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석의 낙관론

배우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세 사람이 한자리에 모였다. 개봉을 앞두고 있는 영화 '마약왕'에서 함께한 이들은 긍정적인 영향력을 주고받으며 지난 한 철을 함께 보냈다. 배우로서 이룬 성취에 정주하지 않고 계속해서 무언가를 모색하는 이들이 테이블에 앉아 각자의 연기론을 풀어놓는다.

조정석의 낙관론 

딱 일 년 전 이맘때 인터뷰로 만났었어요. 그 사이에 오랜 연인과 결혼을 했는데 그로 인한 변화를 느끼나요? 다른 것보다도 함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변화인 것 같아요. 아무래도 혼자 있을 때보다 안정적이고 편안한 느낌은 있어요. 그게 변화라면 변화겠죠. 개인 생활에서의 변화이지만 직업적으로도 좋은 영향을 주는 것 같아요. 배우라는 직업은 불안정한 부분도 있으니까요.

<마약왕>은 어떤 점에 흥미를 느껴서 선택한 작품인가요? 일단 맨 처음 시나리오를 봤을 때 만화를 보는 것 같았어요. 이두삼의 일대기가 펼쳐지고, 그 사이 사이에 새로운 인물이 한 명씩 튀어나오면서 그의 삶에 영향을 주고 새로운 사건이 만들어지는 구조가 1장, 2장, 3장으로 챕터가 넘어가는 만화책 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그래서 되게 재밌게 봤어요. 관객분들도 만화를 보듯이 저희 작품을 접한다면 재밌게 보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어떤 화두를 찾기보다는 즐겁게 즐길 수 있는 작품이에요. 작품 외적인 이유로는 우민호 감독님과 같이 작업해보고 싶었어요. 물론 송강호 선배님과 다시 한 번 같이 연기를 한다는 것만으로도 저한테는 선택을 안 할래야 안 할 수 없는 작품이었죠.

<내부자들>에 이어 <마약왕>을 내놓은 우민호 감독의 연출 스타일은 어떤가요? 남성적이면서도 순수한 면을 가진 분이에요. 일단 배우의 연기에 있어서 굉장히 많이 열어주시는 편이에요. 배우의 연기를 유연하게 받아들이는 점이 가장 큰 강점인 것 같아요.

터틀넥 니트는 Kimseoryong Homme.

어떤 캐릭터를 맡고 연기를 하며 받는 스트레스는 배우라면 누구에게나 다 있죠. 그래도 전 그 스트레스를 즐기는 편이에요. 배우라면 그 스트레스를 즐길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연기로 인한 고통은 성장에 필요한 자극이고, 삶에 필요한 고민인 것 같아요.

<관상> 때 송강호 씨에게 재능 넘치는 배우라는 극찬을 받기도 했어요. 함께 영화를 촬영하면서 주고받는 영향이 있나요? 현장에서도 많은 영감을 주시지만 사적인 자리에서 이야기를 들을 때도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인생을 대하는 태도나 배우로서의 투철한 직업 의식, 그리고 연기에 대한 열정 면에서요. 어쩌면 제 주위에 있는 누구보다도 영화를 사랑하는 분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어요. 우리나라에서 일인자나 다름없는 위치에서 오랫동안 연기를 해온 분인데, 여전히 순수한 열정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대단한 것 같아요. 저 역시 연기에 대한 열정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하곤 하지만, 사실 송강호 선배를 따라가려면 멀었어요. 세상살이에는 익숙해져도 연기적인 면에서는 능숙해지고 싶지 않아요. 항상 순수한 가슴으로 접근하고 싶어요. 그게 늘 고민이죠.

이번 작품에서 ‘마약왕’ 이두삼과 대적하는 유일한 인물인 김인구 검사를 연기했어요. 이 작품에서 가장 이질적인 캐릭터인 셈이에요. 일단 다들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데 혼자 서울말을 쓰고 있죠.(웃음) 그래서 사실 이 작품에 녹아들고 동화되기 위한 노력을 많이 했어요. 왕이라 불릴 만큼 대단하고, 야망과 자기만의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는 이두삼을 잡을 수 있는 검사여야 한다는 고민을 계속했죠.

