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우리가 만나는 곳

비무장지대 남방한계선에 최근접한 지점에 위치해 있는 월정리역에서 노래할 백현진과 방준석의 듀오 방백과 영국 싱어송라이터 뉴턴 포크너, 해방 후부터 한국전쟁까지 철원군 조선노동당이 사용한 노동당사에서 무대를 꾸릴 선우정아, 페스티벌의 메인 프로그램이 펼쳐질 고석정 스테이지를 맡을 이디오테잎, 잠비나이, 새소년, 품 비푸릿. 평화를 소리 높여 노래할 이들을 만나봤다.

뉴턴 포크너와의 첫만남

마치 타악기를 연주하듯, 두 손을 이용해 기타 넥과 보디를 번갈아 두드리는 독특한 주법으로 이목을 끄는 영국의 싱어송라이터 뉴턴 포크너(Newton Faulkner). 손재간에 걸맞게 <로봇이 만든 손(Hand Built by Robots)>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데뷔 앨범은 더블 플래티넘을 기록했고, 사고로 손목을 다친 후 타이타늄을 넣는 수술을 받고 작업한 2집 <사람이 다시 만든(Rebuilt by Humans)>은 앨범 차트 3위를 기록했다. 최근 뮤지컬 <아메리칸 이디엇>의 주인공 역을 맡으며 잠시 웨스트엔드 배우의 삶을 살았던 그는, 다시 본업으로 돌아와 기타를 들고 DMZ 피스트레인 페스티벌을 찾는다.

당신의 아버지는 동화 작가였다. 당신이 6월 23일 오후 2시 30분에 비무장지대 남방한계선에 최근접한 월정리역 레일 위에서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내게는 마치 동화 속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월정리역 공연에 대해 매우 들떠 있는 상태다. 비무장지대라는 공간에서 공연해본 적이 한 번도 없기 때문에 배울 것이 무척 많을 것이다. 첫 한국 방문이기도 하고 말이다. 새로운 장소를 여행하는 것은 항상 즐거운 일이다. DMZ 피스트레인 페스티벌로부터 초청을 받아 무척 영광이다.

이 역사적인 평화의 분위기를 당신의 아들에게도 맛보게 해줄 것인가?

학교에 보내야 해서 데려오지 못했다. 정말 좋아했을 텐데 아쉽다.

요즘에도 공연 전에 줄넘기를 하는가?

그렇다. 줄넘기를 하면 신경이 안정되고, 머리를 손가락과 연결시켜주는 효과가 있다. 줄넘기 말고도, 기초적인 태극권으로 숨을 고르기도 한다.

줄넘기는 자신이 만든 장애물을 자신이 넘는 것이라는 점에서 흥미로운 메타포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당신의 커리어에서, 자기 자신에게 부여한 후 극복해 낸 가장 자랑스러운 과제는 무엇이었는가?

내게 기타를 연주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기타를 시작하고 난 후로 다른 것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반면 노래를 부르는 것은 길고도 복잡한 여정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현재 내가 갖게 된 목소리가 무척 자랑스럽다. 연주와 노래 모두 더 발전시키고 싶다.

요즘 당신은 전반적인 변화의 시기를 거치고 있는 것 같다. 14세 때부터 간직해온 레게머리를 밀었고, 최근 <아메리칸 이디엇>에 참여하며 웨스트엔드의 뮤지컬 신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는가 하면, 이번에는 처음으로 한국에 오게 되었으니 말이다. 이 다음은 무엇인가?

지금은 앨범 작업을 시작하고 싶은 마음이 가장 크다. 그리고 라이브 공연 기술에 대해서도 자세히 공부하고 있다. 공연에서 사용할 만한 새로운 장난감으로 어떤 것들이 있는지 알아보는 중이다.

최근 영화음악 작업에도 참여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에 대해 극도로 말을 아끼고 있다. 그 영화는 언제 개봉될 예정인가?

영화를 위해 작곡한 음악은 당신의 기존 작업과는 어떻게 다른가? 이제는 말할 수 있다! <터미널(Terminal)>이라는 영화이고, 영국에서는 곧 개봉될 예정이다. 평소에 만들던 음악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음악이라고 할 수 있고, 어서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다.

