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원재의 발견

올해 <쇼미더머니 6>의 주인공을 한 명만 꼽으라면 역시 우원재다. 넉살과 행주를 아는 사람은 이미 많았어도 우원재를 아는 사람은 이전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우원재에 대한 나의 생각도 남들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인터뷰하러 가는 길에 ‘지옥’에 관해 랩하고 ‘알약 두 봉지’를 언급하던 그의 염세적인 무대 몇 개를 떠올렸다. 답변을 세 마디 이상 안 하면 어쩌지? 위험하고 위태로운 모습이면 어쩌지? 하지만 인터뷰가 끝난 후 나는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마음이 놓이네요. 단단하시네요. 잘되실 것 같아요.” 내가 삶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자기객관화’와 ‘균형’이다. 그런데 이 두 가지와 가장 거리가 먼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실은 이 두 가지와 가장 가까운 사람이라는 사실이 나를 조금 흥분하게 했다. 나는 기꺼이 그를 응원하기로 했다.

트랙 톱은 Astrid Andersen by Tom Greyhound, 비니는 개인 소장품.

요즘 정말 바쁠 것 같다. <쇼미더머니> 전후로 인생이 바뀌었다고 할 수도 있겠다. 이제 시작이긴 하지만, 지금 기분이 어떤가?

시간이 너무 빠르게 가서 그런 기분을 느낄 새도 없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일관적인 기분이 있다면 고맙다는 생각은 확실히 한다. 날 좋아해주는 분들에게 고맙고, 신기하기도 하다. 그 외의 세세한 감정들은 워낙 빠르게 변하다 보니까 감정을 자각하기도 전에 지나가버린다.

음악과 무대만 보면 우원재라는 사람을 어둡다고 여길 수도 있는데 실제로 만나면 생각과는 좀 다를 거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음악보다 밝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 편인가?

그런 말을 종종 들었다. 음악을 들으면 꽉 막혀 있을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고. 그래서 실망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좋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을 텐데, 사실 난 별 생각이 없다. 맞다, 그냥 아무 생각이 없다. 기본적으로는 나의 모습을 음악에 담았다. 아무리 가까운 사람에게도 나의 모습을 다 보여주지는 않으니까. 사실 힘들 때 전화할 수 있는 사람이 주위에 한 명도 없다. 워낙에 홀로 성장하고 사색하는 편이라, 굳이 그런 사람을 만들 필요가 있나 싶기도 하고.

지금의 우원재를 보면 소년 우원재가 궁금해진다. 어떠한 어린 시절을 보냈나?

일단 나는 사람의 감정과 행동양식을 파악하는 능력이 남들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이 행동은 어디에서 왔고 이 감정은 어떻게 생성됐는지에 대해 잘 아는 편이다. 내가 다 겪어봤기 때문에 그쪽으로 좀 냉철한 능력을 가졌다. 나는 굉장히 다양한 부류의 인간으로 살아왔다. 초등학교 때는 거짓말쟁이에다 나대고 시끄러운 아이였다. 그러다 보니 친구들과 다툼이 잦아져서 자기 트레이닝을 거쳐 조용한 사람으로 한 번 바뀌었다. 그런데 조용하고 비판적인 사람으로 사니까 또 너무 힘들었다. 그래서 유연한 사람으로 살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바꾸는 데 2년이 넘게 걸렸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감정과 행동에 대한 이해가 생겼다.

트랙 톱은 Astrid Andersen by Tom Greyhound, 팬츠는 Juun.J, 비니는 개인 소장품.

신기하다. 사람들은 보통 자신을 바꾸고 싶어도 못 바꾸지 않나. 그것도 재능이다.

재능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근본적으로는 내가 굉장히 예민하고 감정적인 사람이기 때문인 것 같다. 쉽게 감동받고 고마워하고 슬프고 아파하는 성격이다. 특히 학창 시절에 왕따까지는 아니더라도 조금의 따돌림이나 배제에도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중학생 때는 무리에서 그런 일들이 비일비재하지 않나. 하지만 그 어린 나이에도 ‘이런 상황이 너무 힘드니까 다른 사람으로 바뀌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자기를 지키기 위해 다른 사람이 돼야 했다는 말처럼 들린다.

맞다. 난 자기 보호 기제가 엄청 강한 사람이다. 너무 예민하고.

그러면 <쇼미더머니>에서 우원재가 가진 여러 가지 모습 중 가장 감성적이고 예민한 부분들이 극대화되어 보여졌다고 할 수도 있을까? 그런 모습이 대중에게 어필하기도 했고.

