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코메티의 은신처

회색 먼지의 왕국, 희미한 빛 아래 잘 보이지도 않는 작품들이 요요하게 떠다니는 자코메티의 은신처가 공개되었다.

사진/ Xavier Bejot

46 Rue Hippolyte Maindron

지붕을 양철로 덮어놓은 1.5평 남짓한 공간. 이름만 아틀리에지 비가 오면 곰팡이가 스멀스멀 올라와 파리지앵들이 질색하는 1층인 데다 볕도 잘 들지 않아 창고나 다름없는 공간. 25살의 청년 자코메티는 무엇에 이끌렸을까? 저렴한 집세? 조각가 앙투안 부르델에 사사하며 드나들던 그랑 쇼미에와 가까운 위치? 여하튼 자코메티는 1926년 임대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그해부터 1966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이 창고는 파리에서 유일한 자코메티만의 공간이 되었다. 그림을 그리고, 착상을 스케치하고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며 조각의 몸체를 만들고, 석고를 바르고 그러다 심심하면 벽에 낙서를 하면서 그는 그렇게 거기에서 살았다.

가난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 가난이란 이름은 1950년대부터 화려하게 주목받은 이 세계적인 예술가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미국 에이전트인 피에르 마티스의 주관 아래 전시가 열릴 때마다 작품은 날개 돋친 듯 팔렸다. 1951년에는 파리의 마에 갤러리에서 개인전이 열렸다. 그는 살아 있을 때 인정받지 못한 반 고흐 같은 케이스가 아니다. 그럼에도 자코메티는 비가 세는 데다 좁아도 너무 좁은 아틀리에에 불평을 늘어놓을지언정 거기서 떠나지 못했다. 아틀리에는 자코메티에게 바로 자기 자신이었다. 아틀리에에 드나들며 자코메티의 모델을 서기도 했던 작가 장 주네는 피카소가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예술에 관한 에세이라고 격찬했던 <자코메티의 아틀리에>로 이 창고 같은 아틀리에를 불멸의 장소로 만들었다.

조각의 몸체를 만들고 석고를 발라 완성한 자코메티의 작품.

아틀리에에서 자코메티(왼쪽)와 장 주네, 1957.

1954년 9월 1일 장 주네는 몽파르나스의 카페에서 알게 된 친구 자코메티에게 모델을 서달라는 요청을 받고 처음으로 아틀리에에 발을 디뎠다. 그곳은 회색 먼지의 왕국이었다. 석고와 대패 밥에서 나온 먼지는 낙서와 스케치로 뒤덮여 있는 얼룩진 벽, 몇 년이나 된 건지 알 수 없는 낡은 테이블, 붓과 팔레트, 심지어 유화용 기름을 담은 병에도 내려앉았다. 바닥은 아예 먼지로 보이지도 않았다. 그 먼지의 한가운데 그의 친구 자코메티는 눈을 빛내며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자코메티는 아틀리에를 뒤덮고 있는 먼지를 사랑했다. 부인 아넷 암(Annette Arm)이 유리창의 먼지를 닦기라도 하면 화를 낼 만큼 그에게 먼지는 아틀리에의 일부였다. 자코메티는 장 주네를 밀짚으로 엮은 식탁 의자에 앉혔다. 스케치를 할 동안 문단에서 촉망받는 아방가르드 작가와 예술계에서 인정받는 아티스트는 좋은 담배의 냄새, 오늘의 날씨, 지나가다 본 미인들의 얼굴 같은 시시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로부터 3년간 장 주네는 선약 없이 아틀리에에 드나들 수 있는 자코메티의 유일한 친구였다.

그에게 자코메티의 아틀리에는 지구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가공의 섬이었다. 완성된 작품들이 그야말로 되는 대로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문간 구석, 탁자 아래, 모퉁이 벽눈길이 닿는 모든 구석구석이 다 작품이었다. 먼지와 희미한 빛 아래 잘 보이지도 않는 작품들은 이곳이 아닌 다른 곳에 있는 듯 요요하게 떠다녔다. 그는 땅속에서 고대의 작품을 발굴했던 위대한 고고학자들처럼 담배꽁초를 치우면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친구의 작품을 발견하곤 했다. 거기서 장 주네와 자코메티는 그들 인생에 다시없을 아름다운 시절을 보냈다. 그는 먼지의 어둠 속에서 무언가를 끄적이고 있는 친구에게 집필 중인 작품의 한 구절을 읽어주곤 했다. 장 주네를 만나기 전부터 그의 작품 <도둑일기> <꽃의 노트르담> <엄중경계> 같은 혁신적인 작품을 좋아했던 자코메티는 그가 한 구절을 읽을 때마다 질문을 던지고 코멘트를 더했다. 그렇게 그들은 함께 작품을 썼다.

‘Portrait of Jean Genet’, 1954-1955, 73×60cm, 캔버스에 유화.

두 사람의 모든 만남이 그들에게는 영감의 원천이었다. 몽파르나스의 쿠폴이나 생제르맹의 브라스리 립 같은 지금은 전설적인 장소가 된 식당을 함께 드나들었다. 심지어 창녀촌에도 함께 갔다. 자코메티는 거기서 창녀를 스케치해 네 명의 여인 조각 시리즈와 ‘라 카주(La Cage)’를 제작했고, 주네는 창녀촌을 무대로 한 연극 <르 발콩(Le Balcon)>을 발표했다. 물론 극본의 표지는 자코메티가 그렸다. 후에 장 주네는 인생에서 만난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자코메티를 꼽았다. “자코메티가 나에게 가르쳐준 것은 먼지나 그냥 그런 보통의 것들을 대하는 예민한 감각이었다.”고 그는 회고했다.