한때 에드 시런도 재학한 바 있는 아카데미 오브 컨템퍼러리 뮤직(Academy of Contemporary Music)에서 기타를 공부했다. 그곳이 아니라면 배울 수 없었던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내가 연주하는 방식과 음악에 접근하는 방식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기타 연주자 에릭 로체를 그곳에서 만났다. 그가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과거의 어느 인터뷰에서 당신이 왕이 된다면 “너무 많은 사람들이 죽어야 할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공룡인 스테고사우르스가 된다면 무엇을 하겠는가?

(웃음) 누군가 내가 영국 왕실과 관련이 있느냐고 물어서 그렇게 대답했었다. 스테고사우르스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파키케팔로사우르스도 만만찮은 공룡이다.

글/ 구회일(프리랜스 에디터)


비 온 뒤 정아

프로듀서이자 작곡가, 그리고 가수인 선우정아에게 어떻게 하면 삶의 평화를 얻을 수 있을지 물었다. 그러자 수도승 같은 현답이 돌아온다. 타인과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의 평화가 제일 먼저라는 것. 내면의 평화가 무너진 사람은 다른 이와 평화를 이룰 수 없기 때문이다. “타인에게 관대해야 나에 대해서도 비로소 관대해지고 그러면서 평화가 온다는 걸 요즘 새롭게 느끼고 있어요. 정반대로 살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살고 싶어요.” 그녀의 말처럼 평화는 다른 이를 온전히 사랑할 수 있을 때 불현듯 찾아온다.

더블 브레스트 재킷, 라이닝 디테일의 팬츠는 모두 Kimseoryong, 티셔츠는 Cos, 스니커즈는 개인 소장품.

6월 23일 오후 1시, DMZ 피스트레인 페스티벌의 본격적인 시작이라 할 수 있는 노동당사에서의 공연을 맡았다. 공연마다 새로운 시도를 하는 선우정아에게도 단연 신선한 경험일 텐데, 구성은 어떻게 계획하고 있나?

취지와 장소를 알았을 때부터 내 공연을 한다기보다 이 페스티벌 기획의 취지 안에 들어간 세트리스트를 짜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미술관이나 갤러리 같은 곳에서 공연하는 느낌으로 가려고 한다. 장소의 특성과 내 공연에 이어 현대무용가 차진엽이 이끄는 콜렉티브 A가 공연한다는 것 등을 고려한 건데, 집중해야 할 때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특유의 불편함이 있잖나. 뮤지컬이나 연극을 볼 때 숨죽여서 보는 것처럼. 나랑 건반만 참여하는 소편성으로 짰고, 따뜻하고 편안한 버스킹 느낌이라기보다 조금은 어려울 수도 있는 연주 위주의 세트리스트를 준비하고 있다. 한두 곡 정도는 편하게 갈 수도 있지만 원기옥처럼 큰 에너지를 나누고 감응하는 공연이 됐으면 한다.

공연 회차마다 연주 앙상블이 바뀌는 2014년 웬즈데이 프로젝트 <앙상블 선우정아> 공연 영상을 몇 번이고 숨죽이고 돌려 봤던 게 생각난다.

아, 웬즈데이는 스스로도 대견한 공연이다. 다시 하라면 못할 것 같다. 아까 말한 ‘불편한’ 분위기를 사실 그때 느꼈다. 사람들이 불편해하면 더 집중하기 때문에. 그땐 마이크도 거의 쓰지 않고 맨 뒤에 있는 사람들에게만 들릴 정도로 세팅했다. 그 불편함이 참 큰 에너지를 왔다갔다하게 하더라. 피스트레인 무대도 그렇게 꾸며야 하지 않을까 한다.

곡을 고를 때도 고심했을 텐데, 이번 공연에서 꼭 들려주고 싶은 곡이 있나?

