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ranger Than Fiction

그의 작품은 항상 현실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존중으로부터 출발한다. 하지만 꼼꼼한 리서치 작업으로 축적된 방대한 자료는 여지없이 해체되고, 상상을 뛰어넘는 그만의 방식으로 재배열된다. 전통적 미덕인 성실함과 방종한 현대성을 두루 갖춘 김아영, 그를 만났다.

제56회 베니스 비엔날레 본 전시 참여.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수상. 팔레 드 도쿄 (파리근대미술관) 개인전. 국립현대미술관, 국제갤러리에서의 단체전. 무엇이 아티스트 김아영을 현대예술이라는 녹록지 않은 제도 속에서 이토록 매력적인 인물로 인정받게끔 하는 것일까?

지난 10년간 그가 ‘근대’라는 보편적 주제를 일관되게 탐구해왔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그리 특기할 만한 일은 아닐 테다. 다만, 19세기 영국 해군의 거문도 점령, 일제강점하 철도제국주의, 개항도시 부산의 근대화 과정처럼 인문학 서적에 등장할 법한 내용을 학구적인 다큐멘터리 감독과 같은 진지하고 정돈된 시선으로 풀어내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조금씩 몽상에 빠져드는 듯한 조짐을 보여왔다. 그 조짐은 분명히 독특한 여운을 남겼고, 다음 작품에 대한 기대와 호기심을 갖게 했다.
시간이 갈수록 그는 점점 더 대범하게, 점점 더 상상을 초월하는 방식으로, 인과관계가 없는 곳에 인과관계를 만들어 넣었다. 마치 ‘세상의 모든 것이 연결될 수 있다는 믿음’을 실험해보려는 듯이 말이다. 지난 4년간 그는 ‘석유’라는 주제를 논하기 위해, ‘진주 채집 다이버들에 대한 쿠웨이트 국왕의 법 조항’을 텍스트로 삼기도 하고, 특정 연도의 원유 생산량에 의해 음색과 빠르기가 결정되는 음악을 만드는가 하면, 조국 발전을 기원하는 박정희 정권의 외교 수사와 에어컨 광고 문구를 공존시키고, 역청이 발라져 있는 파리 오페라의 지하 저수지를 노아의 방주에 견주기도 했다.
“모래알처럼 흩뿌려진 별들을 연결해보며 별자리의 모양을 잡아가는 과정이 즐겁다”는 그는 이번에 열리는 개인전 <다공성 계곡>에서 멜버른의 지하지층 3D 데이터와 고대 페르시아 미트라 신을 조우하게 만든다. 물론 그것은 이번 전시를 구성하는 수많은 별자리 중 극히 일부분일 뿐이지만!

‘다공성 계곡, 이동식 구멍들’의 전시 전경, 단채널 비디오, 약 20분, 2017 Photo: 킬란 오헤허

20대 초반에는 MTV 프로모션용 영상 등을 만드는 인터랙티브 모션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했다. 닷컴 벤처회사들이 버블처럼 생겨날 때였고, 기업 등의 온라인 프로모션을 위한 인터랙티브 모션 그래픽 작업을 꽤 오래 했다.

이번에 열리는 개인전 <다공성 계곡>에서 모션 그래픽이 굉장히 풍부하게 사용되고 있는데, 소회가 남다르지는 않았나? 그간의 영상 작업 및 퍼포먼스 도큐멘테이션에 삽입되는 그래픽 요소를 직접 만들어왔기 때문에, 전면에 드러나지 않더라도 그래픽 디자인은 늘 해왔던 것으로 봐도 좋다. 시각디자인 전공으로 익혔던 조형 감각은 금방 사라지는 것이 아니어서, 이번 작업에서 전문가들과 일하며 다시 그런 감각을 발휘할 기회가 생겨서 즐거웠다.

