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MZ 피스트레인 페스티벌

비무장지대 남방한계선에 최근접한 지점에 위치해 있는 월정리역에서 노래할 백현진과 방준석의 듀오 방백과 영국 싱어송라이터 뉴턴 포크너, 해방 후부터 한국전쟁까지 철원군 조선노동당이 사용한 노동당사에서 무대를 꾸릴 선우정아, 페스티벌의 메인 프로그램이 펼쳐질 고석정 스테이지를 맡을 이디오테잎, 잠비나이, 새소년, 품 비푸릿. 평화를 소리 높여 노래할 이들을 만나봤다.

영역 너머, 이디오테잎

이디오테잎은 곡을 만들 때부터 곡의 성향을 규정하지 않는다. 그것은 밴드의 성향과도 이어진다. 이디오테잎의 음악을 굳이 어떤 장르 안에 넣기보다 ‘전자음악 밴드’라는 드넓은 초원에 풀어둬야 하는 이유다. 의적 임꺾정이 숨어 지냈다는 철원 고석정 무대에서 심장을 울리는 역동적인 리얼 드럼 사운드와 두 대의 신시사이저로 운용하는 리드미컬한 소리의 랠리가 울려 퍼진다. 

(왼쪽부터) DR이 착용한 스트라이프 니트,
수트 재킷, 팬츠는
모두 가격 미정으로 Wooyoungmi, 디구루가 착용한 터틀넥 니트는 Bally, 테일러드 팬츠는 Cos, 제제가 이너로 착용한 티셔츠는 Allsaints, 비즈 장식의 판초, 테일러드 팬츠는 모두 Ports 1961 제품.

피스트레인에서 공연할 철원 고석정에 가본 적이 있나? 

DR: 파주 헤이리를 가려고 하다가 민통선까지 간 적이 있다.(웃음)

특별한 시기, 특별한 페스티벌이다. 무대에 서는 의미가 남다를 것 같다.

DR: 부모님께서 625 때 남쪽으로 내려오신 분들이다. 그래서 일찍부터 예매도 하시고 기대를 많이 하고 계시다. 불과 몇 개월 사이에 분위기가 이렇게 흘러가고 뭔가 예상이라도 한 듯이 적절한 시기에 축제가 열리는 게 신기하다. 얼마 전 서울역에서 종착지 평양으로 가는 열차도 시험운행했다는 기사를 봤다. 

디구루: 큰외삼촌이 평양에 계신다. 그분의 존재를 작년에 처음 알았다. 둘째 외삼촌을 큰외삼촌이라고 알고 살아왔던 거지. 가족들도 외삼촌이 살아 계신지 몰랐고. 둘째 외삼촌이 호주 시민권자이면서 선교사로 활동 하셔서 얼마 전에 선교 활동으로 가셨다가 만나고 오셨다. 

제제: 유럽 투어 돌 때 현지 매체와 인터뷰를 하면 꼭 마지막엔 남북한 관계에 대해 물어본다. 그 사람들은 그게 궁금한 거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니까. 그럴 때 대답을 잘 못한 적도 있는데, 이번 공연을 하면서 현장을 직접 경험할 수 있다는 게 정말 좋은 것 같다. 

이디오테잎 곡은 가사는 없지만 제목에 함축한 뉘앙스들이 있다. 특별히 의미를 담아 선곡한 곡이 있나? 

디구루: 우리 곡 중에 ‘With the Flow’라는 곡이 있는데, 그 곡을 골랐다. 흐르는 강물처럼 통일은 그렇게 갈 수밖에 없는 대세라는 의미에서. 

올해로 10년 차 밴드다. 장수 비결이 뭘까?

DR: 이디오테잎 안에서는 뭘 해도 된다. 영역 밖의 것도 해볼 수 있고, 음악을 듣는 폭도 넓어지고 새로운 아이디어도 맘껏 전개해볼 수 있다. 다 함께 우리의 경계 너머의 것을 탐험하고 실험한다. 그게 밴드의 최고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모여서 우리의 음악을 만드는 것. 그것만큼 매력적인 게 없는 것 같고, 그래서 ‘밴드’는 사라지지 않는 게 아닐까? 

