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준의 배우 수업

드라마 흑기사의 미워할 수 없는 ‘귀여운 사기꾼’ 캐릭터 김현준. 하얀 입김을 뿜으며 “춥지 않다”고 말하는 인간 김현준. 2018년 좀 더 밀착해서 들여다봐야 할 배우 김현준을 만났다.

셔츠는 Neil Barrett, 스트랩 베스트는 Ports 1961, 새틴 소재의 4포켓 파카는 Louis Vuitton 제품.

아이폰이 진동을 일으키며 ‘징하게’ 울었다. 화면 위로 ‘한파주의보’라는 굵은 메시지가 박혔다.(최저기온 -10℃, 체감 온도는 상상에 맡긴다.) 그날 우리는 경기도 북부 광활한 논두렁 한복판에 서 있었다. 불과 두 시간 전, 검은색 롱 패딩으로 무장한 채 보송보송한 얼굴로 서글서글하게 웃으며 악수를 청했던 한 남자의 얼굴이 파리하게 질려 있다. 모델이 아닌 배우 김현준이란 타이틀로 첫 화보를 찍었던 문제적 그날. 김현준은 촬영 내내 “저 뜨거운 심장을 가진 남자입니다.” “아! 나는 안 춥다, 안 춥다, 춥지 않다.”고 너스레를 떨며 척박한 공기에 ‘스위트함(?)’을 불어넣었다. 한겨울 야외 촬영은 ‘2018 슈퍼 루키’를 환영하는 인사치고는 너무 격한 이벤트였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김현준은 어떤 위기와 역경에도 이미 단련된 듯 보였다. 배우 김현준의 필모그래피로 검색되는 현황은 총 12건(2012~2018년 기준). 카리스마 넘치는 낭도로 분했던 사극 드라마 <화랑>, 여주인공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히는 악질로 등장했던 드라마 <호구의 사랑>, 그 외 <수성못> <기화> <한공주> 등 크고 작은 독립영화에서 그의 얼굴을 볼 수 있다.

그동안 김현준은 바다에도 빠져보고, 절벽 위에도 서보고, 쇠촉이 달린 진짜 화살도 이마에 맞아가며(촬영 도중 피를 흘리며 곧바로 병원으로 달려갔는데 다행히도 머리에 쓴 가발 덕에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다며 담담하게 과거를 회상했다), 그야말로 극한 상황을 온몸으로 겪었다.

가장 심장을 죄어들게 만드는 건 ‘오디션’이란 관문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김현준은 “긴장은 엄청 많이 하지만 티는 잘 안 나고” “걱정은 안 하지만 고민은 많이 하는” 사람이다. 한마디로 말해 “흔들리는 갈대인 것 같다”고. 한창 오디션을 많이 보던 시절엔 일주일에 다섯 번까지 달려야 했다. 2018년 그의 배우 그래프에 방점을 찍을 작품, KBS 2TV 드라마 <흑기사>도 다르지 않았다. 따뜻한 난로 앞에서 커피를 홀짝이며 그가 말했다.

 

터틀넥 톱은 Andersen-Andersen by BOONTHESHOP 제품.

“속된 말로 ‘아다리’가 잘 맞았습니다. 운이 좋았어요. 먼저 오디션에 다녀간 다른 배우들이 그날따라 긴장을 많이 했다고 들었습니다. 셀 수 없을 만큼 오디션을 보다 보면 ‘여기서 잘 보여야겠다’라는 마인드가 아니라 ‘그저 웃음이나 시원하게 드리고 나오자’라는 생각으로 임하게 되죠. 그날도 저는 ‘안녕하세요. 김현준입니다. 하하하.’ 하고 그냥 웃었습니다. 그랬더니 너무 자유롭게 말문이 터지면서 감독님들과 스스럼없이 이야기하다 즉흥 연기를 하나 보여드렸죠. 그랬더니 갑자기 책을 한 권 주시더라고요. 일주일 뒤에 감독님 앞에서 대사를 했더니 ‘뭐 더 읽을 필요가 없네요. 최지훈이 앞에 앉아 있네.’ 라고 하셨어요. 너무 기분이 좋았죠. 드디어 진가를 발휘할 수 있는 때가 왔구나!(웃음)”

