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적아트관점, 가면이란?

한 인물의 정체성을 감추거나 과장하고 모호하게 만들어 작가들로 하여금 현실에 관해 새롭게 접근할 수 있게 해준 가면, 그 흥미로운 소재에 대한 탐구.

John Stezaker, ‘Mask XII’, 2005, Collage, 23.8×19cm ⓒ John Stezaker. Courtesy The Approach, London. Photo: FXP photography

한사람의 정체성은 얼굴로 정의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인간은 가면을 자신의 얼굴에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하는 수단으로 사용해왔다. 고대 그리스 연극 무대에서의 가면은 연기자에게 새로운 캐릭터를 부여했다. 가면이 가진 정신적인 힘이나 위상은 권력 자체의 표현이 되기도 했다. 제의를 주관하며 ‘초월적인 신’의 임무를 수행하던 사제의 가면은 당시의 가면이 가진 사회적 역할을 보여준다. 가면은 한 인물에 사회적인 역할을 부여하며 스스로를 정의하거나 행위할 수 있는 완벽한 기회를 만들어주는 매개체로 작용한다. 반대로 일부는 가면으로 본인의 얼굴을 가림으로써 익명성을 얻고, 자신의 진실한 면모를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얻기도 한다. 가면은 미술작가들에게 정체성을 그려내거나 또는 정체성에 관한 새로운 도전이나 조작을 만들어내는 도구로서 끊임없이 흥미로운 소재가 되어왔다.

가면의 작가로도 알려져 있는 벨기에의 제임스 엔소르(James Ensor, 1860~1949)가 살았던 당시 벨기에와 네덜란드에는 중세부터 이어져 내려온 카니발의 전통이 있었고, 그가 살던 오스텐데의 연례행사 중에는 ‘죽은 쥐의 축제(Le Bal du Rat Mort)’가 있었다. 해마다 사람들은 가면을 쓰고 거리로 나와 떠들썩하게 축제를 즐겼다. 그가 그린 가면 쓴 인물들의 초상화는 그들이 가면을 쓴 인간인지 가면처럼 변해버린 얼굴을 가진 인간인지 불분명해 보이기 때문에 더욱 섬뜩해 보인다.

엔소르에게 가면은 개인을 숨기는 동시에 가면을 쓴 사람의 어리석고 이기적인 본성을 드러내는 매개체였다. 엔소르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그로테스크한 가면을 쓴 군중의 이미지는 추악하다. 엔소르는 대중을 좋은 것과 나쁜 것, 가치 있는 것과 무가치한 것을 구별하지 못하는 무감각한 대상이라고 생각하고, 가면과 해골로 대중의 모습을 표현했다. 이방인들의 군상을 표현하는 데 가면보다 자연스러운 오브제는 없었다. 가면은 참된 자아가 없는 대중에 대한 적대감과 공포의 표현이었다. 그는 자화상에서 수많은 가면들 가운데 유일하게 자신의 얼굴을 사람의 얼굴로 표현했다.

ames Ensor, ‘Skelet Arresteert Maskers’, 1891, Oli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영국의 잉카 쇼니바레(Yinka Shonibare MBE)도 유럽의 카니발을 소재로 작품을 만들었다. 그는 나이지리아 이민자 출신 작가로, 백인들의 권력 사회에 새로운 판타지를 만들어낸다. 쇼니바레의 가면무도회는 주세페 베르디의 오페라 <가면무도회(Un Ballo in Maschera)>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된 작품이다. 1792년 스웨덴의 왕 구스타브 3세가 가면무도회에서 암살당한 사건이 작품의 배경이 되었다. 쇼니바레의 2004년작 ‘가면무도회(Un Ballo Maschera)’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익명성과 보편성을 동시에 부여받고, 더치 왁스(Dutch Wax)로 제작한 유럽 고전 의상을 입고 있다. 쇼니바레는 롤랑 바르트의 신화론에 영향을 받아 ‘예술은 허구의 건설’이라는 것과 ‘예술은 가장 큰 거짓말이다’라는 것을 바탕으로 작품을 만들었다. 허구와 진실의 개념을 연구하는 쇼니바레에게 ‘가면’과 ‘분장’은 필연적인 요소였다. 영상에 연극적인 요소를 투영한 쇼니바레는 ‘과장성’의 개념을 사용한다. 작품의 배우들은 베니스 양식의 가면을 쓴 채, 춤을 반복하여 복잡하고 수수께끼 같은 장면을 만들어낸다. 작가는 카니발스러운 가장무도회를 만들고자 했다고 전한다. 실제 신분에 상관없이 카니발은 신분의 변화가 일어날 수 있던 곳이었다. 과거 베니스 카니발에서 가면을 쓴 유럽인들은 자신들의 신분을 감추고 전혀 다른 새로운 신분으로 하루를 살 수 있었다. 작품에서 권력을 다루는 쇼니바레는 이 작품에서 권력의 상징인 구스타브 3세가 가면무도회에서 암살당한 뒤, 다시 일어나서 퍼포먼스를 처음부터 30여 분간 반복하는 행위를 보여주며 권력의 파괴를 전달한다. 작가는 가면을 장치로 삼아 사회적 신분뿐만 아니라, 성별에 따른 권력의 관계에도 질문을 던진다. 암살당한 왕은 남성의 옷을 입은 여성이고 왕을 암살하는 사람도 가면무도회에 참석한 드레스를 입은 여성이다. 이 작품은 쇼니바레의 첫 영상작품으로, 그는 2004년에 이 작품으로 터너 프라이즈에 후보로 오르기도 했다.

