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 그룹의 하이패션 활용법

런웨이의 의상이 무대 위로 올라갔을 때 어떤 화학 작용을 일으킬까? 하이패션을 영리하게 활용하는 걸 그룹들이 있다.

걸 그룹의 의상은 또 하나의 멤버다. 무대 위에서 분명한 역할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걸 그룹은 직접 만든 옷, 시중에서 판매되는 제품, 하이패션 등을 활용해 무대의상을 제작한다. 그룹마다 운용 방식이 조금씩 다른데 카라나 에이핑크처럼 기성 제품이 들어갈 여지가 좁은 경우도 있고 2NE1이나 f(x)처럼 보다 현실적인 옷이 기반인 경우도 있다. 그리고 이 안에서 하이패션을 활용하는 방식 역시 다양하다. 소녀시대의 경우, ‘키싱 유’와 ‘지’를 부르던 시절에는 ‘단체복’을 입었지만 연차가 쌓이고 대형 그룹이 되어가면서 하이패션 의상을 적극 활용했다. ‘라이언 하트’로 활동할 때는 소녀시대 멤버 모두 베르사체를 입었고, 최근 정규 6집 앨범 <홀리데이 나이트> 활동 시기에도 하이패션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아이돌이 하이패션을 활용하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그룹과 곡의 이미지를 눈에 잘 띄게 만드는 데 있다. 최근 눈에 띈 ‘걸 그룹의 하이패션 활용법’을 세 가지 정도로 구분해보겠다. 우선, 레드벨벳은 언제나 컨셉트를 중시한다. 다만 그룹의 컨셉트가 강렬한 레드, 부드러운 벨벳 두 가지로 나뉘어져 있고 각 멤버별로 고유 컬러 등이 정해져 있어서 약간 복잡한 경향이 있긴 하다. 레드벨벳은 데뷔 초기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같은 판타지스럽고 동화적인 분위기가 강했다. 데뷔 티저나 쇼케이스를 할 때 올림피아 르탱의 옷을 입었다. 올림피아 르탱이 가진 몽환적이면서도 귀여운 느낌이 레드벨벳의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데 일조했다. 가장 최근에 활동한 ‘빨간 맛’에서는 기존의 동화적인 느낌은 많이 줄었고 스타일도 많이 변했다. BPB나 나인원투, 베이비센토르 같은 국내 브랜드, 에트레 세실이나 파메오 포즈 등의 해외 브랜드, 그리고 구찌나 준야 와타나베 등의 하이패션 브랜드 등 다양한 옷을 섞어 입는다. 그 옷들을 그냥 입지 않고 형태를 바꾸는데, 예를 들면 티셔츠들은 거의 소매를 잘라냈고 치마의 길이는 줄인다. 하이패션 브랜드의 옷은 구조와 컬러 모두 흔하지 않으므로 포인트처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레드벨벳의 경우엔 그런 의식이 별로 없다. 2만원짜리 티셔츠부터 1백만원짜리 치마까지 똑같은 ‘재료’로 사용된다는 점이 흥미롭다. 입고 있는 옷만 보고 원래 어떤 브랜드의 아이템인지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다. 하이패션을 저렇게 쓸 거면 그냥 새로 제작을 하는 게 낫지 않을까 싶기도 하지만, 이것은 어쩌면 패션에 대한 태도와 맞닿아 있을지도 모른다.

이에 비해 블랙 핑크의 경우 하이패션은 하이패션으로 쿨하게 소비한다. YG 소속 그룹 중 2NE1이나 빅뱅도 힙합, 스트리트 등 자신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옷을 그대로 입는다. 무대 밖에서 평소 이들이 입고 다니는 옷도 크게 다르지 않다. 블랙 핑크는 패션과 음악 양쪽에서 2NE1의 아이덴티티를 계승하며 발전시키고 있다고 볼 수도 있는데, 최근 활동한 곡 ‘마지막처럼’의 경우만 봐도 그렇다. 뮤직비디오에서 입은 스쿨 룩에는 구찌, 생 로랑, 베트멍, 발렌시아가, 발맹 등 지금 한창 트렌드를 이끌고 있는 브랜드들이 섞여 있다. 2NE1이 활동하던 시절에는 스트리트 패션이 부상하고 있긴 하지만 언더그라운드 느낌이 많이 남아 있었다면 블랙 핑크가 활동하는 지금은 스트리트 패션과 하이패션의 경계가 허물어졌다. 두 그룹의 패션도 이런 변화를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 이들에게 패션과 음악은 한 몸에 가깝다.

마지막으로 최근 3년 만에 발표한 선미의 싱글 앨범 ‘가시나’의 뮤직비디오에서 보여준 룩은 패션을 상당히 본격적으로 활용한 사례다. 패션을 스토리의 매개체이자 주인공의 현 상태를 암시하는 시그널로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도식적인 면이 있긴 하지만 걸 그룹이 하이패션을 활용하는 흥미로운 방식 중 하나인 건 분명하다. 곡의 초반부에만 해도 UNIF의 귀여운 스트라이프 옷을 입던 선미는 후반부로 갈수록 화려하고 과감한 옷을 입는다. 구찌의 핑크 컬러 플라워 패턴 톱이나 생 로랑의 프린트 드레스, 여성의 얼굴이 프린트되어 있는 제레미 스콧의 플리츠 치마 등 수많은 옷이 쉼 없이 지나간다. 뮤직비디오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어깨가 잔뜩 과장된 파워 숄더 드레스가 연속으로 등장한다. 이제 그녀는 어떻게 봐도 “가지 마세요” 따위의 말을 할 분위기가 아니다. 선미는 음악 방송에서도 뮤직비디오와 비슷한 강렬한 분위기의 하이패션 브랜드 드레스를 많이 입었다. 특히 허벅지까지 오는 발렌시아가의 하이 부츠를 핑크, 퍼플, 블랙 등 컬러별로 신고 나오기도 했다. 발렌시아가는 선미의 이미지를 일정 부분 만들어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이돌은 하이패션을 숭배하는 것이 아니라 활용한다. 그런 점에서 이 신은 여전히 흥미진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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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박 세진(<패션 vs. 패션> 저자)
기타아트 워크/ Frank studio(c.fac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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