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현산을 읽는 시간

황현산 선생이 우리 곁을 떠났다. 그러나 그가 남긴 글을 읽는 시간은 여전히 흐르면서 고인다.

황현산의 ‘밤이 선생이다’ 표지로 사용되었던 팀 아이텔의 작품.

황현산 선생님께서 영면하신 지 일주일이 지났다. 아직도 실감 나지 않는다. 거의 모든 이별은 당혹스럽지만, 그 이별이 이곳과 저세상을 나누는 형태로 찾아오면 한동안 허우적거릴 수밖에 없다. 잘 이별하는 법을 생각한다. 잘 떠나보내는 법을 헤아린다. 선생님의 글들을 다시 찾아 읽는 것이 내가 선생님을 기억할 수 있는 방식이라는 생각이 든다. 매일 잠깐씩, 그러나 꼬박꼬박 선생님을 찾는다.

처음 읽었을 때 머리를 울리던 문장은 여전히 묵직하게 다가온다. 다시 읽을 때 가슴속에 맺히는 문장들도 있다. 내 그릇이 작아서 미처 담지 못했거나 당시의 나와는 거리가 있다고 생각해서 나도 모르게 지나쳐버리고 말았던 문장들이다. 들여다보고 있자니 물고기처럼 튀어 오르는 빛들이 있었다. 반짝이는 모래 속에 더 반짝이는 사금파리들이 있었다.

첫 비평집 <말과 시간의 깊이>(문학과지성사, 2002)의 책머리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등장한다. “진정한 분석은 분석되지 않는 것에 이르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거기에 한 정신의 고통이 있고 미래의 희망을 위한 원기가 있다. 분석하는 사람으로서 나는 그 원기를 사랑하였다. 그러고 보면 나의 분석은 내가 말을 걸고 싶은 작가들에 대한 내 존경과 사랑의 표현이었던 것 같다.” 선생님은 늘 작가들을 사랑하셨다. 원기는 활기와 비슷하지만, 타고나는 것이라는 점에서 활기와 거리를 둔다. 어떤 시는 아직 활기로 인정받지 못한 원기에 가깝다. 선생님은 한발 앞서 그 원기를 알아채고 그들을 늘 묵묵히 응원하셨다.

두 번째 비평집 <잘 표현된 불행>(문예중앙, 2012)에서는 시의 길에 대해 언급한 <불모의 현실과 너그러운 말>의 마지막 문장들이 내내 맴돌았다. “시는 꿈과 현실이, 상상할 수 있는 것과 상상할 수 없는 것이, 작은 나와 큰 나가, 비루한 사물과 너그러운 말이, 불모의 현실과 생산하는 현실이 갈등하기를 그치는 자리가 우리의 정신 속에 있다고 믿는다. 시의 길이 거기 있다기보다는 시가 그 길을 믿는다고 말해야 할 것 같다.” ‘작은 나’가 ‘큰 나’를 만나기 위해서는, 혹은 그 역을 위해서는 법석이지 않으면 안 된다. 아무리 깜깜한 곳에 있어도 빛을 상상해야 한다. 그 빛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내일은 이미 오고 있다.

많은 사랑을 받았던 <밤이 선생이다>(난다, 2013)에는 누구나 읽어도 무릎을 탁 칠 만한 구절들이 많다. 글쓰기의 정석 같은 것이 있다면, 아마 이 책이 그것을 구현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과거도 착취당한다’라는 글에서, 선생님은 현재의 시간과 개인의 감수성을 연결시킨다. 공감이 사라지고 있는 시대를 겨누듯, 읽고 있자니 정신이 바짝 든다. “어떤 사람에게는 눈앞의 보자기만 한 시간이 현재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조선시대에 노비들이 당했던 고통도 현재다. 미학적이건 정치적이건 한 사람이 지닌 감수성의 질은 그 사람의 현재가 얼마나 두터우냐에 따라 가름될 것만 같다.”

시에 대한 이야기들을 한데 모아 엮은 <우물에서 하늘 보기>(삼인, 2015)에서는 시와 시인에 대한 따뜻한 애정과 날카로운 통찰을 둘 다 엿볼 수 있다. 랭보를 떠올리다 어느새 허공을 응시하게 만드는 ‘이곳의 삶과 다른 시간의 삶 ―작가 탄생의 서사’는 읽을 때마다 머릿속에 꽃망울이 맺히게 만드는 글이다. “허공은 모든 것이 가능한 자리이며, 다른 세상이란 저 허공과 같지 않는가. 꽃나무는 여기 있지만 꽃이 필 자리는 저 허공이 아닌가.” 허공처럼, 아직 오지 않은 말들, 하지만 분명히 오고 있는 말들을, 선생님은 사랑하셨다. 그 말들과 함께 ‘다른 세상’도 찾아오리라 믿으셨다.

올해 6월 말에 출간된 <황현산의 사소한 부탁>(난다, 2018)은 유독 천천히 읽힌다. 최근 몇 년 사이의 대한민국을 떠올려보니 고개가 절로 도리질을 한다. 암 투병을 하시며 이 글들을 써낸 선생님을 떠올리니 눈이 질끈 감긴다. 한국 사회와 그 사회에서 사는 사람들에 대한 두 번의 응시가 이 책을 가능하게 했다. 그래서 이 책은 하나의 ‘맥락’으로 읽힌다. 거대한 사회와 그 속에 놓인 촘촘한 관계들, 그것을 꿰뚫는 통찰이 페이지마다 깊게 배어 있다.

서문 격인 글 ‘머슴새와 밭 가는 해골’에서 선생님은 이렇게 쓰셨다. “나는 이 세상에서 문학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오랫동안 물어왔다. 특히 먼 나라의 문학일 뿐인 프랑스 문학으로 그 일을 할 수 있는지 늘 고뇌해왔다. 내가 나름대로 어떤 슬기를 얻게 되었다면 이 질문과 고뇌의 덕택일 것이다.” 선생님이 끊임없이 세상에 던진 질문들 덕분에, 나는 나만의 작은 질문들을 갖게 되었다. 스스로 생각하고 헤아릴 줄 아는 능력을 키운다는 건, 문학뿐만 아니라 삶에서도 꼭 필요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2017년 11월 23일에 선생님이 트위터에 올린 문장들을 옮겨 적는다. “예술이 지향하는 이상 가운데 하나는 아름다우면서 쓸모없는 것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오해하지 말 것은 이 쓸모없다는 것은 ‘지금은 쓸모가 없다’는 말이다. 그것의 쓸모를 찾아내는 것이 문화의 발전이기도 하다.” ‘지금은 쓸모가 없는’ 문학을 들여다보며, 두고두고 곱씹을 수 있는, 동시에 ‘내내 쓸모가 있을’ 글을 쓰신 선생님을 생각한다. 밤부터 작업을 시작해 아침 녘에야 잠들 수 있었던 선생님, 그 무수한 밤들을 헤아려본다. 아득하다.

나는 매일 밤 선생님을 만난다. 밤이 선생이고, 밤은 선생님을 부른다. 그리하여 어떤 시간은 흐르면서 고인다. 매일 기억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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