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펜하겐 컬렉터

코펜하겐에 사는 스틴 바크만의 삶은 ‘컬렉팅’의 개념을 재고하게 한다. 스스로 컬렉터가 아니라 말하는 그의 태도는 미술을 비롯한 예술의 본질을 교묘히 관통한다. 그리하여 ‘어느 평범한 컬렉터 아닌 컬렉터의 고백’.

스틴 바크만과 그의 애견 애플의 모습. 멕시코 출신 에두아르도 테라자스의 작품 ‘Possibilities of a Structure: Cosmos 1.1.26’(1975-2015). 작가는 지난 1968년 멕시코 올림픽 때 공식 포스터 등을 디자인했다.

“컬렉팅은 사회적으로 칭찬받을 수 있는 유일한 탐욕의 형태다.” 현대 광고계의 대부이자 아트 컬렉터 유진 M. 슈와르츠(Eugene M. Schwartz)는 생전 <뉴욕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온 시대를 거쳐 컬렉터는 존재했지만, 내게는 컬렉팅이라는 행위의 본질을 꿰뚫은 동시에 자기 이름을 딴 미술관을 남기겠다는 ‘탐욕’을 접고 크고 작은 기관에 수백 점의 작품을 고루 기증한 그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어쨌든 덕분에 그는 본업에서 쓴 책 <Breakthrough Advertising>보다 <Confessions of a Poor Collector> 같은 책으로 더 유명하다. ‘어느 가난한 컬렉터의 고백’이라는 책 제목에서 ‘고백’이란 고품격 컬렉팅을 향한 노하우가 아니라 ‘미술작품을 모으는 자’의 기본 자세 혹은 마음가짐에 대한 조언이다.

덴마크 출신의 젊은 작가 레아 글리테 헤스테룬드의 대리석 작품 ‘Untitled’(2017).

만약 코펜하겐에 사는 컬렉터, 스틴 바크만(Steen Barkmann)이 비슷한 류의 책을 쓴다면 ‘어느 컬렉터 아닌 자의 고백’ 정도의 제목이 적당할 것이다. 그는 인터뷰 내내 “나는 컬렉터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준비해둔 질문지나 유진 슈와르츠를 아느냐는 구차한 질문은 접어둔 채 다른 걸 알아내야 했다. 이를테면 덴마크의 건축사가 담긴 고급 빌라 건물의 3층에 위치한 가정집에 70여 점의 작품을 배치해둔, 덴마크에서 한국 미술작품을 가장 많이 소유하고 있을 뿐 아니라 가장 잘 아는, 전 세계 숨은 미술가를 사랑하는 그가 컬렉터가 아닌 이유. 혹은 그의 올 하반기 여행 동선이 각종 페어를 향하는 웬만한 갤러리스트의 그것과 겹치고, 미술시장에서의 자신의 역할을 생각해보지 않았다면서 덴마크 혹은 코펜하겐의 아트 신에 어떤 식으로든 기여하고 있는 이유. 그러므로 컬렉터인 그가 자신은 컬렉터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진짜 이유 말이다.

“불에 탄 이 덴마크 국기는 1976년생 노르웨이 작가 가르다르 에이데 에이나르손(Gardar Eide Einarsson)의 작품 ‘Burned Black Flag’예요. 사회적 차원의 사연을 갖고 있죠. 10년 전쯤, 극우 이슬람의 영향이 사람들로 하여금 발언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내용의 기사를 덴마크 신문이 게재한 적 있어요. 무하마드를 그리는 10명의 화가를 비밀리에 찾았고, 우리가 얼마나 억압되어 있는지 이야기했죠. 그러자 무슬림들이 덴마크와 노르웨이 대사관에 불을 질렀고, 그 시위는 3~5년 후까지 이어졌어요.” 우연인지 필연인지, 그 맞은편에는 스페인 작가 산티아고 시에라(Santiago Sierra)의 작품 두 점이 놓여 있다. “그도 굉장히 정치적인 데다 괴상한 걸 많이 만들어요. 작업 과정을 담은 유튜브 영상도 있죠. ‘Person Paid to have a 30cm line tattoed on them, regina street #517’은 남아프리카에서 노동 인력을 사들여 만들었고요. 때로는 노동자들을 줄 세워 그들 몸 위에 선을 그리기도 해요. 돈으로 얼마든지 사람들을 살 수 있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죠.” 바크만은 블랙 앤 화이트의 작품으로 채워진 집무실에 가브리엘 쿠리(Gabriel Kuri)의 돌 작품 ‘Insulated Horizon Loop’(2005)을 둠으로써 작품들이 내포하는 ‘올바른 정치성으로 점철된 일상’의 무게에 방점을 찍었다.

