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종서에게 버닝 중!

낯선 얼굴이다. 누굴까, 궁금해지는 신비로운 뉘앙스를 지닌 배우 전종서는 이창동 감독의 영화 <버닝>을 데뷔작으로 세상에 나왔다. 데뷔작으로 칸 국제영화제까지, 배우라면 누구나 꿈꾸는 무대 위에 서 있는 그녀가 신중한 언어로 자기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원피스는 Soonsu, 귀고리는 Haesool 제품.

튜브 톱, 팬츠는 모두 Nohke, 귀고리는 Mzuu 제품.

자기 자신에 대해서 말하는 걸 좋아하는 편인가?

말수가 많은 편은 아니다. 물론 필요한 말은 하지만 인터뷰에는 아직 적응이 안 된다.(웃음)

그래서일까, 신비로운 분위기가 있다. 정작 본인은 멍 때리고 있어도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한 사람이랄까? 이창동 감독도 말했다. “캐스팅을 위해 많은 배우들을 만났다. 그런데 전종서를 만난 순간 마치 해미인 것 같았다. 속을 알 수 없는 해미처럼, 전종서 역시 미스터리하고 알 수 없는 매력이 있었다.”

생각이 많은 쪽이다. 가만히 있어도 머릿속에서 너무 많은 게 한꺼번에 돌아간다.

왠지 인스타그램 계정도 없을 것 같다.(웃음)

인스타그램은 계정은 있는데, 나 혼자서만 보는 비밀 계정이다. 그림을 좋아해서, 좋아하는 화가의 작품들을 많이 올린다. 요즘엔 마크 로스코의 작품에 꽂혀 있었다. 말로 설명이 안 되는 생각을 이렇게 이미지로 기록해두기도 한다.(인스타그램 계정에서 박스 형태의 도형을 보여준다.) 사람들이 공장에서 찍어낸 락앤락 같다고 느껴졌을 때 올린 이미지다. 안에 뭐가 있는지 열어야 아는데, 모두가 닫고 산다. 우리는 왜 상자 안에 들어가서 살게 됐지? 그런 생각을 했다. 열어놔도 상관없는데. 나 역시 어떤 상자 안에 있겠지만, 구속을 받는다거나 누군가에게 지나치게 케어를 받는 일에 거부감이 심한 것 같다.

누군가에게 케어를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 배우라는 직업의 특수성 아닌가?

너무, 싫다.(웃음) 이건 꼭 지키면서 살자고 스스로 정해둔 걸 제외한 나머지는 마음대로 하며 살고 싶다.

살면서 지키기로 한 것은 뭔가?

모두가 다 평등하다는 생각. 사회적인 지위와 성별, 나이를 떠나서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인간은 동등하다는 생각을 거의 매일 한다. 그렇게 사람을 대하려고 하고, 다른 사람들도 나를 그렇게 대하길 원한다. 성장 과정에서 습득한 본능인 것 같다. 부모님은 말 안 듣는 딸이라고 말씀하시면서도 사실 나를 딸이기 이전에 한 명의 인간으로서 존중해주는 분들이었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 촬영 현장도 비슷한 분위기였을 것 같다. 배우가 몰입할 수 있는 진짜 같은 환경을 제공하고 그 안에서 최대한 느낄 것을 주문하는 게 이창동 감독의 방식이라고 들었다.

처음 연기를 하는 신인 배우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분들이 한 명의 인격체로서 귀하게 생각을 해주셔서 감동을 많이 받았다. 서로 존경하는 분위기였다. 좋은 사상을 갖고 있는 분들과 제대로 갖춰진 환경에서 안전하게 보호 받으면서 시작을 한 것 같다. 그 속에서 배운 것도, 느낀 것도 굉장히 많다.

유아인과 스티븐 연, 전종서. 세 사람이 대화가 잘 통했을 것 같다.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상대를 만나는 것이 쉽지 않은데, 세 사람이면 가능할 것 같다. 영화 홍보를 위한 라이브 토크에서 유아인이 한 말이 재밌었다. 본인이 원래 말을 쉽게 하는 편이 아닌데, 둘 사이에 있으니까 자신이 너무 평범한 사람 같다고.(웃음) 세 사람의 대화를 엿들어보고 싶다.

그분들이 있어 든든했다.(웃음) 굉장히 열려 있고, 내가 어떤 모습을 보여줘도 자연스럽게 수용하고 이해해주는 사람들이었다. 촬영할 때는 정신이 없어서 대화를 할 시간이 없었고, 오히려 촬영이 끝나고 나서 영화 이야기를 하면서 사는 이야기도 할 기회가 있었다. 영화 이야기와 삶 이야기는 결국 연결되는 거니까.

니트 톱, 스커트는 모두 Nohke, 귀고리와 반지는 Get Me Bling, 슈즈는 73 Hours, 골드 뱅글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이창동 감독의 영화가 특히 그런 것 같다. 영화와 삶이 연결되는, 영화를 보고 나면 내가 속해 있는 현실을 조금 다르게 보게 되는. <버닝>이 전종서라는 사람을 변화시켰나?