동의한다. 물론 지금도 난 계속 변하는 중이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게 있다면 굉장히 불안정하다는 점이다. 기분이 되게 신났다가 1초도 안 돼서 바로 기분이 엄청 나빠진다. 낙차가 심한 편이다. 나의 이런 모습이 대중에게 어필했다는 건 프로그램이 끝나고 나서야 알았다. 프로그램 중에는 그런 걸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내 성공의 가장 큰 키워드는 ‘공감’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내 모습이 사람들에게 공감이 된다는 것 자체가 참 슬펐다. 물론 내 입장에서는 그게 위로가 된다. 하지만 멀리서 우리 모두를 들여다보면, 그건 참 슬픈 거다.

레인코트는 Vetements by matchesfashion.com, 트랙 톱, 반팔 티셔츠, 트랙 팬츠는 모두 A6ove, 양말은 Gucci, 스니커즈는

하지만 그런 감정적인 면모가 예술가에게는 오히려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적당한 게 좋은 것 같다. 난 커트 코베인처럼 되고 싶진 않다. 난 사람들에게 오랫동안 나의 예술을 보여주며 사랑받고 싶다. 스눕 독처럼 오래 활동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절대로 앨범 내고 죽는 사람이 되고 싶진 않다.

대중의 심리란 어떨 땐 잔인해서,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우원재라는 예술가의 비극(?)을 보고 싶어할 것도 같다. 자신이 처음 접했을 때의 모습, 그 상태 그대로 남아주길 바라는 마음 같은 것.

이해한다. 나도 염세적인 래퍼들을 좋아하는데 그 사람들이 갑자기 밝아지면 팬으로서 아쉬움이 클 것 같다. ‘곤조를 유지하는 것’과 ‘나를 가두는 것’의 차이에 대해 생각해봤다. 사람은 시간이 지나며 당연히 변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변하면서도 줏대가 있는 사람이란 결국 자기 알맹이를 잘 지키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나의 알맹이만 남기고 나머지는 그냥 풀어두고 싶다. 내가 지금 이대로이길 바라는 사람들에게는 아쉬운 일이겠지만 나 자신을 잘 유지하면서 내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지켜볼 생각이다.

자신의 성공 요인으로 ‘공감’을 꼽았다. 물론 공감은 중요하다. 그런데 어떨 땐 공감에 집착하는 요즘 분위기가 답답하기도 하다. 사실 힙합은 공감보다 영감이 더 중요한 음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래퍼들의 성취에 자극받고 동기부여 받는 것. 그런데 한국에서는 유독 성취를 이룬 래퍼들에게 “그래, 너 잘났다”라는 반응을 한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나는 그 현상에 대한 원인을 찾고 싶었다. <쇼미더머니> 초반의 나는 굉장히 공격적인 사람이었다. 그런데 갈수록 ‘설득하는 사람’으로 바뀌었다. 의도적으로 그렇게 한 것이다. 프로그램 초반에 댓글을 봤는데, 사람들이 이상하게 엄청 날카로웠다. 강아지가 사자를 보면서 자길 해칠까 봐 긴장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나는 예전부터 영향력을 가진 래퍼들이 너무 부러웠다. 나도 사람들을 설득하고 선동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 한국에서 공격적인 어투를 활용하는 건 현명한 방법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들 엄청 공격적으로 자기 방어를 하고 있고 가시를 품고 있는데, 거기에 나도 가시로 대응을 한다면 사람들을 절대 설득시킬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 대신에 그 사람들을 이해하고 어르고 달래고 싶었다. “난 널 진심으로 이해하는데, 그렇게 말고 이렇게 한번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라는 표현이 내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을 얻게 해주는 수단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어떻게 보면 이것도 되게 슬픈 거지만. 하지만 이걸 계속 유지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당장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전달하는 것이 우선이었기 때문에 그랬다. 나 역시 한국이 힙합을 문화적으로 잘못 이해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성공도 멋있을 수 있는 거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렇게 반응하지 않는 현실이, 그렇게 받아들이는 현실이 슬프다고 생각한다.

음악만 들으면 <쇼미더머니>를 굉장히 싫어할 것 같다. <쇼미더머니>를 싫어하면서 <쇼미더머니>에 나간다는 것은 모순인데, 어떤가?