단색화 작가들의 작품이 모인 거실. (왼쪽부터) 권영우의 ‘Untitled’(1980), 하종현의 ‘Conjunction No. 13-134’(2014), 박서보의 ‘Ecriture No. 150927’(2015).

왼쪽 작품은 가브리엘 오로즈코의 ‘Heráldico azul’(2013), 책장 아래 두상 작품은 미카엘 크비움의 ‘Amatør(III)’ (2008).

(왼쪽부터 차례대로) 로랑 그라소의 ‘Studies into the past’(2015), 스웨덴 작가 루노 라고마르시노의 ‘They watched us for a very long time’(2014), 미국과 쿠바 작가 알로라 & 칼자디야의 ‘Shape Shiter’(2013), 오른쪽 아래 유리 작품은 안 베로니카 얀선의 ‘Ice Blue Bar’(2017)

컬렉터의 공간에 들어설 때마다 느끼는 공통의 감정이 있다. 컬렉팅은 규모와 품질의 경제학을 공히 갖추어야 하는 까다로운 궁극의 영역이라, 작가의 유명세에, 작품의 희귀성에, 작품의 수에, 이 모든 걸 소유했다는 사실에 일단 압도되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의 지극히 사적이고도 질서정연한 우주에서 이방인이 길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경외감을 극복한 공감이 필요하다.

스틴 바크만의 집 구석구석을 함께 돌아본 세 시간 동안 그간 몰랐던 작가를 여럿 알게 되었다. 폐허가 된 유령 도시 디트로이트 산 사포로 작업한 알로라 & 칼자디야(Allora & Calzadilla), 로니 혼과는 또 다른 느낌으로 유리와 색의 취약함을 표현한다는 벨기에의 안 베로니카 얀선(Ann Veronica Janssens), 대리석으로 작업하는 30대 덴마크 작가 레아 굴리테 헤스테룬드(Lea Guldditte Hestelund), 괴상한 사진을 찍는 노르웨이 작가 토르비에른 뢰란(Torbj穋n R盥land), 독일 작가 줄리아 할러(Julia Haller), 루마니아의 형제 작가 게르트 & 우베 토비아스(Gert & Uwe Tobias), 지난 베니스 비엔날레 이탈리아 관을 대표한 로베르토 쿠오이(Roberto Cuoghi), 나무로 회화 같은 조각을 만드는 미국 작가 매슈 로네이미술계가 세상보다 더 넓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유명 작가만을 좇는 근시안적 행태를 반성하게 한 존재들의 향연. 스틴 바크만은 ‘가장 좋아하는 작가’를 묻는 질문을 회피함으로써 대신 “예술에서 유일하게 중요한 건 예술 그 자체”임을 답했다. 동시에 그의 이런 태도는 이 미술품들의 가치와 세 아들의 매년 모습을 담은 수십 장 사진의 가치를 동급으로 만든다.

가브리엘 쿠리의 ‘Insulated Horizon Loop’(2014).

침실에 놓인 하종현의 ‘Conjunction No. 15-101(A)’(2015).

“나를 매료시키는 작품”이 컬렉션의 유일한 기준이라는 스틴 바크만은 몇 년 전부터 한국의 현대미술에 몰두하고 있다. 특별한 계기는 없었다지만, 이미 그의 집에는 한국 작품들이 종종 눈에 띈다. 한가로이 놓인 파브리셔스 & 카스톨름(Fabricius & Kastholm)의 이지체어 뒤에 걸린 이우환의 ‘Dialogue’(2015), 침대 머리맡을 장식한 하종현의 푸른색 ‘접합’(2015), 한 방에 모인 하종현, 박서보, 권영우의 작품들, 뱅앤올룹슨의 스피커와 한 쌍처럼 배치된 박서보의 ‘묘법’(2015), 흰 창틀 옆 흰 벽에 걸린 김용익의 ‘절망의 완수’(1994-2002), 미얀마에서 온 불상 위에 걸린 박찬경의 흔치 않은 조각 ‘밝은 별’(2017) 등은 심지어 한국에 사는 아무개 컬렉터의 집에서도 경험하지 못할 진귀한 풍경을 연출한다.

평생을 코펜하겐에서 산 스틴 바크만이 한국미술 애호가라는 사실은 꽤 다중적인 의미를 지닌다. 가깝게는 한국인들이 선호하는 북유럽(북유럽풍이 아니라)의 라이프스타일에 한국미술이 이렇게 잘 어우러질 수 있다는 사실부터 멀게는 세계 미술시장 내에서 한국미술이 시사하는 가능성과 방향성에 대한 문제까지, 한 사람의 존재가 일종의 단서가 된다. 한국미술의 존재 역시 스틴 바크만의 미술에 대한 관심과 열정을 획기적으로 증폭시킨 계기가 되었음은 물론이다.

