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비엔날레 프리뷰

짝수 해 가을마다 돌아오는 한국 비엔날레 시즌. 올해는 대전비엔날레(10월 24일까지)를 시작으로,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11월 30일까지), 창원조각비엔날레(10월 14일까지),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11월 18일까지), 광주비엔날레(11월 11일까지), 부산비엔날레(11월 11일까지), 여기에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10월 31일까지)가 신설되어 총 7개의 비엔날레가 전국 각지에서 열린다. 이 가운데 올가을 반드시 방문해야 할 비엔날레가 광주와 부산에서 열리고 있다. 공교롭게 두 비엔날레 모두 ‘경계’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2018 광주비엔날레 ‘상상된 경계들(Imagined Borders)’은 총 43개국 165명(팀)의 참여로 동시대 경계에 대한 이슈를 300여 점의 작품으로 펼쳐낸다. ‘상상된 경계들’이란 주제는 1995년 제1회 광주비엔날레의 ‘경계를 넘어’를 변형한 것. 당시에는 경계 없는 세계에 대한 낙관이 컸고 이주민과 난민에 대해 개방적이었는데 지금 세계는 반대로 가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촉발되었다. 이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도록 물꼬를 트는 작품들을 가지고 11명의 큐레이터는 평등한 시각적 집합체로서 7개의 주제전을 구성했다. 여기에 광주의 역사적 장소와 작품을 연계한 ‘GB커미션’, 본전시와 독립되면서도 연결되는 ‘파빌리온 프로젝트’ 등 올해의 광주비엔날레는 도시 곳곳의 장소를 유기적으로 엮어낸다.

2018 부산비엔날레 ‘비록 떨어져 있어도(Divided We Stand)’는 규모를 축소하고 주제에 집중하며 내실을 다지는 인상이다. 각각 한 명의 전시감독과 큐레이터가 영토의 물리적인 분리가 어떤 심리적인 트라우마를 유발하는지, 역으로 어떤 심리적인 요소가 물리적인 분리와 갈등을 초래하는지에 대해 34개국 66명(팀)의 작품 126점을 통해 고찰한다. 주요 거점을 6월 개관한 을숙도 부산현대미술관으로 옮기고 역사적, 건축사적 가치를 지닌 구 한국은행 부산본부를 활용하여 보다 여유로운 동선으로 관객을 맞는다.

현재 미술계에서는 비엔날레의 수명이 다했다고 얘기된다. 나날이 성장하는 아트 페어에 밀리고 진부한 포맷으로 더 이상 참신한 담론을 생산할 수 없다고 말이다. 그러나 여기, 두 도시에서 만난 비엔날레의 존재의 의미를 확인시켜줄 열 점의 작품을 소개한다.

 

Moments from @gwangjubiennale

 

이동하는 경계들 2018

광주의 역사적 장소에서 역사 재소환 작업을 펼치는 신작들로 이뤄진 ‘GB커미션’은 이번 비엔날레의 히트작이다. 구 국군광주병원에 설치된 알제리-프랑스 출신 작가 카데르 아티아의 작품은 고요하고 의미심장하다. 트라우마를 주제로 작업해온 작가는 518 당시 치료와 고문이 동시에 이뤄진 이곳의 정신병동에 14점의 목재 기둥 작품을 설치했다. 세월의 흔적이 남은 고목의 벌어진 틈에는 철심이 박혀 있다. 유가족 및 광주트라우마센터 상담자를 인터뷰하면서 당시의 상처로 인해 1980년대에 머물러 있는 이들을 현재와 연결시키기 위한 모색의 방식이었다.

거울의 울림 2018

구 국군광주병원 부지 안에 자리한 붉은 벽돌 교회에 설치된 영국 작가 마이크 넬슨의 작품. 먼지 가득한 교회 내부에 수십 개의 낡은 사각 거울이 어쩐지 공포스럽게 매달려 있다. 작가는 병원 곳곳에 달려 있던 거울을 떼어 와 이 교회 안에 한데 모아놓았다. 폭력의 역사를 낱낱이 목격한 증언자인 거울은 관람객의 모습을 비춘다.

