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셀 도쿠멘타의 고발

6천5백만 명의 난민들이 안전한 곳을 찾아 세계를 떠돌고 있다. 민족주의와 인종차별이 세계 곳곳에서 되살아나고 있다. 내전이 끊이지 않는 나라가 있고, 파산과 금융위기에 처한 나라도 있다. 카셀 도쿠멘타는 고발한다,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을.

그랜드투어 카셀 3교 218 - 바자

마르타 미누힌(Marta Minujín), ‘책들의 파르테논(Parthenon of Books)’, 1983/2017

그림형제의 동화가 쓰여지고 20세기 초 아르누보가 태동한, 녹음 푸르고 문화적으로도 풍요로운 독일 중부 도시 카셀은 겉보기와는 전혀 다른 비극적인 역사를 갖고 있다. 그리고 그 역사로 말미암아 5년마다 6월부터 9월까지 카셀은 ‘1백 일간의 미술관’으로 변신하게 되었다. 1930년대 나치가 집권하면서 자행된 문화 말살 행위는 이곳 카셀에서도 있었다.(당시 카셀 시민들은 나치 사상을 깊이 받아들였다.) 모던 아트가 퇴폐 미술 취급을 받고 지하실에 처박히거나 모닥불에 태워졌고 도시 중심부인 프리드리히 광장에서는 수많은 책이 불타 없어졌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당시 주요 전쟁 무기를 생산하는 거대 공장이 있던 카셀은 집중 폭격으로 도심 건물의 90퍼센트가 파괴되었고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이에 1955년, 건축가이자 화가인 아놀드 보데는 폐허 위에 재건되는 도시를 예술로 치유하고 부흥시키기 위해 미술 행사를 기획한다. 나치의 미학적 범죄에 대한 속죄와 예술적 자유를 기념하기 위해 당대의 지성과 생각을 연출하고 가르치며 또한 문서로 기록한다는 뜻을 지닌 라틴어 ‘도쿠멘툼’에서 유래한 ‘도쿠멘타’를 명칭으로 삼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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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누 세네토글루(Banu Cennetoğlu), ‘BEINGSAFEISSCARY’, 2017

카셀에 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프리드리히 광장에서 이번 ‘도쿠멘타 14’의 ‘얼굴’ 격인 마르타 미누힌의 ‘책들의 파르테논’을 보는 것으로 일정을 시작한다. 아르헨티나 출신의 작가는 1983년 독재 정권이 무너진 후 그리스인들이 ‘민주주의’라는 단어를 만들었던 파르테논을 본떠 철골 구조로 신전을 만든 후 금서로 지정되었던 3만 권의 책을 기증받아 외벽에 붙였다. 유튜브에서 찾은 영상에서 미누힌은 말했다. “전시 후에는 사람들에게 그 책들을 가져가게 했다. 책이 없는 민주주의는 민주주의가 아니다. 그 누구도 책을 금지할 권리가 없다. 아이디어를 금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1980년대의 작품을 재설치한 ‘책들의 파르테논’ 맞은편에는 1779년 지어진 유럽 최초의 박물관이자 이후 도서관으로 사용되었던 카셀 도쿠멘타의 주요 전시장 프리데리치아눔이 위치해 있다. 나치 정권이 광장에서 불태웠던 책들은 바로 이 도서관의 장서였다. 거대한 크기의 ‘책들의 파르테논’과 아테네 판테온 신전을 본뜬 이오니아식 기둥의 프리데리치아눔이 나란히 있는 모습은 재미있는 앙상블을 이루며 ‘도쿠멘타 14’의 주제가 ‘아테네로부터 배우기(Learning from Athens)’라는 것을 상기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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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자, ‘보따리’,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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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타스 바로소스(Costas Varotsos), ‘Untitled’, 2017

