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전의 사나이, 민우혁

민우혁은 반전의 사나이다. 야구선수에서 가수로, 음반에서 무대 위로, 무명의 지망생에서 캐스팅 절대 강자 뮤지컬 배우로. 그리고 요즘엔 주말마다 브라운관 속에서 열창하며 만인의 눈가를 촉촉하게 만드는 화제의 남자가 되었다. 민우혁의 클라이맥스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민우혁 - 하퍼스 바자

어깨를 강조한 재킷, 핀턱 디테일의 와이드 팬츠는 모두 Mnn, 러플 디테일 블라우스는 Kimseoryong, 윙팁 슈즈는 Alden by Unipair 제품.

무대 위에 서는 배우들을 보면 가끔 ‘인간’처럼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관객의 귀와 심장 양 갈래로 직진하는 폭발적인 목소리, 안면근육이 터질 것 같은 드라마틱한 표정, 숨이 멎어버릴 듯한 과격한 몸짓. 이 모든 것을 동시에 하는 뮤지컬 배우는 그야말로 극한 직업 최전선에 있는 사람들이 아닐까 싶다. 폐활량, 체력, 근력, 목청, 어떤 기운마저도. 그들은 마치 다른 행성에서 떨어진 사람들 같다. 민우혁 역시 그랬다. 일단은 190cm에 얼마 모자라지 않는 장신에 주춤했다. 촬영을 위해 높이감 있는 오브제에 우뚝 솟으니 루브르나 대영박물관에서 크로키 할 법한 고대 조각상 같은 장엄한 포스를 뿜었다. 그가 본격 촬영에 임하자 순간 그 공기가 무대처럼 변했다. 고고하게 섰다가 앉았다가 다시 드러눕기도 했다. 물론 그는 중간중간 멋쩍어했다. 그러나 셔터가 ‘팡’ 하고 터질 때마다 빛도 튕겨 나갈 법한 강렬한 레이저를 눈동자에서 발사했다. 사진가도 흠칫 놀랐다.

민우혁은 외향만큼이나 극적인 반전 스토리를 가진 배우다. 야구선수에서 가수 지망생으로, 오랜 무명 생활을 거쳐 지금 뮤지컬계 캐스팅 1순위의 배우로. <레미제라블> <위키드> <아이다> 등 굵직한 작품에 이름을 올렸다. 모두 치열한 캐스팅 전쟁을 뚫고 따낸 배역이다. 그리고 아직은 말할 수 없는 2017년 기대작의 포스터 촬영을 마친 상태다. 게다가 요즘엔 실시간 검색어에 그의 이름이 자주 오르내리고 있다. KBS2 <불후의 명곡-전설을 노래하다>에서 청중의 입이 ‘떡’ 벌어질 만한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 특히 5월 13일에 방송된 안중근 의사 헌정 무대가 압권이었다. 전설의 작곡가 김희갑, 작사가 양인자 부부 편에서 민우혁은 ‘킬리만자로의 표범’과 도마 안중근의 일대기를 그린 뮤지컬 <영웅>을 믹스한 무대를 선보여 우승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뮤지컬 배우이기에 가능한 연출이었다. 정확한 딕션과 섬세한 감정선, 폭발하는 가창력이 삼위일체되어 만든 한 편의 드라마였다. 래퍼 치타마저도 그 무대를 보고 흐느껴 울었다. 그가 선보인 일련의 강렬한 퍼포먼스와는 다르게 실제로 만나본 민우혁은 실로 친근하고 위트 있는 화법을 가진 사람이다. 겉이 ‘보드카’라면 속은 ‘소주’ 같은 사람이랄까. ‘속인’은 알 길 없는 뮤지컬 배우의 타이트하고 화려한 삶의 이면에 있는 바이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민우혁의 클라이맥스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민우혁 - 하퍼스 바자

은은한 광택의 체크 블라우스와 점프수트는 모두 Kimseoryong 제품.

배우들끼리는 그런 말 한다. 매회 살얼음판 걷는 것 같다고. 신(Secne)이 끝나고 카메라를 무대 뒤로 돌려보면 정말 전쟁터가 따로 없다. 한 사람만 삐끗해도 전체가 다 엉키고 사고도 일어날 수 있다.

요즘 <불후의 명곡>에서 보여주는 무대들이 화제다. 인스타그램(@wohyuk37) 팔로어 숫자도 최근에 부쩍 늘어난 것 같다. 방송 출연 전과 후의 변화를 체감하는가?

아이비 씨랑 같이 했던 ‘엄정화 편’의 ‘눈동자’ 무대 후에 축하 문자가 백 몇 개씩 쏟아졌다. 신기했다. <아이다> 팀과 다 같이 무대에 섰기 때문에 너무 좋은 꿈을 꾼 느낌이었다. 오늘도 화보 촬영 오기 전에 300회 특집 무대를 위해 이틀 정도 밤을 샜다. 처음엔 욕심 없이 시작했다가도 갑자기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공연 흐름을 계속 수정한다. 경쟁 프로그램이긴 하지만 이겨야겠다는 생각보단 내가 배우니까 스토리텔링 위주의 공연을 보여드리고 싶다.

JTBC <잡스>에서는 무명 시절의 스토리가 화제에 올랐었다. 과거 연예인 야구단 코치도 했었다고?

