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혜선이 말하는 패션

드라마 <비밀의 숲>에서 절절한 감정이 매복된 미스터리의 헤로인으로 변신한 배우 신혜선이 <바자> 창간 21주년을 기념해 배우에게 패션이 어떤 의미인지 말한다.

신혜선 인터뷰 - 바자

시스루 드레스가 연결된 홀터넥 보디수트는 Emilio Pucci, 귀고리와 반지는 모두 Numbering 제품.

신혜선 인터뷰 - 바자

여러 캐릭터를 잠깐이나마 연기했는데, 내러티브 없이 의상만으로 즉흥적인 연기를 하는 게 어렵지는 않았나요?
사랑스러운 원피스를 입고 탐스럽게 컵케이크를 먹어야 할 땐 정말 힘들었는데 부스스한 웨이브 헤어에 파자마 룩을 걸치고 와인 병을 들었을 땐 이거다, 싶었어요.(웃음) 확실히 의상은 분위기를 잡는 데 정말 중요한 요소예요. 배역에 딱 맞는 의상을 입었을 때 완전히 그 캐릭터가 된다는 느낌을 받거든요.

방영 중인 드라마 <비밀의 숲>에서 신참 검사 영은수는 언제나 검은 정장에 단정한 구두를 신고 두 손을 곱게 모은 채 억울한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웃음) 강력계 형사 한여진(배두나)도 제법 다채롭고 창의적인 캐주얼 룩을 선보이는데 매일 같은 옷을 입는 게 지루하진 않았나요?
아, 이런, 같은 옷 같아 보이지만 매번 미묘하게 달랐는데!(웃음) 그래서 스타일리스트 실장님이 속상하셨을 거예요. 투 버튼, 스리 버튼, 더블 버튼, 넉넉한 피트, 슬림한 피트…. 굉장히 열심히 준비해주셨거든요. 은수는 지금 아버지의 누명을 벗게 하겠다는 일생일대의 목표 말고는 다른 걸 신경 쓸 여유가 없는 상태라서 자신의 외모에 관심이 없을 거예요. 이 아이가 옷을 입을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일하기 편한 차림 그것뿐이죠. 그래서 타이트한 옷은 피했고 머리도 중간에 잠깐 풀긴 하지만 깔끔하게 묶었어요. 실제로 검사를 많이 만나본 건 아니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대부분 은수와 비슷한 차림이긴 하더라고요. 검사로서의 중후함, 공정성 같은 걸 표현하기에도 검은 정장이 제격인 것 같고요.

그래도 한번쯤 은수가 파격적인 옷을 입는다 하면 뭘 입혀주고 싶어요?
새빨간 드레스? 아니면 옷은 그대로 입더라도 레드 립을 곱게 칠해주고 싶어요. 만다린 레드 같은 쨍한 빨간색은 보기만 해도 기분이 업되잖아요. 은수한테도 하루쯤은 화사한 날이 있으면 좋겠어요.

신혜선 인터뷰 - 하퍼스 바자

스트라이프 가운과 팬츠는 Instant Punk, 선글라스는 Gentle Monster, 슈즈는 Christian Louboutin 제품.

신혜선 인터뷰 - 바자

커팅 디테일의 셔츠와 타이트 스커트는 모두 Fleamadonna, 안경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무엇보다 영은수, 이름이 너무 예뻐요.
저도요, 저도요! 영씨를 처음 봤는데 이렇게 예쁜 이름을 알게 됐어요. 영은수, 라고 제가 제 이름을 자꾸 부르게 돼요.

사전제작 드라마여서 지금은 온전히 시청자의 입장에서 드라마를 볼 수 있을 텐데 본방사수 중인가요?
최근 2회 정도만 제대로 못 보고 쭉 정주행했어요. 그런데 볼 때마다 너무 힘들어요. 집에서 가족들이 틀어놓으니까 어쩔 수 없이 눈을 맞추고는 있는데 제 연기를 보는 게 고역이더라고요. 왜 저렇게밖에 못했을까! 제가 안 나오는 장면은 아주 재밌게 봐요. 편집이 되고 음악도 들어가고 하니까 알고 있는 내용인데도 흥미진진하더라고요. 끝나고 나면 제가 나온 장면들 그대로 따라해봐요. 이렇게 했어야지! 하면서.(웃음)

가장 열렬히 재연해본 장면은 뭐예요?
말할 수 없어요! 사실 모든 장면을 다 해본 거 같아요.(웃음)

신혜선 인터뷰 - 바자

오프숄더 톱은 H&M, 귀고리는 Vintage Hollywood 제품.

신혜선 인터뷰 - 바자

터틀넥은 Joseph, 수트는 Clue de Clare 제품.

용의자가 된 서동재(이준혁)의 진심을 알아보기 위해 일부러 자극했다가 목이 졸려 죽을 뻔한 장면 있잖아요. 산발한 머리를 하고서 황시목(조승우)의 아파트로 찾아간 장면은 어땠어요? 단추가 다 뜯겨나간 셔츠 대신 시목이의 스웨터로 갈아입고 나서 “제가 아무거나 소화를 참 잘해요.” 할 때.
그 장면은 연기할 때랑 TV로 볼 때랑 온도 차가 좀 있더라고요. 촬영할 땐 은수가 그렇게까지 이상한 애로 보일 거라고는 생각 못했는데 TV로 보니까 정말 온라인에서 불리는 별명대로 ‘영또’라고 할 만하다 싶었어요. 그런데 더 해볼 걸 싶은 마음이 드는 걸 보니 저도 은수랑 닮아가나 봐요.(웃음) “제가 아무거나 소화를 참 잘해요.” 하고 어울리지 않게 너스레를 떠는 장면은 생각보다 어려웠어요. 시목이의 집 자체도 어둡고 정적이 가득한 공간이잖아요. 실제 촬영 현장도 딱 그렇거든요. 근데 뜬금없이 그런 말을 하려니까 너무 어색하더라고요.

