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역력 높이기 프로젝트의 전말

분명 나에게도 밤을 새우고도 멀쩡하던 시절이 있었다. 나 혼자만 감기의 공격에 무너지지 않던 건강 체질. 대체 그 모습은 어디로 사라져버린 걸까? 4개월 동안 이어진 면역력 높이기 프로젝트의 전말.

일주일 동안 런던 출장을 다녀왔다. 하지만 호텔 침대 외에 기억나는 것이 없다. 살인적인 마감 스케줄을 소화하고 비행기에서 한숨도 자지 못한 채 런던의 시린 날씨를 만났다가 제대로 넉다운됐기 때문. 목이나 허리 통증 등 신체적인 고통, 만성피로는 내 몸과 혼연일체가 되었지만 내 나이 서른, 몸살감기에 걸려 드러누울 정도로 면역력이 약해졌다는 사실은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생각해보니 최근 급격히 찐 살, 편두통까지 유발하는 일자목, 가끔 저리는 다리 등 문제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친구들과 만나도 건강 얘기로 한창 이야기꽃을 피우는 걸 보니 나만 그런 건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도대체 우리 몸에 무슨 문제가 일어난 걸까?

면역력 알아가기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면역력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고 싶어 WE클리닉의 조애경 원장을 찾아갔다. “요즘 흔히 얘기하는 면역력은 예전의 학문적인 개념과는 달라졌어요. 과거엔 에이즈 등 면역력 체계가 무너짐에 따라 발생하는 질병을 주로 다뤘다면, 요즘에는 외부에서 들어온 병균에 저항하는 힘을 주로 가리키죠. 만성피로나 신체적인 불편함도 포함해서요.” 일단 내 몸의 정확한 문제점이 무엇인지부터 알아보았다. 자율신경계 검사는 피로도 및 스트레스 저항도를 파악할 수 있는 검사로, 일반적인 건강검진에서는 알기 힘든 만성피로와 면역력 저하의 원인도 알 수 있다. 린클리닉 박선영 원장은 간이나 장의 건강, 철분 · 당 · 인슐린 수치, 부신 · DHA 등의 호르몬, 스트레스, 불균형적인 체형 등 다양한 요소가 면역력에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한다. 체크 리스트를 작성하고, 자율신경계 및 혈액 검사를 진행했는데 비보가 무려 반이 넘었다.

먼저 술을 마시지 않아 자신이 있던 간 건강부터. 실상은 예상과 달랐다. 신체의 방패 역할을 하는 간은 외부에서 들어온 좋지 않은 물질을 걸러내고 그것을 해독해서 배출시키는 역할을 한다. 음주, 가공 식품, 환경 호르몬, 흡연 등은 간에 부담을 주는 요소인데, 내 경우에는 음식이 가장 큰 문제였다.

지난날의 나쁜 식습관이 영향을 미친 것은 이것뿐만이 아니었다. 당 · 인슐린 수치 역시 높게 나타난 것. 높은 상태가 지속되면 지방을 분해하는 능력도 떨어지고 당 저장 기능에 혼선이 생기며 당뇨가 발병할 수 있다. 당뇨 전 단계라고 얘기하기는 힘들지만 건강하다고 단언할 수도 없는 상태.

평소 잘 알 수 없는 비타민 D와 철분 수치에 관한 검사도 이루어졌다. “비타민 D가 부족하면 골다공증 위험이 높아져요. 염증도 쉽게 유발되고요. 정상은 30 이상, 20에서 30까지는 부족인데, 지금 9.2로 나왔어요. 이 정도면 결핍인 거죠.”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비타민 D 결핍을 겪고 있다고 위로받았지만 충격적이긴 마찬가지다. 박선영 원장은 햇빛이 많은 12시에서 2시 사이에 선크림을 바르지 않은 상태로 20~30분 정도 실외에 있으라고 조언했다. 근데 내가 이걸 실천할 수 있을까? 우선 비타민 D 수치를 올려주는 주사와 약으로 꾸준히 관리하라는 처방을 받았다. 철분 수치는 생리하는 여성들이 특별히 신경 써야 하는 항목. 철분이 충분해야 각종 신체 기관에 산소가 잘 전달되어 조직이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재생 능력도 높아지는데 부족하면 어지러움이 발생할 수 있다. 33에서 193 사이가 정상 범위인데 내 수치는 많이 떨어져 있어 철분제 섭취가 반드시 필요한 상태였다. 무려 39. 이것 역시 결핍에 가깝다.