중동과 북아프리카에서 끊임없이 이민자가 유입되고 있어 사회 문제로 대두된 그리스는 유럽연합으로부터 지속적인 구조조정 압력을 받고 있고 무기 거래 계약 등의 문제로 독일과 껄끄러운 상황이다. 이런 시점에 ‘도쿠멘타 14’의 아담 심칙 예술감독은 “단지 그리스라는 국가의 문제를 초점으로 두는 것이 아니라, 정치·문화적 힘겨루기의 구조와 병행하는 북쪽과 남쪽에 대해 생각해본다”며 카셀(9월 17일까지)과 아테네(7월 16일까지)에서 동시에 행사를 개최한다고 발표했다. 이에 대해 ‘도쿠멘타는 아테네의 경제 위기를 악용하고 있는가?’라는 제목의 기사가 나오기도 했고 퍼블릭 오픈과 동시에 전시장 인근에서 그리스 연대의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심칙이 말한 남쪽은 이민자들이 오는 가난한 곳이며, 북쪽이란 상대적으로 잘사는 복지국가라고 할 수 있다. “남과 북은 일방적으로 가르치거나 도와주는 것을 넘어서 서로 간 입장에 대한 근본적 이해가 필요하다. 이러한 이해를 돕기 위해 여러 작가들을 두 도시에 초대하여 그들의 여행 경험을 토론의 장으로 이끌 것이다.”(<미술 세계> 7월호에서 인용)

이레나 하이둑(Irena Haiduk), ‘9시간 지연(Nine Hour Delay)’, 2012-18

프리데리치아눔에서 열린 아테네 국립현대미술관(이하 EMST) 소장품 전시는 이러한 기획 의도를 관철시키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보였다. 입구에 들어서자 그리스 작가 안드레아스 안겔리다키스의 거대한 탱크 모양 설치물인 ‘Polemos’가 육중한 분위기를 자아냈고(사실 이 탱크는 폼과 비닐 모듈로 만들어졌다), 또 다른 그리스 작가 블레시스 카니아리의 머리 없는 인체 조각이 눈길을 잡아챘다.(바닥에는 초크로 번호 대신 노동이민정책을 암시하는 단어가 적혀 있다.) 2층에 올라가자 난민 텐트 형태의 작품 에밀리 제시어의 ‘1948년 이스라엘에 의해 점령 당하여 파괴되고 말살된 418 팔레스타인 거주지에 대한 기념비’ 뒤로 켄델 기어스의 ‘Acropolis Redux(The Director’s Cut)’가 날카로운 빛을 발했다. 프리데리치아눔에는 전쟁이 가득했고, 나로서는 그 많은 비극의 맥락을 읽어내기가 쉽지 않았다.

마리 쿨 파비우 발두치(Marie Cool Fabio Balducci), ‘Untitled’, 2003

5년마다 열리는 카셀 도쿠멘타는 지난 도쿠멘타 이래로 5년 동안 벌어진 민감한 정치·사회적 화두를 총체적으로 조망하고 성찰의 차원으로 끌어올린 작품들을 선보인다. 작가의 이름이 브랜드 네임처럼 인식되는 유명한 작품들을 보며 아는 척할 기회도 없고, 셀카의 배경이 될 만한 작품을 찾기도 쉽지 않다. 카셀 전역에 포진한 35개의 전시 공간에 설치된 잘 알려지지 않은 아티스트 1백60여 명의 2백여 점의 작품들은 시각적 스펙터클을 제공하기보다는 이 시대의 ‘불확실성’을 고발하고 일깨우는 데 총력을 기울인다.

