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전명: 슈퍼플렉스

덴마크 출신의 컬렉티브 그룹, 슈퍼플렉스는 현대의 사회·정치적 징후를 집요하게 탐구함으로써 동시대 예술가의 새 역할을 발명했다. 경직된 세상과 현대미술의 질서에 지속적으로 균열을 내는 이 활동가들의 예술적 실천력은 결국 예술보다 삶이 더 중요함을 증명한다.

아트센터인 코펜하겐 컨템퍼러리의 ‘One Two Three Swing!’(2017) 전시 공간에서 만난 한 명의 슈퍼플렉스, 세 명의 아티스트.

올 여름, 코펜하겐 컨템퍼러리(Copenhagen Contemporary, 이하 CC)에서 그네를 탔다. 혼자서는 탈 수 없는 그네다. 생면부지의 서넛이 함께 앉아 발을 힘껏 구르면 그네가 앞으로 나간다. 순간 협력적 경험의 즐거움이 공유된다. 바닥에 누울 수도 있다. 공중에 매달린 채 하릴없이 왔다갔다하는 은색 펜듈럼에 비친 내 모습을 보다 보면 어지럼증이 엄습한다. 물론 유로 지폐 색으로 직조된 카펫에서 세계 경제가 야기하는 ‘환각’을 환유적으로 경험하거나, 그네가 은유하는 ‘시민의식’의 힘을 알아차리지 못해도, 나를 움직이게 한 이 작품 제목이 ‘One Two Three Swing!’(2017), 슈퍼플렉스(SUPERFLEX)의 것이라는 것만 알아도 되고, 그마저도 몰라도 문제없다. 이는 일 년여 전, 배전 시설이었던 테이트 모던 터바인 홀에서 전기 대신 집단의 에너지를 런던에 발산한 그네를 타본 이들에게도 공히 적용된다. “예술적 감각을 사회적 맥락으로 끌어들이고, 동시에 사회적 맥락을 예술적 감각으로 경험할 수 있다”는 문장의 실체를 몸으로 익힐 수 있기 때문이다.

코펜하겐으로 오기 전, 테이트 모던 터바인 홀에서 선보인 ‘One Two Three Swing!’.

“작업실에서 촬영할까도 했었는데, 어쩌면 장의사 사무실처럼 보일 것 같더군요.(웃음) 괜히 슈퍼플렉스가 하는 작업에 대한 잘못된 인상을 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덴마크 출신의 슈퍼플렉스는 비외른스티에르네 크리스티안센(Bj穋nstjerne Christiansen), 라스무스 닐센(Rasmus Nielsen), 야콥 펭에르(Jakob Fenger), 세 남자로 구성된 컬렉티브 그룹이다. 이들은 CC에서 포트레이트 촬영을 하자고 제안했다. 좋은 선택이었지만, 이들조차 슈퍼플렉스를 사진 몇 장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브라질의 아마존 농부들과 협업해 만든 ‘Guaraná Power’(2006). Photo: Anders Sune Berg.

슈퍼플렉스는 터바인 홀부터 브라질 아마존 농부들과 협업한 탄산음료까지, 들숨을 요리할 때 사용하는 가스로 바꾸는 바이오가스부터 코펜하겐의 공원 슈퍼킬렌(Superkilen)까지, 이민 문제를 다룬 포스터부터 실제의 수술실까지, 1993년 탄생한 이후부터 지금까지 ‘세상의 모든 가능성’을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만들어낸다. 기후 변화, 환경 문제, 대체 에너지, 예술기관, 도시주의, 이민, 전쟁, 노동, 경제, 부패, 민주주의, 권력, 기업슈퍼플렉스의 궤적은 현대사회의 기록이자 자화상이다. “저작권 문제를 많이 겪었는데, 그 즈음 오픈 소스 맥주를 만들었어요. 이 맥주의 레시피는 공유되었어요. 알코올이 이야기의 좋은 수단이 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그들의 작업실 곳곳에는 ‘If Value, Then Copy’라 쓰인 스티커가 붙어 있다.

현재 유즈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 <아티스트는 존재한다(The Artist is Present)>는 ‘복제본이 곧 원본이다’라는 새로운 명제를 주장하며, 장 보드리야르가 꽃피운 ‘진짜, 가짜 논쟁’을 전복한다. 이 야심만만한 전시의 기획은 구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알레산드로 미켈레가, 큐레이션은 현대미술계의 영원한 악동 마우리치오 카텔란이 맡았고, 전시 제목은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의 행위예술에서 따온 것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나는 악명 높은 ‘산차이(짝퉁)’ 문화를 생산적, 일상적 담론으로 향유하는 도시, 상하이에서 활개 칠 슈퍼플렉스의 화장실 작품이 가장 궁금하다. 이들이야말로 포스터 작업 ‘나는 카피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I COPY Therefore I Am)’(2011)을 신념으로 삼고 지속적으로 예술의 민주적 해방의 가능성을 탐색해왔기 때문이다.