다양한 호르몬에 대한 결과도 확인할 수 있었는데 스트레스와 관련된 호르몬으로는 부신과 코르티솔이 있다. 부신 호르몬은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저항할 수 있도록 도와주며 코르티솔은 스트레스를 받았을 경우 분비된다. 정상 범위에 들어 있긴 했으나 베스트 상태는 아니었다. 검사를 받기 전날, 하루 종일 푹 쉬었으며 그 전날까지는 상당히 만족스러운 휴가를 다녀왔는데도!

갑성선 기능은 의외로 괜찮았다. 신진대사의 속도를 결정하는 갑상선 기능이 저하된다면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고 붓기 쉬운 체질이 되며, 평소에 피로감을 많이 느끼게 된다. 또 피부가 건조해지고 모발이 빠지거나 체중이 늘어날 수 있다고.

문제는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나타났다. “그런데 지금 체형 변화가 많이 일어난 상태예요. 보통 40~50대는 되어야 이 정도로 많은 항목에 체크하시는데.” 네? 체크 리스트를 받았을 때 볼펜이 바쁘게 움직이긴 했지만 40~50대라니? ‘의자에 앉을 때는 엉덩이를 앞으로 빼서 거의 누운 상태에서 다리를 벌려야 편하다.’ ‘어깨가 앞으로 말려서 항상 등이 굽어 있다.’ 등등. 모두 내 얘기 같았다. “체형이 무너지면 몸의 기능도 전반적으로 떨어질 수 있어요. 반대로 체내 기능이 약해지면 체형 변화로 나타나기도 하고요. 둘은 떼놓고 생각할 수 없는 거예요. 몸의 변화를 예민하게 느끼시니까 좋은 자세 습관을 가지고 식단을 건강하게 바꾸면 외적으로도, 내적으로도 변화가 느껴지실 거예요.”

음식이 반이다

공복에 먹어야 하는 유산균, 하루에 2번 이상 챙겨 먹어야 하는 비타민 D, 철분제 등 각종 약병을 받아 들고 병원을 나섰다. 일주일에 2~3번씩 근력운동 1시간, 유산소운동 40분을 반복하자 점차 몸이 가벼워지고 체력이 쌓이는 것이 느껴졌다. 첫날에는 힘들었던 동작을 8주 뒤부터 척척 해내곤 했으니까. 마사지 자격증을 보유한 트레이너 덕분에 운동하면서 체형 비대칭도 교정할 수 있었다. 직접 사진을 찍으면서 변화를 체크했는데 하늘 높이 솟아 있던 오른쪽 어깨가 눈에 띄게 내려간 것. 면역력을 높이면서 다이어트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식단 역시 완전히 바꿔버렸다. 고구마 50g, 달걀 흰자 4개, 사과나 오렌지 반 개. 극단적으로 바꾼 만큼 효과도 즉각적이었다. 부은 다리가 너무 아파 잠들지 못할 정도로 온몸의 부기가 심했는데 식단을 바꾸자마자 살이 말랑말랑해지고 동그랗던 얼굴이 V라인으로 변했다. 매일 보는 선배들도 그 변화를 알아차릴 정도. 좀 더 욕심을 내고 싶어 이것저것 수소문해본 결과 한 선배에게 파지티브 호텔의 지중해식 파우더를 추천받았다. 녹색 채소, 과일, 식물성 단백질, 통곡식 탄수화물, 유산균 등을 가루 상태로 건조한 것으로, 좋은 것을 아무리 먹어도 몸속의 나쁜 것을 스스로 빼는 능력이 없다면 결국 제자리로 돌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아예 체질 자체를 개선해주는 것에 집중한 식단이다. “분말 형태라서 물이나 우유에 타 먹으면 돼. 일단 딱 3일만 해봐.” 이 제품을 개발한 리뷰티 디렉터 안미선은 체형, 내장기관, 수면, 스트레스 모두 음식으로부터 영향을 받는 거라고 설명한다. “말랐지만 건강해지려고 이걸 먹었던 분이 있었어요. 그분은 어느 순간부터 스트레스가 많이 해소되는 걸 느꼈다고 해요. 머리끝까지 화가 나서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 소리 지를 때가 있었는데 식단을 바꾼 뒤로는 그런 일이 한 번도 없었다고 하더라고요.” 내 경우에 가장 많이 바뀐 것은 입맛과 부기, 수면 습관, 스트레스 정도였다. 특별한 맛이 들어가지 않은 스무디가 점점 먹을 만해지고 평소 먹던 아이스라테가 너무 달게 느껴졌다. 3일간의 디톡스가 끝난 뒤 지중해식 파우더와 일반식을 함께 먹을 때에는 고구마만 먹어도 너무 행복했다. 자연 그대로의 식품에서 맛을 찾을 수 있게 되니 점점 인공적인 감미료는 찾지 않게 된 것도 큰 변화. 위궤양까지 앓았을 정도로 위가 약해 잘 체하는 편이었는데 언제 그랬었는지 까마득하다. 식단이 달라지니 아침에 부은 얼굴과 마주하는 일도 줄어들었다. 사춘기도 아닌데 달고 살던 여드름도 점차 모습을 감췄다. ‘심’ 역시 ‘신’을 따라 안정되었다. 이전에 비해 더 잘 자고 덜 짜증 내는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된 것.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한 걱정이 줄어들고 점차 긍정적이고 여유로운 마인드를 갖게 됐다. 업앤다운으로 가득했던 스트레스 곡선이 평평한 한 줄로 정리되었달까.
만약 위와 장 건강 회복이 시급한 상태라면 새로운 식단을 시작하기 전에 체질에 따른 맞춤 관리로 먼저 비워내는 것을 추천한다. “장이나 위에 쌓여 있는 독소는 면역력이나 순환 기능에 큰 영향을 미쳐요. 그래서 비워내는 것이 중요한 거예요. 요즘에는 나쁜 것도 많이 먹지만 그것을 상쇄하려고 좋은 것도 많이 먹는데, 영양 과잉이 오히려 몸을 병들게 할 수도 있거든요.” 리유한의원의 박해웅 원장은 또한 장 활동이 느려졌다가 다시 움직임을 시작하는 아침에 무엇을 먹는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찬 음식, 찬 음료, 샐러드, 과일, 유제품 등이 안 맞는 체질이 있어요. 추위도 더위도 많이 타시는 걸 보니 소양인이거나 소음인일 가능성이 큰데, 이런 분들에게 찬 음식은 더부룩함이나 불면증을 유발할 수 있죠. 입가나 턱 쪽에 여드름이 나는 원인도 되고요.”