무제 2018

518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과 시위대 사이에 충돌이 있었던 전일빌딩은 비엔날레 기간 동안 시각문화 현장이 된다. 미국 작가 니나 샤넬 애브니는 빌딩 전면에 현수막 작품을 설치해 흑인으로서의 정체성과 경험을 토대로 정치적 폭력과 합리화를 518과 연관 짓는다. 창작자를 알 수 없는 그래피티와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 점도 흥미롭다. 다른 쪽 면에는 옥인 콜렉티브가 518 당시 주체들의 증언을 리서치하여 현수막 텍스트 작품을 설치했다.

히스테리, 엘레강스, 카타르시스 2018

본전시와 독립적이면서도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파빌리온 프로젝트를 선보이는 가운데 광주시민회관에서는 팔레 드 도쿄와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함께 기획한 <이제 오늘이 있을 것이다>가 열리고 있다. 11명(팀)의 작가들은 각기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갖고 있지만 ‘언어’와 ‘번역’을 매개체로 ‘다가올 오늘’을 위한 특별한 서곡을 준비한다. 배팅할 시간을 알리는 프랑스 소설가 미셸 우엘벡의 사진 텍스트 작업과 ‘낙하 과정에서 발생하는 에너지를 작업물로 구현해’낸다는 이미래 작가의 오렌지 컬러 조각 작품이 입구에서부터 압도한다.

피부 깊숙이 2018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5·18광주민주화운동의 사적지인 구 전남도청 회의실이 이번 비엔날레를 통해 일시적으로 개방된다. 이 건물은 일본 점령기인 1932년 지어졌으며 5·18 당시 시민군에 의해 사용되었다. 백승우 작가와 염중호 작가의 사진작품은 구 국군광주병원과 구 505부대를 수차례 방문하면서 촬영한 결과물이다. 아르나우트 믹의 스크린 비디오 설치작은 파리에서의 테러 발생 이후 프랑스와 다른 유럽 도시에서 최근 일어난 사건들의 잔상과 가상의 새로운 위협에 대해 이야기한다.

쾨프테 항공사 2016

터키 작가 할릴 알틴데레의 작품은 주 전시관의 이동 통로에 걸려 있음에도 지나가는 이의 이목을 잡아끈다. 앞 바퀴를 들고 막 이륙하려는 비행기 위에 사람들이 일렬로 앉아 있다. 밝고 여유로운 분위기. 이들은 터키로 온 실제 시리아 난민이다. 작가는 상상의 항공사 포스터를 만들면서 관객에게 묻는다. 지구상에 시리아 난민을 수용하겠다는 국가가 정녕 없다면 화성으로 보내는 건 어떨까? 유머, 낙관, 풍자로 지구적 위기를 비판한다.

손으로 그린 우리나라 100개 지도 100명의 사람이 자신의 나라를 직접 손으로 그림- 뭄바이; 쿠엥카; 델메, 이탈리아의 여러 지역, 광주, 서울, 철원, 텔아비브와 예루살렘, 그리고 몬트리올 2018-2014

인도 작가 실파 굽타는 남한에 사는 한국인 100명에게 자유롭게 한국 지도를 그리게 했다. 그러자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한과 북한 다 포함한 대한민국을 그렸다. 인도 뭄바이, 이스라엘 텔아비브, 캐나다 몬트리올 등 여러 도시에서 진행한 연작의 일환으로 단순하면서도 울림을 주는 작품이다.

잃어버린 항해 2011-2018

테이트모던 수석 큐레이터인 클라라 킴은 7개의 주제전 중 ‘상상된 국가들/ 모던 유토피아’를 통해  1950~70년대 정치적 격변기 속 모더니즘과 건축, 국가 건설 간의 교차점을 살펴본다. 이 전시에서 소개된 서현석 작가의 영상작품은 1966년 서울의 ‘불도저 시장’ 김현옥의 야심찬 근대화 포부에 맞춰 서울 중심부에 세워진 대규모 상업 단지인 세운상가의 역사를 살펴본다. 한때 서울의 모더니즘적 이상을 상징했던 그 건물을 통해 식민주의, 전쟁, 독재의 영향을 고찰한다.

