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니 홀저의 비전

미국의 설치예술가인 제니 홀저(Jenny Holzer)는 지난해 말 영국에 있는 바로크 양식의 역사적인 블레넘 궁(Blenheim Palace)에서 그곳을 압도하는 대규모 조형물을 선보였다. 그 현장에서 영감과 도전이 되는 ‘문구(文句)’의 힘을 지속적으로 탐구하는 제니 홀저를 만났다.

“가장 먼저 보이는 건 몬도 그라스(소엽맥문동)가 가득 심겨 있는 수많은 화분일 겁니다.” 현대미술의 세계적 거장이자 언어를 매체로 사용하는 개념미술의 대표 작가인 제니 홀저가 블레넘 궁의 널따란 안뜰 정중앙에 서서 입구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삐죽삐죽하게 난 거무스름한 보랏빛 식물은 짙은 색 칼날 같은 인상을 주었다. 궁으로 향하는 길을 따라 줄지어 선 몬도 그라스는 다른 조경식물 대신 수경정원의 수많은 화분을 가득 채울 예정이다. “우리는 밝은 느낌을 주는 꽃들은 치워버릴 거예요.” 홀저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2000년 제니 홀저의 헬무트 랭 향수 광고 문구

‘상투어(Truism)’ 시리즈(1984) 중에서.

‘생존(Survival)’ 시리즈(1985) 중에서.

그녀에게 블레넘 궁은 화려하고 부조리하면서도 바로크적인 아름다움이 깃든 캔버스이다. 지난해 9월부터 12월까지 3개월간 홀저는 조용한 변화를 만들어냈다. 궁, 정원, 호수, 섬, 숲, 벽난로, 벽, 그리고 호기심의 방(Cabinets of Curiosities)을 새로운 작품으로 뒤덮었다. 그녀는 아이웨이웨이(艾未未), 로렌스 와이너(Lawrence Weiner), 작년에 자동차가 호수에 잠긴 작품을 선보인 미켈란젤로 피스톨레토(Michelangelo Pistoletto)에 이어 네 번째로, 그리고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블레넘 예술재단(Blenheim Art Foundation)의 초청을 받았다. 이 프로젝트는 몬도 그라스로 시작해 조명 프로젝션, 벤치, 명문(銘文), 그림, 인체의 뼈에 이르기까지 블레넘 궁을 거의 ‘점령’한다 해도 무방하다. 그리고 홀저의 물감이라고 할 수 있는 ‘문구’가 곳곳에 배치된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레지스탕스로 활동했던 폴란드 시인 안나 스위르(Anna Swir)의 시구를 궁 정면에 빔 프로젝터로 쏠 예정이며, 물망회 프로젝트를 통해 만난 영국 퇴역 군인들과의 인터뷰에서 인용한 문구도 함께 선보인다. 그녀는 블레넘 궁이 원래 1704년 블레넘 전투에서 승리한 공으로 제1대 말버러 공작에게 하사되었다는 것을 알게 됐을 때, 프로젝트 의뢰를 맡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 전쟁을 하겠어.’라고 생각했죠.”

‘기념물(Monument)’, 2008.

‘파란색과 보라색의 경사(Blue Purple Tilt)’, 2007.

블레넘 궁에서 제니 홀저

홀저는 블레넘 궁의 정교한 문턱에서 포즈를 취했다. 67세의 그녀는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 모습이었다. 키가 꽤 크지만 검은색 셔츠와 청바지 차림에 운동화를 신고 있어서인지 전혀 튀지 않았다. 궁 보안출입증에도 예술가가 아닌 ‘계약 업체’라고 찍혀 있었다. 홀저는 언제나 그랬듯 사람들 눈에 띄고 싶어 하지 않는다. 현재 미국의 중요 개념예술가 중 한 명으로 평가받지만, 확실한 길이 보장된 적은 없었다. 1950년 오하이오에서 태어난 그녀는 “대여섯 살이 될 때까지는 미친 듯이 행복하게 그림을 그렸지만 10대에는 보통 사람처럼 살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자동차 딜러였지만 그리 유능한 편은 아니었고 어머니는 ‘말을 타는 사람(홀저의 표현에 의하면)’이었으며 조부모님은 각각 의사와 간호사였다. 이와 비교해보았을 때 예술은 하찮고 비실용적으로 보였다. 홀저는 변호사가 될까 잠시 생각해보았지만, 결국은 로드아일랜드 디자인 스쿨을 졸업하고 휘트니 미술관 독립 연구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었다.