이번 전시가 열리는 일민미술관 건물을 여전히 ‘○○일보 사옥’으로 부르는 어르신들이 계신다. 당신은 신문 기사를 스크랩하여 만든 작품 ‘이페메랄 이페메라’(2008)로 처음 현대예술계에서 주목받기 시작했는데, 신문은 여전히 중요한 영감의 원천인가? 신문은 늘 꼼꼼하게 본다. 세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아야 하니까. 리서치할 때도, 신문 리서치가 기본적으로 이루어진다. 최근에는 글로벌 난민 이슈에 관심을 가져왔는데, 난민들이 이주 당국에 의해 정착자와 반환자로 분류되는 과정에 관심이 생겼다. 신문뿐 아니라 어떤 국가의 이주 당국에서 출판하는 이민정책 매뉴얼까지 구해서 봤다. 작품에 등장하는 전문 용어들은 그런 식으로 접하게 된 것이다.

최근 난민 이주 문제를 다뤘던 아이웨이웨이나 딜러 스코피디오+렌프로의 경우, 작가가 마치 기자처럼 정보를 취재, 편집해서 전달하는 역할을 자처했다. 반면, ‘다공성 계곡’은 정보를 전달하기보다는, 당신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상한 생각들을 충돌’시키는 데 집중하고 있는 듯하다. 지하 지질학의 다공성, 이주의 개념, 데이터 마이그레이션 등을 가상의 내러티브 속에서 교차시킨다. 이번 전시 작품을 구상하던 중에 <이온 플럭스>라는 1990년대 말 애니메이션을 다시 감상했다. MTV에 스팟 애니메이션으로 인서트되면서 폭발적인 컬트를 불러일으켰던 애니메이션인데, 특히 분절된 내러티브를 끌고 가는 방식이 혁신적이어서 좋아했다. 또한, 황당무계하고 과대망상적인 상상을 밀어붙였던 아프로 퓨처리즘의 방법론을 지지하고 좋아한다. ‘닐 암스트롱이 달에 도착하기 전부터 달 반대편에 은밀히 살고 있던 발전된 우주인들’이라고 아프로 아메리칸의 정체성을 규정한다든지. 인종차별이 만연한 곳에서 역사적 개념을 되짚어보기 위해, 인간임을 거부하고 스스로를 초월적 존재로 상정하는 과장된 수사학이다. 현실의 불평등에 항의하는 방식이 아니라 교란을 일으키는 방식으로, 과대망상적 방식으로 가상의 내러티브를 펼치는 것이 오히려 리얼리즘, 혹은 정면돌격하는 액티비즘과는 다른 풍부하고도 래디컬한 가능성을 가질 때가 있다. 그래서 이번 작업에서는 이전 작업들과 마찬가지로 사회적 현안이 바닥에 깔려 있으면서도 과대망상적 상상력을 펼쳐보고 싶었고, 때문에 이번 전시를 하나의 ‘사변적 픽션(Speculative Fiction)’이라 부르고 싶다. 소설가 옥타비아 버틀러가 펼쳤던 사변적 내러티브처럼, 상상력을 어떻게 밀어붙일 수 있는지 보여주는.

당신은 그렇지만 결코 ‘사변을 위한 사변’의 세계로 떠나버리지는 않는다. 당신의 작품은 황당무계할 때조차 현실 속 지정학적 정세에 대한 호기심과 긴밀하게 맞물려 있다. 예리한 바늘처럼 뾰족한 개인의 특성과 유니크함이 중요한 만큼, 그 사람을 둘러싸고 있는 시대, 자연환경, 사회정치적 환경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어떠한 인물이든 그 환경, 국가, 지정학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기 때문에, 그 사람을 둘러싼 바운더리와 함께 커다란, 세계적 흐름을 보는 것이 흥미롭다. 마이크로와 매크로를 줌인 줌아웃 하면서 보는 것 말이다.

