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무형문화재 이수자 박민희와의 만남

박민희를 정확히 짚어 부를 명칭을 찾다가 잠시 숨을 고른다. 그를 거쳐 나오는 노래와 무대는 익지 않은 문자의 조합처럼 새롭고 특유하다.

청자는 행잉 베드에 누워 눈을 감거나 천장 가까이 매달린 화면을 통해 영상을 본다. 바닥에는 꽃과 식물이 만발해 있고 박민희는 그 사이를 노닐며 십이가사(十二歌詞) 중 하나인 ‘춘면곡’을 읊는다. 꿈결에서 깨어난 관객은 술병을 하나씩 받아 들고 캠핑 의자에 앉아 헤드폰을 쓰고 현대음악가들이 재해석한 ‘권주가’를 감상한다. 정작 박민희는 불 꺼진 무대 한편에 우두커니 서 있는다. 얼마 전 있었던 공연 <춘면곡 권주가>에서 벌어진 일이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그만의 문법으로 만들어진 무대는 어리둥절하고 매혹적이다. 이 경험을 무어라 이름 붙이면 좋을까. 박민희를 어느 범주 안에 넣고 보면 좋을까. 전자음악가 장영규, 재즈 피아니스트 조윤성, 무용가 안은미 등과 한 무대에 서고 회화와 조각을 접목시킨 전시에 참여하고 스스로 공연을 만들어 올린다. 가객이자 공연예술가인 동시에 기획자라는 수많은 명칭 속에서 그를 명료하게 수식할 수 있는 건 그가 중요무형문화재 제30호 가곡 이수자라는 사실뿐이다.

 

전통음악인 가곡의 음악 어법을 토대로 다양한 장르의 현대예술가들과 교류하여 결과물을 만든다.

중학교 때 일반 학교를 다니면서 취미로 정가를 시작했다. 국악을 배우면서 내가 되게 특별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그런 마음으로 국악고등학교를 갔는데 어릴 때부터 전공한 애들은 이미 지루함에 빠져 있었다. 나는 너무 신나고 재미있는데 애들은 왜 저러나 싶었다. 그러다 나도 전공자로서 공연을 보러 다니게 됐는데 국악원처럼 제도권 안에 있는 공연은 정말 재미가 없었다. 차라리 연습하는 반 친구의 소리를 듣는 게 더 흥미로웠다. 서양의 방식을 좇아가는 기존의 공연 방식이 전통음악과는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는 뭐가 잘못된 건지 보려고 공연에 다닌 것 같다. 이제 지원금도 받고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는 상황이 되어 평소에 눈여겨본 좋은 작업자들과 자연스럽게 함께하고 있다.

비교적 정형화된 국악을 기반으로 협업을 하고 그것을 하나의 공연으로 완성하기까지 수반되는 어려움이 있을 것 같다.

예를 들어 전혀 다른 음악을 하는 음악가에게 전통음악을 편곡해달라고 부탁했을 때 그 음악가는 결과물이 어떻게 쓰일지 잘 상상하지 못한다. 편곡된 음악을 공연의 전체적인 맥락에서 어떤 곳에 배치할지는 기획자인 나만 알고 있다. 그래서 애초에 음악 작업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접근한다. 음악 작업은 분명한데 음악을 조합하는 방식에만 머무르지 않고 오히려 안무하는 방식이나 시각 작업에 가깝게. 협업을 결정하는 순간부터 상대가 가진 스타일을 존중하고 시작하기 때문에 협업자에게는 가장 잘하는 걸 마음대로 잘해달라고 부탁한다. 서로 다른 작업에서 오는 충돌을 미리 감안하고 결과적으로 부족한 부분은 내 퍼포먼스로 채운다. 이런 과정에서 어려움은 있지만 혼자 작업하면서 얻을 수 없는 시너지를 얻는다.