그런데 시목이에 대한 은수의 마음은 뭘까요?
시목_은수_여진을 두고 러브 라인에 대한 얘기들이 많은데 저희 드라마에는 러브 라인이 없어요. 은수는 검찰청에서 외톨이 같은 심정일 거예요. 시목이가 감정이 거세된 상태라면 은수는 그 어떤 감정도 표현할 수 없기 때문에 결국에는 같은 처지의 인간인지도 몰라요. 끊임없이 속으로 ‘당신들이 우리 아빠한테 그렇게 했잖아!’라고 절규하고 있는 상태라 검찰청에 있는 어느 누구에게도 자기 마음을 터놓을 수가 없거든요. 그래서 선배로서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있기도 하고 동시에 동류의 인간에게서 느끼는 동질감 같은 게 있을 거고 아무도 믿을 수 없는 이곳에서 ‘어쩌면 저 사람은 믿어도 되지 않을까? 나를 도와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갖고 있는 것 같고, 또 인정받고 싶은 마음도 있는 거고요.

한여진이나 영은수나 모두 생동감과 긴장감을 선사하는 캐릭터이고 무엇보다 능력이 출중합니다. 일할 때 실제로 그렇게 멋지고 다면적인 성격이라 끊임없이 궁금해지는 여자들을 많이 만나거든요. 그런 여자들을 드라마에서도 만날 수 있어 기뻐요.
저도 그래요. 그동안 맡았던 인물들이 전체 이야기에서 해야 하는 역할이 뚜렷한 경우가 많았는데 은수는 연기하는 제 입장에서도 ‘얘는 진짜 무슨 생각인 거야?’ 이러면서 매 장면 궁금증이 일었거든요. 그래서 어려운 부분도 있었는데 작가님과 카페에서 만나 영은수 집중 탐구를 하고 나니 좀 더 알게 되고 그러면서 좀 더 매력을 느끼면서 연기할 수 있었어요.

신혜선 인터뷰 - 하퍼스 바자

턱시도 재킷은 Zara, 귀고리는 Numbering, 팬츠와 슈즈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신혜선 인터뷰 - 하퍼스 바자

턱시도 점프수트는 Bottega Veneta, 귀고리는 Mzuu, 힐은 Stuart Weitzman 제품.

그때 작가님이 무슨 얘기를 해주셨나요?
작가님이 굉장히 내향적인 분이셔서 그때 우리가 나눈 얘기가 공개되는 걸 원치 않으실 거 같아 다 말씀드리긴 어렵고 제가 얘기를 들으면서 떠올린 이미지는 하나 있어요. 사방이 어두운 가운데 밧줄 하나 간신히 붙잡고 기어 올라가는 처절하고 절실한 느낌, 좀 슬펐어요.

황시목과 이창준(유재명) 대립 신의 팽팽한 긴장감이 초반에 흡입력 있게 드라마에 빠져들게 한 것 같아요.
현장에선 더했어요. 방송에선 5분 정도의 길이지만 여러 번 촬영하기 때문에 한두 시간 정도 찍거든요. 같은 대사를 여러 번 반복해도 긴장감이 대단했죠. 저는 연기할 때 선배님들 눈을 잘 못 쳐다보겠어요. 카메라만 돌면 갑자기 눈빛들이 변해서 나를 꿰뚫어볼 것 같고 그랬어요. 많은 분들이 드라마 보고 유재명 선배님 얘기하시던데 저는 선배님 뵌 지 3년 정도 됐거든요. 베트남 합작 드라마에서 만나 뵙고 종종 광고 촬영장에서도 인사 드렸어요. 평소에도 굉장히 젠틀하고 워낙 연극계에서 오래 활동하셔서 내공이 상당해 멋지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수트를 딱 갖춰 입고 나오시니까 정말 멋지더라고요. 워낙 선배님이 ‘피지컬’이 좋으시니까.

그런데 범인이든 설계자든 힌트 좀 주면 안 돼요? 너무 궁금해요!(웃음)
저는 물론이고 드라마에 출연하는 모든 배우들이 같은 질문에 시달리고 있어요. 심지어 소속사 대표님에게도 주말 밤이면 문자가 쇄도한답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이 말씀만 드릴게요.(웃음)

9월에 시작하는 드라마 <황금빛 내 인생>에서 인생의 우여곡절을 겪는 주인공을 연기한다고 들었어요. 50부작 긴 드라마인데 준비하는 마음이 남다를 것 같아요.
한 여자의 드라마틱한 인생을 50부작이라는 긴 호흡으로 끌고 가야 하는데 부담이 클 수밖에 없어요. 낙차가 큰 감정을 내가 무리 없이 소화할 수 있을까, 걱정도 되지만 한편으론 연기를 통해 인생의 굴곡이나 심지어 재난까지도 당할 수 있는 게 행운이라는 생각도 해요. 평온한 일상을 누리면서 연기로나마 스펙터클을 겪어보는 거죠. 전혀 위험하지 않은 대리만족 같아요. 그래서 재밌어요.

  • Kakao Talk
  • Kakao Story

Credit

에디터
사진Mok Jungwook
헤어강 현진
메이크업이 지영
어시스턴트이 은비
출처
본 기사를 블로그, 커뮤니티 홈페이지 등에 기사를 재편집하거나 출처를 밝히지 않을 경우, 그 책임을 묻게 되며 이에 따른 불이익은 책임지지 않습니다. 웹사이트 내 모든 컨텐츠의 소유는 허스트중앙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