6월 7일, ‘도쿠멘타 14’의 첫 공식 행사인 프레스 컨퍼런스에서 비상임 큐레이터 보나벤트라 니콩은 말했다. “불확실성은 2015년 이후 심각해진 난민 문제와 더불어 ‘그들’이 경제적으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지, 얼마나 생산적인지, 우리에 속할 수 있는지 등 그들과 우리를 구분 짓는 자기 검열을 낳았다. 나아가 사회적 불안정성은 개인과 개인, 의료 보장 등 개인과 사회 간의 관계가 무너지면서 당신이 누구인지, 과연 당신이 우리에 속해 있는지와 같은 질문을 던지며 사회의 불안을 초대하고 있다. 문제는 신자유주의와 인종주의 속에서 불확실성이라는 위기가 오늘날 규범으로 자리 잡아 타자를 향한 증오와 폭력을 낳는다는 것이다. 이 상황 속에서 예술은 스스로를 방어하며 저항해야 한다. 기억은 이미 방향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기존 제도 및 관념을 모두 잊고 어떻게 함께 살 것인지를 새롭게 조정해야 한다. 타자를 투영하는 대신 우리 자신을 제시하면서 스스로가 누구인지 질문을 던져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도쿠멘타 14’의 전시장을 불확실성의 장소로 제안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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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리아 비쿠냐(Cecilia Vicuna), ‘Karl Marx’, 1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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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와 카(Hiwa K), ‘이미지를 발산할 때(When we were Exhaling Images)’, 2017

피부로 와닿지 않던 난민 문제가 가장 실감된 순간은 도쿠멘타 할레 전시장 앞에 설치된 이라크-쿠르드족 출신 작가 히와 카의 ‘이미지를 발산할 때(When We Were Exhaling Images)’를 감상하면서였다. 제품 디자인을 전공하는 학생들과 협업한 이 작품으로 작가는 아놀드 보데 상을 받았다. 지름 90cm, 길이 10m의 파이프를 가로 5개, 세로 4개로 수평적으로 쌓아 올리고, 학생들에게 자신이 사는 공간이라고 생각하고 파이프 안에 물건을 채우도록 한 작품은 실제로 그리스의 국경 지역에서 난민들이 생사를 걸고 이탈리아로 넘어가기 전에 몇 주간 지내는 임시 거주처에서 차용한 것이다. 작업 설치 이후의 원래 계획은 실제로 사람들이 파이프 안에 들어와 수직적 삶이 아닌 수평적 삶을 경험할 수 있도록 에어비앤비에 등록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난민 위기를 직접적으로 얘기하면서 누구나 가던 길을 멈추고 호기심 어린 눈으로 작품을 뜯어보게 한 친근하고 좋은 작품이었다. 도큐멘타 할레 안에도 미소를 머금게 하는 작품이 있었다.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북쪽의 북극 근방 토착민인 사미족 아티스트 브리타 마라캇-라바의 ‘이야기(Historja)’가 그것이었다.

북유럽 국가의 식민주의로 인해 갈라진 채 하나의 독립된 국가로 인정받지 못하는 사미족의 순록 농사 관습을 24미터 길이의 리넨에 자수와 페인팅으로 담았다. 작품은 지평선을 본떠 전시장을 길게 가로지른다. 한 부분을 뚝 잘라 소유하고 싶을 정도로 사랑스러운 그림이 작물과 가축을 이용한 농업에 의지하고 어업을 일구는 부족의 생활상의 역사를 설명해주었다. 눈 쌓인 툰드라 숲 사이를 뛰어다니는 순록의 무리, 여우와 곰, 색색의 털모자를 쓰고 스키를 타고 달리는 사람들…. 이 아름다운 작품은 사미족의 우주론으로 끝이 난다.

‘도쿠멘타 14’의 큐레이터들은 사회적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예술에서 찾으려는 예술의 오랜 역할을 고찰했다. 특히 노이에 갤러리의 전시는 역사를 기억하는 예술의 방법론에 대해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전범 국가인 독일에서 이토록 통렬한 전쟁에 대한 비판을 만날 줄은 몰랐다. 가장 ‘도쿠멘타’다운 작품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들로부터 불법적으로 빼앗은 2만여 권의 책으로 갤러리 3층 공간을 도서관으로 만든 독일 작가 마리아 아이히호른의 ‘Rose Valland Institue’였다. 나치에게서 수많은 미술품을 구한 프랑스 미술사학자의 이름을 딴 이 프로젝트는 오랜 시간 정부와 기관의 책임에 한정돼 있었던 예술품 반환 문제 해결에 대중의 도움을 청한다. 한쪽에는 나치가 약탈한 예술작품인 구를리트(Gurlitt) 컬렉션과 관련된 문서들도 있었다.(아담 심칙은 구를리트 컬렉션을 도쿠멘타에서 전시하려고 했으나 불발되었다.) 폴란드 작가 피오트르 우클란스키의 사진 설치작업 ‘진정한 나치들’은 독일 나치정권의 주요 인물들과 이들이 촉발한 제2차 세계대전에서 전사한 군인들의 이미지를 히틀러를 중심으로 조합해 한 벽면에 가득 채운 직설적인 작품이었다.