가만히 있으면 묵직하고 단단해 보이지만 ‘푹’ 하고 찌르면 바람 빠진 풍선처럼 쉴 새 없이 농담과 개그를 발사하는 이 배우의 애드리브는 현실과 드라마 양쪽에서 펼쳐지고 있는 중이다. 극 중 김래원과 신세경 사이에서 귀여운 훼방을 놓는 미워할 수 없는 ‘구남친’ 최지훈 역으로 등장한다. 그가 뱉은 대사 중 압권은 이거다. “제발 문자만 보내게 해줘.” 해롭지 않고 위압적이지도 않으며 틈새로 조심히 들어오려고 하는 연약한 남자. 이미 ‘귀여운 사기꾼’이라는 애칭까지 획득했다. <흑기사> 10회 차까지의 분량 가운데 김현준의 현 상황을 짧게 압축하면 ‘가짜 검사에서 트레이너로 전향(?)하며 착실하게 살고 있는 중.’

“요즘 제 생활에 대해 말씀드리면 촬영 안 하는 날엔 거의 헬스장에서 운동하거나 집에 쓰러져 있습니다. 솔직히 제 몸뚱이가 트레이너 역할을 할 수 있는 몸은 아니에요. 덩치가 좋은 트레이너보다는 잔 근육이 탄탄한 트레이너로 보이고 싶어서 몸무게를 일부러 73kg에서 65kg까지 뺐어요. 요즘 편의점에서 가장 자주 사는 건 닭가슴살이에요.(웃음) 몸에 굴곡이 있어 보이도록 뭔가 좀 튀어나오게 해야 하니까 한 달간 쉬지 않고 운동했어요. 이 기세로 간다면 다다음 작품쯤에는 히어로물 주인공처럼 몸이 변해 있지 않을까요?” 한 치수 작게 입은 듯 타이트하게 떨어지는 상의 피트, 47도로 각을 잡고 폴더처럼 천천히 접히는 허리, 어떤 상황에서도 아이 컨택트를 절대로 놓치는 법 없는 단정한 눈웃음. 그러니까 이건 재작년 내가 삼성동 ○○헬스장으로 1회 무료체험을 하러 갔다가 마음을 빼앗겨 12개월 할부로 PT 이용권을 끊게 만들었던, 전국에 있는 트레이너 수천 명(?)의 표본과도 같은 모습이었다. 이런 걸 두고 메소드 연기라고 해야 하나? “사실 신인 연기자로서 말도 안 되는 건데, 촬영장에서 애드리브가 난무합니다. 이번 드라마 현장 자체가 자유로운 분위기라서 뭘 해도 포용해주시죠. 최지훈이란 인물은 비교적 자유롭게 열려 있어서 아마 제가 더 흐물흐물한 상태로 있어도 되는 것 같아요. 함께 출연하는 선배님들께서 말씀하시길, 제가 뭔가 제스처를 취하면 이상하게 자꾸 한마디를 덧붙이고 싶대요. 애드리브가 살아서 나오는 장면을 보면 왠지 뿌듯하죠.” 어쨌거나 이 드라마는 동시간대 수목 드라마 시청률 1위를 달리는 중이다. 요즘 김현준이 카페에 등장하면, 유독 주변에서 ‘흑기사’라는 단어가 이상하게 귀에 쏙쏙 잘 들린다는 후문. “그럴 땐 반응을 해야 할지 그냥 모른 척 가만히 있어야 할지 부끄럽습니다. 그런데 처음 겪어보는 아주 재미있고 감사한 현상이에요.”

터틀넥 톱은 Neil Barrett, 타탄체크 아우터 셔츠는 MSGM, 지퍼와 스트랩 장식의 가죽 오버올은 99%is, 오버사이즈 코트는 Off White, 레오퍼드 패턴의 플랫 슈즈는 Christian Louboutin 제품.

터틀넥 톱은 Andersen-Andersen by BOONTHESHOP, 자수 장식의 롱 카디건은 Yohji Yamamoto, 사이드 라인 팬츠는 99%is, 스니커즈는 Converse 제품.