‘비온다’를 넣었다. 개인적으로 아끼는 곡인데, 다양한 연령층의 관객이 이 곡을 좋아해준다. 친구 중에 초등학교 교사가 있는데, 그 친구 부탁으로 5~6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일일 강사를 한 적이 있다. 직업교육 같은 건데, 아이들은 나에게 관심이 하나도 없지 않겠나. 그때 선곡했던 게 ‘비온다’였다. 기타를 치면서 라이브를 했는데 아이들이 정말 나에게 빨려드는 게 느껴졌다. 이 노래로 하나가 된 느낌? 사람마다 비에 대한 감정이 다르겠지만 보통 날씨보다는 감정적으로 느끼는 게 더 있을 거다. 개운함, 설움이 씻겨나가는 느낌, 그리움다양하게 소통할 수 있다는 점과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힘. ‘비온다’에 그런 게 있는 것 같다. 그리운 사람이 있는, 그리운 가족이 있는 사람들한테도 이 노래가 위로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한다.

‘비온다’가 북한까지 들린다면 그곳 주민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기우제를 지낸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웃음)

음악 안에서 다양한 역할을 맡는다. 그중에서 제일 마음에 드는 역할이 있다면?

편집하는 캐릭터? 프로듀싱이랑은 좀 다른데 편집하는 걸 좋아한다. 튠일 수도 있고 타이밍별로 잘라서 잇고 붙이고 정리할 수도 있다. 생각을 많이 하지 않아도 되는 단순노동의 범주에 속하는 일이라 밀린 집안일 하듯이 할 때마다 단순하고 행복해진다.

8월 초에 있을 단독 공연에서는 어떤 모습의 선우정아를 볼 수 있을까?

제목이 <페스티벌 선우정아>다. ‘고양이’를 불렀다가 ‘남’을 부르고, 그러다 갑자기 팝한 곡이 나오고. 좀 중구난방 컨셉트로 공연을 준비하고 있는데, 나한텐 그게 자연스럽다. 그래서 아예 ‘페스티벌’이라고 이름지었다. 단 하루 동안 진행되고 라인업은 온통 선우정아인 페스티벌!(웃음) 페스티벌처럼 무대를 여러 개 두고 재즈 스테이지, 록 밴드 스테이지, 일렉트로닉 스테이지 이런 식으로 네 개의 섹션으로 구분해 거기에 맞게 세트리스트를 짜고 편곡을 하려 한다. 연주 멤버들도 스테이지마다 다른 분들이 오셔서 빅밴드 아닌 빅밴드가 될 예정이다.

글/ 이다영(프리랜스 에디터)


방백의 독백

국립현대미술관 ‘2017 올해의 작가’로 선정된 백현진은 영화 <북촌방향> <은교>에도 출연한 바 있는 화가 겸 배우다. 아방가르드 밴드 어어부 프로젝트의 멤버로 기억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영화음악 작곡가 방준석은 <군함도> <베테랑> <라디오 스타> <공동경비구역 JSA>등 50편에 달하는 영화의 스코어를 담당했다. 이승열과 함께했던 유앤미 블루의 멤버로 기억하는 이도 있을 터. 방백은 그 두 아티스트가 함께하는 프로젝트 듀오다.

나지막한 산자락에서 만난 방백은 푸른 잎들 사이에 선 것이 꽤나 잘 어울렸다. 지난 앨범 <너의 손>을 촬영했던 안산 자락길 안의 메타세쿼이아 숲을 다시금 찾았는데, 계절과 시간, 입은 옷도 다르지만 그들은 한결같이 그곳에 있었던 듯했다. 다만 끊임없이 산을 오르내리듯 소리 속에서 어울리고 뒤엉키고 헤쳐나가며.

요즘 어떻게 지냈나? 두 사람이 얼마 만에 만나는 건지?

백현진: 며칠 전에도 만나서 공연했다. 구로 아트밸리에서 데벤드라 반하트라는 미국 가수의 공연에 참석해서. 요즘엔 주로 방백 풀 밴드로 공연하는데 그쪽이 두 명이서 공연하는 거라 우리도 둘만 가서 했다. 그렇게 한 달에 한 번 이상 방백 공연도 하고 개인적으로는 솔로 작업에 신경 쓰고 있다. 솔로 앨범을 낸 지 10년 됐다. 머릿속에 리듬이 떠오르는 곡이 있으면 방백으로 풀어보고 리듬이 없어도 될 음악들은 솔로로 넘겨보고 그러고 있다.