물론이다. 앞으로 연기 생활을 하면서 이 영화를 촬영한 경험에서 지속적으로 영향을 받을 것 같다. 감독님도 이 영화가 앞으로의 제 연기 생활에 어떤 기준점이 될 거라고 말씀하셨다.

기준이 너무 높아졌을 것도 같다.(웃음) 제작 후기로 공개된 영상에서 스티븐 연이 말했다. “<버닝>의 세계는 너무나 명쾌했다. 이번 영화에 대한 두려움은 없다. 오히려 내가 걱정하는 건 앞으로 또 이런 경험을 할 수 있느냐는 거다.” 당신에게도 그런 두려움이 생겼나?

스티븐의 말에 절대적으로 공감한다. 배우뿐 아니라 모든 스태프들이 그렇게 느꼈을 것 같다. 그런데 사실 미래에 대한 두려움은 없다. 앞으로 내가 어떤 일을 하게 될지 구체적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다. 물론 연기를 사랑하지만, 내일 내가 뭘 할지, 일 년 후나 십 년 후에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니까. 이러다 사라질 수도 있는 것이고.(웃음)

<버닝>의 원작소설인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 <헛간을 태우다>를 읽었다. 그 소설 속에서 해미라는 캐릭터를 묘사한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그 개방적이고 천진난만한 단순함이 모종의 사람들을 매혹하는 것이다. 그들은 그 단순함과 직면하면 자신들이 갖고 있는 복잡하게 얽힌 감정을 문득 그곳에다 끼워맞춰보고 싶어지는 것이다. 잘 설명할 수 없지만 이를테면 그런 거다. 그녀는 말하자면 그런 단순함에 의지하여 살고 있었다.” 그녀는 어떤 여자인가?

내가 원래 남자보다 여자들을 재밌어 한다. 최대 관심사다. 섬세하고 복잡한 구조를 가진 여자라는 생명체가 되게 매력적인 것 같다. 그러나 ‘해미는 어떤 여자다’라고 캐릭터에 대해 생각을 하고 연기를 할 정도로 내가 능수능란하진 않았다. 감독님도 캐릭터들에 대해서 정확하게 그려놓은 그림이 없다고 하셨다. 그냥 배우가 만들어가는 거라고 말이다. 그래서 그냥 나를 다 보여주고자 했다.

그렇다면 당신은 어떤 구조를 가진 여자인가?

매일 매일 되게 다른 사람인 것 같다. 좋아하는 사람도 매일 달라지고, 방 구조도 진짜 자주 바꾸고, 버리기도 잘 버리고, 새로 사들이기도 잘하고, 생각이나 관점도 변화무쌍하게 많이 바뀐다. 개방적인 부분에서는 완전히 열어젖히고, 보수적인 부분에서는 완전히 ‘밀봉’이다. 내가 이렇게 왔다갔다하는 사람이라는 걸 인지하게 된 것도 얼마 안 됐다.

<버닝>에서 해미는 실재하지 않더라도 본인이 믿으면 실재한다고 믿는 사람이다. 당신은 어떤가?

다들 그러고 살지 않나? 나는 머릿속으로 자꾸 그리고 상상하다 보면 실재가 상상에 가까워진다는 말을 믿는다.

칸으로 출국하기 위해 얼마 전 여권을 만들었다고 들었다. 데뷔작부터 누구나 꿈꾸는 무대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이게 된 기분이 어떤가?

칸에서는 넘어지지만 않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머릿속이 새하얗다 못해 새까매졌다.(웃음) 한 단어로 설명할 수 없는 기분이다. 너무 좋다가도 너무 싫고, 막 즐기다가도 고통스럽기도 하다. 그냥, 복잡하다. 그런데, 재밌다. 중요한 것은 어찌 됐든 내가 선택을 했고, 지금 나이에 이런 일들이 나에게 벌어지고 있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고 생각을 한다. 그게 뭘까?

<버닝> 예고편에서 “이제 진실을 이야기해 봐”라는 해미의 내레이션이 임팩트 있게 사용되었다. 이 영화에서 말하고 싶은 진실은 무엇일까?

내가 생각하는 진실은 ‘내가 원하고 갈구하는 것’이다. 다들 각자의 진실이 뭔지 알지만, 그렇게 살지 않는다. 그런데 그렇게 살아도 되지 않을까? 내 주위 사람들만 봐도,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은데 하지 않는다. 갈구하고 이뤄졌으면 하는 걸 억누르고 사는 것이다. 거기에서 오는 무력감이나 분노 때문에 행복감을 느끼기 어려운 것 같다. 사소한 일상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각자가 원하는 게 있고, 그 안에서만 행복을 찾을 수 있다. 나에게는 이 영화의 메시지가 그렇게 다가왔다. 그냥 살라고,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살라고 말이다.

러플 장식 블라우스는 Lookast, 귀고리는 Mzuu, 반지는 모두 The New Normal 제품.

블라우스는 The Tint, 러플 장식 팬츠는 Nohke, 실버 볼 드롭 귀고리는 M’swag, 실버 스퀘어 반지는 Milton Attica, 실버 반지는 모두 One Enough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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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사진 Kim Dowon
헤어 장혜연
메이크업 최수일
스타일리스트 이정아
세트 스타일링 한송이
어시스턴트 김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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