제제: 차이를 어떻게 받아들이냐의 문제인 것 같다. 3집에 ‘Tiger & Lier’라는 곡이 있는데 이 곡의 멜로디가 처음 리듬이 1-2-3-4로 가는데 DR 형이 드럼을 2-3-4-1로 쳐줬다. 처음엔 너무 당황했고 듣기 고통스러웠는데 계속 들으니까 말이 되겠더라. 오래 함께했으니까 기본적으로 서로가 어떤 걸 좋아하겠다는 걸 알지만 때로는 그걸 벗어났을 때 새로운 무언가가 나오는 것이 재미있다. 

멤버들이 공유하는 좋은 음악의 기준은 뭔가? 

디구루: 하나다. 신나? 안 신나? 우리도, 관객도 신나는 공연이어야 한다는 것. 

신나는 에너지는 어디서 받나?

DR: 공연 때 제일 많이 받는 것 같다. 누가 취미가 뭐냐고 묻는다면 밴드라고 답할 거다. 이게 없으면 내 인생 자체가 진짜 재미없을 것 같다. 공연 없을 때 다른 멤버들이 괴로울 거다. 내가 계속 괴롭히니까. 

제제: 세월호, 국정농단 사태가 불거졌을 때 우리가 정치와 무관하지 않다는 걸 몸소 느꼈는데, 나라가 어지러우니 행사가 다 취소되고 공연이 취소됐다. 우리가 음악을 한다는 게 이렇게 밀접한 연관이 있구나, 예술 하는 것이 세상과 단절된 게 아니란 걸 그때 처음으로 깊게 생각해본 거 같다. 좋아하는 외국 DJ들을 팔로하고 있는데 거의 10년 동안 그들이 정치 얘기 하는 걸 본 적이 없다. 그런데 브렉시트 터지고 나서부터 엄청 얘기한다. 나라가 엉망이 될 것 같으니까. 우리나라에서는 정치적 의사 표현하는 걸 안 좋게 보는 시각이 있는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싶다. 

앞으로 어떤 밴드가 되고 싶나?

제제: 2008년 이디오테잎을 시작할 때 우리나라에 전자음악 붐이 있었다. 근데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는 팀은 몇 없다. 살아남은 것 같다. 열심히 했지만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고 지금도 소수만 하는 음악을 하고 있다. 다른 나라 음악 신도 비슷하다. 그렇기에 희소성 있는 밴드로서 ‘미래의 음악’을 계속 만들고 싶다. 

디구루: 지금처럼 이디오테잎이라는 영역 안에서 계속 발전을 이루는 게 목표다. 꾸준히 밀고 나가는 것. 

글/ 이다영(프리랜스 에디터) 


경계 너머, 잠비나이

이일우의 피리, 태평소, 기타, 김보미의 해금, 심은용의 거문고, 그리고 유병구(베이스)와 최재혁(드럼)의 리듬 섹션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음악을 우리는 무어라 불러야 할까? 포스트 록, 메탈, 다크, 한국 전통음악, 아방가르드 등 다양한 이름을 붙이려는 시도가 있어왔지만, 무엇보다도 그들의 페이스북 프로필은 “퓨전 국악 절대 아님”을 강조하고 있다. 많은 사람에게 그들의 음악을 각인시켰던 2018 평창 동계올림픽 폐막식에 이어 DMZ 피스트레인 페스티벌에 참여하는 잠비나이를 만났다.

2018 평창올림픽 폐막식에서 거문고 연주자 80명이 잠비나이 특유의 헤비한 베이스 라인을 연주하는 모습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긴장되기도 하고, 통쾌하기도 하고, 만감이 교차했을 것 같다.

