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윤의 고요한 울림

뮤지션 박지윤이 12월 콘서트 ‘오케스트라 20’으로 무대 위에 오른다. 숫자 20은 시간의 힘과 음악의 합을 동시에 담은 담담하고 아름다운 숫자다.

드레스는 21Defaye, 귀고리는 Tani by Minetani, 슈즈는 Rachel Cox 제품.

 

각자가 기억하는 ‘박지윤’이 있다. ‘하늘색 꿈’ ‘스틸 어웨이’ ‘아무것도 몰라요’ ‘가버려’ ‘난 사랑에 빠졌죠’, 제목만 들어도 흥얼거릴 수 있는 1990년대를 관통했던 추억의 주크박스. 그리고 내가 기억하는 박지윤은 7, 8, 9라는 숫자다. 겹겹의 시간을 지나 한 명의 독립적인 뮤지션으로서 그가 직접 프로듀싱하고 자작곡으로 빼곡히 채운 7~9집 세 장의 앨범. 믿기지 않겠지만 벌써 20년이다. 시선을 수줍게 아래로 떨군 채 ‘하늘색 꿈’을 부르던 박지윤이 걸어온 단단한 물리적 시간 말이다. 12월 1~2일 이틀 동안 서울 올림픽공원 K아트홀에서 열리는 단독 콘서트 ‘오케스트라 20’은 그 시간의 변주이자 합주라고 할 수 있다. “오랫동안 오케스트라와 함께하는 공연을 그려왔어요. 사실 20주년이라는 표현을 그렇게 내세우고 싶지 않았는데 숫자가 어떻게 딱 잘 맞아떨어진 것 같아요. 20개가 넘는 악기가 각자의 소리를 내기 때문에 그것이 잘 어우러질 수 있도록 편곡부터 악기 세팅, 마이크까지 세세하게 신경 써서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발표해온 총 9장의 앨범 가운데 그가 고른 트랙을 새롭게 편곡해서 들려줄 예정이다. 피아니스트 조윤성이 이번 공연에 든든한 지원군으로 함께한다. “조윤성 씨와는 9집 작업을 하면서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눴어요. 그런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이번 공연을 함께 준비하는 일은 아주 자연스러웠죠. 어떠한 편견 없이 제 음악을 들어주고 조언해주는 부분이 많은 울림을 주었어요.”

박지윤은 내가 보낸 30개가 넘는 질문에 보라색 글씨로 빼곡히 새벽에 답을 보내왔다. 편지를 주고받는 기분이 들었다. 6년이란 긴 공백기를 거치면서도 지금까지 음악이라는 끈을 놓지 않았던 원동력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답은 이랬다. “노래하는 순간에 살아 있음을 온전히 느끼기 때문에 여러 상황이 힘들어도 다시 음악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음악을 다시 만들기까지는 늘 많은 시간과 용기가 필요합니다. 여성 솔로 뮤지션이 해를 거듭하며 자기 음악을 한다는 게 특히나 우리나라에서는 여러모로 많이 어려운 일이지만, 그럼에도 할 수만 있다면 계속해서 노래하고 싶습니다.”

터틀넥, 슬랙스, 재킷은 모두 Stella McCartney, 앵클부츠는 Stuart Weitzman 제품.

원피스는 Neil Barrett, 반지는 Ginette NY 제품.

‘박지윤 크리에이티브’는 그가 직접 만든 회사다. 앨범 프로듀싱부터 정산까지 크고 작은 모든 일을 본인의 손으로 한다. 셀프 포트레이트로 만든 공연 포스터 역시 직접 찍은 사진이다. “2009년도에 제가 만든 음악으로 앨범을 내고 싶어서 회사를 좀 찾아봤는데 그 많은 회사들 대부분이 저를 보는 시각에 대해 이미 편견이 있더라고요. 박지윤이란 가수와 하고 싶은 건 제2의 ‘성인식’ 같은 음악이었죠. 그래서 약간은 오기도 생겼고 혹시 망하더라도 꼭 한번은 내가 진짜 좋아하는 음악을 해보고 싶다는 무지한 열정으로 그렇게 시작하게 됐어요.” 올해 3월, 9집 발매 당시 망원동의 작은 공연장 ‘벨로주’에서 콘서트를 준비하거나 EBS <스페이스 공감>에서 담담하게 노래하던 모습들이 스쳐 지나갔다. 눈을 꼭 감은 채 온전히 노래에 몰입하던 그 장면. “눈 뜨고 노래 부르라는 이야기를 주변에서 종종 들어요.(웃음) 사실 눈을 감고 인상을 쓰면서 노래하는 모습이 그렇게 예뻐 보이지는 않을 수 있죠. 그런데 분명히 이유가 있어요. 무대 위에서 제 소리에 좀 더 집중하고 싶어요. 아무래도 눈을 뜨고 있으면 모든 게 다 보이고, 감정이 많이 담긴 노래들은 그러다 보면 소리의 흐름을 놓치게 되거든요. 그래서 언제부턴가 눈을 감고 부르는 것이 더 편하고 좋아요.”

그녀와 만난 후 떠오른 단어는 ‘취향’이란 두 글자다. 자신에게 꼭 맞는 것들을 발견할 줄 아는 사람의 힘이랄까. 박지윤은 잡지가 하는 일처럼 자신의 시선과 취향을 아카이빙하는 사람이다. 애플 뮤직 <매거진 B> 플레이리스트에 올라와 있는 박지윤의 가을 선곡 리스트, 날짜별로 기록해둔 필름 사진(9집 수록곡 ‘겨울이 온다’의 뮤직비디오는 그가 몇 십 년 동안 찍어온 흰 눈 가득한 풍경 사진으로만 채워져 있다), 그리고 인스타그램 계정에 올라오는 직접 만든 정갈한 요리들.(커피 콩을 직접 로스팅해서 내려 마신다거나 매실로 청을 담그고 천연 발효종을 키워 빵을 구울 정도다.) 요즘처럼 공연을 앞둔 시기에는 장어와 홍삼으로 힘을 비축한다고 했다. “노래가 끝나면 완전히 에너지가 빠져나가요. 그래서 공연을 앞두고 있을 때는 잘 먹고 늦은 시간에 잠들지 않으려고 규칙적으로 생활해요. 노래할 때 중요한 복근 운동도 빼놓지 않고 하죠. 그리고 요즘엔 요가도 번갈아가면서 해요. 사실 스스로를 관리하는 건 이제 습관이 되어버린 것 같아요. 진짜 건강한 삶을 살면서 나의 작업을 꾸준히 이어나가는 건 정말 큰 숙제라고 생각해요.”

자신의 인생을 몇 장의 사진으로 돌아본다면 “대부분 슬픈 감정이 강렬했던 순간들인 것 같다”는 예전 인터뷰가 맴돌아서 그녀에게 슬픔이 주는 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박지윤은 보라색 글씨로 이렇게 답했다. “니체의 <비극의 탄생>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 깊은 공감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리스 시대 사람들은 비극을 보고 간접적으로 슬픈 경험을 통해 삶을 배우고 돌아보았다고 합니다. 비극이 갖는 가치는 삶을 긍정하는 힘에 있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은 슬픔과 아픔을 통해 성장합니다. 슬픔으로 인해 지금 현실의 나를 돌아보고 행복을 더 갈망하게 되는거죠.” 내겐 박지윤이란 뮤지션이 부른 노래가 꼭 그렇게 들렸다.

터틀넥, 슬랙스는 모두 Stella McCartney, 앵클부츠는 Stuart Weitzman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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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사진Choi Moonhyuk
헤어임 해경
메이크업임 해경
스타일리스트안 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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