독립 연구 프로그램을 수료하면서 그녀는 그림에 고군분투하는 한편 정치적 이데올로기(극좌파에서 극우, 그리고 그 사이의 다양한 정치적 입장에 이르기까지)에 몰입해 연구했다. 또한 책 속에서 얻은 문장들을 메모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후에 ‘상투어(Truism)’ 시리즈가 되었다. 포스터에 한 문장의 경구를 프린트한 상투어 시리즈는 한밤중에 맨해튼의 건물 벽면과 담장에 붙여졌다.(‘권력 남용은 놀랄 만한 것이 아니다(Abuse of power should come as no surprise)’, ‘남자는 어머니가 되는 것이 어떤 것인지 모른다(A man can’t know what it’s like to be a mother)’ 등.) 사람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이러한 문장들이 대체 어디서 나타난 것인지 호기심을 갖도록 자극하기 위해서였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순간은 사람들이 뭔가를 발견하고 ‘어, 이게 뭐지?’ 하고 궁금해할 때입니다.” 홀저가 말한다. “그리고 그 문장을 읽고 이렇게 말하는 거죠. ‘이게 뭐지? 무슨 뜻일까? 누가 무슨 의도로 남긴 거지?’” 그녀가 싱긋 웃었다. “좋은 것이죠.”

블레넘 궁에는 ‘좋은 것’들이 훨씬 많을 것이다. 궁 안에는 벽면에 어울리는 붉은 대리석 벤치가 설치될 예정이다. 몸을 숙이고 돌에 새겨진 도발적인 인용구를 읽기 전까지는 무해한 설치 작품으로 보일 것이다. 과거 정부 기밀 문서였던 ‘강화된 심문(고문) 기술’에 관한 그림이 조슈아 레이놀즈(Joshua Reynolds)와 존 싱어 사전트(John Singer Sargent)가 그린 대형 가족 초상화 옆, 벽난로와 거울 근처에 태연하게 놓이게 될 것이다. 또한 궁의 진열용 유리 케이스 안에는 사람의 어깨뼈가 슬며시 자리할 것이다. 바로 비(非)예술적 형태로 나타내는 예술, 속임수에 의한 예술로, 가까이에서 자세히 관찰한 사람들만 알아볼 수 있는 방식을 취한다. 심지어 홀저는 궁 안 오래된 숲속에 있는 글씨가 새겨진 대형 바위까지 숨기고 싶어 했다. “사람들은 뭔가를 찾아내고 싶어 하기 마련이에요.” 그녀는 어깨를 으쓱했다. “전 수천 년간 아무도 찾을 수 없는 그런 것들을 좋아해요.”

‘일급 비밀 10(Top Secret 10)’ 시리즈, 2012.

모든 것이 다 비밀스럽기만 한 것은 아니다. 작품 중에는 규모가 상당해서 그냥 지나치기 힘든 것도 있다. 홀저는 궁 반대편 호수에 있는 섬을 가리켰다. 그곳에서 안나 스위르의 시와 물망회 퇴역 군인들의 말을 인용한 문구를 대형 프로젝터 빔으로 쏠 예정이다. 습한 날에 테스트해보았더니 멀리 우듬지까지 뻗어가는 프로젝터 빔이 보였다. 그러나 전형적인 영국의 가을 날씨를 고려하면 어쩔 수 없는 점도 있다. “만약 비가 오면 죽고 싶을 거예요.” 홀저가 메마른 어조로 말했다. 예전 설치작품 전시 때에도 자연의 영향을 받았다. 뉴멕시코 협곡의 모래폭풍이나 리버풀의 안개 때문에 전시를 망쳤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곧 생각이 바뀌었다.  “안개가 자욱해지면서 하늘에 물방울로 이루어진 스크린이 만들어진 셈이었어요. 그래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구름에 프로젝터를 쏘아 문구를 올렸답니다.”