슈퍼플렉스는 2010년 에인트호번 반 아베뮤지엄(Van Abbemuseum)의 전시를 큐레이션하며, 미니멀리즘의 대가 솔 르위트의 유명한 입방체 작품을 복제하는 ‘Free Sol LeWitt’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걸작의 복제품이 대중 아무개의 손에 들어가는 상황을 통해서, 예술세계를 점령한 작품의 거대 가치를 분해한다. 원본과 복제본 사이, 걸작, 복제본, 관객, 컬렉터를 둘러싼 흥미로운 관계 지도를 그려낸 이들은 솔 르위트의 명언을 신봉했다. “누군가 내게서 뭔가를 빌려간다면, 이는 날 부유하게 하지, 가난하게 하지 않는다. 예술가들은, 나는, 한 공동체의 일원이고, 같은 언어를 공유한다고 믿는다.”

슈퍼플렉스의 반어법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Corruption Contract’(2009).

책 한 권으로도 모자랄 만큼 다작해온 슈퍼플렉스가 특히 다양한 사회적, 정치적 작품으로 예술세계를 포함한 현대사회의 징후를 집요하게 탐구하는 아티스트로 알려진 이유 역시 자신들이 속한 공동체를 다루고자 하기 때문이다. 이들이 선택한 방식은 반어법이다. 이를테면 계약서 형태의 작품 ‘Corruption Contract’(2009~)의 의도는 이렇게 설명된다. “사회의 안정과 안전을 위협하고, 민주주의, 윤리적 가치, 정의를 훼손하며중략) 계약에 서명함으로써 고객은 부패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참여하기를 촉구하는 데 동의한다.” ‘금지’ ‘제재’와 같은 상황이 주는 생산적 잠재력을 실현시킨 이들은 더 나아가 진지하고 경직된 세상에 농담 같은 비수를 날린다.

Supercopy’ 시리즈 중 한스 하케의 작품을 차용한 ‘Supercopy/ Haacke Hermès’(2015).

이른바 ‘슈퍼플렉스식 반어법’은 다른 작가들을 차용하는 행위로도 드러난다. ‘Supercopy/ Haacke Hermes’(2015)에서 이들은 한스 하케의 ‘Blue Sail’(1964-1965)을 가져온다. 선풍기가 푸른 천 아래에서 바람을 내뿜고, 돛처럼 고정된 푸른색 천은 파도처럼 출렁거린다. 슈퍼플렉스는 원작의 푸른색 천을 가짜 에르메스 스카프로 대체함으로써 ‘작품 표절’과 ‘제품 표절’에 대한 두 가지 논쟁을 동시에 제시한다. ‘Supercopy’라는 테마를 이어온 이들은 자신의 작품을 도용하는 것도 환영이라 선언하는데, 알고 보면 ‘슈퍼플렉스’라는 이름도 어떤 배의 이름이다.

‘Hospital quipment’(2014). 실제 수술 도구로 구성된 수술실 전경이 연출되었고, 수술 도구는 가자의 한 병원으로 보내졌으며, 컬렉터는 이 사진을 받았다. Photo: Anders Sune Berg

“예술가라 불리는 건 알코올 중독자라 불리는 것과 다를 게 없다”는 그들은 스스로를 규정하길 거부함으로써 정체성을 확보하고, 다채로운 정체성은 겹겹의 메시지를 함축한 작품에 반영된다. 예컨대 ‘Hospital Equipment’(2014)는 실제 수술실과 이를 촬영한 사진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작품은 갤러리에서 삶과 죽음의 갈림길을 보임으로써 관람객을 관음의 상태로 밀어넣는다.(갤러리와 관객의 역할.) 전시 후 수술 도구는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의 한 병원으로 보내졌다.(예술품이 표현성과 기능성을 모두 획득할 수 있다는 ‘뒤집힌 레디메이드’.) 슈퍼플렉스의 작품을 갖고 싶어 안달 난 컬렉터의 손에는 수술실 사진이 쥐어졌다.(소유와 컬렉션의 의미.) 전쟁과 갈등 같은 인류적 과제부터 ‘예술작품이 오브제 안에 존재하는가, 기록 속에 존재하는가, 예술가의 행위 안에 존재하는가?’라는 본질을 겨냥한 질문까지, 슈퍼플렉스는 상관없어 보이는 주제들을 묶어낸다. 이것이 이들이 단지 박애주의자에 머물지 않고 “예술로서의 행동주의인 동시에 행동주의로서의 예술”을 펼치는 아티스트로 평가받는 이유다.

“우리는 예술이, 소통과 스토리텔링 등 모든 걸 통해 사람들이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이들을 지지하는 진짜 이유는 이어진 답에 있다. “예술가를 정치적, 정신적 존재로 추앙하는 건 농담에 가깝습니다. 예술은 권력과 가까워지는 수단으로 사용됐죠. 아방가르드는 저항과 혼란의 짧은 시기였어요. 현대의 아티스트는 우리 모두와 같은 역할을 합니다. 다만 그들은 표현하는 기술을 더 알고 있고, 직무유기 하지 않을 뿐입니다.” 이것이 우리를 ‘슈퍼플렉스’라는 작전에 공모자로 포섭하기 위한 회유책이라는 걸 눈치채긴 어렵지 않지만, 기꺼이 속아줄 생각이다. 이들이 반어법의 이면, 현대미술을 통해 인간을 초월하는 인간성에 바치는 오마주야말로 동시대인으로서 기억해야 하는 진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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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윤혜정(국제갤러리 디렉터)
사진 I DO ART AGENC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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