1900년대 서울에서 유행했던 십이가사의 유흥성을 지금 이 시대 서울에서 풀어내는 ‘12 LAND’ 연작을 공연 중이다. <길군악>에서는 객석을 ‘뺑뺑이(Playground Roundabout)’로 만들어 구조물을 이용했고, <권주가>에서는 모바일과 리큐어(Liqueur)로 청각과 후각을 자극하는 실험을 했다.

음악은 사회 안에서 어떻게 기능하는가에 따라 장르가 변한다. 재즈가 원래 놀이를 위한 음악이었다가 클래식이 된 것처럼 십이가사도 옛날에는 아무데서나 놀면서 부르는 음악이었는데 지금은 교과서에나 나오는 박물관 음악이 되어버렸다. 사회적인 의미가 바뀌는 걸 이야기하기 위해 십이가사가 지닌 유흥성에 주목했고, 그 유흥성을 표현하기 위해 공연에 구조물을 도입했다. 클럽에 가서 놀고 페스티벌에 가는 것들이 유흥의 방식으로 고정됐는데 거기에 균열을 내고 싶었다. <권주가>는 말 그대로 술 마시는 짧은 가사의 노래다. 가사에 나오는 불로초를 모티프로 풀들을 조합해 개인 양조장에 맡겨 하나뿐인 술을 만들었다. 간결한 노래만큼 휴대성이 드러나는 공연을 만들려고 고민하다 휴대폰으로 각자가 수행해보게 하는 공연으로 만들었다. 음악을 중심으로 거기에 부합하는 방법을 찾고 쌓아 올린다.

 

현대로 전해 내려오는 전통음악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작업들이 가진 목적은 무엇인가?

전통음악은 진입 장벽이 높다. 단순히 노래와 연주만 들어도 공감대를 형성하기 어려운데 생소한 방향의 공연이 더욱 그 장벽을 높이는 게 아닐까 고민한 적도 있었다. 누군가는 설치미술이라고 말하고 누군가는 공연은 공연인데 뭔지 잘 모르겠다고 말하니까. 그럴수록 나는 서양식의 콘서트홀에서 우리나라의 전통을 노래하는 일반적인 국악 공연의 괴리감에서 멀어지려고 한다. 기존 문법 안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내 공연의 생경함이 국악은 지루하고 난해하다는 생각조차 미리 덮어버린다. 아예 없던 문법으로 낯설게 보여주면 전혀 다른 감각을 일깨울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일련의 공연들은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직접 체험해야만 충분히 감각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SNS나 인터넷을 통해 공연과 전시를 다 본 것같이 느낄 수 있는 요즘 세상에서 박민희의 작품은 찾아보기 어렵다.

인스타그램이 주요 소통 수단이 된 다음부터 고민이 많다. 유튜브나 페이스북 등 SNS를 통해 회자가 되어야 성공한 작업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조차도 전시나 공연을 안 봐도 다 본 것 같은 착각이 들 때가 있다. 심지어 직접 보지도 않고 감상에 말을 하나 얹으려는 마음까지 생긴다. 내가 하는 작업은 매체, 관람 방식이 결국 내용을 말하기 때문에 정지 화면이나 기록 영상만으로 드러내 보이면 결국 원본의 맥락이 훼손된다. 인터넷 세계에서의 관심이 절실히 필요해지면 SNS에 최적화된 작품을 만들 생각이다.

그래도 SNS는 하는가? 앞으로 예정된 일들이 궁금하다.

홈페이지 완공을 앞두고 있는데 아주 작은 힌트만 될 수 있는 사진과 영상 정보만 올릴 것이다. 공연 정보만 올리는 인스타그램(@_parkminhee)을 운영하고 있다. 정확한 시기를 정하진 않았지만 <권주가> 공연 때 함께 작업한 음악가들의 음원을 모아 EP 바이닐을 낼 예정이다. 이민휘, 위댄스의 위보, 장영규, 조월 네 음악가의 네 곡이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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