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인이 DMZ에 간 이유

서울과 원산을 잇는 경원선 기차역이었으나 분단 후 운행이 중단, 폐쇄된 월정리역 레일 위에 유아인이 섰다. “바로 지금, 바로 이곳이다!” 지난해, DMZ 투어로 월정리역을 찾은 영국 글래스턴베리 페스티벌의 메인 부커인 마틴 엘본(Martin Elbourne)은 그렇게 말하며 DMZ 피스트레인 뮤직페스티벌을 기획하기 시작했다. 1970년대 전쟁의 종식과 만인의 평화를 외치며 자발적으로 생겨난 음악 페스티벌에 대한 데자뷔를 부르는 월정리역, <바자>는 그곳에 데이지 꽃을 심었다. 가슴 벅찬 역사의 전환점 한가운데 6월 21일부터 24일까지 세계 유일의 분단 국가인 한국의 서울과 강원도 철원에서 DMZ 피스트레인 뮤직페스티벌이 펼쳐진다. 일 년에 단 4일, 음악을 통해 국가, 정치, 경제, 이념, 인종을 초월하고 자유와 평화를 외치는 무대. 이 페이지는 그 비전을 형상화하는 이미지다.

월정리역은 민간인 통제 구역 내 위치한다.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두루미로 1882. 내비게이션에서 이 주소 너머로는 희미한 등고선만 표시될 뿐이다. 비무장지대 남방한계선에 최근접한 지점에 서자 비로소 남과 북이 같은 하늘 아래 있다는 사실이 피부에 와닿는다. 철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영화 <버닝> 촬영지인 파주가 있다. 이창동 감독의 8년 만의 영화에서 유아인은 ‘종수’가 되어 ‘문제’가 생긴 아버지의 부재를 메우기 위해 파주 집에 머문다. “마당에 태극기가 꽂혀 있고 대남방송을 일상적으로 들으며, 저 너머에 북한이 있다는 공간감을 가지면서 촬영을 했어요.”

화사한 초여름 한낮, 625전쟁 당시 월정리역에서 마지막 기적을 울렸던 객차 잔해 일부분과 유엔군의 폭격으로 부숴진 인민군의 화물열차 골격이 세월 속에 부드럽게 녹아든 것처럼 보였다. 그 앞에는 ‘철마는 달리고 싶다’는 팻말이 세워져 있고 이름 모를 풀꽃들 사이에 산딸기가 빨갛게 익어 있었다. 오는 6월 23일, 오후 2시 30분, 최초로 시도되는 월정리역 레일 위 공연에는 강산에, 방백, 영국 싱어송라이터 뉴턴 포크너의 공연이 이처럼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리라. 1988년 복원된 역사 건물에 앉아 열기를 잠시 피하며 유아인이 말했다.

탱크 톱, 인디고 데님, 앞코에 메탈 장식이 달린 웨스턴 부츠는 모두 CALVIN KLEIN 205W39NYC 제품.

“DMZ 피스트레인 페스티벌의 취지와 비전에 대해 들었을 때 더없이 반가웠어요. 어떤 형식으로든 참여할 수 있으면 해보자, 생각했고 이 페스티벌이 더 널리 알려지고, 페스티벌이 추구하는 메시지를 더 많은 이들과 공유하는 데 일조할 수 있다면 좋겠어요.”

유아인은 자신의 창조적 궤도에 많은 이들을 자발적으로 끌어들이는 힘을 가졌다. 내가 만난 디자이너, 아티스트, 스타일리스트 가운데 그를 ‘홍식이’라고 부르며 커뮤니티의 일원임을 자처하는 이들이 많다. 이번 화보 역시 그 커뮤니티의 힘이 작용해 성사됐다.

“영화 촬영이든, 오늘과 같은 화보 촬영이든, 전시든 참여하는 모두가 동의할 만한 느낌, 추구하는 순간을 향해서 치열하게 의논하고 결국 그 순간을 맞이하는 일이 제겐 굉장히 의미 있다고 여겨져요. 드라마, 영화 촬영으로 전국을 돌아다니는 게 일인데도 너무 정신이 없어 그곳들을 그저 스쳐 지나갔는데 오늘은 이곳을 충분히 느끼면서 촬영할 수 있어 참 좋네요.”