그옆에 오랫동안 잔상이 남는 로렌자 보트너의 자화상도 있었다. 자신을 트랜스젠더 여성이라고 규정하는 작가는 어린 시절 송전탑에 올라갔다가 받은 전기 충격으로 두 팔을 잘라야 했다. 고향인 칠레를 떠나 카셀에 정착하게 된 그녀는 카셀 예술대학에서 발과 입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을 배웠다. 공공장소에서 그림 그리는 퍼포먼스를 하기도 하는 작가의 제법 큰 초상화 작품이 관객들에게 에네르기파를 발사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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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아이히호른(Maria Eichhorn), ‘Rose Valland Institute’, 2017

프리데리치아눔이나 노이에 갤러리를 비롯한 주요 전시장 이외에 시내 곳곳에 자리한 35개의 장소는 원래 다른 기능으로 이용되던 공간으로 구글맵에도 나오지 않는 곳이 허다했다. 대표적인 곳이 1970년대 카셀의 중앙우체국이자 우편물 유통 센터로 사용되던 노이에 노이에 갤러리였다. ‘카셀의 터빈홀’이라고 불린 이곳은 19~20세기에는 무기를 생산하는 공업지역이었던 카셀 북부에 위치해 있다. 중심부와는 불과 30여 분 거리이지만 슈퍼에선 양젖 우유를 팔고 터키 디저트를 먹을 수 있는 곳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무기의 수요가 없어지고 공장이 가동을 멈추면서 이민자들이 몰려오고 비균질적인 지역이 되었다. 노이에 노이에 갤러리를 비롯한 이 지역의 전시 장소에서 선보이는 작품들은 전쟁과 이민자들의 유입이라는 역사 그리고 오늘날 사회에 대한 책임을 보여준다. 나는 이처럼 장소를 전시 공간으로 다시 사용하는 것을 재분배의 행위라고 본다.

도쿠멘타 14는 전시를 통해 장소의 기능을 전환하고 있다.”(큐레이터 헨드릭 포커츠) 프리데리치아눔, 노이에 갤러리와 함께 도쿠멘타 14의 주요 전시 공간인 노이에 노이에 갤러리에는 본격적으로 이민자를 주제로 한 작품들이 모여 있었다. 팔레스타인 작가 아흐람 시블리가 카셀의 이민자들을 세대별로 연대기 순으로 찍은 50개의 초상 사진, 2006년에 21살의 나이로 이 동네에서 독일 테러리스트들에게 총살 당한 터키 태생 무슬림인 할리트 요즈갓 사건을 추적하는 텍스트-비디오 설치작, 순록의 머리뼈 2백 개를 이어 붙여 강제로 추방된 토착민의 삶을 상징하는 마레 안느 사라의 작품 등이 거대한 창고 같은 공간에서 역사의 증거처럼 관람객을 맞이했다. 기분을 환기시킬 겸 카셀의 쇼핑 지구인 쾨니히 광장으로 이동했다. 나이지리아 출신 작가 올루 오키베의 15미터 높이의 콘크리트 오벨리스크 ‘이방인과 난민을 위한 기념비’가 우뚝 서 있었다. 무뚝뚝한 회색 조각 위에 금색의 아랍어, 영어, 독일어, 터키어로 “나는 낯선 자였고 당신이 나를 받아들였다.”라는 신약 구절이 새겨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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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사진Choi Dah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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