 나만의 사적이고 은밀한 이 미술관에서 나는 그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세상을 보고, 모두와 함께 살고 있는 세상을 다시 경험한다.

김윤경(큐레이터, 아뜰리에 에르메스)

YCAM

피크닉 개관전를 준비하면서 일본 야마구치현 야마구치 시에 위치한 미디어 아트센터阣CAM(야마구치 센터 포 아츠 앤 미디어)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전시에서 선보인 작품 중 두 점이阣CAM의 커미션 워크였다.지난년 열린阣CAM 10주년 기념 전시에서  류이치 사카모토가 예술감독을 맡아 선보인 작품이다.사카모토는라는 타이틀 아래 물의 다양한 모습(안개,구름,비,얼음,강 등)을 인스톨레이션으로 표현하는 작품을 기획했다.그는 미디어 아트 그룹 덤 타임(Dumb Type)을 이끄는 다카타니 시로 및阣CAM엔지니어들과 함께 야마구치에 머물며‘Water State 1’을 창조해냈다. ‘Water State 1’을 피크닉에서 구현하기 위해阣CAM과 접촉했을 때 소속 엔지니어명 정도가 팀을 이뤄 한국에 방문하겠다고 했다.처음에는 너무 많은 인원에 난감했지만 설치 기간 동안 그들이 철저하고 효율적으로 일하는 모습의 아름다움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

YCAM에서 아티스트들은년이건년이건 충분한 기간을 머물며 그곳의 엔지니어들과 함께 창조적 상상을 구현해내기 위해 머리를 맞댄다.때로 아티스트의 테마는 그 동네의 버려진 공원같은 공동체의 문제에서 시작되기도 하고 그것이 작품으로 구현되기까지 그 지역의 전문가들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도 한다.그리고 그 과정은 꼼꼼히 기록되어 소중한 사료로 남는다. YCAM에서는 제작 랩,지역개발 랩,교육 랩 등을 설치해阣CAM에서 이뤄지는 창작 활동이 지역사회와 긴밀히 연결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해놓았다.지역 내 학교에서 관련 전공을 만들어 엔지니어를 육성해 그들을阣CAM에서 실질적인 활동을 할 수 있게 하고, 경력을 쌓은 엔지니어는 YCAM이나 일본 다른 도시의 미술관에서 테크니컬 디렉터로 일하기도 한다.어린이를 위한 워크숍을 활발히 펼치는 것도阣CAM의 인상적인 면모다. 지역 공동체와 문화 기관 간의 이러한 선순환은 그것이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인지,동시에 얼마나 값진 일인지 알기에 더욱더 경외의 마음을 갖고 바라보게 된다.

김범상(글린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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