김현준의 흑기사는 누구냐고 묻자 “김래원”이라는, 사랑을 듬뿍 담은 답변이 1초 만에 돌아왔다. “(갑자기 성대모사를 시연하며) ‘어 지훈이 왔니?’ 리허설이 시작되면 그 좋은 목소리로 반갑게 맞아주세요. 연기 디렉팅을 해주시면 제가 바로바로 흡수하니까 선배님도 재미를 느끼시는 것 같아요. 김래원 선배님과 함께 연기하면 매 순간 깨달음을 얻고 옵니다.” 2월 종방연을 앞두고 아쉬움이 많이 남지는 않을까? (세상 쓸데없는 걱정을 했다.) “드라마가 끝나면 바로 일본으로 도망갈 겁니다.(웃음)”

“취미가 뭐예요?”라는 따분한 질문은 다행히 하지 않았지만, 추측하건대 김현준은 요즘 드라마에 빠져 산다. 사뭇 진지하게 말했다. “시장의 흐름을 이해해야지 그들이 원하는 게 뭔지를 알고 본질을 이해해야 원하는 걸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가 ‘본방사수’ 하거나 다시보기 하는 드라마 리스트는 <슬기로운 깜빵생활> <저글러스> <로봇이 아니야> <피고인> <미생> 이하 생략. 앞으로 맡아보고 싶은 역할이 그 가운데 있었을까? “요즘 OCN에서 <나쁜 녀석들>이란 드라마가 방영되고 있는데 그런 땀냄새 나는 드라마를 해보고 싶어요. 아니면 진짜 제대로 된 악역? 여태까지 작품에서 어떤 장치적인 악역으로 등장했다면 뭔가 이유와 사연이 있는 악역에 도전해보고 싶네요.”

김현준은 지금까지 선보다 악에 가까운, 가볍기보단 무겁고 어두운 배역에서 기억에 남을 만한 연기를 선보여왔다. 영화 <한공주>의 고릴라 가면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단박에 알아차릴 것이다. 영화 <기화>에서는 시종일관 화난 얼굴로 조금이라도 건들면 폭발할 것 같은 기화 역으로 등장했다. 영화 <수성못>에서는 자살클럽 회장이자 휴대폰 판매업에 종사하는 영목 역을 맡았다. “주변 친구들을 수소문해서 실제로 그 업종에서 일하는 형님을 소개받았어요. 인천 부평 지하상가에 가서 지금 인터뷰처럼 녹취를 하면서 단통법부터 시작해서 그분들이 자주 사용하는 용어를 흡수하려고 했죠. 그런데 막상 촬영에 들어가니까 그때 습득한 대사를 시간상 제대로 표현할 수가 없었어요. 영화 작업은 후회가 더 많은 기억으로 남아 있는데, 오히려 그 덕에 많이 단단해지고 넉살도 생긴 것 같아요. 오며 가며 만나는 관계자 분들이 다들 하는 말이, 꼭 잘됐으면 좋겠다는 기원을 해주시더라고요. 진짜 감사하죠.”

극장이든 텔레비전이든 작은 휴대폰 액정 화면이든, 아직까지 김현준이란 배우를 발견하기 위해서는 가능한 커다란 돋보기를 꺼내 들어야 하는 건 사실이다. 그리고 그가 출연한 지분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인내심도 필요하다. 언제 나오는지 마음의 준비를 하고서 계속 기다려야 하니까. “개인적으로 김지운 감독님을 정말 좋아합니다. 한창 촬영 중인 감독님의 영화 <인랑>에 저도 작게 나와요. 첩보 활동 하는 인물로 등장하는데, 제 배역은 거의 대사가 없어요. 영화 속에서 자전거를 타는 모습으로 등장하죠. 혹시 안경 쓰시나요? 안경을 쓰셔야 잘 보일 겁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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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사진 Park Yongbin
헤어 이 일중
메이크업 강 석균
스타일리스트 서 정은, 지 태성
기타 로케이션/ 우보농장
어시스턴트 김 민형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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