시즌 1, 2, 3 때는 싫어했다. 그런데 그 후에는 지원하는 사람도 이해가 되고 욕하는 사람도 이해가 됐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그냥 이 프로그램에 대해 말을 안 하게 됐다. 주관이 사라진 느낌이랄까. 그러다가 별 생각 없이 지원을 하게 됐고, 귀찮아서 안 가려다가 같이 작업하는 형이 가보라고 해서 갔다가 붙은 거다. 그때 뒤늦게 생각이 들었다. ‘내가 <쇼미더머니>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던 거지?’ 내가 내린 결론은, 지금껏 흘러가는 대로 왔으니까 앞으로도 흘러가는 대로 놔둬보자는 것이었다. 나라는 아티스트가 어떤 자리에 자연스럽게 정착할 때까지 그냥 놔두고 싶다. 순간 순간마다 내가 하고 싶은 것, 끌리는 것을 진심으로 하면서 내가 어디에 자리 잡는지 나 자신을 지켜보고 싶다. 물론 그 와중에 내 본질은 변하지 않게 잘 지켜야겠지만. 만약 누군가가 나에게 <쇼미더머니>를 디스하라고 하면 할 수는 있다. 그런데 나에겐 그럴 자격이 없다. 수혜를 말도 안 되게 받았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그냥 조용히 있고 싶은 거다.

음악은 치료라기보다는 발버둥을 친다는 느낌이다. 다만 이런 건 있다. 랩을 하는 동안만큼은 진짜 아무 생각도 안 든다. 발버둥을 치고 극한에 있는 걸 터트리고 나면 감정이 다시 물 차듯이 들어온다.

이제 힙합은 단순히 음악이 아니라 문화이고 삶의 방식이며 이 시대의 많은 것을 인식하고 규정하는 틀이 되어 있다. 힙합이라는 것이 사람들에게 말도 안 되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나는 힙합에 치유의 기능도 있다고 생각한다. 우원재에게 음악은 치유의 의미도 되나?

치료라고 한다면 랩을 하고 나서 좀 괜찮아지는 느낌이 있어야 될 텐데, 나의 경우는 그렇지 않았다. 치료라기보다는 발버둥을 친다는 느낌이 좀 더 정확한 것 같다. 다만 이런 건 있다. 랩을 하는 동안만큼은 진짜 아무 생각도 안 든다. 발버둥을 치고 극한에 있는 걸 터트리고 나면 감정이 다시 물 차듯이 들어온다. 이 과정을 계속 반복했던 것 같다.

스웨트셔츠는 Aeca White, 체크 셔츠는 Palm Angels, 후드 아노락은 Umbro, 팬츠는 Prada, 양말은 Gucci, 스니커즈는 Balenciaga 제품.

<쇼미더머니>에서 보여주었던 ‘리얼’과 ‘페이크’를 나누는 이분법적인 시선, 조금은 호전적인 태도가 대중에게 어필하는 요소가 아니었을까 싶다. 힙합은 젊은이가 더 잘할 수 있는 음악이라고 생각하는가? 30대가 된 래퍼들과 이야기를 해보면 성숙해질수록 힙합에서 멀어지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할 때가 있다.

나는 힙합에 대한 사랑과 애착은 있지만 내가 거기에 꼭 소속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없다. 나는 언제나 내 자신을 돌아보는데, 내가 멋있다고 생각하는 ‘진짜’들과 나는 사실 굉장히 거리가 멀다. 그래서 애초에 그 안에 소속되고 싶은 마음을 제거한 거다. 근데 <쇼미더머니>에서 말했던 진짜와 가짜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힙합의 진짜와 가짜를 말한 건 아니었다. 옳고 그름, 선과 악, 이런 것들을 ‘퉁쳐서’ 진짜와 가짜라고 한 것이다.

그렇다면 나이가 들면 지금 가짜라고 생각했던 걸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될 것 같나?

이미 그 가사를 쓸 때 가짜를 받아들였다. 사람들은 그 가사가 가짜들에 대한 일침이라고 생각을 하는데 나는 그게 아니었다. ‘가짜와 가짜가 만나면 진짜 둘이 된다’고 이야기하지 않았나. 애초에 가짜와 진짜의 구분이 없다는 뜻이었다. 누구에게는 진짜인 것이 누구에게는 가짜일 수도 있는 것이다. 나 스스로는 항상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을 내리며 살겠지만 남들에게도 절대적인 진짜와 가짜에 대한 정의는 없다고 생각한다.

마지막 질문이다. 우원재에게 ‘어른’의 정의는 무엇인가?

모든 사람, 모든 성향을 머리로 이해하고 가슴으로 느끼지만 동시에 자기 행동이 확고하고 늘 현명한 사람. 예를 들어, 진짜 어른이라면 내 문신을 보고 뭐라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게 어른과 꼰대의 차이 같다. 물론 나이를 먹으면 자기 생각이 확고해지는 게 맞다. 하지만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전제를 가지고 있느냐의 여부는 굉장히 중요하다. 자기 생각에는 논리적인 근거를 갖고 있으면서도 항상 자기가 틀릴 수 있다는 여지를 열어두는 사람,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그 말이 맞으면 ‘내 생각이 틀렸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 이런 사람이 어른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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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에디터
김 봉현(힙합 저널리스트)
사진Jang Dukhwa
기타진행/ 최 은영(프리랜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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