첫 등장에서 접선 암호를 제니스 조플린으로 정하는데, 그런 작은 면모를 보면서 이 사람의 개인적 캐릭터가 좀 더 알고 싶어졌어요. 사실 김인구 검사는 대쪽 같은 느낌의 인물은 아니에요. 약간의 ‘똘끼’가 있어야 이두삼 같은 인물을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 그런 기질을 보여주려고 했어요. 김인구는 <마약
왕>의 배경이 되는 시대를 정확히 대변하는 인물인 것 같아요. 그 사람의 헤어스타일이나 대사, “뽕꾼이 대한민국 검사보다 빽이 더 좋아.” 같은 말들이 시대상을 보여주죠. 관찰자의 눈으로 이두삼의 흔적들을 따라가며 그 시대가 어떤 분위기였는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인물이에요. 관객들이 이두삼에게 해주고 싶은 말들을 대신 해주기도 하고요. 

조정석의 필모그래피는 좀 신기해요. 연극 무대 출신의 연기파 배우인 동시에 코믹한 감초 캐릭터를 선보이더니 몇 편의 드라마를 통해 로맨틱한 남자 캐릭터로 자리 잡았어요. 그래서 이번 작품에서도 러브 라인이 있지 않을까 기다리게 되더라고요. 이번 작품에서는 다른 여배우와의 케미는 아예 없고, 배두나 씨와 함께 붙는 장면도 딱 한 신이었죠. 그런데 사람들이 기대하는 모습보다는 새로운 모습에 도전하고 싶은 게 배우들의 욕심인 것 같아요. 물론 로맨틱코미디도 너무 좋지만, 내년에는 또 다른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구체적인 계획이 있나요? 전 항상 똑같아요. 내년에도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배우로서의 고민을 하며, 배우로서의 행복을 찾아갈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는 즐겁고 유쾌하게 삶을 접하려고 해요. 어떤 일이든 비관적으로 바라보기보다는 낙관적으로 생각하려는 편이에요.

배우라는 직업이 낙관적으로 세상을 보는 데 도움이 되나요? 어떤 캐릭터를 맡고 연기를 하며 받는 스트레스는 배우라면 누구에게나 다 있죠. 그래도 전 그 스트레스를 즐기는 편이에요. 만약 결과물이 만족스럽지 않다면, 그건 내가 그만큼 스트레스를 즐기지 못했기 때문일 거예요. 사실 스트레스라는 표현도 적절치 않네요. 연기로 인한 고통은 성장에 필요한 자극이고, 삶에 필요한 고민인 것 같아요.

자극의 역치가 점점 더 높아져서 갈수록 센 자극을 원하게 되진 않나요? 매 작품에 들어갈 때마다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싶죠.

내가 선택하지 않은 대본이 흥행에 성공했을 때 질투심을 느끼기도 하나요? 작품을 선택할 때 결정이 빠른 편이에요. 내가 하지 못하는 상황이면 내 작품이 아닌 거죠. 머리를 굴리고 계산을 한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심플하게 생각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내가 선택하지 않은 것 중에서 잘된 작품들이 물론 있지만, 아쉬움은 전혀 없어요. 그 당시의 나의 선택에는 이유가 있었고 내 선택에는 책임을 진다는 마음을 항상 가지고 있기 때문이에요. 오래전부터 무대에 서며 흥행한 공연과 망한 공연들을 여럿 접해왔기 때문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태도가 몸에 밴 것 같아요.

관객으로서는 어떤 작품을 좋아해요? 저는 잡식성이에요, 멜로, 액션, 스릴러 등을 다 좋아하지만 그중에서 하나만 꼽는다면 블랙 코미디인 것 같아요. 한국에서는 블랙 코미디 작품이 많이 나오지 않는데, 얼마 전에는 <완벽한 타인>을 재미있게 봤어요. 설정 자체가 재미있더라고요.   

특별한 연말 계획이 있나요? 연말 계획이라고 해봤자 <마약왕>의 무대 인사를 하고, 연이어 개봉하는 <뺑반>이라는 작품의 홍보를 하고, 내년 개봉을 목표로 촬영 중인 <엑시트>라는 작품에 매진하는 거예요. 재미없지만 사실이 그래요.

워커홀릭인 거죠? 예전에 ‘보헤미안을 꿈꾸는 모범생’이라고 말했던 기억이 나요. 사실 그래요. 항상 어떤 작품을 할까, 그 작품에서 어떤 이야기를 할까, 이런 생각들뿐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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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사진 Hong Janghyun
헤어 김서영(송강호), 손혜진(배두나), 미영(조정석)
메이크업 김서영(송강호), 이준성(배두나), 화영(조정석)
스타일리스트 권은정(송강호), 박세준(배두나), 정혜진(조정석)
세트 스타일링 최서윤, 손예희(다락)
어시스턴트 김명민, 문혜준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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