신세계/ 도취(陶醉)의 역사-터널 2010-2018

중국 작가 첸 웨이는 중국 나이트클럽의 변천사에 주목한다. 1980년대 후반, 나이트클럽은 중국 공안의 통제를 피해 지식인들이 모여들어 대안문화를 형성하는 아지트였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 중국이 글로벌 자본주의의 흐름에 편승하면서 나이트클럽의 저항문화는 사라졌다. 작가는 가상의 나이트클럽을 연출하고 촬영한 사진작품 등을 통해 젊은 세대가 처한 현실을 말한다. 붉은 네온사인으로 설치된 ‘전례없는 자유’라는 뜻의 한자는 사회적 유대와 유토피아의 상실을 말한다.

아니의 침묵, 터키/아르메니아 국경 2015

아트선재센터에서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프란시스 알리스는 광주에서도 몇 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아르메니아 왕국의 수도였으나 지진과 전쟁으로 버려지고 20세기 초반 아르메니아인 대학살로 폐허로 남은 침묵의 도시, 아니. 이 버려진 땅에서 작가는 아이들과 함께 새를 부르는 피리놀이를 통해 침묵을 깨뜨리고 생기와 활력을 불어넣는다.

 

Moments from @busanbiennale

군중 2008/2018

부산비엔날레의 첫인상은 당혹스러움이다. 비엔날레가 열리고 있는 부산현대미술관의 입구에 과도한 바리케이드가 쳐져 있기 때문이다. 길고 구불구불한 가이드 라인을 투덜거리며 따라갈 때만 해도 이것이 작품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에바 그루빙어의 작품 ‘군중’은 비효율적이고 지루한 동선을 만들어내며 군중을 통제하는 메커니즘을 몸으로 느끼게 한다. 그러나 여느 공항이나 미술관에서 그렇듯이, 과감하게 바리케이드를 치우고 지름길을 찾아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 돌발 행동까지 작품의 일부로 느껴진다.

임시배우 B 2015

중국 작가 리우 딩은 문화대혁명 후반기인 1970년대 말과 1980년대 초에 중국 각지에 세워진 공공 조각작품 이미지들을 모아 콜라주를 제작한 뒤, 화가를 섭외해 콜라주를 사회주의 리얼리즘 양식의 회화로 그려달라고 주문했다. 중국 정부가 중화우월주의를 설파하는 도구로 사용했던 사회주의 리얼리즘 양식을 차용한 기념비적인 유화는 중국이 예술에 가하는 제재를 꼬집는다. 동시에 재기발랄하고 도발적인 방식으로 회화라는 매체의 권위에 도전하는 작품이다.

변이(變異) 2018

근사한 작업복을 입은 두 명의 과학자가 서 있다. 이번 비엔날레에서 설치작품 ‘변이’를 선보인 듀오 아티스트 노메다 & 게디미나스 우르보나다. 과학자, 건축가, 행정 관료들과 교류하며 예술가라기보다는 과학자의 방식으로 작업을 하는 이들은 대형 파이프와 스크린을 한데 묶은 대형 설치작품 ‘변이’에서 옛 소련의 컬트 영화를 콜라주하여 상영했다. 한 국가의 정보를 다른 국가로 밀수하는 스파이의 정신세계를 분석하는 작업이다. 과학 도구 같은 파이프 너머로 이중적 행위를 하는 개인의 정신 상태, 나아가 대중 심리에 대한 기밀 연구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

2000, 독일 통일을 애도하는 재단 2018

잘 차려입은 힙스터 아티스트 헨리케 나우만의 작품은 이번 비엔날레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작품 중 하나였다. 자유민주주의가 새로운 자유를 선사해줄 것이라 생각했던 통일 이후의 동독 사람들은 급속도로 신자유주의 경제에 장악당했다. 사회주의 시대에 썼던 낡은 가구가 모두 이케아 혹은 포스트모던한 멤피스 디자인을 모방한 가구로 대체된 것이 그 변화를 보여준다. 헨리케 나우만은 이번 비엔날레에 통일 이후의 동독 사람의 방을 재현해 놓았다. 국가에서 회유책으로 지급한 기괴한 가구들이 놓여 있는 방은 공동체의 좌절된 욕구를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유로파 1991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필름을 부산에서 마주하게 될 줄은 몰랐다. 전시장에 들어서자 <유로파>의 한 장면이 화이트 큐브 위를 흐르고 있다. 밤을 가로지르는 기차와 철로의 이미지들이 스쳐 지나가고, 막스 폰 시도우의 내레이션이 덧대진다. 1945년, 종전 이후의 독일을 배경으로 하는 이 영화가 부산에 소환된 이유는 자명하다. 올해의 부산비엔날레가 신 냉전 시대로 일컬어지는 오늘날에 존재하는 분열과 대립, 분리의 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라스 폰 트리에의 영화는 시공간을 뛰어넘어 극우 민족주의의 공포를 환기시킨다.