Eko Nugroho, ‘Illusion of Hope’, 2016, Manual embroidery, 314.5×220cm, ⓒ Eko Nugroho and ARARIO GALLERY

클로드 카운(Claude Cahun, 1894~1954)은 앙드레 브르통이나 만 레이와 함께 프랑스 초현실주의 미술활동을 전개했다. 예술에서 여성의 몸은 전통적으로 모성애와 생물학적인 여성성과 성적 욕망 등을 보여주었다. 카운은 가면을 쓰고 의상을 입고, 머리를 자르고 가발을 쓴 뒤 자신의 사진을 찍어 전통적인 성 정체성 개념을 파괴했다. “가면 아래, 또 다른 가면. 나는 이 모든 얼굴들을 지워내는 것을 결코 끝내지 않을 것이다.”라는 클로드 카운의 말은 그의 작품을 가장 잘 설명해주는 말로 끊임없이 인용되고 있다. 카운의 성 정체성은 작업을 만드는 중요한 배경이다. 그녀는 자신의 몸을 이용하여 자신의 성적 정체성과 욕망을 드러낸다. ‘자화상’이라는 작품이지만 다른 주체로 이행하는 카운의 신체는 비결정적이고 성별의 구분이 모호하여 정의 내리기 어렵다. 작가는 사회적으로 성별화된 신체를 거부하며 성별과 주체의 명확한 경계를 흐리고 있다. 카운의 작품은 신디 셔먼, 질리언 웨어링 등의 현대미술 여성 작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가면 뒤편의 진실에 관해 탐구한 작가들의 작품도 빼놓을 수 없다. 영국의 존 스테제이커(John Stezaker)는 그의 대표작이기도 한 마스크(Mask) 작업을 1980년대부터 시작했다. 그의 마스크 연작은 1940~50년대 B급 영화배우의 사진에 20세기 초에 인쇄된 풍경 엽서를 콜라주하여 얼굴의 일부를 가리는 단순한 형태를 갖고 있다. 영화배우의 얼굴에 가면처럼 덧붙여진 풍경 엽서는 낭만주의 회화를 연상케하는 자연의 이미지를 주로 담는다. 그는 마스크 연작은 엘리아스 카네티의 저서 <군중과 권력>을 읽고 ’가면’과 ‘가면 벗기‘에 영향을 받아 시작했다고 전한다. 카네티는 “진정한 가면은 결코 변하지 않는 어떤 것이며 그 자체가 영속적이고 명백하게 계속적인 변신의 흐름 속에서도 항상 불변하는 것으로 남아 있다”라고 저술했다. 불변하는 가면 너머 이미지의 세계를 추구하고자 한 스테제이커의 작품의 인물은 눈이 가려진 가면을 쓰고 있다. 인물의 눈 대신, 엽서의 어둠과 공허는 가면에 가려진 인물 뒷모습을 상상하는 것을 뛰어넘어 새로운 이미지의 세계로 우리를 이끌고 있다.

Eko Nugroho, ‘The Puppet without Shadow’, 2015, Manual embroidery, 249×159cm ⓒ Eko Nugroho and ARARIO GALLERY

Eko Nugroho, ‘Belief Relief’, 2015, Fiberglas, stainless steel, iron, 210×65×65cm ⓒ Eko Nugroho and ARARIO GALLERY

반대로 인도네시아 작가 에코 누그로호(Eko Nugroho)의 작품 속 가면을 쓴 인물들은 두 눈만 그려져 있다. 누그로호 역시 가면을 착용해 얼굴에 눈만 그려져 있는 사람을 주된 모티프로 사용한다. 1998년부터 그의 작품에 항상 등장하는 얼굴의 두 눈은 인도네시아 독재정권의 몰락을 지켜본 증인의 눈과 같다. 그의 가면은 이슬람 문화권인 인도네시아의 히잡을 연상시키기도 하지만 동시에 개인의 정체성을 숨기고 다른 정체성을 드러냄을 보여주기도 한다. 작가에게 가면은 사회에 순응하기 위해 인간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숨겨야 하는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작가는 인간에게 양면성이 존재한다고 생각하여 항상 인간 형상의 캐릭터에 후드나 가면, 마스크 등을 씌워 본래 인물의 얼굴을 감춘다. 누그로호에게 가면은 정체성의 은폐와 새로운 정체성의 암시를 동시에 상징한다.

Claude Cahun, ‘I am in Training, Don’t Kiss Me’, 1927, Courtesy of the Jersey Heritage Collections

가면은 한 인물의 정체성을 감추거나 과장하고 모호하게 만들어 작가들로 하여금 현실에 관해 새롭게 접근할 수 있도록 했기 때문에 끊임없이 흥미로운 소재가 되었다. 가면은 사회에서 회자되지 못했던 주제나 작가의 욕구를 드러낼 수 있는 매개체로 작용했다. 집 안에서와 집 밖을 나설 때 입는 옷이 다르듯 우리는 ‘나’에서 ‘사회 군중의 일원’이 될 때, 가면을 쓴다. 사회적 가면을 의미하는 ‘페르소나’라는 용어는 원래 고대 그리스 연극에 사용되던 ‘가면’에서 유래했다.

급속한 미디어의 진화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사회의 가면뿐만 아니라 진화하는 소셜미디어 등 다양한 매개를 통해 더욱 많은 가면을 겹쳐 쓰고 있다. 한 평론가는 “미디어가 형성한 무대에서의 세계는 또 다른 거대한 연극”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미지와 실제, 가면의 간극과 진실을 찾아내기 위해 앞으로도 가면은 작가들에게 연구의 대상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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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황 유경(미술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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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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