작년 전시가 고대 문헌, 파리 오페라의 바로크 장식, 고전무용수, 어두운 색과 주제를 엮어 만든 세계였다면, 갑자기 신대륙 ‘호주’로 이동한 <다공성 계곡>은 밝은 색의 매끄럽고 미래주의적인 그래픽, 정보통신 업계와 연관된 단어들을 내세우고 있다. 무척 급격한 변화인데. 작업 내부를 들여다보면 이전 작업들과 관심사가 연결돼 있음을 알 수 있다. 시각 양식의 변화에 대해서 말해본다면 인간이라는 것 자체가 일관될 수 없는 존재라고 본다. 불연속적이고 모순된 존재라고 보고, 우리는 너무나 분절된 일상을 살고 있고, 요즘은 미디어 경험도 굉장히 다변화되어 있지 않은가. 이런 비연속성 자체가 인간의 본질 중 하나라면, 그것을 작품의 방법론에도 반영시켜야 하고, 또한 이미 반영되고 있지 않을까. 내 여러 작업이 동일한 형식을 유지하는 모습은 상상하기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그레이스 슬릭이라는 인물에게 매료되었다. 그는 1960~70년대에는 사이키델릭 음악과 히피 문화의 선두였던 제퍼슨 에어플레인의 메인 보컬이었고, 1980년대에는 당대 최고의 히트곡, 청량음료 같은 신스팝을 만든 밴드 스타십의 메인 보컬이었다. 제퍼슨 에어플레인이 제퍼슨 스타십으로, 그 다음에는 스타십으로 개명하면서 멤버를 바꾸고 비행기에서 우주선으로, 미래로 간 것이다. 양식을 새로 받아들이고 전자음악을 포용하면서 시대가 바뀐 후에도 컨템퍼러리로 존재했던 것이다. 그러지 않았던 대다수 뮤지션은 시대의 아이콘이 돼서 묘비에 남았고, 슬릭은 그보다는 덜 유명하지만 더 오래 실존했다.

‘다공성’이라는 개념이 이번 전시의 중요한 모티프가 되고 있는데, ’구멍이 많은 성질’에 관심을 가지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 혹시 지난 전시의 주제였던 ‘석유’를 파내려면 ‘구멍’을 뚫어야 하기 때문인가? 그렇다. ‘제페트, 그 공중정원의 고래기름을 드립니다, 쉘’ 시리즈에서 사용했던 포화도 그래프가 다공성 개념의 시작이었다. ‘제페트’에서 텍스트를 도출하는 알고리즘이 선형적인 알고리즘에 구멍을 내고 뒤트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비슷한 측면에서 이번에는 다공성 개념을 내러티브에 적용하고 싶었다. 내러티브에 허점이 많은 영화를 일컬어서 ‘플롯 홀’이 많다고 하는데, 이러한 ‘구멍’들을 하나의 가능성으로 가져왔다. 대부분의 영화에서 지향하는 것이 개연성 면에서 잘 맞추어진 내러티브라면, 예술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내러티브를 어떻게 교란하고, 충돌시키고, 분절시키고, 생경함을 만들 것인가 고민하는 쪽이 아닐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플롯 홀에 대해 생각했고, 또한 플롯 홀이라는 것의 물리적 형태로, ‘포터블 홀_이동식 구멍’이란 것이 떠올랐다. 이는 20세기 초·중반 애니메이션에 자주 쓰였던 검은 원형 패치로, 부착된 곳에 다른 곳으로 연결된 공간이 생기는 ‘포터블 홀’ 말이다. 이를테면 <로드 러너>나 <딱따구리> 같은 만화에 등장하는. ‘플롯 홀’이 내러티브에 관여하는 것이라면, ‘포터블 홀’은 물리적인 시각 요소로 영상에 등장한다.

구멍이 많다고 하니 ‘스위스 치즈 패러독스’가 생각났다. “치즈가 많을수록 구멍도 많다. 그런데 구멍이 많을수록 치즈는 적다. 고로 치즈가 많을수록, 치즈가 적다.” 9개월에 걸쳐 수집한 방대한 양의 자료를 정교하게 조립하여 작품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모순을 맞닥뜨렸을 것 같다. 예전에는 내러티브의 정합성과 타당성을 맞추기 위해 노력하는 편이었는데 언젠가부터 차츰 그것을 놓아주고 있다. 왜 ‘플롯 홀’과 ‘다공성 계곡’이겠는가. 어떤 상황이 이어지더라도 상관없고, 모순을 모순 그대로 놔둬도 상관없으며, 논리적 비약도 좋다. 논리적으로 빈 구멍이 있는 이야기라면 그 자체로 관객이 채워 넣을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긴다. 인간, 그리고 삶이란 것이 그다지 연속적인 것이 아니다 보니, 비논리성, 비일관성, 불연속성이 내겐 의미 있다.

