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유에게 보내는 믹스테이프

우순실의 ‘잃어버린 우산’부터 손지예의 ‘외출’까지, 아이유가 불러 줬으면 하는 옛 곡들을 소환해봤다.

아이유의 리메이크 프로젝트인 <꽃갈피>의 두 번째 묶음이 발매됐다. 총 여섯 곡이 실린 작은 앨범이다. 이병우와 양희은의 ‘가을 아침’을 간판으로 선공개한 뒤에 소방차와 김건모의 익숙한 경쾌함과 최성원과 이상은의 서정성, 그리고 정미조의 중장년 취향을 보탰다. 상업적인 밸런스를 최대한 고려하면서, 자신이 하고 싶고 잘하는 것을 부담 없이 툭 던진 느낌이다. 간결하게 편곡해서 원곡의 뉘앙스를 최대한 살린 데다가 직접 선배들에게 연락해서 허락을 구했다는 미담 아닌 미담까지 흘러나오는 것을 보면, 이 앨범은 선배 뮤지션은 물론 당대의 대중가요에 정중히 존경을 표하는 아이유의 오마주로 보인다. 그러나 물론 그게 다는 아니다.

아이유는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그냥 해도 괜찮을 만큼의 인기를 얻게 되자, 은근슬쩍 리메이크 곡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당돌하지만 예의 바르고, 꾸밈없이 소탈하게 불러도 어딘가 야릇한 목소리를 갖춘 당대 최고의 스타가 뮤지션으로서의 스스로를 중심에 두고 적극적인 플레이리스트를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단순히 쇼비즈니스에 몸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감수해야 하는 수많은 굴레로부터 탈피하여 오로지 뮤지션으로서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는 방법을 찾으려는 것으로 보인다.

내가 <꽃갈피>의 두 번째 시리즈에서 가장 인상적으로 들은 곡은 ‘개여울’이다. 이 노래는 소월의 시에 이희목이 곡을 붙인 것으로 1966년에 김정희가 최초로 취입한 이후, 남녀를 불문하고 많은 가수들이 불러왔다. 아이유는 정미조의 버전을 참고했다고 밝혔는데, 유튜브를 뒤져보면 심수봉이나 적우, 최백호, 웅산까지 이 노래를 불렀다. 그렇지만 앞서 설명한 것처럼 아이유의 버전은 조금 다르다. 정재형이 피아노와 약간의 스트링으로 안정적인 음향적 무대를 세워두면, 아이유의 목소리는 자유자재로 대본을 외우는 능숙한 배우처럼 옛 곡이라는 무대를 효과적으로 이용할 뿐이다. 내지르는 힘으로 선배 디바들의 곡을 소화하며 카타르시스를 유도하는 박기영 같은 가수들과는 정반대의 방향을 선택한 것이다. 패티김이나 임희숙이 불렀던 트로트풍 발라드를 더욱 더 극적으로 밀어붙여 대형 무대를 쥐락펴락하려는 게 아니라, 그 에너지를 대담하게 삼킨 뒤에 필요한 것만 드러내는, 오로지 아이유에 의해 조절되는 목소리만 있을 뿐이다.

이런 관점에서 아이유가 앞으로 리메이크하면 좋을 것 같은 옛 곡을 추천해볼까 싶다. ‘개여울’에서 조금 더 나아간다면, 특유의 기교와 목소리의 질감으로 접근해볼 수 있는 과거의 트로트들이 떠오른다. 문주란의 ‘돌지 않는 풍차’나 ‘보슬비 오는 거리’, 박재란의 ‘님’, 권혜경의 ‘산장의 여인’, 정은숙의 ‘석류의 계절’, 이미자의 ‘님이라 부르리까’, 혜은이의 ‘잊게 해 주세요’ 등등 여가수들이 저마다의 기교로 부른 곡을 골라 새롭게 각색해보는 것도 취향의 영토를 확장시킨다는 점에서 재미있을 것 같다.

트로트가 가진 다소 과잉된 절절함이 부담스럽다면 조금 더 목가적이고 서정적인, 동시에 무대 위에 단단히 서 있는 보컬리스트로서 다음의 노래를 선택해도 나쁘지 않겠다. 임아영의 ‘미련’, 우순실의 ‘잃어버린 우산’, 박인희의 ‘끝이 없는 길’, 채은옥의 ‘빗물’, 지은아의 ‘향수에 젖어서’, 장은아의 ‘이 거리를 생각하세요’ 등의 곡들이 떠오른다. 특히 이성애의 ‘사랑의 오두막집’은 이미 스윙 재즈의 형식으로 편곡되어 있으므로, 아이유가 초창기에 지향했던 뮤지컬적인 동화를 스스로 갱신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한편, ‘삼촌’들로 칭해지던 화려한 경력의 선배 작곡가들이 아이유에게 덧씌웠던 현란한 귀여움에 대해 완성된 뮤지션으로서 응답해보는 것도 재미있겠다. 손지예의 ‘외출’, 어떤날의 ‘너무 아쉬워하지 마’, 새바람이 오는 그늘의 ‘그냥’과 조규찬의 ‘그대 내게’, 장필순의 ‘가난한 그대 가슴에’, 윤상의 ‘사랑하오’, 아침의 ‘사랑했던 기억으로’ 등의 명곡들이 쏟아져 나오던 시점이 가진 감성을 한 명의 뮤지션으로서 다시 들여다보는 의미에서, 그리고 그렇게 이해된 한 시대를 다시금 청자에게 돌려주는 의미에서, 매우 흥미로운 프로젝트가 될 것 같다.

아이유의 리메이크 앨범은 과거의 명곡을 재발견한다기보다는 과거의 명곡을 통해 자신이 걸어가고자 하는 음악적 지향을 밝히는 것에 가깝다. 자신의 음악적 레퍼런스 목록을 보여주는 동시에 자신에게 의뢰된 신곡을 취입하듯이 옛 곡을 리메이크하는 것이다. 아이유 특유의 음색은 원곡을 재구성하는 데 가장 큰 기준이 되며, 그 음색을 ‘싱어송라이터적’인 간결한 편곡에 얹을 뿐이다. 소방차의 ‘어젯밤 이야기’나 김건모의 ‘잠 못 드는 밤 비는 내리고’를 아이유가 어떻게 소화했는지 들어보면 더욱 그렇다. 덕분에 아이유의 리메이크 곡에서는 정작 과거라면 응당 따라붙는 소위 ‘아날로그적’인 감성은 그다지 찾아볼 수 없다.(앨범 아트 워크부터 뮤직비디오까지 관통하는 복고적 미감은 오히려 장난스러워 보인다.) 음악에 시간이라는 필터가 덧씌워지면 언제나 더 아름다워 보인다는 당연한 사실을 굳이 강조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지나갔으니 다시 오지 않지만, 지나갔기 때문에 언제라도 다시 소환할 수 있다는 편안함. 그로부터 오는 안정감은 아이유의 리메이크 앨범을 좀 더 특별한 작가적 상상력의 결과물의 위치에 오르게 한다.

  • Kakao Talk
  • Kakao Story

Credit

에디터
김 유진(칼럼니스트)
사진Kim Raeyoung
출처
본 기사를 블로그, 커뮤니티 홈페이지 등에 기사를 재편집하거나 출처를 밝히지 않을 경우, 그 책임을 묻게 되며 이에 따른 불이익은 책임지지 않습니다. 웹사이트 내 모든 컨텐츠의 소유는 허스트중앙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