김보미: 그 순간에는 너무 비현실적이라 어떤 느낌이었는지 생생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끝나고 어렴풋하게 그날의 잔상이 남았다. 마치 신기루처럼. 

이일우: 국악 분야에서 더 유명한 명인, 연주자들이 많은데 국악계에서 환영 받지 못하는 우리가 선택된 것이 신기했다. 무대에 섰을 때는 예상과 다르게 책임감 같은 게 느껴졌다.

심은용: 세계적으로 큰 무대에 참여했다는 것만으로 가슴 벅찬 무대였다. 그리고 80명의 후배 거문고 연주자들과 함께할 수 있어서 영광스러웠다. 

최재혁: 지나고 나니 우리가 역사의 한 페이지, 그것도 한가운데를 장식했구나 싶어 만감이 교차한다. 잊지 못할 좋은 추억을 만들어준 모든 스태프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최근 국악계로부터 섭외 요청이 늘고 있다. 홍대 혹은 SXSW 같은 무대가 더 익숙할 텐데, 국악인 출신으로서 무척 감회가 새로울 것 같다.

김보미: 해외에서 먼저 주목을 받은 후 이제서야 조금씩 수용되고 있는데 좀 의아하기도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보수적인 집단임을 알고 있었고 어느정도 시간이 걸릴 것을 예측했다. 

심은용: 감회가 새롭기보다 잘하고 싶다. 정말 잘하고 싶고, 그럴 것이다.

이제는 가보지 않은 나라가 없을 정도로 많은 해외 투어를 다녔지만 이번 페스티벌 같은 곳에서 연주하기는 처음일 것 같다.

최재혁: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 그리고 북미정상회담으로 이어지는 새로운 평화와 희망의 물결에 어떨 땐 어지러울 정도로 하루하루 다이내믹하게 살아가는 느낌이다. DMZ 피스트레인이란 기차를 타고 북한을 거쳐 언젠간 유라시아를 누비고 싶다는 원대한 포부를 담아 무대에 설 예정이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자동차보다 더 타보고 싶은 기차가 될 것 같다.

이일우: 이전에도 평양 힙합 신, 평양 시티 하드코어 등등 상상했는데 그런 일이 실제로 올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기쁘고 그런 음악 신을 만들어가는 첫 단추 같은 페스티벌에 서게 되어 매우 감동적이다. 많은 사람들이 평화를 기원하며 단시간 내에 티켓을 매진시켰다는데 많은 관객 앞에서 공연할 것을 생각하니 설렌다.

김보미: 유럽 투어를 하게 되면 차로 수없이 국경을 넘게 된다. 그러면서 생각해보니 나는 한국이란 나라에 태어나서 육로로 국경을 넘어본 적이 없더라. 그때 깨달았다. 섬이나 다름없는 곳에서 나고 자랐구나. 빨리 통일이 되어 육로로 국경을 이동하며 투어를 하고 싶다. 특별한 장소에서 연주하는만큼 그 울림이 북쪽 땅에도 깊게 진동하여 전달되길 바란다. 

공연 현장에서 인기가 많은 1집 수록 곡 ‘Connection’은 종종 우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힘이 있는 곡이다. 뿐만 아니라 영화 <귀향>을 비롯한 다양한 영상작업에서 배경음악으로도 사용되며 끊임없이 새로운 맥락 속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이 곡의 힘은 어디에서 나온다고 생각하는가?

김보미: 하나의 주선율이 곡의 전체를 끌고가며 지속적으로 자신의 감정과 마주하게 하는 서사를 만든다. 음악 안에서 온전히 자아와 대면하는 순간을 만들어낸다는 게 이 곡이 가진 힘이 아닌가 싶다. 이 곡은 이일우가 학부 때 매 학기마다 전공 발표를 하는 수업을 위해 쓴 곡이었다. 물론 지금과 모습이 많이 달랐지만 1집 준비를 하며 내가 그 곡을 살려보는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학부 때도 해금 연주를 내가 했었는데 나 또한 하명의 청자로서 그때 이 곡이 참 좋았다. 