스위스 로잔올림픽 뮤지엄에서 열리고 있는 <두 유 스피크 평창> 전시에서 초기 작품인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상영되고 있다. 올림픽 뮤지엄 팀이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흥미롭게 생각했다. 88올림픽 푸티지가 끊임없이 거꾸로 돌아가는 영상이 등장하는 작품인데, 국가발전의 낙관이 정점에 치달았던 88올림픽, 혹은 86아시안게임 시절, 국가적인 도약의 기쁨과 상반되게 부산항에서 밀수를 하던 어떤 소년의 일상이 시대의 흐름과 평행우주처럼 따로 돌아가고 있었음을 보여주려 했다.

파리 현대미술관과 파리 국립오페라단, 프랑스 국립시청각자료원이 연계되는 프랑스의 독특한 국립기관 간 협업 체계, 혹은 호주 빅토리아 왕립식물원과의 협업은 당신에게 큰 시너지 효과를 불러일으켰다. 국내에서 그런 협업 체계를 설계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진다면, 어떤 국립 기관을 연계해보고 싶은가. 어떤 기관이든 전문적 인프라를 갖춘 기관이라면 두 팔 벌려 환영이다. 경험상, 국내에서 공공기관 사이의 연계의 문은 꽤나 굳게 닫혀 있다. 재작년에 리서치를 위해 지인의 도움을 받아 대전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을 방문했었다. 보이지 않는 지층을 시각화하는 탄성파 탐사란 방법에 대해 배웠다. 지표면 아래로 쏘아 보낸 소리가 반사되어 돌아오는 속도를 3D 이미지로 시뮬레이션하는 방법이다. 소리가 이미지가 되는 과정이 매혹적이었다. 국내에서는 이런 견학조차 지인을 통한 루트가 아니라면 거의 불가능하다. 이러한 과학 기관과 협업할 수 있다면 행복할 것 같다.

‘페트라 제네트릭스 vs. 페트라 제네트릭스’, 디지털 프린트, 가변 크기, 2017

<다공성 계곡>의 주인공 ‘페트라 제네트릭스’가 이동 중 맞닥뜨리는 국경은 전혀 다공적이지 않은, 빈틈없는 경계선이다. ‘신분, 적합성, 정부 방침, 안보, 누락 위험”처럼 배타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는 단어도 끊임없이 등장한다. 몇 년 전 프랑스 측 문화 교류 담당자의 귓속말(“한국 정부에 예술가에 대한 레드 리스트가 존재한다!”)이 당신에게 안겨줬던 충격의 흔적은 아닐까? 작업할 때 그것이 작용했던 것은 아니다. 다만, 많은 예술가는 작품과 세계관을 형성해나갈 때까지의 짧지 않은 과정 때문에 어느 시점까지 주변으로부터 부양받는 존재로 지내게 된다. 누군가는 평생 그렇게 지내기도 하고…. 당시 국가가 나를 해외에 파견해서 부양하고 있었는데, 그 국가가 예술계 블랙 리스트를 작성하여 해외 문화 교류 기관에까지 이를 행사하고 있음에 몹시 참담했다. 복잡한 심리와 함께, 내면적 양심이 들끓었다.

‘페트라 제네트릭스’는 결국 국경을 통과하는가? 작품 속 국경은 실제 국경이기도 하고, 상징적 국경이기도 하다. 지질학적 영토이자 디지털 시스템 내에서 다른 플랫폼으로의 이주인 것인데, 주인공 페트라 제네트릭스가 새 공간에 안착하는 과정이 나온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여기서부터는 스포일러다!

※김아영의 개인전 <다공성 계곡>은 일민미술관에서 2월 22일부터 4월 29일까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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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구회일 (프리랜서 에디터)
사진 Chun Youngsang
장소 모스 가든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