방준석: 오늘 스코어를 맡은 영화 <변산> 기술 시사가 오전 6시에 있어서 이른 새벽 집을 나왔다.

서울과 원산을 잇던 경원선 기차역이었으나 분단 후 운행이 중단된 월정리역. 비무장지대 남방한계선에 최근접한 그곳에서 공연을 한다는 것 때문에 남다른 느낌을 갖고 준비할 것 같다.

방준석: 물론이다. 정치적으로 계속 좋은 방향으로 논의가 진전됐으면 하는 바람이고, 공연을 통해 기운을 실어주고 싶다.

백현진: 일단 풀 밴드 세트인 7~8명이 연주할 것 같다. 시간 될 때마다 함께하는 멤버들인데 DMZ? 하니까모두들 오케이! 했다. 이렇게 말하면 너무 연습을 안 하는 것같이 들릴 수 있는데 우리는 공연 직전 맞춰보는 게 준비다. 사운드 체크하면서 맞춰보고 공연은 오픈되어 있는 즉흥 연주로 이뤄진다.

평화의 분위기 속에서 다소 실험적인 연주를 들려줄 것 같은데,(웃음) 좀 더 자세히 설명해줄 수 있을까?

백현진: 사실 방백의 노래는 팝 구성이다. 거기에 연주자들의 색이 들어갈 뿐이다. 연주가 시작되면 짜여진 구조와 구성 안에서 각자 마음대로 하는 게 다른 밴드와 다른 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때 확 열리는 거다. 그레이트풀 데드는 평범한 4분짜리 곡을 어느 날은 한 시간도 하고 두 시간도 연주한다. 말하자면 그런 식이다.

방준석: 우리는 친근한 의도를 가지고 연주한다는 걸 알아달라.(웃음)

가장 최근 앨범인 <너의 손>은 ‘친근한’ 느낌으로 들었다.

백현진: 그 앨범은 정말 정성 들여 서브하는 느낌으로 만들었다. 형이랑 수년 고민해 작업한 결과물이다. 예전에는 그냥 만들고 싶은 대로 만들었다. 분노도 많았고. (지금은 분노가 사라졌나?) 분노가 훨씬 구체화됐다. 예전에는 내 마음 나도 모르는 상태였던 것 같다.

평화로 나아가는 길에 대중문화가 큰 역할을 할 텐데, 방백의 음악이 거기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방준석: 그쪽에도 분명 우리와 같은 성향의 사람들이 있을 것이고, 나중엔 그런 사람들과 같이 놀고 싶다. 얼마나 재미있겠나.

백현진: 교류가 시작되면 방백이 남한에선 찬밥이지만 북에선 잘될 수도 있다.(웃음) 한 일본 기획자 말로는 방백이 중국에 가면 굉장히 잘될 것 같다고 하더라. 중국은 지역마다 굉장히 특색 있는 밴드가 많다고 한다. 소리 측면에서 방백이 가면 어울릴 만한 지역들, 소비층이 있을 거라고 얘기해줬다.

오늘 저녁 공연이 있다고 들었다.

백현진: 돈의문박물관 마을에서 공연하는데, 소피아 코폴라 감독의 영화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를 배경으로 틀어놓고 영화 내내 소리 내는 식으로 공연한다. 옛날로 치면 무성영화에 음악을 입히는 건데 이건 유성영화에 또 사운드 디자인을 하는 거다.

방준석: 그 영화에서 빌 머레이가 노래를 하는 신이 있는데 ‘노래를 잘하는 게 뭐지?’ 생각하게 하는 장면이다. 어떤 의미에서 노래를 잘 부른다는 건 ‘이래야 한다’는 게 편파적으로 개념화되어 있는 것 같다. 특히 남한에서는.

공연하기 전까지 뭘하면서 시간을 보낼 건가? 리허설 안 할 텐데.

백현진: 평양냉면 먹을 거다. 을지를 갈까 필동을 갈까 고민 중이다.(웃음)

글/ 이다영(프리랜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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