아틀리에에서 포즈를 취한 자코메티, 1950.

인스티튜트 자코메티 전시장의 모습.

5 Rue Victor Schoelcher

아르데코 시대의 걸출한 가구 디자이너인 폴 폴로(Paul Follot)의 딸이 머물던 저택의 문이 활짝 열렸다. 2003년에 개관한 이후 자코메티 재단은 늘 베일에 가려져 있었다. 폴 폴로가 직접 장식한 아름다운 타일, 아르데코 시대의 벽지와 가구재단이 자리 잡은 저택은 소수에게만 공개된 장소였다. 자코메티 재단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자코메티 작품뿐 아니라 그의 전 생애에 관련한 개인 문서 자료를 소장하고 있다. 또한 자코메티의 가장 큰 컬렉터였던 한스 베첼러(Hans C.Bechtler)가 남긴 컬렉션을 바탕으로 한 취리히의 자코메티 재단과 함께 자코메티 작품의 진품 감정 및 보증서를 발행할 수 있는 유일한 기관이다. 자코메티 재단은 자코메티의 미망인 아넷의 꿈이기도 했다. 자코메티보다 22살 아래인 그녀는 1941년 전쟁의 한가운데 자코메티를 만났다. 그들은 1949년 파리에서 정식으로 혼인했다. 모든 천재 예술가들의 부인이 그러하듯 아넷에 대해서는 그다지 알려진 바가 없다. 평생 단 한 번의 인터뷰에도 응하지 않았다. 다만 그녀와 자코메티는 아마도 자코메티의 절친한 친구였던 사르트르와 시몬 드 보부아르처럼 서로의 사생활을 속박하지 않는 자유 연애 커플이 아니었을까 추측한다. 아넷은 자코메티의 모델이자 연인이기도 했던 카트린의 존재를 알고 있었음에도 충실한 동지 관계를 유지했다.

자코메티의 아틀리에를 재현한 인스티튜트 자코메티 전시장.

자코메티가 위암으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뜬 직후 아넷은 남편의 작품을 비롯한 모든 자료를 정리하고 보존하는 작업을 시작한다. 하지만 남편의 이름을 딴 재단을 세워 작품을 보존하려는 집념 때문에 자코메티의 형제들과 10년간 끊임없는 법정 싸움에 휘말려야 했다. 자코메티가 남편이 아니라 길이 보존해야 마땅할 위대한 아티스트라는 그녀의 의식은 놀라울 정도다. 비서 교육 외에 이렇다할 미술사 교육이나 고문서 다루는 법을 배우지 못했지만 그녀는 모든 것을 해냈다. 자코메티의 표준 작품집을 만들기 위해 자코메티의 작품을 가지고 있는 모든 컬렉터를 접촉했으며, 자코메티의 사적인 편지를 비롯해 작은 영수증 하나마저도 꼼꼼히 복사하고 정리해 리스트를 만들었다. 또 1980년대 다수 제작된 가짜 자코메티 작품의 유통을 막기 위해 열정적으로 싸웠다. 돈의 위력에도 굴복하지 않았다. 하나만 팔아도 큰돈이 되었을 텐데 죽을 때까지 단 한 점도 건드리지 않았다. 그녀가 없었다면 오늘날 자코메티 재단은 존재하지 못했다. 이렇게 한 아티스트의 모든 것을 망라한 재단은 극히 드문 케이스다. 그래서 자코메티 재단은 알베르토 자코메티 재단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아넷 암의 재단이기도 하다. 오는 10월 15일부터 2019년 1월 12일까지 자코메티 재단에서 열리는 전시 <Alberto Giacometti-Annette Messager Les Chambres>는 최초로 아넷을 주목한 전시다. 자코메티 재단을 세운 아넷을 현대미술가 아넷이 오마주한다.

‘La Cage’, 1949-1950, 43.20×11.50×10.50cm, 브론즈 설치물.

올해 자코메티 재단은 설립 이후 최초로 재단 내부를 공개하고 재단 안에 자코메티의 아틀리에를 복원해 전시했다. 자코메티와 아넷은 여러 차례 이폴리트 가의 아틀리에를 사려고 했지만 아틀리에 주인의 거절로 불발되었다. 자코메티의 사망 후 아넷은 이폴리트 가의 아틀리에를 정리하면서 담배꽁초가 남아 있는 재떨이, 돋보기, 물감이 묻어 있는 팔레트, 아직 자코메티의 냄새가 배어 있는 작은 침대 등 모든 것을 그대로 보존했다. 심지어 남편의 데생이 그려진 벽면을 통째로 오려서 떼어내 보관했다. 기가 막힐 정도의 집념이다. 언젠가는 자코메티의 아틀리에를 다시 복원할 수 있을 거라는 그녀의 꿈은 마침내 이루어졌다.

자코메티와 그의 아내 아넷, 1951.

사실 공간을 복원한다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다. 아무리 완벽하게 보존했다 한들 그 공간에 정서를 불어넣었던 자코메티는 세상에 없다. 그리고 그 공간이 품고 있던 자코메티의 정서 역시 그와 함께 세상에서 증발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복원된 아틀리에에는 그 어느 순간 갑자기 멈춰버렸던 시간이 고여 있다. 남편의 모델이 되어 간소한 식탁 의자에 앉은 젊은 아넷의 웃음소리와 자코메티의 반짝이는 눈, 그렇게 그들이 서로를 사랑하고 그리워했던 시간들은 아직도 그 안을 떠돈다.

 

※ 자코메티 재단(5 Rue Victor Schoelcher, 75014 Paris www.fondation-giacometti.fr)은 재단 사이트에서 미리 예약을 하고 방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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