좀 더 박차를 가하기 위해 몸의 내부 온도(심부 체온)를 높여 면역력을 강화해준다는 고주파 치료에도 도전해봤다. “몸을 따뜻하게 해 순환 기능을 활성화시키는 원리로 외부에서 들어온 균과 싸울 수 있는 힘을 높여줄 거예요.” 수아연한의원의 박소연 원장의 설명을 들은 뒤 진행된 프로그램은 몸에 열이 많아 걱정한 것에 비해 편안했다. 따뜻함이 몸속에서부터 퍼져나가는 느낌이랄까. 치료를 받은 뒤 마주친 사람들 모두 안색이 좋아졌다는 말을 아끼지 않았을 정도.

면역력이라는 개념에 너무 매몰될 필요 없어요. 그냥 컨디션 좋으면 되는 거예요. 그러려면 잘 자고, 잘 먹고, 화장실 잘 가고, 스트레스 관리 잘하는 규칙적이고 바른 생활을 유지하면 되고요.

프로젝트 마무리, 하지만

면역력을 높이기 위한 갖은 노력을 기울인지 네 달 정도 되었을까. 어느 정도의 변화가 생겼을지 궁금해 중간 점검을 해봤다. 결과는 좋기도, 나쁘기도 했다. 간 수치, 당 수치가 긍정적으로 변화했으며 ‘기력’을 높여주는 호르몬, 코르티솔 수치 또한 정상 범위 안에 있었다. 부기가 줄어들었으며 체지방량은 줄고 근육량은 늘어 체형도 좋은 쪽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다른 결과에서는 여전히 신체 나이가 50대 이상이었으며, 에너지 리소스가 쇠약해질 기미가 보인다는 진단을 받았다. “그동안 운동도 열심히 하고 식단 관리도 철저하게 했는데 앞으로 대체 얼마나 더 이렇게 살아야 면역력이 좀 높아질까요?”라는 우문에 수아연한의원의 박소연 원장은 이렇게 대답했다. “면역력이라는 개념에 너무 매몰될 필요 없어요. 그냥 컨디션 좋으면 되는 거예요. 그러려면 잘 자고, 잘 먹고, 화장실 잘 가고, 스트레스 관리 잘하는 규칙적이고 바른 생활을 유지하면 되고요.”

면역력이 높아진 것 같다고 자만하며 이 원고를 쓰고 있는 9월호 마감, 고백하자면 난 다시 감기에 걸렸다. 고질병인 목 디스크로 인해 파스 냄새도 풀풀 풍기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이어져온 나쁜 생활습관에 오염된 내 몸은 몇 개월 간의 프로젝트로 금세 나아질 정도가 아니었던 거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했던 긍정적인 변화가 나타난 것도 사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악화되지만 조금이라도 실행하니 나아지더라. 내게 맞는 방법을 찾는 시행착오를 거쳤으니, 이제 다시 건강해질 자신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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