리버풀의 안개 속에서 반짝 나타났다 사라지는 문구들처럼 찰나적인 것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그것만큼이나 홀저는 사람들이 작품을 직접 손으로 경험하길 바란다. 그녀는 미술관의 형식적인 절차나 그림 액자를 만지지 못하도록 하는 규칙 등을 무시하고 자신의 예술을 선뜻 내놓는다. 비로 인해 블레넘 궁에서의 프로젝트를 망치게 될 경우에 대비해 홀저는 방문자들이 휴대폰으로 보고 간직할 수 있는 가상현실 버전의 프로젝션을 만들고 있다. “이제 사람들은 피자를 사듯 작품을 가져갈 수 있습니다.” 그녀는 이렇게 말한 후 잠시 말을 멈췄다. “정신적인 의미의 피자죠. 어려운 피자입니다.” 안나 스위르의 시를 마르게리타 피자에 비유한 것이다.

‘어려움’은 홀저가 즐겨 택하는 요소이다. 그녀는 가차없이 단호한 스타일의 스위르와 같은 시인에게 끌린다. 자전적 요소가 담긴 스위르의 유명한 시 ‘벽에 머리를 부딪쳤다(I Knocked My Head Against the Wall)’에서 다음과 같은 시구를 인용했다. “60분을 기다렸다/처형의 순간을/배가 고팠다/60년 동안(I waited sixty minutes/to be executed./I was hugry/for sixty years)” 또한 홀저는 빛이라는 수단을 좋아한다. 시에 비해 빛은 단순하면서도 섬세하기 때문이다. “빛은 그냥 빛이에요.” 그녀가 말했다. “감촉은 부드럽고 내용물은 단단한 거죠.” 정치는 그녀와 뗄 수 없는 존재다. 영국에서 블레넘 궁을 수없이 방문하는 동안 홀저는 평소에 집중해서 보던 케이블 뉴스 대신 트럼프 행정부가 벌여놓은 이상하고 끔찍한 혼란을 시청하게 되었다. 홀저에게는 순수한 운동가적인 면모도 있지만 자신의 일과는 그다지 맞지 않는다. “예술은 참 좋긴 하지만 그다지 빠르지는 않죠.” 강박적일 정도로 언어를 사랑하는 그녀는 시위 현장에서 보이는 재치 있는 문구에는 즐거워했다. “시위대의 글귀가 끝내준다니까요. 기가 막혀요.” 그녀의 표정이 밝아졌다. “걸으면서 가장 마음에 드는 문구를 골라 살아 움직이게 하고 사람들이 휴대폰에 담아 들고 다닐 수 있게 하면 재미있을 거예요. 어쩌면 SNS를 통해서 그런 식으로 퍼져가는 것도 유쾌할 겁니다.” 새 프로젝트는 그렇게 탄생하게 되었다.

‘베니스를 위한 제논(Xenon for Venic)’ 시리즈, 1999

이러한 순간에 홀저는 왕성한 창의력을 발휘하는 것 같다. 아이디어가 매 순간 형태를 갖추고 발전하는 것이다. 그러나 평상시에는 극도의 자기비판으로 치닫는다. 그녀는 스스로를 두고 자신의 한계에 끊임없이 좌절하며 ‘완벽주의자를 꿈꾸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신념을 가진 예술가라면 완벽한 마무리는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녀가 말했다. 과거보다는 훨씬 유연해진 듯 보였다. 1980년대 후반, 젊은 예술가였던 홀저는 구겐하임 미술관과 디아 예술재단으로부터 거의 동시에 작품 의뢰를 받았고 베니스 비엔날레에 미국을 대표하는 최초의 여성으로 초청받았다. 당시 그녀는 아이도 있었다. “베니스 비엔날레가 다가올 무렵 딸아이는 제게 잔뜩 화가 나 있었어요.” 홀저가 자신의 딸을 떠올리며 말했다. “딸아이가 그럴 만도 했어요. 딸에 대한 애정은 넘쳤지만 전 매사에 느긋한 편이 아니었거든요. 아이에게 푸근한 엄마는 못 되었던 거죠. 지금은 서로 잘 지내지만 관계 개선을 위한 노력이 필요했어요.”

