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효주의 또다른 얼굴

<바자>와 버버리 코리아가 11년째 이어오고 있는 시네마 엔젤 프로젝트는 영화 관람의 기회 조차 제대로 가지지 못하는 소외 계층의 볼 권리를 지지한다. “한 편의 영화가 삶을 바꾼다”는 말에 깊숙이 공감하는 배우 한효주가 올해의 시네마 엔젤이 되었다. 영화를 사랑하는 관객으로서, 한 명의 직업인으로서 영화라는 무한한 세계를 관통해온 그녀의 다양한 얼굴을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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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한효주를 영화 속에서 마지막으로 본 것은 2016년의 <해어화>다. 흥행에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이 작품 속의 한효주는 꽤나 인상적인 모습이었다. <뷰티 인사이드>에서의 만인이 사랑하던 여자 대신에 사랑과 욕망 어느 한쪽도 충족하지 못하고, 강렬한 질투심으로 뒤범벅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비틀 거리는 여자가 그곳에 있었다. 우리가 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청신한 얼굴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조만간 한효주가 가진 다양한 얼굴을 스크린 속에서 확인하게 될 것 같다. 현재 그녀는 배우 강동원과 함께 출연하는 영화 <골든 슬럼버>의 개봉을 앞두고 있고, 김지운 감독의 영화 <인랑> 촬영에 한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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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효주가 <바자>와 버버리 코리아가 이어오고 있는 시네마 엔젤 프로젝트의 열한 번째 주인공이 됐다. 이날의 화보 촬영은 노 메이크업으로 시작됐다. 민얼굴의 한효주를 첫 컷으로 찍어보고 싶다는 사진가의 제안을 받은 그녀는 곧장 메이크업을 지우고 로션만 바른 채 말쑥한 얼굴로 카메라 앞에 섰다. 주근깨와 다크서클이 얼핏얼핏 보이고, 쿨한 눈빛으로 인상적인 집중력을 발휘하고 있는 그녀의 얼굴이 새삼 매력적으로 느껴졌던 이유는 뭘까? “그래요? 최근에 주근깨가 더 늘었어요. 다크서클도 있고. 저도 첫 컷이 제일 마음에 들었어요. 요즘에 제가 살고자 하는 모토랑 닮은 컷이에요. 솔직하게 살자. 그동안 제가 별로 솔직하지 못했던 것 같거든요. 그렇다고 뭐 꾸미고 산 건 아니지만, 감정에 있어서는 항상 조금 눌렀어요. 화가 나면 화를 내고, 슬프면 슬퍼하고, 좋으면 좋아하는 순간적인 감정들에 솔직하게 살았으면 좋았을 텐데, 라는 생각이 문득 들더라고요. 감정을 이성적으로 바라보려는 태도가 컸던 것 같아요.” 그렇다면 요즘에는 화가 나면 벌컥 화도 내고, 슬프면 ‘엉엉’ 울기도 하냐고 묻자 옆에 있던 매니저를 슬쩍 쳐다본다. “네, 이 분이 아주 잘 알아요.(웃음)” 다음 신에서 본 한효주는 단발머리였다. 2009년 이후 처음으로 짧은 머리를 한다는 그녀는 손짓이나 눈빛 같은 작은 제스처만으로 전혀 다른 영화의 주인공이 되었다. 첫 번째 에피소드가 끝나고 다른 에피소드가 시작되는 옴니버스 영화처럼 말이다. 촬영이 끝난 후 인터뷰 테이블에 앉은 그녀는 말했다. “재미있는 얼굴, 못 봤던 얼굴, 새로운 얼굴의 사진으로 골라주세요. 요즘 제가 제 얼굴을 볼 때 좀 지겹거든요.” 한효주와의 인터뷰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 것은 이 첫 마디 때문이었다. 우리는 지겨움에 대한 대화를 나누게 됐다.

왜 지겨울까요?

비슷한 걸 계속해서 보니까요. 사람들이 저에게 원하는 이미지가 있잖아요. 그게 싫은 건 아니에요. 그것 또한 제가 많이 가지고 있는 부분이고, 그걸로 인해 감사하게도 많은 사랑을 받아왔으니까요. 그런데 이제는 스스로 조금 지루하다는 느낌이 드는 거예요. 저, 약간 슬럼프예요. 제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를 한번쯤 완벽하게 깨부숴서 그 안에 있는 새로운 모습을 꺼내야 될 때가 온 것 같아요. 지금까지 적지 않은 시간 동안 일을 했고, 그동안 쌓아온 것들이 너무 소중하기도 한데 이제 그 이상의 무언가를 보여줄 때가 됐다는 생각이 들어요. 근데 그걸 꺼낼 수 있는 방법을 아직 모르겠어요.