이반 나바로의 ‘The Beginning of the End’(2014).

덴마크 가구 디자이너 파브리셔스 & 카스톨름이가 디자인한 이지체어 ‘FK 87 Grasshopper’와 함께 배치된 이우환의 ‘Dialogue’(2015).

지난 8월 말 스틴 바크만은 코펜하겐 코드 아트페어 기간에 맞춰 지인들을 초대했다. 당연히 그중에는 그를 통해 한국미술을 처음 접한 사람들도 있었다. 그럼에도 이 사업가는 “그저 많은 미술작품을 사는 평범한 덴마크인”이라고 겸양을 떤다. 그의 말이 맞다. 미술작품을 구입하는 건 어쩌면 가장 간단한 반면, 미술이 누군가의 삶에 미치는 영향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는 점에서 그렇다. 어떤 미술작품을 구입한다는 건 작품뿐 아니라 그것이 열어젖히는 다른 세계로의 진입 혹은 접근 가능성, 그리고 이를 통한 새 경험을 획득하는 행위다. 그렇게 스스로 터득해낸 ‘고유한 안목(Great Eye)’으로 발굴한 가장 아름다운 작품, 가장 뛰어난 작품 그리고 자신을 가장 깊이 감동시키는 작품 앞에서 매일 큰 숨을 고른다는 그가 컬렉터 아닌(그 이상의) 컬렉터인 이유다.

본인이 컬렉터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나는 스스로를 컬렉터 혹은 미술계의 한 요인으로 여기지 않는다. 그저 미술에 관심 있고, 2012년부터 그래 왔듯, 좋아하는 것들을 어느 정도 구입할 수 있는 사람일 뿐이다. 다양한 아트 페어에 가고 꽤 많은 양의 작품을 산 덕분에 컬렉터로 알려지게 된 건 소수의 덴마크인만이 이렇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종의 컬렉터이긴 하겠지만, 보통 나 스스로를 그렇게 여기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불러야 할까?

글쎄. 미술애호가?(웃음) 어렵다. 미술작품을 구입하는 것과 컬렉터가 되는 것에 대한 분명한 선이 없다. 뚜렷한 비전과 목표의식에 따라 컬렉팅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그의 아내가 말했다. “스틴은 어떤 일의 중심이 되는 것도, 무언가를 자랑하는 것도 그리 좋아하지 않아요.”)

말한 대로, 보통 컬렉터들은 특정의 분명한 목적을 갖고 있기 마련이다. 컬렉터이길 거부하는 건 확고한 목적성이 없기 때문인가? 혹은 그저 당신이 좋아하거나 흥미를 끄는 것을 구입하기 때문인가?

그 두 가지의 중간 지점에 있다. 작품을 이만큼 사들인 건 6년 정도 됐는데, 여전히 이 작품들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예를 들어 일반 관객과 달리 컬렉터는 개념적인 면은 물론 아름다움과는 또 다른 차원의 심미성도 고려한다. 중요하게는 컬렉터는 이런 평범한 집에 절대 어울리지 않을 법한 것들을 산다. 나는 둘 모두에 포함되지 않는다. 컬렉터가 되기로 결심한 적도, 의도도, 목적도 없다. 그저 작품을 계속 샀을 뿐이다. 나만을 위한 것이고, 내가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럼 이 집에서 특히 마음에 드는 공간은 있나?

없다.(웃음) 아파트 레이아웃이 다채로워 덕분에 방마다 다른 분위기를 낼 수 있다. 아내가 반대할 때만 제외하면, 작품을 걸 때도 특별한 기준이 없다. 벽과 작품의 크기에 따라 다를 뿐이다. 일 년에 한 번쯤 집에 있는 작품들을 바꾼다.

예컨대 부처상과 배치된 박찬경의 조각 작품이 너무 잘 어울려, 나조차도 그의 작품을 다시 들여다봤다. 박찬경의 작품을 어려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의 좋은 예시랄까.

동감한다. 물론 미얀마에서 온 부처상이 없었거나, 다른 장소였다면 달라질 수도 있었다고 본다. 하지만 사실 작품 자체로도 꽤 아름답다. 게다가 현재 한국미술에 대한 지대한 관심 덕분에 상대적으로 젊은 세대의 작품을 구입하고 싶다. 박찬경이 그다지 젊지는 않지만, 그래도 젊다.