홀저는 유축기를 들고 아이와 함께 베니스에 갔던 날을 회상했다. 그녀는 중요한 작품 발표를 앞두고 양육 때문에 전전긍긍하는 남성 예술가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딸아이가 여섯 살일 때 홀저는 미술관 파업에 동참했다. “우리는 베를린에 있는 미술관에 있었고 딸아이는 ‘여기서 나갈래. 난 지겨워. 다신 안 해!’라고 외쳤어요.” 홀저는 웃으면서 이야기했지만 그때의 일은 아직도 그녀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듯했다. “지금도 둘이 함께 이야기를 하다가 무언가 다른 일 때문에 대화가 끊기면 순간적으로 딸아이가 한두 살이었을 때 느꼈던 그 느낌이 들어요.” 이것이 예술의 매력이지만, 죄책감이기도 하다. “베니스 비엔날레 이후에도 작업을 계속했지만 시간이 걸리더라도 안정된 가정생활을 유지하려고 했어요. 딸아이를 볼 때 움찔하고 싶지 않았거든요.”

이제 홀저는 또 다른 삶의 단계에 와 있다. 그녀의 딸이 아이를 가지면서 할머니가 된 것이다. 특히 블레넘 궁에 있을 때는 홀저 자신의 어머니가 불쑥불쑥 떠오르곤 한다. “어머니는 정원을 좋아하셨어요.” 그녀는 이탈리아풍의 한 화단을 보면서 말했다. 복잡한 울타리는 수학적 정교함을 추구한 듯 말끔히 잘려 있었다. “지칠 줄 모르던 저희 어머니 같네요. 어쩌면 제 몬도 그라스는 그렇게 끊임없이 잡초를 깎고 제초제를 썼던 어머니에 대한 일종의 헌사일지도 모릅니다.” 이는 홀저의 스타일은 아니다. 남편이자 동료 작가인 마이크 글리어(Mike Glier)와 함께 살고 있는 뉴욕 후식 폭포(Hoosick Falls)의 농가에서는 자연을 있는 그대로 놓아둔다. “우리는 잡초를 길러요.”

홀저의 어머니는 그녀에게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무엇을, 어떤 관점으로 보아야 하는지를 가르쳐주었던 것이다. “어머니는 항상 ‘이것 봐!’ 하시면서 뭔가를 보거나 알게 되는 것을 정말 즐거워하셨어요. 봄에 피는 꽃, 나뭇잎이 물드는 풍경 같은 것들을 보면서 말이에요. 길가에서 차에 치인 개를 발견할 때도 있었어요. 그러면 어머니는 ‘이것 봐!’ 하시면서 걸음을 멈추고 개를 치료해주셨지요. 그렇게 끔찍한 광경을 마주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언제나 그 상황을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이 깔려 있으셨어요.”

이는 바로 블레넘 궁에 대한 홀저의 비전이다. 사람들이 벤치 옆을 지나다가, 혹은 나무를 잠시 쳐다보다가, 또는 눈부신 궁 정면을 올려다보다가 걸음을 멈출 만큼 눈에 띄는 아름다움 너머의 어떤 것을 들여다보게 만드는 것이다. 그것은 아프가니스탄에서 복무한 군인의 기억일 수도 있고, 스위르의 황량한 시구일 수도 있다. 그것이 무엇이든 홀저는 사람들에게 호기심이나 분노를 불러일으키거나 또는 무언가 생각에 잠기도록 유도한다. 가장 좋은 것은 그녀의 어머니처럼 ‘누군가를 쿡 찌르면서 “이것 봐!” 하고 말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녀가 어릴 적 가던 걸음을 멈추고 상처 입은 개를 돌봐주었던 것처럼 어떤 행동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보는 행위가 수동적일 필요는 없다고 홀저는 말한다. “자비로운 행동으로 이어질 수도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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