굉장히 긍정적인 의미의 슬럼프인 것 같아요. 변화를 위해서 구체적으로 시도하고 있는 일이 있나요?

이렇게도 살아보고 저렇게도 살아보려고요. 우선 생활 패턴을 바꿨어요. 그동안 쉴 때는 정말 혼자 있었거든요. 일을 하지 않는 시간 동안에는 혼자 고립되어 있고, 사람 만나는 것도 안 좋아하고, 조용하면서도 약간은 무료하게 살았는데 어느 순간 텅 빈 것 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에너지 자체를 바꾸고 싶어서 요즘엔 조금이라도 시간이 나면 밖에 나가서 사람들을 만나려고 해요. 오늘도 인터뷰가 끝나면 놀러 가려고요.

뭘 하고 놀 건데요?

그냥 술 마시고 놀 거예요.(웃음)

아마도 원하는 대로 완벽하게 자신을 깰 수 있는 방법은, 배우로서 좋은 작품을 만나는 것이겠죠?

그렇죠. 그런데 사실 저는 지금 만난 것 같아요. 운이 좋은 거죠. 김지운 감독님의 <인랑>을 촬영하고 있는데 내가 이걸 할 수 있냐 없냐를 놓고 지금 계속 부딪히고 있거든요. 나를 깨는 것이 생각만큼 쉽게 되는 것은 아니잖아요. 그래서 늘 촬영장 갔다 오면 몸이 힘들고, 조금 불안하기도 해요. 그래도 운이 좋다고 표현하는 이유는 스스로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끼는 시기에 <인랑>과 같은 작품을 만나서예요. 어쩌면 이 작품을 하지 않았으면 아예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지도 몰라요.

<인랑>에 대해서 어떤 기대감을 가지고 있나요?

사실 아직 한창 촬영 중이고 영화에 대해서 많은 것이 공개되지 않아서 제가 먼저 <인랑> 이야기를 꺼내기가 조심스러워요. 영화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개봉 무렵에, 마음껏 이야기를 할 수 있을 때까지 미뤄두려고 해요.

올겨울 개봉을 앞두고 있는 <골든 슬럼버>에 대한 이야기는 들려줄 수 있나요?

촬영을 하면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담고 있는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상식 밖의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는 세상에서 과연 상식적으로 살아야 하는가, 착하게 살아야 하는가, 그래야 한다.(웃음) 그런 영화예요.

타탄체크 패턴의 레인코트, 리버서블이 가능한 체크 퀼팅 베스트, 이너로 입은 화이트 톱, 스웨터를 허리에 두른 듯한 디테일의 니트 스커트, 아가일 체크 양말, T 스트랩 힐은 모두 Burberry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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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면 어떤가요? 상식적으로 살아야 할까요?

그에 대한 답이 너무 어렵게 느껴져요.

배우 한효주에게는 어떤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배우로서 스스로에게 아쉬운 점은 너무 잘하려고 한다는 것이에요. 어떤 작품을 시작하고, 어떤 캐릭터가 주어졌을 때 잘해야 된다는 책임감이 너무 강해서 스스로를 코너에 몰아넣거든요. 그래서 재미가 없나 봐요. 그냥 딱 그만큼 해낸다는 생각이 드니까. 기복이 있어서 어떤 때는 나락으로 떨어지고, 어떤 때는 너무 잘하고, 이런 것이 아니라 그냥 계속해서 평균치를 맴돌고 있는 느낌 있잖아요. 식물적인 느낌으로 연기를 해왔다고 해야 할까요? 그래서 이제부터는 진짜 동물적으로 연기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배우라는 직업이 절제하고 누르고 이성적으로 생각하는 태도를 갖게 하나요?

연예인이라는 직업이죠. 배우는 오히려 그걸 깨야 되는 직업인 거 같아요. 이 두 가지를 나눈다는 것이 이상하지만, 대중에게 보여지는 직업이다 보니까 왜곡되고 오해받을까 봐 저도 모르는 사이에 행동을 조심하면서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계속 눌려 있었던 것 같아요. 근데 배우는 연기를 해야 되는 직업이잖아요. 있는 그대로의 감정을 고스란히 느껴서 표현을 하는 게 훨씬 더 폭발적인 장면을 만들어내기도 하고요. 그게 제가 부족했던 점이에요.