터틀넥, 패치워크된 데님 재킷, 팬츠는 모두 Calvin Klein Jeans 제품.

데이지 꽃 한 송이 입에 물고 레일 위에 누워 잠시 다른 차원으로 이동한 듯한 유아인에게서 1970년대의 노스탤지어가 휘감고 흘렀다.

1945년, 해방 후 철원은 5년간 북한의 관할 하에 놓이게 된다. 노동당사는 그때 철원군 조선노동당에서 지은 러시아식 건물이다. 당사 뒤편에 설치된 방공호에서 유골과 실탄, 철사 등이 발견된 것으로 미루어 공산치하에서 반공 활동을 하던 사람들이 이곳에 잡혀 와 고문과 학살을 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625전쟁 때 발생한 포탄과 총탄 자국이 선명하고 건물 일부가 무너져내린 노동당사에서 DMZ 피스트레인 뮤직페스티벌의 오프닝 공연이 펼쳐진다. 노동당사 내부에서는 무용가 차진엽이 중심이 되어 창단한 아티스트 그룹 콜렉티브 A의 장소 특정적 퍼포먼스를 선보여지며 앞마당에서는 선우정아의 공연이 이어진다.

1990년대 X세대의 우상이었던 서태지와 아이들이 ‘발해를 꿈꾸며’ 뮤직비디오를 촬영한 곳으로도 유명한 노동당사. 그로부터 30년 후의 젊은이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감각’을 담아내고자 한 영화 <버닝>. 그 속의 종수의 약간 벌린 입, 아무렇게나 꿰어 입은 듯한 옷, 질질 끄는 걸음걸이에서 여실히 느낄 수 있었던 무기력한 분노가 뇌리에서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저한텐 세상이 수수께끼 같더든요.”라고 말하던 그 얼굴.

데님 소재의 셔츠, 재킷은 모두 Calvin Klein Jeans 제품.

“돌이켜보니 저는 ‘벤’이었더라고요. 어느 순간부터인지 벤의 세계를 살고 있었죠. 내가 좋아하는 동생들을 집에 초대했어요. 그런데 제 집이 그 친구에게 주는 느낌이 어떨까. 불필요한 욕망을 생성해내고, 불필요한 위화감을 조성하고. 나는 평생 욕망 때문에 괴로웠던 것 같은데. 우리의 일이라는 게 누군가에게 어떤 빛을 보여주는 일일 수도 있지만 결국 그 빛에 다가가기가 힘든 사람들에게는 훨씬 더 큰 결핍과 불행을 가져다주는 일일 수도 있잖아요? 나의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행하는 것일 뿐이라고 단순하게 말할 수가 없게 됐어요. <버닝>을 찍고 나서.” 이토록 솔직하게 유아인은 <버닝>을 ‘웨이크업 콜’ 같은 영화라고 말하고 있었다. “언젠가 감독님한테 ‘감독님은 언제 슬퍼요?’ 하고 물은 적이 있는데 ‘항상 슬퍼.’ 하시는 거예요.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보여주는 일을 업으로 삼은 사람으로서, 내가 맡은 인물을 통해 이 세계를 드러내는 데 일조하는 사람으로서 어마어마한 부끄러움을 느끼는 순간들을 보내고 있어요. 우리가 하는 일이 세상을 이롭게 하는 일인 양 자아도취돼서 흘러가는 이 세계 안에서 저를 굉장히 각성시키는 영화였어요. 영화란 무엇인가, 영화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꼭 생각해봐야 할 지점들을 짚어주었죠.”