비어 있는 미떼(Mitte) 1998 / 특별 우주선 2016

명쾌한 미술 비평과 재치 있는 작품을 통해 우리가 당면한 최신의 이슈들을 다루는 작가 히토 슈타이얼의 영상작품 두 편. 1998년 작품 ‘비어 있는 미떼(Mitte)’는 베를린 중앙에 있는 포츠담 광장에 관한 한 시간 분량의 필름 에세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베를린의 심장 역할을 했지만 독일 통일 이후 거대 글로벌 기업에게 잠식 당한 광장의 변화를 이야기한다. 또 다른 영상작품 ‘특별 우주선’ 역시 분할된 영토와 관련이 있는데, 이라크를 비롯한 여러 국가로 갈라져버린 쿠르드인의 영토를 담았다.

초코파이 함께 먹어요 2018

아트의 성찬인 비엔날레 현장에서도 여지없이 허기는 진다. 지칠 대로 지쳐서 다리를 질질 끌던 찰나에 먹게 된 초코파이는 군대에서 지급받은 군사 식량 같았다. 전시장에 산처럼 쌓여 있던 초코파이는 천민정 작가의 관객 참여형 설치작품이다. 관객들은 전시된 초코파이를 집어 먹을 수 있다. 먹고 난 후의 초코파이 봉투를 투명한 유리에 담는 것까지가 작품의 일부다. 초코파이는 북한에서 인기 있는 암거래 품목이다. 천민정의 시나리오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남북 관계의 회복과 그에 따르는 불안 요소,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긴장감을 해학적으로 풀어낸다.

비너스의 섬 2018

조악하게 제작한 유럽의 고전적인 조각상 미니어처들이 현란한 색깔의 콘돔을 쓰고 있다. 위트 있고 키치적인 작품으로 보이지만, 사실 과거의 식민 정책부터 현재의 난민 정책까지 이어져오는 유럽의 비인간성을 폭로하는 작품이다. 칼루아지키아 헨다는 콘돔을 도구로 자신의 문화사를 보호하고 난민들의 고난을 외면하고 있는 유럽을 풍자한다. 조각작품 뒤에는 이민자를 실어 나르는 배들을 촬영한 사진작품이 걸려 있다.

이게 누구한테 아름다워 보이나? 2018 / 즐거운 나의 집 2015-17

라민 헤리자데, 로크니 헤리자데, 헤삼 라마니안 등 이란에서 만난 세 명의 작가는 이란 정부의 미술 활동 검열로 인해 현재 두바이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주로 설치 및 퍼포먼스, 영상 작업을 통해 각자의 정체성을 집단적인 수행으로 탈바꿈시키는 이들의 공통된 키워드는 ‘망명’, 그리고 ‘소멸’이다. 이번 비엔날레에서 선보인 날카로운 콜라주 회화작품 ‘이게 누구한테 아름다워 보이나?’ ‘즐거운 나의 집’은 뒤엉키고 분열된 이미지로 전쟁과 그로 인한 후유증을 표현 한다.

길 위의 진실 2018

정윤선 작가는 단조로워 보이는 일상이 진행되고 있는 시공간에 주목한다. 비엔날레를 돌아보고 부산을 떠나기 직전에, 정윤선 작가가 준비한 퍼포먼스에 참여했다. 부산역 앞에 준비된 버스에 탑승하라는 지침을 받고 도착한 곳에는 두 명의 군인이 기다리고 있다. 버스가 달리기 시작하자, 부산의 역사를 이야기하는 오디오 가이드가 흘러 나온다. 창밖의 부산 풍경에 한국 전쟁 당시 부산의 이야기가 덧입혀 진다. 과거의 비극을 환기하여 역사의 한 조각을 마주하게 하는 이 작품에서 하차하자, 서울로 향하는 KTX를 타야 할 시간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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