저도 첫 컷이 제일 마음에 들었어요. 그냥 요즘에 제가 살고자 하는 모토랑 닮은 컷이에요. 솔직하게 살자. 그동안 제가 별로 솔직하지 못했던 것 같거든요.”

한 명의 직업인으로서, 배우라는 직업에 대해 어떤 감정을 갖고 있으신가요?

애증이요.(웃음) 진짜, 애증.

한국에서 여배우로 사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에요. 한국 영화계에서 일하는 여배우로서 이런 현실에 대해서 어떻게 체감하고 있나요?

1~2년 사이의 일이 아니라 고질적인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안타까워요. 시나리오에서 매력적인 여자 캐릭터를 발견하기도 어렵고요. 최근에 문소리 선배님이 이에 대한 영화를 만들기도 하셨잖아요. 포기하지 않고 계속 문을 두드리는 선배가 있다는 것에 후배로서 너무 감사해요. <히든 피겨스>라는 영화를 재밌게 봤어요. 그처럼 매력적인 여자들이 등장하는 영화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그런 영화들이 대중적으로도 사랑받고, 많은 스크린에서 상영될 수 있었으면 해요. 여배우가 주인공인 한 편의 영화가 실패하면 “여성 영화는 흥행이 안 된다”는 말을 만들어내며 다음 영화의 제작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치더라고요.

현실에는 굉장히 많은 매력적인 여자들이 있는데, 한국 영화 속에서 여자 캐릭터가 단편적으로 그려지는 것은 참 아쉬운 일이에요. 최근에 작품 속에서 발견한 매력적인 여자가 있나요?

배우 중에는 에이미 아담스를 좋아해요. <그녀>에서도 좋았고, <녹터널 애니멀스>에서는 공허하면서도 관능적인 모습이었고, <아메리칸 허슬>에서는 정말 섹시했고, <컨택트>와 <빅 아이즈>에서도 또 너무나 다른 모습이었고요. 그렇게 많은 얼굴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 참 대단하다 싶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해요. 그리고 얼마 전에는 <올드 보이>를 다시 보면서 유지태 씨가 연기한 역할의 여자 버전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너무나 멋있을 것 같지 않아요? 굉장히 멋진 악역, 그런 캐릭터를 한번 연기해보면 원이 없을 것 같아요.

그 역할을 한효주가 연기한다면 굉장히 새로울 것 같아요.

재미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한 살이라도 더 나이 먹기 전에 액션 연기를 해보고 싶다고 여기저기에 이야기했는데 안 들어오더라고요.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할 수 있는 역할이 더 다양해진 것 같기도 해요. 다양한 커리어를 가진 여성을 연기할 수 있는 나이니까요.

벌룬 소매 디테일의 엠브로이더리 장식 시스루 드레스, 이너로 입은 톱, 레트로 무드의 니트 장갑, 니트 양말, 프린지와 스터드 장식의 앵클부츠는 모두 Burberry 제품.

 

지금 가장 바라는 것은 뭔가요?

무엇보다 제 본능이 뭔지 찾고 싶어요.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뭔지, 무의식 중에 생겨버린 책임감과 좋은 사람으로 비춰지고 싶었던 마음들을 다 걷어 낸 진짜 나의 모습이 뭔지, 정말 간절하게 나를 알고 싶어요. 제가 원래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겠거든요. 사람은 죽을 때까지 자기를 모른다고 한다는 말이 너무 뭔지 알 것 같아요.

진짜 나의 모습을 알게 됐는데 그게 되게 별로면 어떡해요?

그럼 다시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해야겠죠.

어쩌면 지금 한효주에게 가장 중요한 감정은 지겨움인지도 모르겠네요. 염증이야말로 새로운 무언가를 시작하게 만드는 훌륭한 영감의 원천이잖아요.

오, 멋있는 말이다. 그렇다면 그냥 그런 것으로 할까 봐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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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에디터
사진Hong Janghyun
헤어김 민선
메이크업서 희영
스타일리스트박 만현
세트 스타일링최 서윤
기타페인팅 아트/ 백해용
어시스턴트신 혜지, 김 민형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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