심은용: 잠비나이 음악 중에 거문고 연주가 테크닉적으로 기교가 없는 곡 중에 하나이다. 하지만 그 음악 안에서 연주를 하게 되면 나만의 공간이 생성되어 평정심 혹은 뭔가 환기가 되는 느낌을 매번 받는다. 강한 음악은 아니지만 내면의 강함이 있는 곡이다.

2015년 인터뷰에서 잠비나이를 롤모델로 여기는 후배들이 여럿 있는 것 같아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꼭 전통 악기를 사용하는 밴드가 아니더라도, 잠비나이처럼 경계를 허물어가는 뮤지션 중 요즘 눈여겨보는 후배 뮤지션이 있다면?

김보미: 선배님들인데 ‘씽씽’을 개인적으로 주목하고 있다.

유병구: 새소년 좋아한다.

최재혁: 7월에 정규 데뷔 앨범으로 새로 선보이는 신생 4인조 밴드 ‘H a lot(에이치얼랏)’.

글/ 구회일(프리랜스 에디터) 


품 비푸릿의 선샤인 뮤직 

자신의 음악을 ‘선샤인 뮤직’이라고 표현하는 태국 싱어송라이터 품 비푸릿(Phum Viphurit). 뉴질랜드에서 유년기를 보내고 돌아와 영어로 노래를 부르는 탓에, 안 그래도 경쟁이 심한 방콕 인디 신에서 큰 소속감을 느끼지는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셀프프로듀싱한 ‘LongGone’ 뮤직비디오가 바이럴화되며 (현재 470만 뷰를 기록하고 있다) 전 세계적인 사랑을 받게 되었고, 지난 4월, 아시아 투어의 일환으로 가졌던 첫 내한공연은 예매 오픈 3시간 만에 매진되기도 했다.그의 DMZ 피스트레인 페스티벌 참가 소식을 두고 햇볕정책과 선샤인 뮤직의 조우라 한다면 과한 걸까?

전업 뮤지션이 되기 전, 패션 잡지에서 일했다고 들었다.

무척 즐거운 경험이었다. 10대일 때부터 패션에 관심이 많았고, 영화를 공부하는 학생으로서 스트리트 패션 매거진 영상팀에서 인턴을 하는 것이 평범한 영화 제작사보다는 더 흥미로울 것 같았다. 많은 멋쟁이들을 만났고, 영상도 많이 찍었고, 재능 많고 아름다운 모델과도 함께 일할 수 있었으니 더 바랄 것이 없었다.

자신의 음악을 타이 음식 ‘카오 니여우 마무앙(망고밥)’에 비유한 적 있다. 그래서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당신이 그런지 록 밴드 멤버였다는 사실을 상상하기 어렵다. 뾰족뾰족한 두리안 음악에서 달달하고 부드러운 망고 음악으로 전환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지금도 그런지 음악을 만들 수는 있을 것 같다. 내면에 있는 공격성을 해소하기에 굉장히 좋은, 건강한 방법이니 말이다. 나는 요즘 인생에서 가장 만족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스트레스라든지 온갖 부정적인 것들이 세상에는 이미 많이 있으니, 그런 것으로부터 벗어나는 작업을 하고 싶다. 순수하고 단순한 즐거움의 순간이어야 한다. 깊이 생각할 필요 없이, 그저 느끼는 대로 가면 되는 음악.

이번 페스티벌에 당신의 ‘선샤인 뮤직’이 울려 퍼진다는 것은 특히 우리에게는 무척 아름답고도 감동적인 일이다. 당신은 어떤 기분인가?

역사적인 일이다. 무엇을 예상해야 할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다. 우리가 정말 남한과 북한의 국경지역에서 연주할 것이라는 사실을 주변 누구도 믿지 않는다. 평생 잊지 못할 경험을 하게 되기를 기대한다.