부처상과 매치된 박찬경, 김상돈의 ‘Bright Stars 2’(2017).

로랑 그라소의 ‘Anechoic Wall’(2016).

처음 어떤 계기로 한국미술을 접하게 되었나?

4년 전인가, 이우환의 작품을 처음 아트 바젤에서, 몇 달 뒤 일본 나오시마에서 만났다. 그곳에서 목격한 경이로운 그의 작품은 정말이지 한국미술에 눈뜨게 했다. 2014년 가을 FIAC에서 그의 작품을 다시 봤고, 이듬해 첫 한국 회화로 구입했다. 이후 한국 작가들의 작품을 꾸준히 찾게 되었다.

한국미술의 어떤 점에 특히 주목해 컬렉팅을 이어가고 있나?

역사와 문화가 응축된 특유의 미니멀리즘에 매우 끌린다. 유럽 작가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재료를 사용한다. 같은 아시아라도 예컨대 중국미술은 일반적으로 훨씬 거칠어서 나를 매료시키지 못하는 반면, 한국 작가들만의 단순함과 정확성은 스칸디나비아식 표현법을 상기시킨다.

그중에서도 좋아하는 작가를 꼽으라면?

단색화 계열의 기성세대 작가들을 좋아한다. 이우환, 권영우도 그렇지만 특히 하종현은 가장 좋아하는 작가 중 한 명이다. 최근 알게 된 김용익도 굉장히 흥미롭다. 그러나 ‘가장 좋아하는 작가’를 꼽긴 힘들다. 특정 작가의 작업을 다수 구입하지만, 꼭 가장 좋아하는 작가들의 것은 아니다.

질문을 바꾸어보자. 영원히 버리지 않을 거라 자신하는 작품이 있나?

침실에 하종현 작품과 마주보고 있는, 덴마크 여성작가 피아 안데르센(Pia Andersen)의 그림이다. 아내가 결정했는데, 초기의 컬렉션 중 유일하게 남은 것이다. 여전히 매우 특별한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끝까지 이 집을 떠나지 않을 작품이다.

최초의 컬렉션은 무엇이었나?

핀 뉘고르(Finn Nygaard)라는 덴마크 작가의 작품. 메인 작업은 포스터지만, 회화작업도 겸한다.

컬렉팅할 때 가장 먼저 고려하는 점은 무엇인가?

내게 평온함을 주어야 한다. 당연히 가격도 중요하다. 너무 형형색색이거나 표현주의적인 작품은 웬만해서는 고려하지 않는다.

요즘 컬렉터의 곁에 있는 아트 어드바이저의 활약이 대단하다. 가장 든든한 동료는 누구인가?

내 의견이 85%를 차지한다. 그리고 코드 아트 페어를 큐레이팅한 캐롤라인 보이에(Caroline B瞟e)도 있고, 닐 스택(Nils St駕k), 국제처럼 특별한 관계의 갤러리도 있지만, 당연히 아내가 중요하다. 침실에 놓인 하종현 작품이 내가 산 그의 첫 작품인데, 거실에 두려다 아내의 조언으로 침실로 바꾸었는데 최고의 선택이었다. 물론 의견이 상반되기도 한다. 와인 창고에서 본 건 미카엘 크비움(Michael Kvium)의 그림이다. 한 8~9년 전 그의 작품을 샀을 땐 아내가 아예 천으로 덮어두었다. 나는 기괴함에 열광하는 반면, 아내는 그렇지 않다. 물론 오래 보면 피곤해지는 그림이라는 건 인정한다.(웃음)

한국 작가들은 물론이고, 외국 작가들에 대해서도 당신을 통해 알게 되는 이들이 많을 것 같다.

자주 그렇다. 그리고 굉장히 긍정적으로 반응한다. 크고 작은 페어가 워낙 많아졌기 때문에 무엇을 컬렉팅할지 아는 게 중요하고, 그 안에서 다시 선택을 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내가 국제갤러리를 만난 건 행운이었다. 덕분에 다른 많은 것들을 걸러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페어장 혹은 화이트 큐브는 이런 일상적인 공간과는 태생이 다르다. 때문에 막상 작품을 집에 두었을 때 생각이 달라질 때도 있을 것 같은데, 그런 적이 있었나?

두세 달 후에 아닌 경우도 있다. 이유는 모르겠다. 그냥 통하지 않는 거다. 작품이 에너지를 다했거나, 다른 작품과의 기싸움에서 진 것일 수도 있고. 사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건 처음부터 나를 먼저 불편하게 하는 작품이다. 덴마크에서는 “신발에 돌이 있다”고 표현한다. 분명 좋아하지 않는 불편한 뭔가가 있는데, 점차 익숙해지면서 진가가 보이는 경우가 꽤 많았다.