잔디광장과 빈티지 놀이공원 고석정랜드가 형성되어 있는 고석정에 DMZ 피스트레인 뮤직페스티벌의 메인 사이트가 마련된다. 한탄강 중류에 위치한 철원팔경의 하나로 강 중앙의 고석바위와 정자 및 그 일대의 현무암 계곡을 통틀어 고석정이라 한다. 조선시대 명종 때 임꺽정이 은거하면서 활동한 자연 석굴이 있는 거대하고 기묘한 바위 아래에서, 또 계곡 물에 뛰어들어 포즈를 취하는 유아인을 암벽 위 정자에서, 강을 오가는 유람선에서 놀러 나온 사람들이 지켜봤다. 그는 때로 인사를 건네기도 하면서 촬영을 이어갔고 그렇게 이른 아침 시작된 촬영은 끝을 향해가고 있었다.

유아인은 기대와 달랐다. 시니컬하고 득의양양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가장자리가 증발해 부드러워진 듯한 느낌을 주었다. <버닝>을 찍으며 ‘모호함을 안고 좀 더 편한 상태에서 연기’한 것이 모종의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을까?

터틀넥, 컬러풀하게 패치워크된 데님 재킷, 팬츠는 모두 Calvin Klein Jeans 제품. 유아인이 마주하고 있는 작품은 이원우 작가의 ‘Like This Music’ (2015, Paint on aluminium, 120×90cm).

“사실 모호하지 않은 순간은 한 순간도 없다고 생각해요. 매 순간 정답이 없고 뭘 해야 할지 모르겠고. 그런데 유아인을 수식하는 말들처럼 자신만만하게, 뭐라도 아는 것처럼 질러야 하는 순간들이 있거든요. 모호함을 안고 가는 건 있는 그대로를 가져가는 거라서 인물에 대한 의도나 계산 없이 그저 느끼며 진행되는 이창동 감독님의 촬영 현장이 너무나 편하고 그동안 참으로 바라왔던 바였어요.”

유아인은 스토리의 모호함조차도 <버닝>의 특성이라고 봤다. 고양이 ‘보일’이는 진짜 ‘해미’(전종서)의 방에 있었을까, 파주 집에 밤마다 걸려온 전화는 누구였을까, 종수가 마지막에 사용한 칼은 아버지가 수집해 놓은 칼 세트에서 꺼내온 것일까, 하는 비교적 사소한 미스터리조차도 도무지 풀리지 않는 숙제여서 ‘N차’ 관람을 도모하는 영화라고 불평 아닌 불평을 하자 그가 말했다.

“자신이 이해하고 확신하는 것에 대한 의문을 가지게 하는 것이 이 영화가 줄 수 있는, 우리 영화를 통해서 가져갈 수 있는 게 아닐까 해요. 우린 너무 모든 걸 쉽게 믿어버리는 경향이 있잖아요. 그것으로 많은 것들을 판단하고 애정하고 미움도 가지고.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것들이 그런 극히 개인적인 판단들에 달려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 상태를 해체하는 게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이 아닌가 싶어요.”

그 말대로 <버닝>은 우리가 ‘통상 영화를 통해 겪는 것과는 조금 다른 순간들을 겪게 한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영화였다. 영화 후반부에 이르러 드디어 소설을 쓰기 시작한 종수와 관객이 맞이하는 마지막 롱테이크 신. 각성한 종수가 분노를 표출하고 대상을 ‘버닝’해 버리는 장면의 살 떨리는 현실감은 보는 이마저 각성하게 했다. 그 장면이 비록 허구인지 실제인지 알 수 없게 모호하게 의도됐다 하여도. 유아인은 이 작품과 함께하며 ‘조금 덜 명쾌한 배우, 조금 덜 명쾌한 인간’이 됐다고 말했다. 그게 유아인에게 어떤 미래를 가져다줄지 기대해볼 만한 일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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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Contributing Editor 안동선
프리랜서 에디터 곽새봄
사진 Mok Jungwook
헤어 이일중
메이크업 서은영
세트 스타일링 김민선
어시스턴트 윤지용, 고원태, 임진열(사진), 이은비, 정선용(스타일링), 경민정(헤어), 이설지(메이크업), 손요나, 전수인(세트 스타일링)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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