당신은 블랙핑크부터 혁오까지, 케이팝을 잘 알고 있다. 단순히 팬으로서가 아니라 케이팝의 기술적, 전문적 측면에서도 영향을 받는가?

케이팝은 진정한 팬이건 아니건 모두에게 영향을 준다고 생각한다. 나는 소녀시대, 원더걸스의 음악을 들으며 자랐다. 멜로디가 중독성 있고, 어디를 가든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케이팝이라는 장르가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어가는 과정을 보며, 뮤지션을 꿈꾸는 동양인으로서 언젠가 그들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혁오도 무척 좋아한다. 혹시 혁오가 이 기사를 읽게 된다면, 언젠가 당신과 같은 무대에 서고 싶다고 말하고 싶다.

‘LongGone’ 뮤직비디오의 배경 장소인 마히돌 국제대학교에서 영화를 공부했다. ‘LongGone’ 처럼 로파이하고 바이럴한 매력을 지닌 뮤직비디오를 만드는 방법은 일반적인 고등교육기관의 교수가 가르쳐줄 수 있는 것은 아닐 테다. 영상 작업에 있어서 당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스승은누구인가?

인터넷이었던 것 같다. 끝없이 이어지는 넷플릭스 플레이리스트건, 그냥 유튜브건, 내 폭식증을 만족시켜줄 콘텐츠가 언제나 있다. 인터넷은 이상하면서도, 영감을 받기에 무척 좋은 공간이다. 돈을 지불할 필요도 없고, 내가 본 영상과 유사한 추천 동영상을 하나하나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밤을 새우게 되니 말이다.

‘LongGone’에 등장하는 여성은 당신의 첫 팬 테치(Techi)다. 무명 유튜브 업로더에서 해외 투어를 떠나는 뮤지션이 된 당신을 보고 그가 무어라 하던가?

마치 엄마가 자식 보듯 대견해한다. 2015년, 내가 딱 한 곡을 발표했을 때 테치를 티셔츠 페스티벌에서 만났다. 테치는 그때부터 나를 응원해줬고 사랑은 계속 커져가고 있다. 테치가 ‘LongGone’의 주인공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앞으로 투어를 더 하게 되면, 그가 오버올 차림으로 무대에 올라와 함께 춤추면 좋겠다.

한국의 어떤 인스타그래머는 당신의 사진을 업로드하며 “리얼 힙스터는 태국노래 듣습니다”라고 적었다. 당신은 많은 한국인들로 하여금 태국 음악을 검색하게 만들고 있을지도 모른다. 꼭 추천하고픈 태국 음악이 있다면?

버드 통차이(Bird Thongchai)와 빠미(Palmy)의 초기 곡은 꼭 들어봐야 한다. 모두 태국어로 되어 있지만, 멜로디도 독특하고, 시대에 구애받지 않는 음악이다. 노스탤지어 러시가 필요할 때 꼭 그들의 음악을 듣는다.

글/ 구회일(프리랜스 에디터) 


새소년스러움

한 소녀(황소윤)와 두 소년(임강토, 문팬시)이 모여 결성한 새소년은, 블루스, 사이키델릭 록, 신스팝 등 여러 스타일을 관통하는 음악을 만든다. 2017년 첫 EP <여름깃> 발매와 함께 준비한 단독 공연은 예매 오픈과 동시에 매진되었고, 인스타그램으로 그들의 음악을 접한 혁오가 게스트 출연을 자처하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작곡가 유희열이 “방탄소년단, 아이유가 추천하는 그룹”이라고도 소개한 바 있는 새소년, 삽시간에 많은 사람들을 매료시켜버린 ‘새소년스러움’이란 무엇일까?

400석 공연장에서 연 첫 단독 공연이 1분 만에 매진됐고, 황소윤의 얼굴을 본뜬 문신을 하고 나타난 관객도 있었다고 들었다. 엄청난 양의 에너지가 멤버들을 향하고 있다는 건데, 이에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가?