사실 이쪽 일을 포기하려고 했었다. 생계 유지가 안 되니까. 2003년에 드라마 OST 앨범을 내고 가수로 먼저 데뷔했다. 당시엔 조성모, 성시경 이런 분들이 음반 강자였다. 그런데 한 번도 노래를 불러서 돈을 벌지 못했다. 활동이 잘 안 되니까 투자금을 거둬들이지 못했다. 그래서 아르바이트만 계속 했는데 아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용기를 줬다. 그렇게 해서 뮤지컬 오디션에 도전했는데 <젊음의 행진>이란 작품에 캐스팅됐다. 그걸 계기로 뮤지컬계에 입문했다.

뮤지컬계는 계급장 떼고 진짜 실력으로 경쟁할 수 있는 투명한 판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미 정점에 오른 배우들도 계속해서 오디션 과정을 통해 새로운 배역을 따내야 하지 않나?

어떤 유명 배우가 있다고 치자. 그렇다 해도 우리나라에서나 정상급인 거지 브로드웨이에서 온 스태프들은 그 사람이 누구인지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든 오디션을 거쳐야 하는 거다. 그래서 아무리 작품을 많이 해도 자리 잡았다고 말하기 어렵다. 누구도 오디션을 피할 수 없다. 오히려 신인에겐 그것이 도전할 수 있는 기회다. 그래서 좋은 작품 소식이 들려오면 항상 오디션 준비를 먼저 시작한다. 누가 그 공연을 했었는지 찾아보고, 그 사람이 왜 캐스팅됐는지 연구도 해본다.

그런데 뮤지컬 배우 정말 극한 직업 아닌가? 뮤지컬을 보러 가면 극에 온전히 몰입해서 푹 빠져 보다가도, 배우들의 거친 숨소리가 들리거나 땀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게 보이면 얼마나 힘들까 한편으로는 숙연해지기도 한다.

배우들끼리는 그런 말 한다. 매회 살얼음판 걷는 것 같다고. 신(Secne)이 끝나고 카메라를 무대 뒤로 돌려보면 정말 전쟁터가 따로 없다. 한 사람만 삐끗해도 전체가 다 엉키고 사고도 일어날 수 있다. 나도 공연하다 발목이 한번 돌아간 적 있다. 같은 공연을 백 회 넘게 해도 항상 긴장감 때문에 손바닥이 땀으로 흠뻑 젖는다. 곡 하나가 끝나면 정말 심장이 터질 것 같다. 가끔 무대에 등장했는데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아무 생각이 안 날 때도 있다. 그럴 땐 가만히 있어도 땀이 주르륵 흐른다. 그런데 신기한 건 몸이 기억하고 있다는 거다. 뭐라도 터져 나온다. 만약에 진짜 생각이 나지 않으면 그 순간 떠오른 아무 가사나 대사로라도 이끌어 나간다. 그것도 안 되면 ‘라라라’ 이렇게라도 노래를 불러야 한다.

민우혁 - 하퍼스 바자

모던한 디자인의 화이트 셔츠는 Cos 제품.

프로페셔널한 배우로 활약하는 지금도 여전히 레슨을 받는가?

당연하다. 공연을 하다 잘 안 풀리는 것 같으면 코치님께 바로 전화한다. 내가 하는 매회 공연을 항상 휴대폰에 녹음한다. 얼마 전에 끝마친 <아이다>도 1회부터 70회 넘는 횟수를 전부 녹음했다. (휴대폰을 보여주면서) 좀 잘했다 싶은 날은 이렇게 괄호를 치고 별 표시를 해놓는다. 집에 가는 길에 항상 모니터링하는데, 막상 그날 공연에서 나는 잘했다고 생각해도 들어보면 되게 이상한 것들이 들린다. 무대에 서면 계획한 대로 하지 않고 순간의 감각에 이끌리기도 하니까. 근데 그건 착각인 거다.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녹음해서 들어보고 코치님께 솔루션을 받는다.

뮤지컬 배우 정선아 씨는 인터미션 사이 체력 보충을 위해 삼겹살을 먹는다고 하던데, 평소 식단 관리는 어떻게 하나?

<위키드> 공연할 때 배고프면 선아한테 갔었다.(웃음) 배우들의 냉장고를 열어보면 정말 장난 아니다. 한때는 나도 배역을 위해 8kg 정도 체중을 감량하고 무대 위에 올랐다. 그때 노래 부르다 정말 쓰러질 뻔했다. 탄수화물을 섭취하지 않고 노래 부르면 머리가 ‘핑’ 돈다. 나는 원래 대식가다. 3시간 동안 쉬지 않고 삼겹살 20인분까지 먹어봤다. (정적 후 일동 웃음) 한때 라멘 가게에서 점보 사이즈 국물까지 싹 비우면 사진 찍어주지 않았나. 그런 사진에 내 얼굴이 많이 등장한다. 짬뽕집, 돈까스 가게에 전부 얼굴을 남겼다. 예전에는 라면도 8개는 끓여 먹어야 배가 불렀다. 정성화 형이랑 그런 말을 했었다. “맛집을 왜 찾아 다녀? 뭘 먹어도 다 맛있는데.” 으하하.

앞으로 도전해보고 싶은 역할이 있나?

‘민우혁이 저런 걸?’이란 물음표가 뜨는 역할에 도전해보고 싶다. 무언가에 익숙해지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짐작 가능한 건 재미없지 않은가? 지난번에 관객으로 뮤지컬 <킹키부츠>를 봤었다. 만약에 내가 거기서 역할을 맡는다면 사람들은 구두회사 사장 ‘찰리’를 먼저 떠올릴 거다. 그런데 나는 드래그퀸 ‘롤라’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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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사진신채영
스타일리스트이병호(어시스턴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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