아트 컬렉터 유진 슈와르츠도 바로 그 점을 강조했다. 첫 인상이 불쾌한 작품은 ‘좋은 아트(Great Art)’에 대한 무의식의 기준과 개념을 전복한다고. 즉각적인 기쁨보다 충격으로 도전하는 작품을 선택하는 것이 작가를 존재할 수 있게 하는 좋은 방법이라는 데 동의하는데, 어떤가?

그래서 우리 집에는 기괴한 작품이 많다.(웃음) 예컨대 거실에 매달린 대리석 작품, 젊은 작가 레아 굴리테 헤스테룬드의 ‘Untitled’(2007)는 그런 의미를 담고 있다. 코펜하겐 아트 위크에 출품된 다른 작품도 구입했는데, 큰 설치작이라 아름답지만 집에 둘 수는 없었다. 그녀의 작품은 젊고, 에너제틱하면서도 기괴하다. 페티시인지 뭔지는 모르겠으나, 오히려 그게 더 매력 있다.

미술계가 끝나는 날까지 컬렉터가 존중받는다면, 그건 컬렉팅을 통해 어떤 작가를 지지하는 동시에 예술의 존립을 후원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프로젝트가 있나?

덴마크 출신 젊은 작가 FOS와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컨템퍼러리 아트센터(CC)와 가까운 코펜하겐 하버에 콘크리트 섬이 하나 있는데, 거기에 장소특정적 작품을 설치한다. 용도는 물론 존재한다는 것조차 아무도 몰랐을 이 작은 섬에 파도, 바람에도 끄떡없는 작품을 설치하고, 관객들이 배로 지나다가 쉬어갈 수 있는 곳으로 만들 것이다. 올가을, ‘코펜하겐 문화의 밤’ 행사에 맞춰 공개할 예정인데, 언젠가는 해외 작가들도 초청하고 싶다. 일 년간 일종의 장학금을 후원하며 덴마크의 젊은 작가들이 희망하는 예술을 실현시킬 수 있도록 하는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다. 나는 이렇게 응원만 할 뿐 정작 미술계에서는 한 발 떨어져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지켜본다.

미술계에서만 통용되는 가상화폐를 만든다는 소문도 있던데, 무슨 말인가?

오해다. 가상화폐가 아니라 전 세계 미술계에서 통용되는 시스템, 일종의 디지털 생태계를 만들자는 거다. 디지털 증서에 대한 아이디어에서 출발해 현재 각각의 작품과 관련된 모든 것들을 등록, 관리하는 시스템으로 발전 중이다. 작품 설명, 역사, 소유권의 변화 등 출처를 기록하고 영구적으로 디지털에 저장해두면, 디지털 흔적을 활용해 작품을 손쉽게 관리, 보호할 수 있다. 거의 모든 갤러리와 컬렉터들이 각자의 시스템을 갖고 있지만, 중요한 건 서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항공업계의 아마데우스라는 프로그램이 각국의 항공사를 연결하고 정보를 공유하여 전 세계인들이 편하게 이용하듯, 미술계에도 만국공통의 인프라, 시공간을 초월하는 디지털 생태계가 필요하다.

“그저 작품을 살 수 있는 평범한 덴마크인”치고는 하고 있는 일이 많다.(웃음)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것들 중에 하필 미술을 선택한 이유를 생각해본 적 있나?

어렸을 때 건축과 디자인에 관심이 많았을 뿐 아니라 어디서도 찾기 힘든 특별한 것을 좋아했다. 그런 관심이 미술로 귀결된 건 꽤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내 아내가 보석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내가 자동차나 시계 모으기를 즐기는 것도 아니니까.(웃음)

컬렉팅을 하면서 세상을 보는 관점 혹은 삶 자체의 변화된 지점은 있나?

예전보다 여행을 자주 다닌다. 작은 페어도 찾아가는데, 멕시코 소나 마코(Zona Maco)에 간 것도, 가족들이 중앙아프리카, 남아메리카 등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비슷한 맥락으로 델리의 아트 페어에도 갈 계획이다. 돌이켜보면 그전의 나는 그저 미술품을 보고 싶었을 뿐이었다. 지금은 미술에 다가가지 않았더라면 모르고 살았을 다양한 작품을 접하고, 직접 볼 수 있다는 게 그저 기쁘다. 내 삶에 대단한 도움을 주진 않을지언정, 좀 더 아름답고 아마도 고귀하게 만들어주는 작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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