감사하게 생각한다. 우리가 매 공연마다 힘을 얻을 수 있는 이유이다. 

황소윤의 데모 음원을 들은 붕가붕가레코드의 고건혁 대표가 직접 연락을 해오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게 됐다. 그날 이후로 전개된 여러 가지 새로운 사건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싱글 ‘파도’의 발매에 앞서 열었던 게릴라 공연. 처음으로 관객들의 반응과 새소년의 기운을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함성 소리에 귀가 아팠던 적은 처음이었다. 

처음에는 셋이 서로 잘 모르는 사이였고, 합도 잘 안 맞았다고 들었다. 결속력이 강해진 순간이 있었을 것 같다.

음악을 같이 만들고 편곡을 하다 보면 어떤 부분이 특별히 맘에 들고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에서 새로운 것들이 나왔구나라고 느껴질 때에 재밌고 공감대가 생긴다고 느꼈다. 그것은 고통스러울 때도 있지만 재미있고 의미 있는 과정이다. 그리고 중요한 공연들, 예를 들면 작은 공연만 해오던 우리가 단독 공연이나 같이 해보지 않았던 큰 공연을 준비하게 되면서 기간 내에 완성도를 보여줘야 했기 때문에 빠른 시간에 합주력이 늘어나는 것 같은 일들도 경험했다.

월간 <새소년> 주간이었던 어효선 선생의 동시 중에 이런 구절이 있다. “고 조끄만 씨 속에 이 많은 잎들이 들어 있었구나! 고 조끄만 씨 속에 이 많은 꽃들이 들어 있었구나!” 새소년의 창의력의 원천은 무엇인가?

내 머릿속엔 한계가 없음을 알고, 사람들의 시선과 제약 혹은 억압 없이 몸을 움직이고, 오늘은 또 어떤 일을 벌일지 기대되는 하루를 보내는 것. 

새소년이 점차 어른이 되다 보면 나중에 ‘버드맨’처럼 졸렬함과 불안에 허우적거리는 일이 생길 수 있다. 이에 어떻게 대처할 것 같은가?

소년은 어른이 되지 않길. 졸렬함과 행복은 공존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김한주 프로듀서의 프로듀싱을 받으며 선명해진 것이 있다면?

가장 개선되었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새소년만의 분위기와 특징을 알고 그것들을 극대화시킬 수 있게 되었다. 널브러져 있던 새소년의 책상을 잘 정리해 보기 좋게 만드는 작업이었다. 

앞으로 서보고 싶은 무대로 대학교 축제, 코난 오브라이언의 코난 쇼, 대형 시상식을 꼽은 적 있는데, 시간 문제가 아닐까 싶다. 아직도 그 바람은 여전한지, 혹 추가된 무대가 있는지?

시간 문제라고 말해주니 고맙다. 우리가 많은 관객을 만나고 좋은 무대에 설 수 있다는 것에 대해 감사하고 신기해하는 중이다. 꼭 서보고 싶은 무대는 잘 모르겠다. 어떤 무대든 그 순간에 재밌고 신나는 무대가 최고라고 생각하는데 굳이 꼽자면 <NPR>이라는 라이브 채널에서 자연스럽고 솔직한 모습의 새소년을 보여주고 싶다.

특별한 시기에 특별한 공간, 피스트레인 페스티벌에서 공연하게 된 소감이 궁금하다.

우리가 이곳에서 연주하고 노래했던 것들이 미래의 우리들에게 그리고 우리의 후손들에게 좋은 영향이 되었으면 한다.

마지막으로, 잊지 않으려 하지만 자꾸만 잊게 되는 것은?

초심. 우리가 어떤 과정을 거쳐서 이 상황까지 오게 됐는지 어떤 마음으로 창작을 했는지 그것을 잃어버렸다고 느낄 때가 있다.

글/ 구회일(프리랜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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